카니예 웨스트/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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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뷔 이전 (1977 ~ 1995)
2. 프로듀서 시절 (1996 ~ 2002)
3. 교통사고와 1집 The College Dropout (2002 ~ 2004)
4. 2집 Late Registration (2004 ~ 2005)
5. 3집 Graduation (2005 ~ 2007)
6. 모친의 죽음과 4집 808s & Heartbreak (2007 ~ 2008)
9. JAY-Z와의 콜라보레이션, Watch The Throne (2010 ~ 2011)
10. GOOD Music의 컴필레이션 앨범, Cruel Summer (2011 ~ 2012)
11. 6집 Yeezus (2012 ~ 2013)
12. 7집 The Life Of Pablo (2013 ~ 2016)
13. 8집 ye와 와이오밍 프로젝트 (2017 ~ 2018)
14. Yandhi와 9집 JESUS IS KING (2018 ~ 2019)
15. 10집 Donda (2019 ~ 2021)
16. 11집 Donda 2 (2021 ~ 2022)
17. 히틀러 관련 발언과 그 이후 (2022 ~ 2023년 초)
18. 잠적, 그리고 Vultures (2023년 ~ 현재)



1. 데뷔 이전 (1977 ~ 1995)[편집]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사진기자이자 흑표당 당원의 상담사인 아버지와 시카고 주립대 영문과 교수였던 어머니 돈다 웨스트 밑에서 태어났는데 부모님은 그가 3살때 이혼을 하여 모친의 직장인 시카고로 이주했고 어머니 밑에서 자라나게 된다. 10살 때는 풀브라이트 학자로서 난징대학을 가게 된 어머니를 따라서 중국 장쑤성 난징에서 1년을 보낸 적도 있었고, 시카고로 돌아온 뒤 힙합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여 작곡을 시작했다고 한다. 14살 때 훗날 시카고 대표 프로듀서로 발전하는 No I.D.를 만나게 되며, 이후에는 래퍼 더그 인피니트랑 가까워지게 되어 그들의 밑에서 칩멍크의 기반이 되는 샘플링과 비트 방법론을 처음 배우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에는 미술학교도 다녔었고 시카고 주립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수학했으나 학업이 자신의 음악 활동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고 대학을 중퇴하게 된다.[1]


2. 프로듀서 시절 (1996 ~ 2002)[편집]



공식적으로는 1996년 래퍼 Grav의 Down to Earth 앨범을 프로듀싱 하면서부터 활동을 시작하였고, D-Dot[2]의 고스트 프로듀서로 활동하는 동시에 90년대 말 “Go Getters”라는 시카고 지역힙합 그룹에서 활동하는 동시에 프로듀서로서는 폭시 브라운, 할렘월드 등 수많은 힙합 가수들의 곡을 만들어 주고 2000년까지 2개의 플레티넘 앨범에 참여하며 차츰 인지도를 쌓아갔다. 이후 2001년, 음반 계약을 따내기 위해 아에 뉴욕으로 이주한 뒤 Izzo (H.O.V.A.)가 당시 더욱 소울풍이 가득한 앨범을 원했던 제이지에 의해 선택된 후 제대로 눈에 띄어 JAY-Z의 6집 앨범인 The Blueprint에서 5곡을 프로듀싱 하면서 프로듀서로서 꽤나 큰 성공을 거둔다.[3][4] 이 앨범의 성공 이후에도 카니예는 제이 지의 음반사인 라커펠라 레코드의 소속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서로 활동했으며, 앨리샤 키스(You Don't Know My Name), 루다크리스(Stand Up), 재닛 잭슨(Damita Jo) 등의 유명 아티스트들과도 작업을 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당시 같이 동거동락하던 프로듀서 저스트 블레이즈와 더불어 기존의 소울 음악에서 샘플을 뽑아오고 보컬의 피치나 속도를 올려 만드는 방식인 칩멍크 소울(Chipmunk soul)을 크게 유행시킨다.[5]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카니예는 래퍼가 되기를 오래 전부터 희망해 왔기에 이미 1999년 시카고 시절부터 1집을 준비해왔다. 허나 당대 유행하던 갱스터 래퍼들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카니예의 중산층 배경과 프로듀서로서 굳어진 이미지 때문에 음반 계약을 따내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Roc-A-Fella도 마찬가지로 다른 가수들에게 곡을 주기 위해 카니예를 잡아둘지언정 아티스트로서의 계약은 계속 꺼려왔다. 일례로 캐피톨 레코드와 로커스 레코드 A&R 팀에서 계약을 추진해왔으나 상부에서 상품성을 이유로 반대하여 무산된 바 있다. 즉 A&R 팀에서는 눈 여겨 보았으나 듣도 보도 못한 음악을 하던 중산층 카니예의 상품성이 연이은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6][7] 이러한 난관에 부딪혔지만 끈질긴 설득으로 2002년 8월 Roc-A-Fella와의 계약을 성사시켰고 라커펠라 아티스트로서 본격적으로 래퍼로서의 데뷔를 준비한다. 허나 계약 이후에도 멤버들 사이에서 래퍼로선 들러리 취급 받으며 비트나 찍어달라는 소리나 들었고 녹음 예산도 주지 않아 지인들 스튜디오에 얹혀서 녹음을 했다.[8]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를 당해 본인을 증명할 기회도 멀어진다.


3. 교통사고와 1집 The College Dropout (2002 ~ 2004)[편집]






Through The Wire
Jesus Walks




All Falls Down
Spaceship

허나 교통사고 2주만에 턱이 나간 상태로 녹음에 돌입했고 곡 유출로 인해 리마스터링과 리믹스 등의 수정 작업을 거쳐 2003년 말 첫 번째 싱글 Through The Wire가 과거 교통사고 속보와 오버랩되며 멋진 라이브 퍼포먼스, DIY 감성의 마이너한 뮤직 비디오가 큰 기믹이 되었고[9][10] 파죽지세로 두 번째 싱글 Slow Jamz는 무려 빌보드 넘버원에 안착시킨 뒤에서야 락커펠라의 지원을 받으며 2004년 드디어 첫 앨범 The College Dropout을 발매, 데뷔작부터 빌보드그래미를 초토화시키며 드디어 래퍼로서 인정를 받게 된다. 같은 해 본인의 레이블 굿뮤직을 설립하여 시카고 동향 선배인 커먼과 본인이 발굴해낸 존 레전드를 영입하기에 이른다.[11][12]


4. 2집 Late Registration (2004 ~ 2005)[편집]






Gold Digger
Heard 'Em Say




Touch The Sky
Diamonds From Sierra Leone (Remix)

2집까지는 JAY-ZThe Blueprint와 같은 고전적인 음악을 샘플링 하는 스타일이였다. 앞선 정규 1집으로 백만장자가 된 카니예는 포티스헤드의 오케스트라 라이브 앨범인 Roseland NYC Love, 피오나 애플 등에 영감을 받아 이번 앨범에 2백만 달러나 들여 궁핍했던 1집 제작 과정과는 달리 영화 음악 작곡가인 존 브라이언[13]을 섭외, 라이브세션까지 써가며 기존의 샘플링과 더불어 적절하게 악기를 조합하여 보다 다채롭고 다듬어진 사운드를 선보였다. 2집은 힙합 자체의 색깔을 부서지지 않는 선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것을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았으며 5집, 6집과 함께 2집을 카니예의 최고작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5. 3집 Graduation (2005 ~ 2007)[편집]






Stronger
Flashing Lights




I Wonder
Good Morning

2집 이후 U2의 투어에 참여하게 된 칸예는 이에 영감을 받아 3집부터는 스타디움에서 공연 할 수 있는 힙합 음악을 만들기로 한다. 이를 위해 밥 딜런조니 캐시와 같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들으며 가사 쓰는 실력을 길렀고, 라디오헤드모데스트 마우스등의 얼터너티브 락레드제플린, 롤링 스톤즈와 같은 아레나 락을 들으며 멜로디를 만드는 데에 영감을 받았다. 전 작품들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과감한 신스와 오토튠을 강하게 첨가했고 팝 앨범 성향이 강해 기존 리스너들로부터 호불호가 꽤나 갈렸지만, 이러한 변화가 새로운 힙합 사운드를 제시한다는 평가도 받았다. 본인의 말로는 고전적인 소울 샘플링과 미래적인 전자음을 한 곡으로 합쳐서 새로운 느낌의 힙합을 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앨범의 리드싱글인 다프트 펑크Harder, Better, Faster, Stronger를 샘플링한 Stronger는 간지 절정을 보여주며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고, T-Pain의 오토튠+신스 힙합곡에 엉뚱하게도 어쿠스틱한 마이클 잭슨의 P.Y.T이란 곡을 샘플링한 Good Life는 싱글차트를 정복하는 등 흥행으로나 작품성으로나 가치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T-Pain과 더불어 오토튠 열풍에 불을 지폈고 당대에만 해도 소규모 클럽 위주로 전개되던 일렉트로 음악의 대중화를 앞장 세워 일렉트로붐이 시작될 수 있는 거름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까지의 칸예가 올드 칸예라고 불린다.


6. 모친의 죽음과 4집 808s & Heartbreak (2007 ~ 2008)[편집]






Heartless
Paranoid




Street Lights
RoboCop

이후 모친의 죽음, 약혼녀 Alexis Phifer와의 파혼을 겪으며 Glow in the Dark Tour를 진행하였고, 이후 하와이로 떠나 3주간 작업하여 기존과는 사뭇 다른 무드의 일렉트로팝 앨범인 4집 808s & Heartbreak를 발매한다. 이름에도 나와 있듯 존 브라이언에게 소개 받은 808 드럼을 사용해 그 시기에 카니예 웨스트의 개인사를 랩과 알앤비의 경계에서 절묘하게 녹여낸 앨범으로 발매 당시만 해도 '랩은 안 하고 웬 오토튠 떡칠 알앤비 짬뽕을 만들었냐?'라며 당시까지 발매한 모든 앨범들이 전부다 그래미를 수상한것과달리 앨범상에 후보로도 못오르며 평단의 까임은 물론 처음으로 빌보드 1위 곡을 배출하지 못했지만, 2010년대 초반 얼터너티브 R&B, 싱잉 랩 등 카니예가 시도했던 음악이 트렌드로 떠오르자 역으로 시대를 앞선 위대한 음반으로 재평가를 받게 된다.[14][15] 이때의 칸예까지 올드 칸예로 칠 때도 있다.


7. VMA 난입 사건 (2009)[편집]



2009년 9월,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여자 부문 비디오상을 테일러 스위프트의 "You Belong With Me"가 수상했는데, 테일러가 소감을 말하던 중 갑자기 무대에 난입하여서 마이크를 가로채며

"Yo Taylor, I'm really happy for you, I'mma let you finish but Beyonce had one of the best videos of all time. One of the best videos of all time!

요, 테일러, 난 네가 수상해서 기쁘고, 네가 (소감을) 끝내도록은 해 주겠는데 비욘세의 비디오는 역대 최고의 비디오 중 하나였어! 최고의 비디오 중 하나라고!

라고 말하였다.

이에 칸예는 버락 오바마에게까지 욕을 먹으며 이미지가 심하게 실추되었고, 레이디 가가와의 합동투어마저 취소되었다. 이후 칸예는 파파라치를 피해 일본과 로마로 가 패션 공부를 하였다.[16]

8. 5집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2009 ~ 2010)[편집]






Runaway
Devil In A New Dress




POWER
Lost In The World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2009년 부터 칸예는 하와이로 망명하여 하루에 90분씩 쪽잠을 자며 5집 작업을 하였고, GOOD Fridays 프로젝트를 통해 매주 한 곡씩 무료로 발매하기도 하였다.[17] 이후 2010년 11월 발매한 정규 5집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평단의 압도적인 호평을 받아내며 카니예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꽉 찬 사운드, 화려한 샘플링, 초호화 프로듀서들과 피쳐링 가수들이 특징이며[18], The College Dropout 시절 때부터 보여준 카니예의 다양한 음악 스타일들과 대담한 시도들이 총망라된 결과물이라 평가받는다. 다만 과거에 비해 싱글 차트에서는 상당히 부진하며 이 때부터 정규 앨범에서 별다른 히트곡을 배출하지 못하게 된다.



9. JAY-Z와의 콜라보레이션, Watch The Throne (2010 ~ 2011)[편집]






No Church In The Wild
Niggas In Paris




Otis
Why I Love You

원래는 5곡짜리 EP로 발매될 예정이였으나, 정규 앨범으로 발전하여 2011년 8월 8일 발매되었다. MBDTF의 맥시멀리즘이 이어져 온 앨범이며 MIKE DEAN, Q-Tip, Hit-Boy, RZA, Swizz Beatz등의 프로듀서들이 참여하였다. No Church In The Wild와 Made In America에 피처링 한 프랭크 오션이 큰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MBDTF의 큰 성공에 이어 이 앨범까지 연달아 히트를 치게 되면서 칸예는 엄청난 거물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10. GOOD Music의 컴필레이션 앨범, Cruel Summer (2011 ~ 2012)[편집]






Clique
Don't Like.1




Mercy
Sin City

2012년 9월 14일 칸예의 레이블인 GOOD MusicCruel Summer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다. 수록곡들의 퀄리티가 편차가 커 전작들에 비해 애매한 평을 들었다.

11. 6집 Yeezus (2012 ~ 2013)[편집]






New Slaves
Black Skinhead




Bound 2
Hold My Liquor

2013년 카니예의 음반 중 가장 실험적이고 과격하다는 평을 받는 6집 Yeezus를 발매하였다.[19] 2013년 초 파리의 호텔에서부터 구체화된 이 앨범은 르 코르뷔지에가 만든 램프, 1980년대 시카고 하우스 음악 등에 영감을 받아 익스페리멘탈한 미니멀리즘 사운드가 구현되었다. 특이하게도 프로듀서로 섭외된 릭 루빈은 사운드를 추가하기보단 덜어내는 역할을 맡아 3시간 30분 정도였던 초기 컷을 16곡으로 줄이게 된다. 5집과 마찬가지로 평단의 찬사를 끌어모았지만, 대중들 사이에서는 호불호가 갈렸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부터 카니예가 Yeezus에서 시도했던 음악 스타일이 Travis Scott, Future, Migos 등의 래퍼들에 의해 대중화되면서, Yeezus808s & Heartbreak처럼 시대를 앞선 앨범으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이후 2013년 10월 19일부터 약 11개월 간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홀리 마운틴에 영향을 받은 The Yeezus Tour를 진행하게 된다.


12. 7집 The Life Of Pablo (2013 ~ 2016)[편집]






Father Stretch My Hands Pt. 1
Ultralight Beam




Saint Pablo
Wolves

2014년과 2015년에는 폴 매카트니와 협업한 싱글들인 Only One, FourFiveSeconds, All Day등이 발매 되었다.

2016년 The Life Of Pablo를 발매하였다. So Help Me God, SWISH, Waves, The Life Of Pablo 순으로 이름이 바뀐 이 앨범은 발매 된 후에도 계속 수정 되는 혁신적인 모습을 보였다. 카니예 본인은 이 앨범을 “욕설이 꽤나 많은 가스펠 앨범”이라 표현했다. 피지컬을 발매하지 않았으며 스트리밍의 대세를 따라갔다.

이후 칸예는 Turbo Grafx 16라는 앨범을 낼 것이라 선언하고 2016년 8월 25일부터 Saint Pablo Tour를 진행하게 된다. 그러나 아내가 강도를 당한 이후 11월 19일 공연에서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여러 발언들을 한 뒤 투어가 취소되었고, 칸예는 UCLA 메디컬 센터에 입원하게 된다.

13. 8집 ye와 와이오밍 프로젝트 (2017 ~ 2018)[편집]






Ghost Town
I Thought About Killing You




4th Dimension
What Would Meek Do?

양극성 장애가 심화된 뒤 푸샤 티DAYTONA, 카니예 자신과 키드 커디의 KIDS SEE GHOSTS 등을 제작한 와이오밍에서 만들어진 앨범이다. 2017년 5월부터 칸예가 와이오밍에서 음악을 만들고 있다고 보도되었으며, 2018년 4월 싱글 Lift Yourself와 Ye vs. the People이 발매된다. 원래는 LOVE EVERYONE이라는 앨범이 발매 될 예정이었으나, 2018년 5월 TMZ와의 인터뷰에서 흑인 노예제 관련 발언을 한 뒤 폐기 되었고, 2주만에 ye를 새로 만들게 된다.평론가들의 평가는 이전의 칸예 앨범들에 비해서는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평이 좋아지고 있으며 양극성 장애를 잘 드러내는 앨범 커버와 일부 킬링트랙들이 호평받고 있다.


14. Yandhi와 9집 JESUS IS KING (2018 ~ 2019)[편집]






City in the Sky
Alien




God Is
Follow God

8집 발매 이후, Yandhi라는 앨범이 2018년 9월 29일 발매 될 것이라 선언하였으나 연기 되었고, 칸예는 앨범을 완성하기 위해 우간다까지 가서 작업을 하지만 결국 앨범은 무기한 연기된다.[20] 이후 2019년 1월 6일 칸예는 Sunday Service Choir라는 가스펠 합창단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한다. 2019년 10월 25일, 마침내 9집 JESUS IS KING이 발매되었으나, 힙합 보다 가스펠에 가까운 음악 스타일과 조악한 믹싱 등으로 인해 혹평을 받았다.

15. 10집 Donda (2019 ~ 2021)[편집]






Jail
Off The Grid




Hurricane
Believe What I Say

원래는 God's Country라는 이름으로 발매될 예정이였으나,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2020년 7월 21일 앨범의 이름을 Donda로 변경하였다. 2020년부터 수 차례의 연기와 세번의 리스닝 파티를 거친 끝에서야 발매되어 엄청난 스트리밍 붐을 일으켰다. 앨범 발매 이후 인스타그램에서 Donda의 앨범 커버처럼 검은색으로 프사를 맞춘 사람들을 팔로우 했다. 저스틴 비버켄드릭 라마 같은 유명인 외에도 프사를 검은색으로 하기만 하면 팬 계정이나 일반인, 한국인들도 팔로우를 해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 앨범 이후 활발하게 공연을 하고 있으며 오랜만에 롤링 라우드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드레이크와의 합동공연은 수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6. 11집 Donda 2 (2021 ~ 2022)[편집]


10집 Donda의 후속작으로 2022년 2월 22일, 리스닝 파티를 하며 앨범의 발매 예고를 하였다. 한국 시간 기준 2월 24일에 4곡을, 2월 25일에 추가로 12곡을 발매하여 총 16곡을 스템 플레이어 단독 공개한 뒤 며칠간 수정을 거치며 음원들이 업데이트되었다. 그러나 곡들의 퀄리티가 매우 조악하고 기본적인 믹싱/마스터링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음원도 있어서 사실상 미완성 앨범이라고 봐도 된다. 또한 다른 매체 없이 스템 플레이어로만 공개되어 극소수의 리스너들만이 청취하였기에 이걸 정규 앨범으로 칠 지 말아야 할 지 애매하다는 의견이 있다. 2월 이후 몇달동안 곡들을 수정하며 완성도를 높였지만, 결국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무산되었다.


17. 히틀러 관련 발언과 그 이후 (2022 ~ 2023년 초)[편집]


Donda 2 발매 후 눈에 띄는 음악 활동은 하지 않고 정치 및 패션 활동에 한동안 전념하였다. 사실 제임스 블레이크, No I.D.와 합작 앨범을 작업하고 있었으나 히틀러 용서 발언, 홀로코스트 부정 등 온갖 막장짓을 하고다니며 음악 커리어를 떠나 인생에서 가장 위태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합작 앨범도 자연스럽게 취소되었다.

그러던 중, 12월 8일 도니 해서웨이의 'Someday We'll All Be Free'를 샘플링한 비트의 트랙을 2분 남짓 짧게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면서 오랜만에 음악적 행보를 보였다. 반응은 대체로 매우 좋은 편이며 최근의 온갖 실드 칠 수 없는 언행에도 음악적 능력만큼은 살아있다는 반응과 이제라도 제발 음악에나 집중하라는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18. 잠적, 그리고 Vultures (2023년 ~ 현재)[편집]


2023년 4월 경, 본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활성화하였으며 앞선 히틀러 발언으로 트위터 계정 또한 정지당했기 때문에 사실상 SNS 활동을 그만두고 잠적하여 앨범 작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6월부터 일본에서 장기 체류하며 irko라는 음악 엔지니어와의 만남, Young Thug과의 비즈니스 이야기 외에도 Donda 시리즈에 참여한 바 있는 Digital Nas와 타이 달라 사인, Rooga, KayCyy 등이 릴레이로 일본행 출국 및 음악 작업을 하고 있음을 알리면서 루가에 의해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일본에서의 체류를 끝내고 이탈리아로 넘어간 뒤에는 키르쿠스 막시무스에서 열린 트래비스 스캇UTOPIA 투어 오프닝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하였다.

2023년 9월 미공개 곡들이 대거 유출되었는데, 이 때 2020년경 작업 중인것으로 알려졌다가 폐기된 것으로 보이는 JESUS IS KING: THE DR. DRE VERSION의 거의 완성 직전의 버전이 유출되었다.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인 편.

그와 별개로 2013년 Yeezus시절부터 2020년 Donda까지의 방대한 분량의 작업물들이 죄다 유출되었는데, 이 중에는 Donda의 수록곡들의 미공개 뮤직비디오와 미공개 영화, 다큐멘터리들, 그리고 제목도 없는 미발매곡들 등이 있다. 그러나 Donda 2 이후 작업물들은 거의 유출되지 않아 새 앨범 발매에 지장이 가진 않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 시간으로 10월 5일 오후 12시, Jesus Is King II를 비롯한 48개 정도의 노래들이 유튜브 뮤직 칸예 공식 계정에 업로드되었다...가 1시간 가량 후에 내려갔다. 사람들은 유튜브 등지에 퍼져있는 미공개 곡들을 내리기 위한 저작권을 등록하기 위해 노래들을 업로드하려다가, 비공개로 올려야 할 것을 실수로 공개로 올린 것으로 추정중이다.

10월 20일 수용 인원 8만 명 규모인 이탈리아의 RCF 아레나에서 새 앨범의 리스닝 파티를 개최한다고 했으나, 리스닝 파티가 취소되고 RCF 아레나에 지어지던 세트도 철거되었다.

이후 사우디 아라비아 사막에 세워진 새로운 작업실의 모습이 유출됬다. 11월 21일 사우디에서 작업했으며 본인 싱글 Cold를 샘플링한 Vultures를 발매했다. 팬들의 사이에서 심하게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며 당황스러운 가사가 빈번하게 나오기 때문에 신앙심을 잃은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타나고 있다.[21]

한국시간 기준 12월 6일, 타이 달러 사인이 17곡으로 구성된 앨범의 트랙 리스트를 공개했다. 제목은 싱글과 동일한 Vultures이며, 앞서 발매한 Vultures는 물론 Yandhi 폐기 이후 타이 달러 사인의 싱글로 발매된 바 있는 New Body가 포함되었다.#

12월 10일, 6개월만에 미국으로 복귀했으며, 12월 12일 마이애미에서의 리스닝 파티를 예고했다.

12월 13일에는 계정 복구 후 활동을 하지 않았던 본인의 X에 새 글을 남겼다. # 또한 그동안 비활성화하였던 인스타그램 계정도 복구시켰다.

본래 12월 15일 금요일 발매가 예상되었었으나, 언제나 그랬듯이 별다른 이유없이 앨범을 연기함과 동시에 또다른 소규모 리스닝 파티를 열었다. 즉석에서 녹음과 믹싱을 계속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빠른 시일 내에 앨범이 나오기는 힘들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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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서 1집 앨범 제목이 The College Dropout이다.[2] The Madd Rapper라고 불리기도 한다. [3] 다만 jeen-yuhs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이 당시 성공 이후에도 곡당 500달러 가량을 받으며 일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는 언론에서 이름 발음도 “캔예”로 햇갈려 할 시기[4] The Blueprint는 흥행에 성공, 평단의 압도적인 호평을 받아냈고 한동안 침체기였던 제이 지의 화려한 부활을 알렸으며, 마침내 힙합 앨범 중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명반으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2019년 미국 의회도서관이 The Blueprint의 영구 보존을 결정하였으며, 이는 이 앨범이 힙합 장르뿐만 아니라 미국의 음악사 자체에 상당히 의미가 있는 앨범임을 알 수 있다.[5] 카니예가 프로듀싱한 수록곡 중 하나인 Heart of the City의 원본과 피치와 속도를 높인수록곡을 비교해보자.[6] 힙합계에서는 드문 중산층 집안 출신으로 그 이전에는 데 라 소울, 같은 시카고 출신의 커먼 등이 있었다. 이러한 집안 배경 때문에 활동 초반에는 상당히 많이 까였다. 제이지가 처음 카니예를 데려왔을 때 "먹물 먹은 흑인 놈이 이 거친 힙합계에서 뭘 하겠냐"고 하는 분위기가 많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카니예 본인에 의하면 홀어머니 아래서 자란 만큼 다른 흑인들처럼 자라 왔고 중산층이나 총질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그리 풍족하게 자라진 않았다고 한다.[7] 연이은 레이블들의 거절과 음악적 스승이었던 더그 인피니트가 본인을 향한 디스곡까지 내서 이 시기 최악의 나날을 보냈다.[8] 제이미 폭스, 루다크리스 등의 작업 시간을 쪼개어 빌리면서 그 짧은 시간 안에 피처링까지 받아 냈다.[9] 사비 33,000 달러를 제작에 사용했다고 한다.[10] 또한 사고를 통해 뜬금 없이 최고로 옷 잘입는 래퍼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11] 랩 자체는 비교적 낮은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앨범 발매 몇 달 전에 교통 사고로 턱에 철사를 박는 수술을 해서 발음이 부정확하기 때문.[12] 1집Through The Wire가 이를 다룬 곡이다. 샤카 칸의 히트곡 Through the Fire의 보컬 부분을 추출해 하이 피치 샘플링하고, wire로 바꾼 언어유희.[13] 펀치 드렁크 러브, 이터널 선샤인, 시네도키, 뉴욕등의 영화들의 음악을 만들었다,[14] 특히 카니예의 수제자 트래비스 스캇이 이 앨범이 나온지 약 10년 뒤인 2010년대 후반 이 앨범에서의 싱잉 랩, 오토튠 스타일을 완벽히 차용하여 힙합 씬에 메인으로 올려놓음으로써 이 앨범의 재평가에 크게 기여하였다.[15] 여담으로 마이클 잭슨이 칸예가 이 앨범에서 노래를 부르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16] 이때 버질 아블로펜디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된다[17] 이때 Monster, Devil In A New Dress, So Appalled가 미리 공개되었다.[18] 싱글인 All Of The Lights만 해도 리아나, 키드 커디, 앨리샤 키스, 심지어 엘튼 존이 참여한다![19] 앨범의 원래 제목은 Thank God for Drugs였다.[20] 칸예가 우간다에서 납치당할 뻔 했다는 설도 있다.[21] 특히 'How I'm anti-semitic? I just fucked a Jewish bitch.'라는 가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