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 스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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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 재거
키스 리처즈
찰리 와츠
로니 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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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멤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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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K Albums ]
[ US Albums ]
[ Live Albums ]
[ Compilations ]

파일:220px-BigHitsU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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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astdarkly.png


파일:220px-Stone_Age_Rolling_Stones.jpg


파일:220px-Gimme_Shelter_Rolling_Stones.jpg

Big Hits (High Tide and Green Grass)
1966.03.28
Flowers
1967.06.26
Through the Past, Darkly (Big Hits Vol. 2)
1969.09.12
Stone Age
1971.03.06
Gimme Shelter
1971.09.10

파일:0jqcw9nw.jpg


파일:220px-Milestones.gif


파일:Rock_'N'_Rolling_Stones.jpg


파일:모어핫록.jpg


파일:220px-No_Stone_Unturned.jpg


1971.12.20

1972.02.18

1972.10.13

1972.12.11

1973.10.05

파일:Metamorphosis7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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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20px-Rolled_Gold_-_The_Very_Best_of_the_Rolling_Stones_(album_cove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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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wfno1971-1977.jpg


1975.06.06

1972.06.13

1975.11.05

1977.10.20

1979.06.01

파일:220px-Solid_Rock_Rolling_Stones.jpg


파일:220px-Slow_Rollers.jpg


파일:220px-Sucking_in_the_Seventies70.jpg


파일:220px-Story_of_The_Stones_cover.jpg


파일:220px-Rewind84.jpg


1980.10.10

1981.01.01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f; font-size: .8em"
Sucking in the Seventies
1981.04.14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D928;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FFf, #FFf, #FFf); font-size: .8em"
Story of The Stones
1982.12.01

1984.0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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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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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롤링 스톤스
THE ROLLLING STONES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브라이언 존스, 믹 재거, 키스 리처즈, 빌 와이먼, 찰리 와츠,
이언 스튜어트, 믹 테일러, 로니 우드

입성 연도
1989년
후보자격 연도
1989년
후보선정 연도
1989년



















---

---









롤링 스톤스
The Rolling Stones


파일:롤링 스톤스 프로필.jpg



▼ 다른 사진 보기

파일:RS 1964.jpg

브라이언 존스 재적 시기 (1964년)
왼쪽부터 믹 재거, 브라이언 존스, 키스 리처즈, 빌 와이먼, 찰리 와츠


파일:RS 1969.jpg

믹 테일러 재적 시기 (1969년)
왼쪽부터 믹 테일러, 빌 와이먼, 찰리 와츠, 키스 리처즈, 믹 재거


로니 우드 재적 시기 (1978년)
왼쪽부터 로니 우드, 키스 리처즈, 믹 재거, 찰리 와츠, 빌 와이먼


파일:RS 2021.jpg

현재 (2021년)
왼쪽부터 로니 우드, 믹 재거, 키스 리처즈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결성
1962년 7월 12일 (결성 61주년)
잉글랜드 런던
데뷔
1963년 6월 7일
(데뷔일로부터 22211일, 60주년)
싱글 Come On
데뷔 앨범
멤버
믹 재거 (보컬)
키스 리처즈 (리듬 기타)
로니 우드 (리드 기타)
전 멤버
브라이언 존스 (기타 외[1], 1962-1969)
이언 스튜어트 (피아노, 1962-1963)
딕 테일러 (베이스, 1962)
토니 채프먼 (드럼, 1962)
믹 애버리 (드럼, 1962)
빌 와이먼 (베이스, 1962-1993)
찰리 와츠 (드럼, 1963-2021)
믹 테일러 (리드 기타, 1969-1974)
장르
, , 로큰롤, 블루스 록, 하드 록, 루츠 록, 컨트리 록
레이블
롤링 스톤스[2], EMI, 런던, 데카, 폴리도르, 컬럼비아, 애틀랜틱 레코드, ABKCO[3]
링크
파일:롤링 스톤스 심볼.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Threads 아이콘.svg

1. 개요
2. 상세
3. 상징
3.1. 밴드 명
3.2. 로고
4. 멤버
7. 인기
7.1. 한국에서의 인지도
7.2. 유명한 팬들
10. 밴드 관련 인물
10.1. 세션 멤버
10.2. 기타 관련 인물
11. 기타
11.1. 대중매체 속 롤링 스톤스
11.2. 비틀즈와의 라이벌리
11.3. 관련 도서
12. 롤링 스톤스에 대한 언사
13.1. 싱글
13.1.1. 빌보드 Hot 100
13.1.2. 그 밖의 싱글



1. 개요[편집]


1962년 결성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영국록 밴드.


2. 상세[편집]


1962년 브라이언 존스에 의해 결성되었으며, 이후 몇 번 멤버 교체를 겪다가 1963년 찰리 와츠가 드러머로 영입되고 이안 스튜어트가 퇴출되면서 최종적으로 밴드가 완벽하게 결성되었다. 당시의 수많은 록 밴드들처럼 초창기에는 고전 블루스 혹은 로큰롤 곡들을 커버하거나 비틀즈가 써준 곡을 발매하는 등 소위 말하는 ‘아이돌 밴드’의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1965년 키스 리처즈의 자작곡인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치면서 작사 작곡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이후 전곡을 자작곡으로 채워서 발매한 Aftermath가 미국에서 히트를 치면서 더 후와 함께 1960년대 중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끄는 밴드가 되었다. 이후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이라 불리는 앨범들을 발매하면서 세계 최고의 록밴드의 자리에 올라섰다.

‘구르는 돌’이라는 이름답게 롤링 스톤스는 비틀즈, 레드 제플린, 등과 더불어 다양한 장르를 시도한 밴드였다. 이들은 블루스 음악을 바탕으로 다양한 음악을 시도하여 하드 록, 블루스 록 등 록 음악의 하위 장르를 개척해 나갔으며, 이에 안주하지 않고 삼바, 디스코, 레게, 컨트리 뮤직, 펑크, 더 나아가 80년대에는 스타일과 일렉트로니카를, 90년대에는 현대적인 록 사운드를 흡수해 나가는 행보를 보였다.

롤링 스톤스 음악의 특징은 섹스, 마약, 심지어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적 내용까지도 스스럼없이 노래하는 특유의 퇴폐성과 음악 전반에 깔린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하지 않으면서 흥겹고 풍부하고, 때로는 직설적이고 풍자적인 가사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대중음악에서 음악가들과 평론가들이 꼽는 록 음악의 정신이 '자유', '저항', '퇴폐' 등으로 요약되므로 어쩌면 가장 록다운 록을 들려주는 밴드라고 평가할 수 있다. 롤링 스톤스는 이러한 행보를 록 음악이 형성되기 시작했던 1960년대 중반부터 보여왔기에, 록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한 밴드라고 평가받고 있다.

거친 흑인 스타일의 블루지한 보컬 믹 재거의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노래하는, 속된 말로 '깡패 창법'은 고음과 괴성이 아닌 진정한 보컬의 표현력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롤링 스톤스의 상징이다. 또 다른 핵심 멤버 키스 리처즈의 화난 듯 거침없이 긁어대는 기타 사운드와 전설적인 리프들 역시 롤링 스톤스 음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벌이라고 불리는 비틀즈가 공연장보다는 스튜디오에서의 실험에 집중한 것과 달리 롤링 스톤스는 공연장에서 수많은 퍼포먼스를 시도하면서 소위 말하는 ‘관객 조련’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2000년대 라이브 공연 중 하나인 코파카바나 해변 공연에서는 150만에[4] 가까운 인파를 휘어잡는데, 롤링 스톤스는 이러한 행보를 1960년대부터 보여왔었다.

단순히 비평적으로 성공한 것을 넘어서 상업적으로도 매우 성공하였다. 공식적인 음반 판매량이 무려 2억 장 이상인데, 이는 록밴드로만 한정할 시 6위에 달하는 수치이다.[5] 현재에도 비틀즈,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 너바나, AC/DC, 메탈리카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밴드이며, 록씬의 쇠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또한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해체 없이 활동 중이기에[6] 팬덤의 세대 또한 베이비 부머 세대부터 밀레니엄 세대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워낙 처참하다보니[7] 롤링 스톤스의 음악도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 패션 업계에서도 이름이 높은 밴드다.##

이러한 업적들과 위상 때문에 비틀즈, 데이비드 보위, 레드 제플린 등과 더불어 영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 중 하나이자,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8]

3. 상징[편집]



3.1. 밴드 명[편집]


대중들이 현재 알고 있는 5인조 밴드로 자리잡기 전 롤링 스톤스는 아직 이름이 없는 상태였다. 브라이언 존스가 구인 광고를 내걸고 밴드 멤버들을 모집하긴 했으나, 당시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 그리고 딕 테일러가 소속된 밴드였던 ‘더 블루 보이스’의 모든 멤버들이 가입했기 때문에 밴드명은 그대로 더 블루 보이스로 갈 가능성도 있었다.

더 블루 보이스 전체가 브라이언 존스의 밴드로 들어오긴 했으나 구인 광고를 내걸고 새로운 밴드를 결성한 사람은 브라이언 존스였기에 밴드의 명명권은 브라이언 존스에게 있었다.

한편 브라이언 존스를 포함한 밴드의 모든 멤버들은 블루스 음악, 특히 머디 워터스를 굉장히 좋아했다. 키스 리처즈가 전화를 하고 있던 브라이언 존스에게 밴드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도 근처에는 머디 워터스의 앨범이 있었다. 그렇기에 브라이언 존스는 머디 워터스의 곡인 ‘Rollin’ Stone’을 밴드 이름으로 정했고, 나머지 멤버들도 이에 찬성하여 밴드의 이름은 이를 살짝 변형시킨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가 되었다.

3.2. 로고[편집]



파일:롤링 스톤스 심볼.svg


파일:롤링스톤스 로고.png

입술 로고
글자 로고

AC/DC, 건즈 앤 로지스, 레드 제플린 등과 더불어 로고가 엄청나게 유명한 밴드중 하나이다. 이 입술 로고는 세계적으로 의류와 캐릭터 상품으로서 활발하게 소비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의류 로고로 굉장히 유명하기에, 록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이라도 단번에 아는 수준이다. 그래서 록 음악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국내에서는 롤링 스톤스를 밴드가 아닌 의류 브랜드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으며, 더 나아가 이 입술 로고가 롤링 스톤스라는 밴드의 로고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롤링 스톤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입술 로고는 영국의 디자이너인 ‘존 파시(John Pasche)’가 디자인했다. 이 로고는 단돈 50파운드에 제작되었는데, Sticky Fingers 발매 시기인 1971년부터 밴드의 로고로 사용되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로고가 믹 재거의 입술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인 칼리에게서 영감을 얻은 로고이다.[9] 인도 신화에서 칼리는 툭 튀어나온 입과 뾰족하고 큰 혀를 갖고 있다고 묘사되는데, 로고에 이러한 점을 담아낸 것. 또한 반권위적이고 반항적인 이미지를 로고에 담아냄으로써 ‘악동’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롤링 스톤스의 특징을 잘 담아냈다는 해석 또한 존재하며, 믹 재거는 이 로고에 섹스에 대한 이미지도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10]

글자 로고는 상단에 제시된 글자 로고가 대표적이지만, 이 외에도 여러 개의 글자 로고가 존재한다. 사실 그 중 일부는 실제로 밴드에서 썼던 것은 아니었는데, 밴드의 로고가 패션 상품으로 활발하게 소비되면서 여러 디자이너들이 자체적으로 글자 로고를 제작한 것이다.

4. 멤버[편집]


롤링 스톤스의 구성 멤버

믹 재거 Mick Jagger
출생
1943년 7월 26일 ~ (80세)
출신지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켄트 다트퍼드
활동
1962년 - 현재
포지션
리드 보컬, 하모니카, 기타

키스 리처즈 Keith Richards
출생
1943년 12월 18일 ~ (80세)
출신지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켄트 다트퍼드
활동
1962년 - 현재
포지션
기타

찰리 와츠 Charlie Watts
생몰
1941년 6월 2일 - 2021년 8월 24일 (향년 80세)
출신지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런던 캠던 블룸스버리
활동
1962년 - 2021년
포지션
드럼

로니 우드 Ronnie Wood
출생
1947년 6월 1일 ~ (76세)
출신지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미들섹스 힐링던
활동
1975년 - 현재
포지션
기타

빌 와이먼 Bill Wyman
출생
1936년 10월 24일 ~ (87세)
출신지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런던 루이셤
활동
1962년 - 1993년
포지션
베이스 기타

믹 테일러 Mick Taylor
출생
1949년 1월 17일 ~ (75세)
출신지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웰린가드시티
활동
1969년 - 1974년
포지션
기타

브라이언 존스 Brian Jones
생몰
1942년 2월 28일 - 1969년 7월 3일 (향년 27세)
출신지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글로스터셔 첼트넘
활동
1962년 - 1969년
포지션
기타, 하모니카, 시타르
이언 스튜어트
파일:롤링 스톤스 심볼.svg
비틀즈와 함께 역사상 최고의 록밴드로 평가받는 밴드답게 멤버들의 역량 또한 훌륭했다. 비록 ‘인간 흉기들의 모임’이라고 평가받는 크림,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레드 제플린, 더 후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11], 이들을 제외하면 역대 최고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멤버들의 역량은 매우 뛰어났으며, 이에 따라 각 멤버들은 후대의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물론 위에서 서술한 밴드들은 하드 록 성향이 강한 반면, 롤링 스톤스는 좀 더 직선적인 연주를 지향하고 복잡한 연주를 지양하는 로큰롤 성향이 더 강한 밴드라는 것을 고려하자.[12]

  • 리더인 믹 재거는 록 프론트맨의 이미지를 최초로 구축했다고 평가받는 전설적인 아티스트다.[13] 그는 1960년대 당시 폭발적인 무대 매너를 통해 보수적이었던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어서 진보적인 사회를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으며, 이러한 무대 매너로 흔히 말하는 ’관중 조련’을 하고 무대를 장악하는 등의 시대를 앞서간 활약으로 인해 대중 음악 역사상 최고의 프론트맨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특유의 막 부르는 듯한 거칠고 투박한 보컬이 트레이드 마크인데, 이는 후대의 여러 록밴드들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14] 또한 재거-리처즈의 일원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송라이팅에서도 엄청난 두각을 드러냈는데, 동료인 키스 리처즈가 작곡을 잘 했다면 믹 재거는 작사에 매우 능했다.[15] 흔히 롤링 스톤스의 대표곡이라고 불리는 Sympathy for the Devil, Gimme Shelter, Rocks Off 같은 곡들은 전부 그가 작사했는데, 이 곡들은 락 역사를 넘어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사들로 뽑힌다. 다만 아쉬운 점은 Some Girls 이후부터는 이런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가사들을 지양하게 되었다는 것.

  • 키스 리처즈피트 타운젠드, 말콤 영과 더불어 대중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리듬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는다. 그는 뛰어난 리프 작곡 능력을 선보여서 록씬에서 리프 중심의 음악을 유행시키고 리듬 기타리스트라는 개념을 확립하였는데, 오늘날 록밴드에서 리드 기타리스트뿐만 아니라 리듬 기타리스트의 역할 또한 매우 중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록씬에 미친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아무래도 포지션 자체가 리듬 기타리스트다 보니 그의 기타 솔로는 상당히 단조롭고 여백이 많은 편이지만, 2015년 라이브 등 여러 라이브를 보면 이 사람이 집중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펜더 텔레캐스터를 애용하는 것으로 유명하고[16] 그의 대부분의 곡들이 오픈 g튜닝 혹은 오픈 e튜닝으로 작곡되어있다.[17]

  • 찰리 와츠는 록 음악 최고의 드러머 중 한 명이자 더 나아가서 영국 록씬을 상징하는 드러머이다. 재즈 드러머였기 때문에 찰리 와츠 특유의 리듬, 그루브나 비트는 흉내내기 매우 까다로우며, 이러한 특유의 개성적인 비트는 롤링 스톤스 음악의 그루브를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당장 록씬에서 그의 드럼 연주를 능가하는 드러머는 존 본햄, 키스 문 정도밖에 없다고 평가받을 정도이다.[18] 아이러니하게도 원래는 명망 높은 재즈 드러머였으나 브라이언 존스로 인해 록 드러머로 전향했다.

  • 빌 와이먼은 밴드 조력자로서의 베이스 연주를 지향한 베이시스트였다. 그는 무대를 장악하는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의 뒤에서 묵묵히 베이스를 연주하며 곡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다만 그의 베이스 실력 또한 매우 상당한 수준인데, 록 베이시스트로만 한정하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수준이다. 록씬 3대 핵이빨 중 한 명인 키스 리처즈가 빌 와이먼의 베이스 실력을 칭찬할 정도. 이러한 베이스 실력으로 그는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제프 벡 같은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과 함께 세계 투어를 다니기도 할만큼, 롤링 스톤스라는 거대 밴드에 어울리는 훌륭한 베이시스트로 평가받는다. 다만 고령으로 인해[19] 현재는 밴드를 탈퇴했다.[20]

  • 믹 테일러는 롤링 스톤스의 전설적인 전성기를 이끌은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평가받으며[21], 무수한 명반들을 쏟아내던 당시의 밴드에서 뛰어난 기타 솔로를 선보였다. 비록 롤링 스톤스를 탈퇴하고 이후의 커리어가 아쉽긴 하지만 그가 활동하던 전성기 시절에는 지미 페이지, 제프 벡, 리치 블랙모어, 데이비드 길모어 등과 더불어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평가받았으며[22], 지미 헨드릭스도 그의 기타연주를 극찬 했을 정도라고 한다.# 롤링 스톤스 음악에서 보기 힘들었던 화려한 속주 연주, 그리고 라틴 음악과 블루스에서 영향을 받은 연주가 유명했다. 보틀넥 주법도 브라이언 존스 못지않게 뛰어났다. 그가 재적하던 시절의 밴드는 앞의 브라이언 존스 재적 시기 혹은 뒤의 로니 우드 재적 시기보다 음악적으로나 인기로나 더욱 절정에 다랐었다.[23] 또한 지미 페이지와 더불어 깁슨 레스폴을 즐겨 쓰는 인물이기도 하다.

  • 창립자이자 초대 리더였던 브라이언 존스프린스, 폴 매카트니, 존 폴 존스, 게디 리와 더불어 대중 음악 역사상 최고의 멀티 인스트루멘탈리스트를 꼽을 때 반드시 거론되는 전설적인 멀티 플레이어이다. 이 중에서도 브라이언 존스는 원조라고 평가받는다.[24] 그가 다룰 수 있는 악기는 수도없이 많았는데, 마림바같은 타악기부터 기타같은 현악기, 심지어 시타르 같은 동양의 전통 악기들까지 다룰 수 있었다. 특히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에 특화되었다고 평가받는데, 그는 밴드음악에서 보틀넥 주법을 최초로 도입한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다양한 악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그는 롤링 스톤스의 곡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었으나, 키스 리처즈와의 갈등 및 여러 문제로 인하여 밴드에서 탈퇴하고 얼마 안 가 사망했다.

멤버 대부분의 나이가 70세가 넘는다. 데뷔한지 60년이 되는 밴드이다 보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가장 어린 멤버가 2023년 기준 76세인 로니 우드. 여담으로 밴드의 프론트맨인 믹 재거와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즈는 유치원 동문이라고.

전성기 시절에는 리드 기타리스트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후두암으로 사망한 찰리 와츠, 고령으로 은퇴한 빌 와이먼을 제외하면 초창기 라인업들이 밴드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리드 기타리스트는 1960년대 후반까지는 브라이언 존스, 1970년대 중반까지는 믹 테일러, 그리고 현재까지는 로니 우드가 맡고 있다.

4.1. 재거-리처즈[편집]



파일:Jagger-Richards Profile.jpg

1970년대의 재거-리처즈.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재거-리처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롤링 스톤스/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롤링 스톤스 1965.jpg


파일:롤링 스톤스 1971.jpg

1965년.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시작했을 당시.
1971년. Sticky Fingers 발매 당시로, 음악적 전성기를 맞은 시절이다.


파일:롤링 스톤스 2021.jpg

1980년.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시절이다.
2021년의 모습.
1968년 롤링 스톤스 로큰롤 서커스에서의 "Sympathy for the Devil" 연주.
1972년 텍사스에서의 "Brown Sugar" 연주.
1981년 뉴저지에서의 "Tumbling Dice" 연주.
2016년 쿠바 아바나에서의 "Gimme Shelter" 연주.

6. 평가와 영향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롤링 스톤스/평가와 영향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인기[편집]


미국 베이비 부머 세대를 상징하는 밴드이기에 베이비 부머 세대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하드 록 장르의 시초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 동시에 하드 록 외에도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기 때문에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가장 인기있는 록밴드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다만 젊은 세대는 레드 제플린이나 밴 헤일런같은 밴드들처럼 악기를 통해 롤링 스톤스에 입문한다기 보다는 비틀즈처럼 영향력 때문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다.[25]

1960년대에 롤링 스톤스의 인기는 어마어마해,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대표 주자를 말할 때 비틀즈 다음으로 바로 언급되는 수준이며 60년대 전체를 씹어먹던 비틀즈의 유일한 대항마였다.[26] 이들이 1965년에 발매한 싱글인 (I Can't Get No) Satisfaction은 미국과 영국 양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 발매된 Aftermath도 북미에서 인기를 끌면서 마찬가지로 1965년에 침공을 시작한 더 후와 함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대표하는 밴드가 되었다.

록 음악의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리는 1970년대에도 롤링 스톤스의 인기는 1960년대 못지않게 강했는데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 차트 경쟁력을 가진 후배 밴드들이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롤링 스톤스는 1971년에 Sticky Fingers빌보드 200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이후 롤링 스톤스의 침체기에 나온 Goats Head Soup, It's Only Rock 'n Roll, Black and Blue 세 앨범도 미국과 영국 양쪽 차트에서 동시에 1위를 기록하는 등의 무시무시한 행보를 보였다.[27] 앨범 이외에도 Brown Sugar, Angie, Miss You라는 서로 다른 스타일의 곡들로 빌보드 핫 100 1위곡을 세곡이나 가지게 되었다. 실제로 펑크 음악과 디스코 음악의 강세로 수많은 록밴드들이 1980년대까지 인기를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롤링 스톤스는 Tattoo You와 Start Me Up이라는 초대형 히트곡으로 인기를 이어갔다.[28] 그리고 1990년대에는 Voodoo Lounge라는 앨범으로 그해 그래미 최우스 록 앨범을 수상하였고 그 인기는 21세기까지 이어진다. 21세기에는 음반 작업을 하기보다는 투어를 더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2021년에는 2위 해리 스타일스를 크게 제치고 투어 수익 1위를 기록하였다.#

다만 롤링 스톤스의 음반 판매량은 약 2억 장으로[29], 약 3억 장 이상을 판매한 레드 제플린이나 약 2억 5천만 장 이상을 판매한 핑크 플로이드에 비해서 음반 판매량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사실 이는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가 각각 헤비 메탈, 프로그레시브 록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밴드들인데, 이 두 장르는 팬층이 두터운 록 음악 중에서도 특히나 더 팬층이 두터운 장르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롤링 스톤스는 컨셉 앨범이나 유기성을 중요시한 음반을 거의 발매하지는 않았다.[30] 실제로 Let It BleedSticky Fingers 같은 롤링 스톤스의 대표작들은 유기성, 통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중요시한 앨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링 스톤스는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던 , 하드 록의 상징인 AC/DC,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던 이글스와 거의 비슷한 음반 판매량을 올렸다.[31] 또한 2019년 빌보드 선정 올타임 앨범 차트에서 비틀즈에 이어 2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싱글도 많이 발매했던 만큼 판매량은 록밴드 중에서는 비틀즈 다음으로 높고[32]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한 곡들도 8개나 있다. 투어 수익은 후배 밴드인 U2메탈리카를 누르고 1위를 오랫동안 차지하였지만 최근에 U2에게 따라잡혀 2위가 되었다.콩라인?

1960년대에 결성된 밴드라 베이비 부머 세대들에게만 인기가 높을 것 같지만,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하드한 사운드를 선호하는 현 젊은 세대들에게도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비틀즈, 레드 제플린, , 핑크 플로이드와 함께 현 세대들에게 인기 있는 록밴드 top 5 안에는 꼭 들어간다. 미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최고의 록밴드를 묻는 투표에서 롤링 스톤스는 2등을 차지했다.[33] 그리고 2018년 월스트리트 저널이 음반 판매량, 유튜브 및 음원 조회수, SNS 등을 종합한 통계 산출을 통해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록밴드' 순위를 산정했는데, 롤링 스톤스는 여기서 5위를 기록했다.[34]#

서구권 록밴드 중에서는 드물게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엄청난 사랑을 받고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의 롤링 스톤스 사랑이 가장 유명하고 각별하다.[35] 심지어 아르헨티나의 한 지역에는 롤링 스톤스를 숭배하는 ‘롤링가’라는 부족들까지 존재한다고 하며, 아르헨티나인들도 본인들이 롤링 스톤스 공화국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피켓을 만들어 롤링 스톤스가 투어하는 곳마다 따라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들 또한 대부분 롤링 스톤스의 팬이며, 심지어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팀은 2018 러시아 월드컵 때 롤링 스톤스의 전용기를 타고 러시아로 갔다고 한다. 멤버들도 이런 아르헨티나의 사랑을 잘 아는지 인스타그램에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정을 담은 게시글을 자주 올리기도 한다.[36] 또한 고향인 영국에서도 인기가 당연히 좋으며, 의외로 중국과 일본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게도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는 밴드다.[37]

높은 인기와는 별개로 의외로 안티들도 많은 밴드이다. 물론 진지하게 음악적으로 비판을 받는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방탕한 사생활, 키스 리처즈의 독설[38] 때문에 반감을 가지는 이들도 존재하는 듯하다. 또한 베이비 부머 세대를 상징하는 밴드가 지금까지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반감을 가지는 젊은 세대들도 많으며[39], 특히나 최근에는 PC주의자들이나 페미니스트들에게 레드 제플린과 더불어 여성혐오 밴드라고 디스당하기 일쑤이다.[40] 물론 사생활적인 이미지나 독설 같은 부분에서 비판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일반적으로는 나머지 주장들은 헛소리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다.[41] 또한 롤링 스톤스는 힙스터들에게 유독 찬밥 신세를 받는 밴드이기도 한데 대표적으로 Rate Your Music 차트를 보면 롤링 스톤스 앨범 중 가장 높은 순위는 Sticky Fingers로 고작 145위이다. 이는 힙스터들이 블루스, 하드 록을 선호하지 않는 취향차이에서 기인한다고 봐야한다. 이와 비슷하게 레드 제플린 또한 유독 RYM에서만 평가가 박하다. 가장 높은 앨범이 Led Zeppelin IV로 43위이지만 다른 앨범들은 롤링 스톤스처럼 100대 후반으로 떨어진다. 다른 예시로 더 후 역시 취급이 좋지 않으며 에어로스미스는 아예 차트에도 없다.[42]


7.1. 한국에서의 인지도[편집]


한국이 워낙에 록 불모지이지만, 이것을 감안하더라도 롤링 스톤스처럼 전 세계적인 인지도와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심하게 차이나는 밴드 혹은 뮤지션은 없을 것이다. 당장 국내 인지도가 해외에 비해 많이 떨어져 내한 공연조차 한번도 안온 프린스마돈나만 해도 이들의 이름이나 각종 히트곡들은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만[43], 롤링 스톤스는 밴드 인지도는 커녕 히트곡 인지도도 거의 제로에 가까우며, 로고만이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로고마저도 음악가의 로고가 아니라 롤링 스톤스라는 패션 브랜드의 로고로 잘못 알려져 있으며(…), 더 심한 경우에는 잡지 롤링 스톤을 롤링 스톤스와 혼동하기도 한다.아니 잡지 롤링 스톤도 알면서 롤링 스톤스를 모른다니[44]

롤링 스톤스 외의 다른 밴드 중에서는 U2 정도가 세계에서의 인지도와 한국에서의 인지도의 괴리감이 롤링 스톤스만큼 심한 편이다. 물론 U2의 히트곡도 기본적으로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보노같은 경우에는 사회 운동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U2는 얼마전에 내한 공연을 했다. 그러나 롤링 스톤스는 내한 공연을 한 번도 오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80을 바라보는 멤버들의 나이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내한 공연을 올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45] 참고로 롤링 스톤스의 내한 공연과 관련된 충격적인 통계가 존재하는데, OECD 38개국 중에서 한번도 공연하지 않은 나라는 코스타리카,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대한민국 이렇게 7개국뿐인데, 이중 대한민국을 제외한 나머지 6개국은 인구가 수십만명에서 많아봐야 600만명을 넘지 않는 나라들이다. 한마디로 인구와 경제규모가 어느정도 되는 대국 중 롤링 스톤스의 공연이 열리지 않았던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한국이 음반 판매량이 높은 국가는 기본적으로 아니지만 유독 롤링 스톤스의 인지도가 떨어지는 나라라는 점은 이토록 분명하다. 실제로 롤링 스톤스는 동아시아 투어에서는 다른 록밴드들처럼 일본까지밖에 가지 않았기에 밴드 멤버들도 한국에서는 본인들의 인지도가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46]

지금 시대보다 록 음악의 인기가 높았던 70, 80년대에 해외 록 음악을 향유하던 사람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편이 아니다. 그나마 AngieAs Tears Go By 같은 부드러운 발라드 곡이나, 베트남 전쟁을 다루던 영상 매체에서 단골로 쓰였던 Paint It Black 정도만 유명하다. 그러나 영미권에서는 록 음악을 듣지 않는 세대들까지 다 아는 60년대 최고의 히트곡이었던 Honky Tonk Women이나, 불후의 명곡이며 이들의 삐딱한 태도를 대표하는 (I Can't Get No) Satisfaction[47] 같은 곡들마저도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국내에서는 팬들이나 심지어 평론가들에게도 평가 절하를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롤링 스톤스는 일반적으로 비틀즈, 밥 딜런과 비슷한 수준의 평가를 받는 것에 비해,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이 음악가들 다음 가는 수준이라고 평가받는 레드 제플린, 데이비드 보위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는 국내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20세기 최고의 뮤지션을 뽑았는데 롤링 스톤스는 여기서 고작 8위를 기록했고,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는 아예 순위에도 없었다.[48] 그나마 한국의 7080 뮤지션들 중에서는 인지도가 낮진 않았는데, 조용필Jumpin' Jack Flash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뽑았거나, 봄 여름 가을 겨울배철수가 이들을 가장 존경하는 밴드로 뽑았던 적이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처참할 정도로 낮은 인지도는 스트리밍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음악을 향유하는 젊은 세대들 대부분은 RYM포스트락 갤러리로 새로운 음악과 과거 거장들의 음악을 접하는데, RYM 유저들 자체가 롤링 스톤스의 음악들을 선호하지 않는다. 또한 포스트락 갤러리에서는 허구한 날 틀내난다고 욕먹는다. 요약하면 한국에 로큰롤 붐이나 블루스 붐이 오지않는 이상 롤링 스톤스의 이미지가 반등해 내한 공연까지 진행되는건 영원한 꿈인듯 싶다. 그래도 마룬5Moves Like Jagger 같은 곡이나 여러 일화들로 믹 재거와 롤링 스톤스의 이름이 조금이나마 알려졌고, 유튜브에 롤링 스톤스의 플레이리스트와 가사 영상들도 올라오는 등 인지도가 조금씩 오르고 있기는 하다.[49] 여담이지만 신해철은 롤링 스톤스의 실황 다큐 샤인 어 라이트 시사회를 진행하면서 "롤링 스톤즈가 거쳐간 나라와 안 거쳐간 나라의 음악 수준이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굿 보이즈 비틀즈까지는 받아들였지만 배드 보이인 롤링 스톤즈를 겪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음악계가 이렇게 후지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에서 롤링 스톤스의 인지도가 유독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롤링 스톤스의 블루스 음악이 한국 감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정교한 연주와 신비주의적인 이미지가 아닌 그루브한 연주와 가벼운 이미지는 한국인들과 익숙한 느낌은 아니다. 영미권과 라틴 지역은 춤추는 문화가 발달되었고 5,60년대부터 대중음악을 접해 블루스로큰롤이 익숙하지만, 한국의 5,60년대는 6.25 전쟁으로 모든게 박살난 상태라 잊혀진 기억이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나라가 박살난 상태고 정부는 경제만을 살리기 위해 급급한데 이 상태에서 록 음악이 발달하고 로큰롤 음악과 블루스 음악을 즐기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아픈 역사가 아니더라도 블루스 음악의 끈적끈적한 리듬과 쾌락적이고 퇴폐적인 감성이 한국인의 성향과 맞았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난 항상 그대를이나 취중진담, 빗속에서같이 블루스 음악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추어 대성공한 히트곡들은 몇 개 있긴하지만, 90, 00년대의 주류 음악은 댄스 혹은 록발라드였으며, 현대에도 아이돌 그룹의 댄스 음악이 대세이며 블루스 음악은 극히 생소한 음악이다. 한국이 록 불모지이지만 펑크나 메탈, 얼터너티브같은 록의 세부 장르들의 계보가 끊기지 않고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에, 한국에서 블루스 음악은 비주류인 록 음악 중에서도 가장 비주류였기 때문이다.[50][51]

또한 록 팬들은 롤링 스톤스의 방탕한 사생활로 인한 악동 이미지, 그리고 쾌락적인 내용이 많은 가사들이 한국같은 비교적 보수적인 국가들과 안 맞아서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롤링 스톤스에 버금가는 막장적인 사생활과 쾌락적인 내용의 가사들로 가득한 레드 제플린은 한국에서 상당히 유명한 편이며, 방탕한 사생활과 수위 높은 가사들로 유명한 각종 흑인 힙합 아티스트들도 국내에서 인기가 많기에 이는 너무 나간 생각인 듯하다.[52] 하지만 북한 측에서 롤링 스톤즈의 북한 공연을 거절한 이유가 그들이 너무 퇴폐적이라는 일화를 생각해보면 보수적인 국가들이 롤링 스톤스를 싫어하는 것은 지나치게 퇴폐적인 이미지도 한 몫 할지도 모른다.[53]


7.2. 유명한 팬들[편집]


두 밴드는 서로의 팬으로 상호간 영향력을 주고 받았다.

지미 페이지로버트 플랜트가 롤링 스톤스를 극찬한 것은 매우 유명하며, 마찬가지로 믹 재거도 레드 제플린의 팬이라고 한다.

후술하듯이 롤링 스톤스의 광팬이다.

조안 바에즈우디 거스리같은 선배 뮤지션들이 아닌 동시대 뮤지션들이나 후배 뮤지션들에 대한 칭찬에 인색한 편이지만 유독 롤링 스톤스한테는 항상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참고로 또 다른 위대한 밴드인 비틀즈에게는 그들은 뛰어나다 하지만 로큰롤을 하지 않는다라는 평가를 내린적이 있고 또 다른 위대한 밴드인 레드 제플린의 매니저 피터 그랜트가 인사를 하자 짧은 정적 후에 내가 당신과 할 말이 있어 여기 왔나? 라고 차갑게 반응했다고 한다.

  • 무라카미 하루키 : 60년대 음악의 광팬으로 비틀즈 못지않게 롤링 스톤스의 음악을 좋아해 그의 작품에서 자주 언급되곤 한다. 최근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언급되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믹 재거의 광팬이며 그의 무대 매너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답게 엄청난 팬으로 유명하다.

68 혁명 시절에 롤링 스톤스에 관한 다큐를 찍은 적이 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이나 그레이트풀 데드 같은 다른 미국의 히피 밴드의 다큐를 찍을 수도 있었지만 음악을 더 좋아해서 결정했다고 한다.


롤링 스톤스를 정말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믹 재거의 엄청난 팬이다. 참고로 1989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때 그가 연사를 맡았었다. 재밌게도 영혼의 파트너인 로저 달트리는 타운젠드와는 달리 롤링 스톤스보다 레드 제플린을 더 좋아한다고.

Some Girls를 최애 앨범으로 뽑은 적이 있다.


노엘 갤러거는 비틀즈섹스 피스톨즈같은 영국의 락밴드들의 음악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롤링 스톤스의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건즈 앤 로지스의 리듬 기타리스트로 롤링 스톤스의 광팬이며 그중에서도 키스 리처드를 본인의 우상이라고 말한 적이 있으며 음악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지 스트래들린이 작곡한 patience라는 곡이 롤링 스톤스의 느낌이 묘하게 나는 어쿠스틱 곡이다. 참고로 건즈의 또다른 기타리스트인 슬래시레드 제플린의 기타리스트인 지미 페이지의 광팬이었기에 이지 스트래들린과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고.

이지 스트래들린과 마찬가지로 롤링 스톤스의 광팬이다. 또한 그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앨범을 뽑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Exile on Main St.가 들어간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다만, 데뷔초에 툭하면 롤링 스톤스와 비교하고 카피캣으로 매도하는 기레기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받았다고 한다.[54] 물론 지금은 에어로스미스도 아메리칸 하드록 역사상 중요한 밴드로 뽑히고 그들을 롤링 스톤스의 카피캣으로 매도하는 대중이나 평론가는 거의 없다.

  • 스티브 메리엇
스몰 페이시스의 초대 보컬이고 키스 리처즈가 그의 광팬이었던 만큼 스티브 메리엇도 롤링스톤즈의 팬이었다. 롤링 스톤스의 노래를 자주 커버하였으며 특히 스몰 페이시스를 나가고 차린 밴드인 험블 파이시절에 Honky Tonk Woman을 커버했던 것이 가장 유명하다.

더 버즈밥 딜런 그리고 롤링 스톤스의 음악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롤링스톤즈비틀즈보다 낫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레드제플린롤링스톤즈의 음악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후에 롤링스톤즈와 같은 무대에 서기도 한다.


점핑 잭 플래시를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뽑은 적이 있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 Bad를 부를 때, 보노가 후반부에 Ruby TuesdaySympathy for the Devil을 반주에 맞게 편곡해서 몇 소절씩 불렀다.


8. 시도한 음악 장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롤링 스톤스/시도한 음악 장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롤링 스톤스/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0. 밴드 관련 인물[편집]



10.1. 세션 멤버[편집]


이하의 멤버들은 비록 정규멤버는 아니지만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을 비롯하여 전성기 시절에 기여한 공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들의 팬들이라면 무조건 알고 있는 이름들이다. 특히 바비 키스, 니키 홉킨스, 짐 프라이스 등은 지금까지도 본인들 분야의 원탑 소리를 들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전설의 이름들이다. 가히 롤링 스톤스 음악의 특급 조연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안 스튜어트
롤링 스톤스의 정규 멤버는 아니였지만[55] 이러한 매니저의 푸대접에도 굴하지 않고 47세로 요절하기 전까지 롤링 스톤스의 여러 곡에서 피아노 세션으로 참여한 멤버이다. 그렇기에 롤링 스톤스 팬들한테는 정규 멤버 못지않게 존경을 받고 있다. 팬들뿐만 아니라 멤버들에게도 존중을 받았는데, 로큰롤의 시스티나 경당으로 추앙받는 롤링 스톤스 이동식 스튜디오를 그의 주도로 설립하였으며, 대표적으로 키스 리처즈는 ‘나는 아직도 롤링 스톤스가 그의 밴드라고 생각한다’라는 주장까지 했다. 심지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정규 멤버들과 같이 이름을 올렸다. 이안 스튜어트는 니키 홉킨스처럼 화려한 스타일은 안 보여주었지만, Let It Bleed의 타이틀곡처럼 그루브있고 개성있는 부기 우기 피아노를 연주하였다. 다른 밴드와도 교류를 자주 하였는지 당시 롤링 스톤스와 친했던 레드 제플린과도 같이 작업한 곡이 꽤나 많다.

  • 지미 밀러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에 모두 참여한 롤링 스톤스의 핵심 프로듀서. 후에 프로듀싱을 배우게 된 재거-리처즈에 의해 해고되지만, 롤링 스톤스 4대 명반 시절의 믹싱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다. 프로듀서지만 드럼 세션으로 참여한 곡들도 많다.

  • 바비 키스
Sticky FingersExile on Main St.에 참여했었던 관악기 세션 멤버이다. 롤링 스톤스의 라이브에도 같이 참여하면서 미친 관악기 연주를 보여주었다. 키스 리처즈가 그를 특히 잘 챙겨주었다고 하며 믹 재거가 둘 사이를 은근히 질투했다고 전해진다. 이후에 공연을 앞두고 마약을 하다 지각해서 밴드와 인연이 끊기지만, 화해를 했는지 1994년에 같이 무대에 서게 된다.

  • 니키 홉킨스
롤링 스톤스 4대 명반 시절에 자주 참여했었던 전설적인 피아노 세션 멤버이다. Let It Loose와 Loving Cup에서 미친듯한 피아노 연주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만성적인 크론 합병증으로 활동 내내 고생했으며, 결국 1994년 50세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롤링 스톤스와 투어를 하는 도중에도 크론 합병증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고 전해진다. 스톤즈 이외에도 킹크스, 더 후 등의 밴드에서 피아노 세션으로 참여하였다.

  • 짐 프라이스
바비 키스와 더불어 같이 관악기 세션으로 자주 참여하였던 세션 멤버이다. 바비 키스가 색소폰으로 참여하였다면 짐 프라이스는 트럼펫으로 자주 참여하였다.


10.2. 기타 관련 인물[편집]


  • 알랙시스 코너
영국 클럽에서 블루스를 연주하던 뮤지션. 롤링 스톤스와 에릭 클랩튼, 야드버즈를 비롯한 후배 블루스 록 아티스트들이 모두 그의 밑에서 블루스를 연마하였다.[56]

  • 타지 마할
메인스트림 뮤지션은 아니기에 국내에서는 잘 알려진 뮤지션은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나름 지명도 있는 뮤지션이다. 지금까지도 롤링 스톤스와 꽤 오랜 친분을 유지하는 블루스 뮤지션으로 Shine A Light를 커버하기도 하였다. 롤링 스톤스 로큰롤 서커스에도 같이 참여하였으며, 최근에 밴드가 단체로 생일 축하 영상을 인스타에 올리기도 하였다.

롤링 스톤스 팬들뿐만 아니라 비틀즈 팬들에게도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는 인물로, 롤링 스톤스와 여러 계약 문제가 얽혀 여기에서도 팬들에게 죽일 놈 취급받는 음반제작자이다. 앨런 클라인은 이들과 소송도 여러번 치렀으며, Let It Bleed 이전 곡들에 대한 배급 권리는 아직도 그의 회사인 ABKCO에 있다.[57] 실제로 롤링 스톤스의 Let It Bleed 이전 곡들은 그들의 채널이 아닌 ABKCO의 채널에 업로드된다. 팬들도 이제 체념한지 오래이며, 자막 업로드 영상이나 열심히 올려서 돈이나 벌라는 반응이다.[58]

미국의 전설적인 사진작가로, 전성기 시절 롤링 스톤스의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의 사진과 영상을 찍었었다. Exile on Main St.를 밴드가 녹음하던 시절 밴드에게 무작위의 사진을 마구 찍은 것을 보여주었는데, 그게 지금의 앨범 커버가 되었다고 한다. 밴드가 본인들이 작업하던 음악 스타일과 너무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고. 하지만 그들의 공연 뿐만아니라 적나라한 성생활까지 찍힌 다큐멘터리 Cocksucker Blues 개봉을 두고 밴드와 갈등이 깊어져 인연이 끊기게 되고 소송까지 치렀다.

롤링 스톤스 4대 명반 시절에 같이 어울려다녔던 컨트리 록의 전설 뮤지션이다. 블루스 음악 애호가인 재거-리처즈가 컨트리 음악에 탐닉하도록 영향을 주었다. 키스 리처즈와 자주 어울려 다니면서 마약을 했다고 하는데 Exile on Main St.를 녹음 할때 키스 리처즈의 마약을 모두 가져가서 그와 인연이 끊겼다고 한다. 그 후 요절하였으며, 롤링 스톤스 멤버들은 그의 죽음을 추모하였다. Sweet Virginia와 Torn And Frayed가 그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곡이다.

  • 앤드류 올드햄
롤링 스톤스의 초기 매니저로 롤링 스톤스의 악동 이미지를 처음으로 구상하였다고 전해진다. 재거-리처즈의 첫 자작곡인 As Tears Go By의 탄생 비화가 있는데, 재거-리처즈에게 곡을 써오라고 방에 가둬놨다고 한다(…). 후에 토사구팽 당하듯이 밴드에서 쫓겨나는데, 재거-리처즈와 갈등이 깊었던 것으로 추정된다.[59] 최근에 근황이 전해졌는데 브라이언 존스 티셔츠를 입고있는 모습이 찍혀 팬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브라이언 존스가 롤링 스톤스의 음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야드버즈의 기타리스트이자 레드 제플린의 리더로, 1960년대부터 롤링 스톤스 멤버들과 절친한 사이였다. 당시 롤링 스톤스와 레드 제플린은 어마어마한 사생활로 유명했는데, 이것의 중심에는 키스 리처즈와 지미 페이지가 있었다. 지미 페이지는 심심하면 키스 리처즈, 믹 재거와 함께 코카인헤로인을 투여했으며, 후술할 에릭 클랩튼과 함께 호텔 하나를 통째로 빌려 각종 술과 마약을 하면서 그루피들과 성관계를 하는 난장판식 퇴폐 파티를 열기도 했다. 음악 활동도 같이 한 적이 있는데, 최근에 발매된 롤링 스톤스의 미공개 곡이자 싱글인 Scarlet의 리드 기타리스트가 바로 지미 페이지이다. 6집 작업 도중 심심해서 스톤스 멤버들과 놀다가 리드 기타리스트를 맡은 것이라고(…). 또한 1980년대 초반에는 밑의 에릭 클랩튼, 제프 벡, 빌 와이먼, 찰리 와츠와 함께 월드 투어를 돌기도 했다.

야드버즈, 크림의 기타리스트이자 솔로 블루스 음악가로, 1960년대부터 롤링 스톤스 멤버들과 절친한 사이였다. 위의 지미 페이지와 마찬가지로 이쪽도 마약과 그루피들로 이어진 인연이었는데, 상술했다시피 지미 페이지, 믹 재거, 키스 리처즈와 함께 그루피들을 대동하고 광란의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들 모두와 엮어있는 여자들이 매우 많다고 한다. 롤링 스톤스 로큰롤 서커스에도 더티 맥 소속으로 참가하였으며, 1980년대에도 스톤스 멤버들과 함께 투어를 다니면서 활동하기도 했다.[60] 또한 에릭 클랩튼은 패티 보이드와 헤어진 후에 믹 재거에게 애인을 NTR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참고로 이 애인이란 사람은 바로 카를라 브루니. 그러나 현재까지 잘 지내는 것을 보면 화해하고 넘어간 모양이다.

  • 아나타 팔렌버그
모델 활동을 하였으며 브라이언 존스의 애인이자 그와 헤어지고 키스 리처즈와 부부 생활을 이어나갔다. 키스 리처즈의 일방적인 NTR로 알려져 있지만, 키스 리처즈와 사귀기전에도 셋이 잘 어울렸다고 한다. 브라이언 존스의 편집증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에 지쳐 키스 리처즈와 단 둘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 그와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잘못된 만남 롤링 스톤스 팬들에게는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인물인데 싫어하는 사람들은 자기주장 강한 여자, 롤링 스톤스의 오노 요코라고도 표현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항적이고 양성적인 스톤즈의 스타일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라고도 평가한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많은지 롤링 스톤즈 팬 투표에서 역대 최고의 밴드 애인으로 2위 마리안느 페이스풀을 제치고 1위로 선정되었다. 2017년에 타계하였으며 스톤즈의 태도와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녀를 팬들이 추모하였다.

  • 마리안느 페이스풀
믹 재거의 전 애인. Wild Horses나 Sister Morphine같이 그녀에게 영감을 받아 쓴 곡도 많고 래드랜즈 바라는 그녀가 연루되었던 사건이 너무 유명해서 대외적으로는 가장 유명한 믹 재거의 전 애인이다. 물론 래드랜즈 바라는 사건이 터무니없는 루머라고 밝혀졌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언론의 공격과 대중들의 억측에 많이 고통받았다. 롤링 스톤스 팬들도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지 그녀를 정말 존경하고 좋아한다.[61]

  • 제리 홀
원래 록시 뮤직브라이언 페리의 애인이었지만 페리가 투어를 하고 있는 동안 믹 재거와 눈이 맞았고 그 후 믹 재거와 결혼 생활을 짧게 나마 이어 나갔다.


11. 기타[편집]


  • 해외에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미국의 전설적인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롤링 스톤스의 광팬인 것으로 유명하다. 마틴 스코세이지 자체가 록 음악 덕후지만 그중에서도 롤링 스톤스의 음악이 자신의 갱스터 영화들과 정서가 어울리다고 느꼈는지 자주 삽입하였다. 특히 Gimme Shelter좋은 친구들카지노, 그리고 디파티드까지 총 3번이나 나왔으며, 카지노 한 영화에서만 롤링 스톤스의 노래가 5번이나 나왔다. 더 자세한 것은 링크 참조. 그리고 스코세지는 후에 ‘샤인 어 라이트’라는 롤링 스톤스의 공연 실황을 담은 다큐까지 제작을 맡게 된다.[62]

사실 스코세이지의 롤링 스톤스에 대한 선호도를 넘어, 두 아티스트는 분야는 다르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스코세이지의 데뷔가 좀 늦지만 둘다 50년을 넘어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둘다 이방인 출신이지만[63] 각각 컨트리와 블루스로 대변되는 미국의 전통적인 록 음악과 미국의 작가주의 뉴욕파 영화를 상징한다는 점도 그렇다. 또한 작품이 다소 마초적인 성향을 띈다는 것도 많이 비슷하다.[64]

  • 1963년, 즉 비틀즈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프론트맨 듀오인 믹 재거키스 리처즈의 나이가 상당히 어린 편이다. 이 둘은 1943년 생인데, 동료 밴드인 비틀즈의 막내인 조지 해리슨과 동갑인 것이다.[65]

11.1. 대중매체 속 롤링 스톤스[편집]



  • 머나먼 정글(Tour of Duty, 1987~1990)의 인트로로, 그리고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재킷의 엔딩 삽입곡으로 'Paint It Black'이 쓰였다. 이후 이 곡은 전쟁물을 상징하는 곡 중 하나가 되었다.


  • 2014년 7월 31일 방영되었던 SBS 예능 프로그램 "백년손님"에서 남재현 일행이 캠핑카 여행을 떠났을 때 나온 브금Under My Thumb이다.

  • Windows 95의 영어권 국가 TV 광고에 배경음악으로 "Start Me Up"가 사용되었다.




  • 맨 인 블랙 3에서 J가 1969년으로 타임워프한 초반에 2000 Light Years From Home이 나온다.

  • 짱구는 못말려 16기 1화, 2화 '볼링 대결을 해요' 에서도 장미반 치타 친구로 나오는 아이가 본인은 롤링 스톤즈 음악만 듣는다고 언급한다.




  • LE SSERAFIM김채원 티저가 롤링스톤스의 Ride 'Em On Down 뮤직비디오를 오마주했다.




11.2. 비틀즈와의 라이벌리[편집]


롤링 스톤스 라이벌을 꼽으라면 팬들이나 평론가들이나 이구동성으로 동시대에 활약했던 비틀즈를 꼽는다. 이러한 라이벌리는 1965년 경부터 시작되었으며,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이자 가장 유명한 라이벌리로 뽑힌다.[66] 실제로 롤링 스톤스는 비틀즈가 1960년대 유럽과 북미를 휩쓸고 다닐 때 대중적 인기나 비평적 성과로 대항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밴드였다.[67]

이 두 밴드가 라이벌로 꼽혔던 이유는 인기 뿐만 아니라 대조되는 이미지와 특성 탓도 있었다. 먼저 비틀즈가 신사나 모범생의 이미지로 유명했다면 롤링 스톤스는 악동이라는 대조되는 이미지로 유명했다.[68] 그리고 비틀즈가 다소 팝적인 음악을 발매하거나 스튜디오에서의 실험에 집중한 반면, 롤링 스톤스는 블루스와 로큰롤에 기반한 정통 하드 록블루스 록적인 음악을 발매하거나 라이브 투어를 중시했다.[69]

이렇게 라이벌리가 유명하지만 밴드 멤버들끼리는 서로 음악적인 영향도 자주 주고받고 서로 교류도 자주하는 친한 사이이다.[70] 하지만 라이벌답게 서로 은근히 디스를 주고받은 적도 많은데, 몇 가지 사례로 존 레논믹 재거의 춤이 Faggot스럽다고(…) 디스를 한 적도 있고, 키스 리처즈페퍼 상사가 똥같다고 디스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20년에도 폴 매카트니가 롤링 스톤스는 블루스 커버 밴드라는 묘한 말을 남겼고, 이에 대응해 믹 재거는 비틀즈는 매디슨 스퀘어 가든같은 큰 규모의 공연장에서 공연한 적이 없고 투어 비즈니스가 자리를 잡기 전에 해체를 했기 때문에 롤링 스톤스와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라는 묘한 말을 남겼다.[71]

팬들끼리의 관계는 두 밴드의 음악을 같이 향유하는 팬들이 가장 많지만, 가끔 나이가 지긋이 든 팬들끼리는 서로 싸우기도 한다.[72]

이렇듯 이들의 라이벌리가 너무 유명하다보니까 현재에도 라이벌을 표현할때 비틀즈와 롤링 스톤스 같다고 표현하기도 한다.[73]


11.3. 관련 도서[편집]


  • The Rolling Stones/Unzipped

  • 롤링 스톤즈 50년의 악행 50년의 로큰롤[74]


12. 롤링 스톤스에 대한 언사[편집]


롤링 스톤스는 최후에는 진정 가장 위대한 로큰롤 밴드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메탈, , 펑크, 뉴 웨이브, 팝 록, 어떤 것이든 당신은 모두 롤링 스톤스의 영향력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아무도 그들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다.

밥 딜런#


나는 롤링 스톤스에게 어떠한 경쟁 심리도 느끼지 않는다. 롤링 스톤스는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있었으며, 의 가사는 그냥 놀라움 그 자체이다.

지미 페이지


롤링 스톤스는 영국 음악계에서 10대 초중반의 아이들에게 여러 음악을 선사해 준 주된 선구자이자 공급자이다.

로버트 플랜트[75]


롤링 스톤스가 다녀온 나라들은 롤링 스톤스가 공연을 한 이전과 이후의 음악 수준이 확연히 바뀔 정도인데, 한국이 굿 보이 비틀즈는 받아 들였지만 배드보이 롤링 스톤스는 못 받아들였기 때문에 한국 음악이 후진 것이다.[76]

신해철


롤링 스톤스는 나의 밴드에 대한 기준을 만든 밴드이다. 하지만 난 그들처럼 투어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 무릎이 버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존 본 조비


롤링 스톤스는 우리가 한 번도 같이 연주를 하지 않은 밴드지만 항상 같이 연주를 하고 싶었던 밴드이다.

라스 울리히


많은 뮤지션들은 본인들이 롤링 스톤스라도 된것처럼 착각하기 시작하면서 망가지기 시작한다.

조니 마


적어도 펑크가 도래할 때까지 아무도 그들처럼 몰아(沒我)의 에너지로 철저히 록을 한 사람들은 없었다.

로버트 크리스트가우


만약 당신이 미국에서 자랐다면 당신은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 그리고 롤링 스톤스의 영향을 받았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의 음악이 항상 라디오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크리스 코넬


롤링 스톤스의 일부 노래들은 기절초풍(Stunner) 그 자체이다 .

존 라이든[77]


비틀즈, 필 스펙터, 그리고 롤링 스톤스 이들이 저의 우상입니다.

브라이언 윌슨


어린 시절 나의 우상들인 비틀즈,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다.

로버트 스미스[78]



13. 디스코그래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롤링 스톤스/음반 목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1. 싱글[편집]



13.1.1. 빌보드 Hot 100[편집]


롤링 스톤스의 Billboard HOT 100 차트인 목록
년도
곡명
최고 순위
수록앨범
1964년
Not Fade Away
48위
England's Newest Hit Makers
Tell Me (You're Coming Back)
24위
It's All Over Now
26위
12 X 5
Time Is On My Side
6위
1965년
Heart Of Stone
19위
The Rolling Stones, Now!
The Last Time
9위
Out of Our Heads
Play With Fire
96위
(I Can't Get No) Satisfaction
4주연속 1위
Get Off of My Cloud
2주연속 1위
December's Children (And Everybody's)
1966년
As Tears Go By
6위
19th Nervous Breakdown
2위

Paint It, Black
2주연속 1위
Aftermath
Mother's Little Helper
8위
Lady Jane
24위
Have You Seen Your Mother, Baby, Standing In The Shadow?
9위

1967년
Ruby Tuesday
1주 1위
Between the Buttons
Let's Spend the Night Together
55위
We Love You
50위

Dandelion
14위

1968년
She's a Rainbow
25위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Jumpin' Jack Flash
3위

Street Fighting Man
48위
Beggars Banquet
1969년
Honky Tonk Women
4주연속 1위

1971년
Brown Sugar
2주연속 1위
Sticky Fingers
Wild Horses
28위
1972년
Tumbling Dice
7위
Exile on Main St.
Happy
22위
1973년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
42위
Let It Bleed
Angie
1주 1위
Goats Head Soup
1974년
Doo Doo Doo Doo Doo (heartbreaker)
15위
It's Only Rock 'N Roll (But I Like It)
16위

Ain't Too Proud To Beg
17위

1975년
I Don't Know Why
42위

Out Of Time
81위
Aftermath
1976년
Fool To Cry
10위
Black and Blue
Hot Stuff/fool To Cry
49위
1978년
Miss You
1주 1위
Some Girls
Beast of Burden
8위
1979년
Shattered
31위
1980년
Emotional Rescue
3위
Emotional Rescue
She's So Cold
26위
1981년
Start Me Up
2위
Tattoo You
1982년
Waiting On A Friend
13위
Hang Fire
20위
Going To A Go-Go
25위

1983년
Undercover Of The Night
9위
Undercover
1984년
She Was Hot
44위
1986년
Harlem Shuffle
5위
Dirty Work
One Hit (To The Body)
28위
1989년
Mixed Emotions
5위
Steel Wheels
Rock And A Hard Place
23위
1990년
Almost Hear You Sigh
50위
1991년
Highwire
57위
Flashpoint
1994년
Love Is Strong
91위
Voodoo Lounge
Out Of Tears
60위
1998년
Saint Of Me
94위
Bridges to Babylon
2003년
Sympathy for the Devil (Remixes)
97위



13.1.2. 그 밖의 싱글[편집]


  • It's All Over Now (1964) - 영국차트 1위
  • Little Red Rooster (1964) - 영국차트 1위
  • Living In A Ghost Town (2020)


13.1.3. 대표곡[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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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용 악기가 많기 때문에 특정하기 어렵다.[2] 자체 설립.[3] 현재는 1960년대 후반 음악들은 이쪽으로 저작권을 통일시켰는지 2018년부터 이쪽 계정으로 롤링 스톤스의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 롤링 스톤스 공식 유튜브 계정보다도 영상에 더 자주 올라오는 수준.[4] 롤링 스톤스의 코파카바나 해변 공연은 추정치 150만이며 최소 120만의 인원이 운집된 것으로 추산된다.[5] 참고로 4위인 , 5위인 AC/DC, 7위인 이글스의 음반 판매량 또한 2억 장 이상인데, 이 때문에 통계에 따라 네 밴드의 판매량 순위가 서로 변동되기도 한다.[6] 활동 기간이 롤링 스톤스만큼 길다는 더 후키스 문의 죽음 이후에 잠깐 해체했던 적이 있었다.[7] 한국이 이 분야에서 갈라파고스화가 심한 국가다.[8] 보통 대중음악의 본좌를 꼽자면 롤링 스톤스가 비틀즈, 밥 딜런과 함께 거론되며, 이들보다 한 단계 낮은 음악가로는 데이비드 보위, 레드 제플린, 브루스 스프링스틴, 프린스 등이 꼽힌다.[9] 물론 믹 재거에게서도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10] 혀를 통해 애무하는 이미지를 담아냈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즉 이것도 롤링 스톤스가 가진 악동이라는 이미지를 담아낸 것.[11] 애초에 이 밴드들은 더 후, 레드 제플린을 제외하면 전부 슈퍼밴드이다. 레드 제플린 또한 슈퍼밴드로 분류되는 경우가 드물 뿐이지 슈퍼밴드의 개념에 부합하는 밴드이다. 슈퍼밴드가 아닌데도 역량이 어마어마한 더 후[12] 애초에 솔로 플레잉을 즐겨하는 멤버가 믹 테일러에 국한될 정도로 롤링 스톤스의 멤버들은 솔로 플레잉보다는 리듬감 있는 연주를 더 선호하였다.[13] 당장 또다른 록 역사상 위대한 프론트맨중 하나로 뽑히는 짐 모리슨. 로버트 플랜트, 로저 달트리, 프레디 머큐리들보다 모두 시기상 앞선다.[14] 다만 항상 막 불렀던 건 아니고, No Expectations같은 어쿠스틱 넘버에서는 미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Some Girls 이후부터는 팔세토까지 마스터했다.[15] 또 다른 최고의 리릭시스트로 뽑히는 밥 딜런짐 모리슨이 시적인 작사에 능하다면 믹 재거모리세이 같은 재치있는 표현과 비유에 능한 리릭시스트라고 할 수 있다.[16] 60년대까지는 깁슨 레스폴을 애용했다. 레스폴을 사용한 유명한 라이브로는 롤링 스톤스 로큰롤 서커스 등이 있다.[17] 이 때문에 커버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또한 튜닝을 자주 바꾸면 번거롭기도 하고 기타줄이 잘 망가지기 때문에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혹시라도 키스 리처즈의 곡들을 커버해보고 싶다면 아예 오픈 g튜닝용 기타를 새로 장만하는 것을 추천한다.[18] 존 본햄과 키스 문은 찰리 와츠와 다른 스타일의 드러머이긴 하다. 존 본햄과 키스 문이 화려한 필인과 엄청난 속도의 속주를 지향한다면 찰리 와츠는 최대한 필인을 자제하고 대신에 정확한 리듬이나 그루비한 리듬을 지향하는 편이다. 사실 이러한 탑 클래스 드러머들 사이에서는 실력 비교가 무의미하긴 하나, 존 본햄과 키스 문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러머라고 평가받는 것은 이들의 막대한 영향력에 있다.[19] 1936년생으로, 다른 멤버들보다 최소 몇 살은 더 많다. 그래도 외모만 보자면 엄청난 동안이라 전혀 위화감은 없었지만...[20] 하지만, 그가 밴드를 탈퇴했던 당시 그의 나이는 50대 후반이었는데, 롤링 스톤스가 다른 멤버들이 거의 팔순 되어가는 현재에도 큰 무리 없이 활동하는 것을 보면...[21] 물론 이러한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요 덕택은 재거-리처즈의 역할이 제일 크긴 했다.[22] 지미 헨드릭스는 믹 테일러가 한창 활동하던 1970년에 요절하였고, 에릭 클랩튼은 한창 마약패티 보이드 때문에 고생하던 시절이다. 또한 동시대에 있던 키스 리처즈, 피트 타운젠드는 이들처럼 리드 기타리스트가 아닌 리듬 기타리스트였다.[23] 당장 ‘롤링 스톤스 4대 명반’으로 불리는 앨범 중에서 Beggars Banquet을 제외한 나머지 3개의 앨범 작업에 믹 테일러가 참여했다.[24] 애초에 활동 시작 시기가 앞서 언급했던 인물들 중에서 폴 매카트니와 비슷하다.[25] 이는 롤링 스톤스의 음악이 스킬보다는 그루브함이 강조되고, 키스 리처즈의 기타같은 경우는 오픈 G 튜닝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 연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26] 물론 1964년에 각각 You Really Got Me, The House of the Rising Sun으로 먼저 침공했던 킹크스애니멀스가 있긴 했지만, 비틀즈 다음으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이 인기를 오랫동안 유지했던 밴드는 롤링 스톤스이다.[27] 물론 여기서 침체기라는 단어는 디스코그래피가 어마어마한 롤링 스톤스의 커리어 내에서라는 것이다. 실제로는 이 앨범들도 명반까진 아니어도 수작 취급을 받는다.[28] 하지만 이런 롤링 스톤스에게도 1980년대는 가장 힘든 시기였으며, 재거-리처즈의 불화로 해체설까지 돌았던 유일한 시기였다. 그리고 이들의 최악 앨범인 Dirty Work가 탄생한 시기도 1980년대다.[29] 물론 이것도 역대 아티스트 순위 20위 권에 들만큼 엄청난 양이지만, 빌보드 올타임 차트에 2위를 차지한 롤링 스톤스의 위상을 생각해본다면 의외로 많은 편은 아니다.[30] 물론 사이키델릭 시절 앨범이나 Exile on Main St. 같은 앨범들은 컨셉 앨범이다. 정말 컨셉 앨범 혹은 유기성을 중시하는 앨범을 단 하나도 발매하지 않았지만 스톤스보다 음반 판매량이 많은 밴드는 이 밴드 뿐이다.[31] 세 밴드 모두 음반 판매량은 약 2억 장으로, 롤링 스톤스와 거의 비슷한 양이다.[32] 상기한 밴드 중 레드 제플린은 싱글 발매를 꺼려 싱글은 거의 발매하지 않거나 제한적으로 발매했으며, 핑크 플로이드의 빌보드 핫 100 성적은 롤링 스톤스보다 더 뒤쳐진다.[33] 1등은 당연히 비틀즈.[34] 1위는 비틀즈, 2위는 레드 제플린, 3위는 , 4위는 핑크 플로이드.[35] 비유하자면 일본의 사랑이나 대한민국의 오아시스 사랑과 비슷하다.[36] 실제로 밴드 공식 인스타그램 혹은 멤버들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보면 매우 높은 확률로 아르헨티나인 댓글을 확인할 수 있다.[37] 물론 한국 빼고.[38] 특히 키스 리처즈가 메탈 밴드들, 힙합 음악, 레드 제플린, 비틀즈 등 거대한 팬덤들을 가진 아티스트들을 항상 공격해왔기 때문에 저 팬들 중에서 롤링 스톤스를 싫어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키스 리처즈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롤링 스톤스는 비틀즈, 레드 제플린과 실제로는 친한 사이이기에 독설가로서의 이미지를 위해 한 말일 가능성도 있으며, 이 밴드들의 팬덤에서 진지하게 롤링 스톤스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이 사람은 록부심 때문에 힙합을 까는 것도 아닐 뿐더러, 일단 자기네 보컬도 디스하는 양반이라(…)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웬만큼 힙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면 딱히 안티가 되는 경우는 없다.[39] 미국도 한국 못지 않게, 혹은 한국 이상으로 세대 갈등이 심한 나라이다.[40] 이러한 것 때문에 PC를 대거 받아들인 롤링 스톤지에서의 평가가 매우 낮아졌다. 이는 레드 제플린도 마찬가지.[41] 대표적으로 개정판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곡에서 롤링 스톤스와 레드 제플린은 엄청난 순위 후려치기를 당했는데, 이러한 몇몇 이유 때문에 현재 서구권에서 롤링 스톤의 이미지는 국내의 한경오와 같은 입진보 신문의 이미지가 되어 버렸다.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42] 물론 차트마다 찬밥 신세를 받는 아티스트는 다르긴 하다. 이를테면 롤링 스톤에서는 킹 크림슨더 스미스가 찬밥 신세를 받는다.[43] 프린스와 마돈나가 워낙에 80년대를 씹어먹던 스타들이라 그시절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이름들이었다.[44] 2022년 초까지는 나무위키에서도 본 문서에 서술되어 있는 정보가 극히 적었다.[45] 심지어 롤링 스톤스는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러시아 같은 전 세계의 오지들은 전부 가봤지만, 한국은 안 가봤다는 농담도 존재한다.[46] 다만 이건 일본에서 록 음악의 인기가 매우 높다는 것을 감안해야한다. 일본은 잉베이 말름스틴이나 레인보우 같은, 인기가 예전같지는 않은 하드 록, 헤비 메탈 밴드들이 아직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국가다. 심지어 블랙모어스 나이트 결성 이후 리치 블랙모어가 하드 록을 버리고 독일 중세풍의 르네상스 음악으로 방향을 선회했을때도 독일과 더불어 유이하게 리치 블랙모어에게 마음을 열어준 국가가 일본이었다. 이 때문에 록 음악가들이 일본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무척 호의적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레드 제플린은 서구권 록밴드 중 최초로 일본 전국 투어를 개최했으며, 미스터 빅은 밴드의 앨범에 일본 음악 리메이크 버전을 수록하기도 하고, 은 앨범에 일본어로 된 곡을 수록하기도 했다. 밴 헤일런의 보컬로 유명한 데이비드 리 로스와, 메가데스 소속의 기타리스트 마티 프리드먼은 아예 일본에 건너가서 살고있다. 게다가 일본은 서구권의 록뿐만 아니라 자국의 록 아티스트들도 현재까지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국가이다. 대표적으로 ONE OK ROCK. 그리고 이 시기의 한국은 유신 정권이었기에 내한하기 힘들었던 것도 있었다.[47] 그나마도 이 곡은 원곡보다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나오는 버전이 더 유명하다.[48] 심지어 이 설문조사는 2001년에 진행된 것으로, X세대386세대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즉 구세대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임에도 불구하고 롤링 스톤스에 대해 잘 모르는 것. 보통 국내의 신세대인 Z세대는 올드 팝을 듣는 부모님을 따라 고전 록 음악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은데, Z세대의 부모님 세대도 잘 모르는 아티스트가 바로 롤링 스톤스이니 국내 인지도는 현재에도 처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49] 물론 다른 밴드에 비하면 여전히 처참할정도로 적다.눙물[50] 물론 신촌 블루스같이 뛰어난 블루스 아티스트들도 한국에선 많았지만 대중적인 인기는 록의 모든 세부장르 중에서도 가장 낮다고 볼 수 있다.[51] 롤링 스톤스처럼 전세계적인 인지도에 비해 한국에서의 인지도가 낮은 레드 제플린도 블루스 성향이 강한 밴드이다. 당장 블루스 록의 대표 아티스트 중 하나로 꼽히며 그들의 명곡들도 Black DogSince I've Been Loving You처럼 블루스적인 요소를 사용한 곡들이다. 그러나 레드 제플린은 롤링 스톤스에 비해 좀 더 하드한 헤비 메탈 넘버들과 비교적 잔잔한 포크 록 넘버들이 많기에 국내에서 그나마 인지도가 있고 인기도 있는 것이다.[52] 물론 해외에서의 인기에 비해 국내에서의 인기가 매우 적은 편이긴 하다. 또한 국내에서 레드 제플린의 명곡들은 그나마 내용이 건전한(?) Stairway to Heaven, Immigrant Song, Rock and Roll 등의 노래들만 알려져 있다. 사실 또다른 유명한 곡인 Black Dog도 건전하진 않다[53] 사실 대부분의 록밴드들이 퇴폐적인 이미지는 공유하지만 롤링 스톤스는 반문화적, 저항적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북한 측에서 거절한듯하다. 물론 북한측이 거절하지 않았더라도 권위주의를 혐오하는 스톤스가 지상 최악의 독재자 중 한명이 통치하는 국가에서 공연했을지는 의문이다.[54] 특히 보컬인 스티븐 타일러가 외모와 창법이 믹 재거와 비슷했던 지라..[55] 그의 외모가 맘에 안들었는지 앤드류 올드햄이 탈퇴시켰다고 한다.[56] 그 당시 영국은 재즈 클럽이 더 많았다고 한다.[57] 수익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배급에 대한 권리이다. 즉 롤링 스톤스가 돈을 아예 못 받는거는 아니지만, Let It Bleed이전에 만든 곡들에 대한 배급권리가 이 회사에 있다. 이게 팬들이 불만을 가지는 요소인데 대표적으로 Let It Bleed의 50주년 앨범에 B사이드 트랙이 하나도 발매가 안 되어서 팬들이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롤링 스톤스가 묵혀왔던 곡을 발표하고 싶어도 못 하고 이 회사가 발표를 해야하는데, 한 곡도 발표를 하지 않은 것이다.[58] 근데 자막 업로드 영상이 은근 롤링 스톤스 스타일과 어울려서 일반 음악 팬들에게는 고평가받는다.[59] 그리고 현재까지 앙금이 안 풀린듯 하다.[60] 이때 당시 지미 페이지, 제프 벡, 찰리 와츠, 빌 와이먼과 부르던 노래가 Stairway to Heaven, Layla였는데, 이에 대해 ‘최고의 기타리스트들과 스톤스 멤버들이 조지 해리슨의 와이프에게 구애한다’라는 드립이 있었다(…).[61] 그리고 그녀가 자서전이나 인터뷰에 스톤즈 썰을 너무 자세하게 풀어줘서 팬들이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62] 믹 재거와 키스 리처즈가 자기들의 다큐를 감독할 사람으로 스코세이지를 뽑았다고 한다.[63] 롤링 스톤스는 영국, 스코세이지는 이탈리아계이다.[64] 비단 갱스터 영화뿐만 아니라 스코세이지의 영화에선 욕이나 마초적인 캐릭터가 많이 나온다.[65] 다만 밴드 최연장자인 빌 와이먼은 무려 1936년 생으로,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고작 한 살 어리다.[66] 보통 1970년대의 레드 제플린 VS 핑크 플로이드, 1980년대의 마이클 잭슨 VS 프린스, 1990년대의 투팍 VS 비기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라이벌리로 꼽힌다.[67] 당시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끌었던 밴드 중 비틀즈만큼 빌보드와 UK 차트 1위를 밥 먹듯이 차지했던 밴드는 롤링 스톤스밖에 없었다.[68] 아이러니하게도 비틀즈는 노동 계급 출신이지만 롤링 스톤스는 유복한 중산층 출신이다. 특히 스톤스의 보컬인 믹 재거는 그 유명한 런던 정경대의 경영대학 출신으로, 브라이언 메이, 존 디콘, 로저 테일러와 더불어 록 아티스트 중에서 학력이 가장 높은 사람이다. 어째 이 세 명이 같은 밴드 소속인 것 같지만 넘어가자 그렇기에 실제로 당시 비틀즈는 ‘모범생인 척하는 악동들’로, 스톤스는 ‘악동인 척하는 모범생들’로 불렸었다.[69]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주로 추구했던 장르’를 말하는 것으로, 사실 비틀즈도 정통 하드 록, 블루스 록 넘버들을 많이 발매하였고, 롤링 스톤스도 다소 팝적인 음악들을 많이 발매하였다.[70] 사실 60~70년대 영국 음악계는 매우 좁아서 웬만한 뮤지션들은 서로 다 안면이 있거나 친한 사이였다.[71] 이에 대해 양쪽 모두와 친한 지미 페이지는 “쟤넨 60년대부터 저랬다”며(…)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고 했다.[72] 국내 록 커뮤니티에서 나이가 지긋이 든 레드 제플린 팬과 딥 퍼플 팬의 키배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73] 1960년대 미국에서 잠깐 지냈던 한대수가 롤링 스톤스는 껄렁한(...) 아이들이 좋아했다고 한다.[74] 책도 짧고 위키에서 얻을 수 없는 정보도 많기 때문에 롤링 스톤스의 팬이나 그들의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75] 로버트 플랜트가 빨리 데뷔해서 대다수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롤링 스톤스가 전성기를 맞았을 당시 로버트 플랜트는 10대 청소년이었다. 즉 레드 제플린 데뷔 당시에도 10대였다는 말.[76] 실제로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들은 롤링 스톤스가 처음 아르헨티나 공연을 시작한 이래로 그들과 비슷한 음악을 하는 많은 록밴드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아르헨티나 록음악이 발전했다고 한다.[77] 여담이지만 존 라이든은 1970년대에 믹 재거와 지미 새빌을 죽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엔 자신이 현역에 깠던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를 사실은 좋아한다고 밝히기도 해서(…).[78] 링크가 1700년대 미국에서 태어난 국무장관으로 연결돼 있지만 더 큐어의 보컬 로버트 스미스를 이야기 하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