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미국 19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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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20세기 초에 존재했었던 미국의 정당. 로버트 M. 라폴레트가 창설한 제3지대 진보정당으로, 19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16.6퍼센트의 득표율을 얻고 위스콘신 1개 주에서 13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2. 역사[편집]
1924년 민주당과 공화당에서 각각 경선을 통과한 캘빈 쿨리지와 존 데이비스 모두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불만을 품은 로버트 M. 라폴레트가 양당의 진보파를 끌어모아 창당했다. 1912년의 진보당과는 의외로 그리 관계가 크지 않으며,[2] 대신 사회당의 단일화 및 선거유세 지원을 받으면서 더욱 선명한 좌익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시절과 비교했을 때 그의 패권주의적 외교 성향을 단호히 거부하고 먼로 독트린에 입각한 선린외교 정책을 지지하는 등 정책 강령에서 어느 정도 선을 그었지만, 친노조 및 반독점 기조는 그대로 가져와 강화하고 중서부 일대의 농민 유권자들의 주된 관심사인 국영철도 부설 및 농업진흥 관련 공약을 내세우고 민주당의 신예 거물 진보주의자로 유명세를 얻은 몬태나 상원의원 버튼 K. 휠러를 러닝메이트로 영입하면서 일약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69세의 나이로 크게 노쇠해 오늘내일하던 로버트 M. 라폴레트가 선거유세에서 여러 좌절을 겪으며 끝내 낙선하고, 이듬해 병사하자 그의 장남인 로버트 M. 라폴레트 주니어가 당권을 이어받는다. 이후엔 사실상 위스콘신 주의 지역정당으로 전락하며, 나중엔 아예 위스콘신 진보당으로 이름을 바꿔달고 무당파연맹(NPL)이나 캘리포니아 진보당 등등 사회당 및 1912년 진보당을 기원으로 하는 다른 진보정당들과 협력해 활동하다가 로버트 M. 라폴레트 주니어가 낙선한 1946년 중간선거[3] 이후 정당을 자진해산하고 대부분의 당원들이 공화당으로 합류했다.
3. 여담[편집]
- 찬전파였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이끌었고 지지층 또한 남부를 제외한 전국에 비교적 고르게 받은 1912년의 진보당과는 달리, 당수인 로버트 M. 라폴레트가 1차대전 참전 반대파였던 영향으로 독일계 미국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이 때문에 혁신주의 시대의 영향이 남아있던 1912년 대선, 그리고 2차대전을 거치며 독일계 미국인들의 정체성이 크게 약화되고 뉴딜연합이 성립한 이후인 1948년 대선과 비교했을 때 세 정당의 선거 양상이 모두 상당히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존재한다.
4.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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