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오르(1973)

덤프버전 :


주니오르의 수상 이력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이름
주니오르
Júnior
본명
제니우송 앙젤루 지소자
Jenílson Ângelo de Souza
출생
1973년 6월 20일 (50세)
브라질 바이아주 산투안토니우지제주스
국적
[[브라질|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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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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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0cm
직업
축구 선수 (레프트백 / 은퇴)
주발
왼발
소속
선수
EC 비토리아 (1992~1996)
SE 파우메이라스 (1997~2000)
파르마 AC (2000~2004)
로부르 시에나 SSD (2004 / 임대)
상파울루 FC (2004~2008)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2009~2010)
고이아스 EC (2010)
국가대표
19경기 1골 (브라질 / 1996~2004)




1. 개요[편집]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2.1.1. EC 비토리아[편집]


1992년에 EC 비토리아에 데뷔했다. 총 18경기밖에 출전을 못했다.


2.1.2. SE 파우메이라스[편집]


바이아주에서 자랐지만 후에 상파울루로 갔고 1997년 1월 1일에 SE 파우메이라스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

3년동안 브라질 리그컵 대회와 지역 리그[1]등등에서 기록합 합산 성적은 98경기 3골로 이때부터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1.3. 파르마 AC[편집]


브라질에서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2000년 1월 1일[2] 파르마 AC[3]로 이적했다. 등번호는 16번을 배정받았다. 그러나 2001-02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01-02 시즌에서 팀은 주니오르-파비오 칸나바로-마르탱 제토-마테오 페라리 라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47실점을 기록하며 10위로 시즌을 마쳤지만 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하며 2002-03 시즌 UEFA 컵에 출전한다는 것은 위안으로 삼을수 있을듯 하다.

2002-03 시즌에는 주니오르-마테오 페라리-세바스티아노 세비야[4]-다니엘레 보네라 라인으로 36실점만 허용[5]하는 동안 55득점을 하며 5위로 순위가 상승하며 유로파 리그에 또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2003-04 시즌 전반기 역시 파르마에서 보냈다. 그러나 하반기에는 세리에 A로 갓 승격한 로부르 시에나 SSD로 임대 이적으로 시즌을 보낸다.

6월 30일에 임대가 종료되고 돌아온 사이에 팀은 파르마 FC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이는 불과 5일전에 일어난 일이였다. 그리고 파르마 FC로 팀명이 바뀐 후 상파울루 FC로 이적했다.


2.1.3.1. 로부르 시에나 SSD (임대)[편집]

2004년 1월 1일에 로부르 시에나 SSD[6]로 임대 이적을 했다. 등번호는 역시 16번을 배정받았다.

파르마에서 보여준 수비력을 바탕으로 좋은 활약을 하나 했으나... 1부리그의 쓴 맛을 보면서 피아첸차 칼초와 승점 2점차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피하고 잔류를 하게 되었다.


2.1.4. 상파울루 FC[편집]


2004년 7월 1일에 다시 고국 브라질로 돌아왔다. 돌아온 팀은 상파울루 FC다. 그리고 등번혼느 16번을 배정받았다.

3년 6개월간 브라질 리그컵 대회와 지역 리그[7]등등에서 기록합 합산 성적은 89경기 4골로 역시나 좋은 활약을 했다.


2.1.5. 클루비 아틀레치쿠 미네이루[편집]


2009년 1월 1일에 클루비 아틀레치쿠 미네이루로 이적했다.

1년 6개월 브라질 리그컵 대회와 지역 리그[8]등등에서 기록합 합산 성적은 26경기 3골로 나이가 많음을 체감한듯 하다.


2.1.6. 고이아스 EC[편집]


2010년 8월 1일에 고이아스 EC로 이적했다. 반년간 16경기 1골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은퇴를 했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1996년부터 2004년까지 8년동안 19경기 1골을 기록했다. 그도 그럴것이 포지션이 겹치는 선수가 호베르투 카를루스기 때문이다.


2.2.1.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편집]





2002 한일 월드컵 명단에 포함되었다. 등번호는 16번을 배정받았다.

처음으로 출전한 경기는 3차전 코스타리카전에서 선발 출전을 하고 90분 풀타임을 소화한 경기다. #[9] 그리고 1골 2도움이라는 좋은 활약이 있었다. 경기 최우수 선수는 덤이다. 그러나 16강부터는 역시 호베르투 카를루스가 다시 브라질의 왼쪽을 지키며 벤치에만 있었다. 결승 독일전에서는 브라질이 독일을 상대로 2: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했다. 이로서 주니오르도 우승 멤버가 되었다.


3. 여담[편집]


  • 본명인 제니우송 앙젤루 지소자(Jenílson Ângelo de Souza)라는 이름이 상당히 길어서 주니오르(Júnior)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또한 주니오르 나가타(Júnior Nagata)로도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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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상파울루주에 포함된 모든 팀들이 참가한다.[2] 공교롭게도 새천년 첫날이다.[3] 현재는 파르마 칼초 1913이다.[4] 후에 SS 라치오에서 커리어 하이를 만든 선수로도 알려져있다.[5] 대략 1경기당 1골을 먹혔다고 볼 수 있다.[6] 현재는 ACN 시에나다.[7]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상파울루주에 포함된 모든 팀들이 참가한다.[8] 캄페오나투 미네이루다.[9] 3차전 코스타리카전에서 출전한 이유가 아마 16강 진출이 확실시 한 상황이라 로테이션으로 카를루스 대신 나온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