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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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의 역임 직책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둥가
(1994~1998)

카푸
(1998~2006)


루시우
(2006~2011)


카푸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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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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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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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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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 드림팀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카푸의 기타 정보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


이름
카푸
Cafu

본명
마르쿠스 이방젤리스타 지모라이스
Marcos Evangelista de Moraes
출생
1970년 6월 7일 (53세)
브라질 상파울루
국적
[[브라질|

브라질
display: none; display: 브라질"
행정구
]]
| [[이탈리아|

이탈리아
display: none; display: 이탈리아"
행정구
]]

신체
176cm / 체중 75kg
직업
축구 선수 (라이트백 / 은퇴)
소속
선수
상파울루 FC (1989~1995)
EC 주벤투지 (1995)
레알 사라고사 (1995)
SE 파우메이라스 (1996~1997)
AS 로마 (1997~2003)
AC 밀란 (2003~2008)

국가대표
142경기[1] 4골 (브라질 / 1990~2006)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평가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은퇴 이후
7. 여담



1. 개요[편집]


브라질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라이트백이었다.

AS 로마에서 클럽 경력의 최전성기를 보내며 세리에 A 우승을 이끌었고, AC 밀란에서도 세리에 A와 UCL 우승에 공헌하였다. 또한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1998년부터 2006년까지 주장을 맡아 2002 한일 월드컵 우승을 주도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카푸는 여느 브라질 스타들처럼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그런 가난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낼 상파울루 FC에 입단한다. 사실 상파울루에 입단하기 전 까지 그는 SE 파우메이라스, 산투스 FC, SC 코린치안스 등 여러 클럽을 돌아다니며 입단 테스트를 봤지만 무려 12번이나 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계속된 노력 끝에 결실을 맺으며 프로 데뷔에 성공한다.

상파울루 FC는 당시 브라질 리그에서 전성기를 맞고 있었고 운 좋게 그럴 때 들어와 여러 타이틀을 따낸다. 상파울루 FC에서 카푸는 크고 작은 우승컵을 모두 포함해 10개 가까이 얻었다. 충분히 재능이 있었던 카푸였기에 그는 팀을 떠나서 주전을 차지한 클럽이 필요해 상파울루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EC 주벤투지, 레알 사라고사, SE 파우메이라스를 거쳐 1997-98 시즌 AS 로마로 이적한다.

그 전까지의 팀들 역시도 카푸는 빛났으나 제대로 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던 찰나였다. 당시 세리에 A는 세계 최강 리그로 칠공주라고 불리던 시기였고 로마 역시 그 칠공주 중 하나였다. 당시 로마의 감독인 파비오 카펠로는 카푸를 스리백의 윙백으로 기용했고 카푸는 제대로 활약했다. 그리고 3년 뒤인 2000-01 시즌에는 스쿠데토수페르코파 우승컵을 들어올린다. 카푸는 프란체스코 토티,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왈테르 사무엘, 에메르송과 함께 우승의 주역이 되며 월드 클래스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무려 18년 만에 우승을 맛본 로마 팬들은 카푸에게 열광했다. 이 후도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며 2002-03 시즌까지 로마에서 활약한다. 그러나 당시 세리에는 너무나도 강력했기에 그런 로마도 순위를 유지하기 힘들었고 챔피언스 리그 출전 순위권은 커녕 UEFA컵 순위권에도 겨우 들었다. 카푸는 어쩔 수 없이 로마를 떠나 세리에 A 최강의 팀 AC 밀란으로 떠난다.

AC 밀란에서도 그의 기량은 여전했다. 카푸는 카카, 안드리 셰브첸코, 안드레아 피를로, 젠나로 가투소, 알레산드로 네스타, 파올로 말디니 등의 멤버와 함께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리고 이적한 해인 2003-04 시즌부터 스쿠데토를 들어올린다. 다음 시즌인 2004-05 시즌에는 스탐이 오면서 말네스카 라인을 형성하지만 사실 이 수비 라인이 제대로 가동된 시간은 한 시즌 정도밖에 없었다. 리그 최저 실점도 리그 우승과 함께 유벤투스 FC에 내줬다. 말디니와 카푸는 이미 30줄을 타고 있으며 전성기는 지난 상태. 때문에 2004-05 시즌에 남은 건 UEFA 챔피언스 리그뿐이었고 결국에는 결승까지 진출한다. 리버풀과의 경기였는데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말디니의 챔스 최단 시간 골, 이 후 쐐기를 박는 2골로 전반전이 끝나며 빅 이어를 드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후반전 스티븐 제라드의 헤더 골과 함께 3골을 내리 먹히며 승부차기로 갔고 승부차기에서 결국 패배해 이스탄불의 기적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이런 비극에도 2시즌 뒤인 2006-07 시즌, 리버풀에 복수할 기회가 찾아왔다. 챔스 결승에선 필리포 인자기의 대활약으로 2년 전 기적의 주인공 리버풀을 2-1로 꺾는다. 그렇게 카푸는 자신의 첫 번째 빅 이어를 들어올린다.[2] 노인정이라고 불렸던 그 밀란은 거짓말같이 챔스 우승을 하며 그런 칭호를 버리게 되나 싶었으나 2007-08 시즌에는 카푸도 극심히 부진하더니 밀란은 챔스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어쨌든 그런 부진과 함께 카푸는 몸의 한계가 왔는 것을 인지했는지 2008년 5월 18일에 열렸던 우디네세 칼초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카푸1994.png

로베르토 바조와 경합하는 카푸
1990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한 카푸는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엔트리에 뽑혔으나 조르지뉴에 밀려 후보에 그쳤다. 그래도 16강 미국전, 8강 네덜란드전, 결승전이었던 이탈리아전까지 3경기나 교체로 뛰었고[3] 카푸는 첫 월드컵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3년 뒤 1997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대활약하며 브라질의 우승에 공헌한다. 호마리우, 호나우두가 투톱으로 있던 브라질은 6경기에서 무려 22골을 넣는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브라질 역시 1년 뒤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로 점찍혔다.

1년 뒤 기량이 물오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는 지난 대회와는 달리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대활약을 해낸다. 당시 브라질의 공격은 호나우두-베베투 투톱, 2선 미드필더에는 레오나르두 아라우주히바우두가 있었다. 또 든든한 주장이자 지난 대회 우승의 주역 둥가아우다이르, 카푸와 호베르투 카를루스가 양쪽 풀백으로 버티고 있던 무시무시한 팀이었다. 카푸는 조별 리그 1차전부터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톰 보이드의 자책골을 유도해내며 브라질의 신승을 이끈다. 2차전이었던 모로코전에서도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히바우두의 골을 도왔고, 브라질은 2승 1패로 16강에 오른다. 이후 토너먼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지만 8강 덴마크전에서 경고 누적을 당해버리며 4강전은 뛰지 못한다. 결국 4강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는 제카를루스가 대신 나오게 되고, 브라질은 승부차기 끝에 결승전에 진출한다. 결승전 상대는 프랑스. 프랑스는 지네딘 지단과 '철의 포백'이 버티고 있었다고는 하나 그 전까지는 기적적으로 올라온 프랑스였고, 마침 카푸도 징계에서 풀렸기 때문에 브라질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들이 다수였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고 지단이 코너킥에서 2골을 뽑아내며 맹활약했고, 결국 브라질은 3-0으로 대패하고 만다. 분명 수비진은 카를루스-아우다이르-바이아누-카푸라는 걸출한 선수들이 즐비했으나 최종적으로 7경기 10실점을 함으로써 수비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말았다. 결국 브라질은 대한민국을 제치고 대회 최다 실점 팀으로 남았다.

1년 뒤 199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월드컵의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호나우두와 히바우두가 괴물 같은 골 스코어링을 보여주며 코파 아메리카 2연패를 이끌었다. 브라질은 다시 한번 재기에 성공하며 다음 월드컵 역시도 기대되었다. 그리고 카푸는 둥가의 은퇴로 이 대회부터 주장 완장을 차고 뛴다.





주장으로써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카푸
그러나 2002 한일 월드컵 지역 예선까지만 해도 팀의 조직력 문제로 말이 많았다. 지역 예선도 힘겹게 올라온 상태였고 호나우두는 부상을 앓다가 복귀한 지 얼마 안된 상태였다. 하지만 본선에서 그들은 각성한다. 당시 공격의 삼각 편대 3R은 막강한 모습을 보여줬고 카푸는 카를루스와 함께 스리백에서 측면 윙백을 맡아 수비 부담이 줄어들었다. 본선 조별 리그에서는 C조에 걸려 튀르키예, 중국, 코스타리카를 모두 꺾고 3전 전승으로 16강에 올라간다. 특히 2차전이었던 중국과의 경기에서 엄청난 오버래핑을 선보이며 호나우두의 골이자 브라질의 4번째 골을 어시스트해주는 모습이 압권이었다. 이후 16강에서는 벨기에를 2-0 승리, 8강잉글랜드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둔다. 4강에서 다시 만난 튀르키예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하며 카푸는 무려 3대회 연속 월드컵 결승전에 뛰게 되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다. 결승 상대는 독일이었고, 2:0으로 승리하며 카푸는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다.[4]

2006 독일 월드컵이 열리기 몇달 전, 카푸는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했으나 다행히 월드컵 개막 3달 전에 부상에서 완치되어 참가할 수 있게 된다. 브라질은 카카-아드리아누-호나우두-호나우지뉴로 이어지는 판타스틱 4를 구성했고 F조에서 호주, 크로아티아, 일본을 만나게 된다. 노장이었음에도 카푸는 조별 리그 1차전부터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과시했고 브라질도 3전 전승으로 16강에 진출한다. 16강 가나와의 경기에서도 아드리아누의 골을 어시스트[5]하는 등 활약했고 브라질도 3:0으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한다. 16강까지만 해도 브라질은 파괴적인 경기력을 선보였기 때문에 브라질 국민들을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8강에서 지네딘 지단프랑스에게 1-0으로 무기력하게 패배하며 카푸는 4년 전 영광과는 다르게 불명예스러운 국대 은퇴를 치른다. 특히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을 허용해 티에리 앙리에게 실점을 했는데, 이 프리킥은 카푸가 플로랑 말루다에게 반칙을 범해서 준 세트피스였기에 더 뼈아팠다. 지난 대회 스리백에서 오른쪽과 왼쪽 윙백을 맡았던 카푸와 카를루스는 2002년에서는 공격 가담을 자주 시도하면서도 빠른 스피드로 수비 복귀 속도가 커버가 됐지만 4년이 지난 2006 월드컵, 사이드백으로 출전한 둘은 뒷공간을 아주 탈탈 털렸다. 2002년까지만 해도 그들의 나이는 카푸가 32살, 카를루스가 29살로 아직 충분히 활약할 나이였지만 4년이 지나 카푸는 36살으로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였고 카를루스 역시 33살로 노장의 시기였다.

여담으로, 카푸의 후계자로 꼽혔던 선수로는 마이콘다니 알베스가 있다. 마이콘은 최전성기였던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까지 자주 비교되었고 마이콘이 노쇠화하자 알베스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브라질 출신의 축구선수 중에서 4번이나 FIFA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는 호나우두, 카푸, 에메르송 레앙, 펠레, 자우마 산투스, 니우통 산투스, 카스티뉴, 티아고 실바로 단 8명 밖에 없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이탈리아 팬들에게 고속 기관차(Il Pendolino)라고 불릴 정도의 재빠른 기동력과 브라질리언다운 천재적인 드리블 기술, 브라질리언답지 않은 왕성한 체력과 꾸준함, 탄탄하고 끈질긴 수비력까지 모든 것을 갖추었던 라이트백이다. 게리 네빌이 라이트백의 교과서 같은 선수였다면 카푸는 공격적인 능력이 훨씬 더해진 선수였다. 카푸는 뛰어난 드리블 능력을 통해 압박을 손쉽게 벗겨냈고, 탈압박 후 빠르게 양질의 크로스을 제공할 수 있었다. 오른발을 자주 사용하긴 하지만 왼발 크로스도 상당히 정확했다.

카를루스가 엄청난 활동량과 미드필드진과의 연계 플레이로 왼쪽을 휘저었다면, 카푸는 여느 윙 플레이어 못지않은 화려한 발재간과 엄청난 스피드를 통해 보다 직선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며 공격적인 라이트백의 정석과도 같은 플레이를 보여주었다. 때문에 카를루스처럼 직접 득점까지 한 상황은 많지 않다. 그러나, 카푸의 드리블 능력은 실로 엄청났기 때문에 굳이 슈팅을 하지 않더라도 공격적 역량을 충분히 뽐낼 수 있었다. 카푸를 역대 모든 라이트백 중 최고의 드리블러로 평가하는 매체들도 많다.

슈팅을 자주 하지 않는다고 쓰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카를루스에 비해서이고, 카푸도 라이트백치고 매우 공격적인 선수이니만큼 슈팅을 자주 찼다. 자주 차기만 한 건 아니고 잘 차기도 했는데, 특히 오른쪽에서 대각선 궤적으로 꽂아넣는 발리를 많이 보여줬는데, 개인기[6]가 좋은 선수답게 발리의 질도 매우 높고, 성공률도 높았다.

멀티 플레이어이기도 했는데, 3백의 라이트 윙백과 4백의 라이트 풀백 포지션 모두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었다. 센터백과 윙어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공격적인 라이트백 내지 윙백으로 분류된다. 2002 월드컵에서는 브라질 3-4-1-2[7] 포메이션의 오른쪽 윙백이었는데, 아예 오른쪽 측면을 혼자 맡아버렸다. 당시 왼쪽 날개는 당연히 호베르투 카를루스.

수비력 역시 당대의 라이트백 중 최고 반열에 들었다. 태클이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상대 선수를 경기 내내 괴롭혔고, 혹여 상대 선수가 드리블로 자신을 벗겨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쫓아가는 끈질긴 수비를 선보였다. 현대 축구에서 말하는 수비력(태클, 대인 수비, 몸싸움 능력 등)이 좋다기보다는 적극성이 매우 뛰어나서 상대 선수를 질리게 만들어버리는 타입. 좋은 의미에서 지저분한 플레이가 매우 많았다. 그러나 작은 덩치의 한계 때문에, 수비 능력 면에서는 릴리앙 튀랑이 카푸보다 우세하다는 평가가 많다. 애초에 튀랑은 센터백 출신이니 공중볼 처리와 몸싸움까지도 완벽했다.

또한 38세 때 무릎 관절 나이 판정이 '청소년과 다를 바 없다'라고 나오기도 했다. 뭐 그래도 AS 로마 시절 부상으로 선수 생명이 끝장날 뻔한 위기가 닥쳤는데, AC 밀란의 밀란 랩에서 재활에 성공했다. 폭발적인 오버래핑과 무서운 돌파력, 화려한 개인기, 날카로운 크로스 등 오른쪽 윙백, 풀백이 갖춰야 할 모든 조건을 갖춘 선수다.

또한 그는 좋은 인성, 훌륭한 리더십과 활기차고 긍정적인 태도로도 유명했다. 이것은 카푸가 스타들이 흘러 넘치는 브라질 선수단을 융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말디니가 주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밀란에 이적해 가서도 특유의 부드러운 성격 덕분에 금방 선수단에 낄 수 있었다.


4. 평가[편집]



파일:발롱드림팀/RB.png

예나 지금이나 아무리 실력이 출중한 선수라도, 월드컵이나 챔스 무대를 제패하려면 운도 따라야 하는데, 이 관점에서 보면 실력과 운이 함께 따라온 케이스다. 월드컵 우승은 리오넬 메시조차 자신의 선수생활 말년이 되어서야 겨우 이룬 기록이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결국 이루지 못한 기록이다.[8] 또한 카나리아 군단에서도 총 142경기를 출전하여 기라성 같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최다 출장 기록을 지키고 있다. 또한 축구 역사상 유일하게 월드컵 결승전에 3번 연속(1994, 1998, 2002) 출전한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함께 카나리아 군단의 측면을 지배했던 전설적인 수비수로서, 축구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백 중 한 명이다. 역대를 통틀어 카푸와 비견되는 오른쪽 수비수는 카를루스 아우베르투자우마 산투스가 있으며, 현역 시절에는 릴리앙 튀랑 정도를 빼면 카푸와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아우베르투는 역대 최강의 월드컵 대표팀으로 꼽히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브라질의 주장을 맡았던 선수이고 자우마 산투스는 최초의 오버래핑 라이트백이자 브라질의 1962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레전드이다. 그래서 브라질 내에서는 이들 두 명과 엎치락뒤치락하는 중.

브라질에서야 워낙 대단한 라이트백이 많이 나온 까닭에 많이 밀리면 3순위까지도 밀리지만, 1990년대의 라이트백 중에서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동시대의 라이트백 중 그와 비견될 만한 선수는 릴리앙 튀랑 정도밖엔 없으며, 그마저도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튀랑이 카푸에 비해 한 수 아래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자우마 산투스의 등번호였던 2번을 달고 국가대표와 클럽에서 크게 활약하여 2번을 라이트백의 상징적인 등번호로 굳히는 데 공헌하였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6. 은퇴 이후[편집]


2013년 발롱도르 시상식 때 대한민국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그 이유가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오렌지 삼총사 출신의 네덜란드 레전드 루드 굴리트를 닮은 꼴인 카푸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는 굴리트가 피파 온라인 3의 영향으로 한국에서 인지도가 오르기 전이었다.

2014년 SBS'SNS 원정대 일단띄워'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2014 브라질 월드컵 특집 겸, 오만석이 카푸의 집을 직접 방문해 만나고 온 적이 있다. 당시 이미 손자가 둘 있었던 것에 많은 이들이 놀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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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미스 유니버스 축구팀을 지도하고 있다[10]

2019년 9월 5일 아들이 축구하다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링크 겨우 30세의 젊은 나이였다. 아들을 잃은 일에 상심이 아주 큰 듯하다.

2022년 12월 10일, 카타르 월드컵에서 자국인 브라질과 크로아티아의 8강전에 경기장을 찾아서 경기를 관전하였다. 이 날엔 호나우두도 참석하여 경기를 관전하였지만, 브라질이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크로아티아에 패하고 탈락이 확정되자, 침통해하는 표정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7.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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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모습 자체가 경이로운 선수라 매 순간이 명장면이나 다름없는데, 특히 AS 로마에서 활약할 때 당시 SS 라치오 소속이던 파벨 네드베드를 농락하는 장면이 유명하다.

  • 지금도 회자되는 말네스카 라인의 한 축. 물론 말네스카는 모였던 두 시즌 중에서 제대로 가동된 적이 많이 없었고, 네스타를 제외하면 나머지 3명이 전성기에서 내려가던 시점이라서 압도적인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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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리언 축구선수치고 매우 모범적이고 훌륭한 멘탈을 가졌다. 단적인 예로, 04-05 시즌 맨유와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꼬꼬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시비를 넓은 마음으로 웃어 넘겼던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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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에서 선정한 시대별 최고의 5인의 수비수 중 한 명에 이름을 올렸다.

[1]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자.[2] 단 밀란의 06-07 시즌 UCL 우승에 카푸의 기여도가 높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별 리그 4경기 출전 후, 토너먼트에서는 단 2경기에 교체 출전해 10분 정도 뛴 게 전부이기 때문.[3] 특히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는 조르지뉴가 전반 20분 즈음에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결국 그때부터 연장전까지 카푸는 결승전을 100분 가량 뛰게 되었다.[4] 이때 카푸는 트로피를 들어올리면서 "레지나 사랑해"라고 외쳤다. 레지나는 카푸의 아내 이름이다.[5] 여담으로 카푸의 어시스트를 통해 넣었던 아드리아누의 골이 브라질의 월드컵 통산 200번째 골이었다.[6] 축구선수의 개인기는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온다.[7] 최고의 스타였던 호나우두와 히바우두가 투톱을 맡았고, 공격형 미드필더는 22세에 불과했던 호나우지뉴가 맡았었다. 이 3R 조합이 풀 가동된 결과는 우승.[8] 호나우두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한 전적은 아쉽게도 없고, 그나마 카푸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월드컵, 코파 아메리카, 챔피언스 리그, 리그 우승을 전부 경험한 선수는 호나우지뉴호베르투 카를루스, 지다, 히바우두, 네 명뿐이다.[9] RB 1위[10] 사실 이벤트 매치에 일일 코치 식으로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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