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 클레베르송

덤프버전 :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New York City FC

파일:1658344168035.jpg

이름
주제 클레베르송 페레이라
José Kléberson Pereira
출생
1979년 6월 19일 (44세)
브라질 파라나 주 우라이
국적
[[브라질|

브라질
display: none; display: 브라질"
행정구
]]

직업
축구선수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 (1999~200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03~2005)
베식타스 (2005~2007)
플라멩구 (2008~2012)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 (2011 / 임대)
EC 바이아 (2012~2013)
필라델피아 유니언 (2013)
인디 일레븐 (2014~2015)
포트 로더데일 스트라이커즈[1] (2016~2017)
기타
필라델피아 유니언 (2017~2022 / 아카데미 코치)
필라델피아 유니언 (2022 / 수석코치)
뉴욕 시티 FC (2022~ / 수석코치)
국가대표
32경기 2골 (브라질 / 2002~2010)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은퇴 이후



1. 개요[편집]


브라질 국적의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

2. 클럽 경력[편집]




2.1. 선수 경력[편집]


파라나주 론드리아의 유소년 아카데미인 PSTC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1998년에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의 유소년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2.1.1.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편집]


1999년, 입단 한지 1년 만에 성인팀으로 승격되었다. 캄페우나투 파라나엔시 (파라나 주 챔피언십)에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3년 연속 우승하는데 기여하였으며 2001년에는 캄페우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에서도 우승했다.

그는 라이트백, 미드필더, 공격수까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며 브라질의 스포츠 잡지인 PLACAR[2]에서 실버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우승한 직후 진행된 2002 캄페우나투 브라질레이루 세리 A에서 팀이 8위에 머무르며 부진하자, 구단은 클레베르송을 1500만 유로에 판매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 금액을 지불하고자 하는 유럽 구단은 없었고,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과 PSTC는 금액에 미치지 못한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

유럽 무대에서 뛰고자 하는 의지가 강력했기에 SC 코린치안스의 제안은 선수가 거부했고, 월드컵에서 친해진 지우베르투 시우바의 조언을 듣고 잉글랜드에 진출하기를 원했다.

리즈 유나이티드뉴캐슬 유나이티드는 계속적으로 영입을 시도했지만 아틀레치쿠가 이를 거절하며 2003년 1월 이적시장이 종료되었다.


2.1.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편집]


2003년 8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적을 제안하게 된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클레베르송과의 통화에서 첼시로 떠난 베론의 대체자가 되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클레베르송은 호나우지뉴 역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것이라 생각했으며, 이 때문에 이적을 결정했다고 훗날 말했다.[3]

2003년 8월 13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영입되며 팀이 영입한 첫 번째 브라질 선수가 되었다. 영입 당시에는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반복되는 부상을 겪으며 프리미어리그 적응에 실패했다. 2005년까지 리그 20경기 출전에 그치며 부진하였고 결국 팀을 떠났다.

2003년 FA 커뮤니티 실드와 03/04 FA 컵에서 우승하였다.


2.1.3. 베식타스[편집]


2005년 베식타스에 영입되었고, 리그 45경기 3골 4도움을 기록하며 교체 자원으로 활약했다. 05/06 터키 컵에서 우승하였다.


2.1.4. 플라멩구[편집]


2007년 플라멩구로 이적하였으나, 베식타스 측이 계약 이행에 문제를 제기하며 FIFA로부터 2008년부터 출전 가능하도록 제한을 받는다. 플라멩구에서는 2008년부터 준수한 활약을 보였으며 2009년 리우 데 자네이루 챔피언십에서 우승한다.

결승전에서는 보타포고를 상대로 멀티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2011년 2월, 플라멩구의 감독 반데를레이 루솀부르구는 클레베르송을 판매 대상으로 분류하였고, 클레베르송은 친정팀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로 임대 복귀한다.

아틀레치쿠에서 18경기 2골을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였고, 2012년 임대가 종료되자 플라멩구의 감독 조엘 산타나는 그를 플라멩구에서 활용하고자 한다. 그는 3월 12일 플루미넨시 FC를 상대로 복귀전을 가졌고, 득점에 성공하며 리우 컵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2.1.5. EC 바이아[편집]


2012년 플라멩구와의 계약이 종료됨에 따라 EC 바이아로 영입되었다. 2019년 18경기 2골 3도움을 기록하였다.


2.1.6. 필라델피아 유니언[편집]


2013년, 프레디 아두와의 트레이드로 필라델피아 유니언으로 임대되었다. 11경기 1골을 기록했다.


2.1.7. 인디 일레븐[편집]


2014년 3월, NASL[4]인디 일레븐에 합류했다. 18경기 8골을 기록하며 분투했다.


2.1.8. 포트 로더데일 스트라이커즈[편집]


2016년 5월, 호나우두가 구단주로 있는 NASL의 포트 로더데일 스트라이커즈로 FA 이적했다.


2.2. 코치 경력[편집]


2017년 필라델피아 유니언의 유스 아카데미 코치로 합류했다. 2022년에는 MLS NEXT PRO의 필라델피아 유니언 ii 팀의 수석 코치 직책을 맡게 되었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2001년 아틀레치쿠에서의 활약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클레베르송은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벨기에와의 16강전에서부터 훌륭한 활약을 하였고, 결국 결승전에서도 선발 출전하게 된다. 전반전에 날린 슛을 올리버 칸이 막지 못했지만, 아쉽게도 골대에 맞고 만다. 결국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을 우승하였고, 클레베르송과 지우베르투 시우바의 미드필드 조합은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다.

2004년에는 페루에서 열린 코파 아메리카에 차출되어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플라멩구로 이적한 뒤, 5년 만에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다. 2009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당시 안데르송의 부상으로 인해 대체 소집되었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에는 둥가감독의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참여하였다.

4. 은퇴 이후[편집]


2017년 미국에서 은퇴한 뒤, 본인이 뛰었던 필라델피아 유니언의 아카데미 코치직을 맡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능력을 인정받았는지 2022년 1군 수석코치를 겸임하게 되면서 1군 관리와 함께 아카데미 선수단의 유소년 리그 참여도 같이 관리하게 되었다.

2022년 7월 21일, 필라델피아를 떠나 뉴욕 시티 FC의 수석코치가 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7 03:16:30에 나무위키 조세 클레베르송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재정 문제로 2017년 해체되었다.[2] ESPN 산하 잡지이다.[3] 2018년 인터뷰에서 호나우지뉴에 대한 이러한 내용을 밝혔다.[4] 북미 2부 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