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보병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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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보병연대
{{{#FFFFFF 第三十二步兵旅團
The 32nd Infantry Regiment
파일:보병연대.jpg
[설명]

창설일
1950년 11월 13일(제32보병연대)
해체일
2019년 12월
상징명칭
독수리부대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2보병사단
규모
연대
역할
동부전선 2사단 예비대
초대 연대장
중령 권동찬(육사 00기)
해체 전 연대장
예) 대령 000(육사 00기)
위치
강원도 양구군





1. 개요
2. 독수리연대 역사공원
3. 출신인물
3.2. 대대장
4. 연대 및 대대가
5. 여담



1. 개요[편집]


파일:창설기.jpg

파일:표창1.png
파일:표창2.png
파일:표창3.png

제32보병연대는 국군 일반명령 제104호에 의거 초대 연대장 중령 권동찬,[1] 부연대장 중령 백기천과 기관요원 장교 44명, 병사 78명으로 1950년 11월 13일 서울특별시 중구 성동공업고등학교에서 창설되었다. 동년 11월 25일 유격 제1, 2대대의 장교 40명, 병사 1,111명을 인수하여 각 대대 기간 요원으로 편성하였고, 서울 보충대에서 신병 495명을 추가 인수하여 연대본부 및 1대대를 완전 편성하였다. 이후 50년 11월 29일엔 서울 보충대로부터 인수받은 병력 1,000명으로 2대대와 3대대를 완전 편성함으로써 독립연대로서의 기본틀을 갖추었다.

연대는 동년 12월 14일 경기도 가평으로 이동하여 가평지구 전투에 참전하였다. 이후 경기도 여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 후 경북 문경으로 이동하여 무장 공비 토벌 작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일대에서 내실 있는 부대 정비와 철저한 교육훈련 후 후방지역 공비 소탕 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후 734고지 전투(최초 한·미 대통령 동시 부대표창 수상)를 시작으로 금성지구 전투, 1952년엔 저격능선 전투 등 각종 전투에 참가해 중부전선의 전략적 요충지 확보에 크게 기여하였다.

1953년 5월엔 강원도 철원의 화살머리고지 전투 2차전에서 고지 사수에 성공하였다. 휴전 이후 부대는 포천·화천·인제로 주둔지를 이동하며, 중부전선의 전략적 예비대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최종적으로 1964년 3월 3일 현재 위치인 강원도 양구군 남면 구암리에 주둔하게 되었다. 양구 주둔 이후에도 울진·삼척·백암지구(대통령 부대표창)·대암산·강릉 대침투작전에도 참가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수차례의 Team-Sprit 훈련과 한·미 연합훈련 및 KCTC 전문대항군 임무도 수행하며 강인하고 수준 높은 연대의 모습을 만천하에 과시하였고, 국가급 행사에도 수차례 참가하였으며 특히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 패럴림픽' 대회의 운영을 지원하여 행사의 성공적인 개최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실전과 같은 강도 높은 훈련과 전문적 과학화 전투사격 등을 실시해 교육훈련 최우수 부대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방개혁 2.0에 의거, 2019년 12월 31일부로 해체 수순을 밟았으며, 신막사 같은 곳은 기갑대대 등이 들어섰다. 다만 양구군 주민들은 2사단 해체도 서러운데, 전차 및 포 소음 왠말이냐며 항의를 이어갔다.

2. 독수리연대 역사공원[편집]


하지만 해체와 함께 69년동안 쌓아온 유구한 역사까지 잊혀지길 원치 않았던 부대원들과 전역자들은 해체 시기에 맞춰 독수리연대 역사공원을 독수리교회 우측 부지에 건립했는데,# 자세한 위치는 강원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구암리233-2번지 도로명주소는 강원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구암리길76 이다.
파일:독수리역사관좌표.jpg
위와 같이 TMAP에서 독수리역사관을 찾으면 독수리교회가 나온다 방문 예정이 있는 이들은 참고바람
주소참조▶#

구성은 컨테이너 두개 크기의 역사관과 독수리 동상, 한반도상으로 조촐하게 되어있다. 역사관 내부에는 연대의 창설부터 해체까지의 모습이 연대기 순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역대 지휘관들과 부대의 상징물, 연대전우회, 주요 전투 유품 등을 전시하여 연대의 발자취를 보존토록 하였다. 또한 입구에는 연대의 위병소 앞에 있었던 독수리상을 본따 독수리상을 세웠으며, 한반도상 역시 북위38도. 동경128도의 한반도 정중앙을 수호하고 있는 연대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독수리역사관 참고사진

파일:독수리역사공원 전체 전경.jpg
독수리 역사공원 전체 전경

파일:산악군단 및 독수리 조형물.jpg
산악 군단 및 독수리 조형물

파일:독수리 역사관 외부전경.jpg
독수리 역사관 외부전경

파일:양구연대표시.jpg
한반도 조형물, 연대위치 표시

파일:지역구민 쉼터정자.jpg
지역주민 쉼터정자

파일:전투유물1.jpg
전투유물.1

파일:전투유물2.jpg
전투유물.2

파일:부대표창.jpg
부대 표창

파일:역사관 내부전경.jpg
역사관 내부 전경

파일:독수리역사.jpg
독수리 예찬


3. 출신인물[편집]



3.1. 연대장[편집]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연대장.

역대 제32보병연대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000
예) 대령
육사 00기
연대장

00대
권동찬
예) 준장
육사 2기
연대장
[2]
00대
강홍모
예) 대령
육사 4기
연대장
[3]
00대
조한규
예) 소장
육사 42기
제30기계화보병사단

00대
강병주
예) 소장
육사 37기
前 前 합동참모본부전력기획부장

00대
김규하(육사39기)
예) 소장
육사 39기
육군인사사령관



3.2. 대대장[편집]


1대대장 중령(명문대대)
소영민
예) 중장
학사 11기
육군특수전사령관

1대대장 중령(명문대대)
손식
대장
육사 47기
지상작전사령관
2대대장 중령(금성대대)
박양동
예) 중장
학군 26기
육군군수사령관

3대대장 중령(철혈대대)
이근표
예) 준장
육사 44기
특수전학교장


4. 연대 및 대대가[편집]


32연대가
'''사명산 우뚝 솟은 중동부 전선에
천지를 진동하는 애국의 건아
조국의 통일과 자유수호 위하여
싸우려고 일어선 보병 32연대'''

'''스키대대가
초전필승 일당 백 스키대대 3대대
태백산 정기뻗은 봉화산 기슭에
배달의 아들 뭉친 우리 3대대
타오르는 횃불 같이 젊은 피가 약동하고
젊음이 충천되어 용솟음 칠 때
노도처럼 독수리 같이 산악을 누비며
잡은 총 백발백중
초전필승 문제없다
오늘은 승리의 훈련을 쌓고
내일은 적진속에 힘차게 뛰자
아아 우리는 스키대대 3대대
조국위해 목숨 바친 스키대대 3대대'''

5. 여담[편집]



5.1. 독수리 유격대 사건[편집]


한국전 당시 32연대 3대대와 17연대 1대대간 알력으로 벌어진 비극. 항목 참고.

5.2.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대항군 역할 (2001~2003년)[편집]


2001~03년까지 3대대 및 소수의 2사단 직할대와 포병들이 중대급 KCTC 대항군 부대 역할을 수행하였다.[4] 물론 대대 전체가 간 건 아니고 5개 중대 중 전투중대 2개 + 본부중대 일부가 일정 주기로 KCTC 훈련장에 나가 있고, 대대에 잔류한 나머지 절반의 인원들은 경계근무불침번, 행정업무도 절반의 병력으로 수행하여야 했다. 물론 이는 대항군 훈련장에 나가있는 인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신 KCTC 자체가 훈련인 만큼 통상적으로 수행하던 연간 훈련에서는 모두 제외되었으나(유격은 제외되었으나 혹한기는 뛰었다.) 대대 인원이 반토막 난 만큼 대대원들은 말이 안나오게 힘든 생활을 해야 했다. 게다가 투입 전 전문 대항군의 자세를 갖추기 위해 대항군 훈련은 물론, 훈련이 없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대항군들은 삽과 곡괭이, 톱 등을 들고 작업해야 했으나 상술했듯 절반의 인원으로 이를 소화해야 했으니 그 고초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KCTC 훈련장에 나가있던 장병들은 딱히 좋았냐 하면 그것도 아닌게, 일단 숲 속 한복판에 조성된 숙영지는 각 소대원들이 부대끼는 24인용 텐트(및 부속 텐트)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급조된 화장실과 천장이 뚫린 샤워장에서 볼 일을 해결했다. 심지어 설거지도 개울가에서 해결해 전반적으로 마치 월남전에서나 볼 법한 원시적인 생활을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히 대대장, 주임원사가 숙영지까지 잘 드나들지 않았고, 간부들의 터치도 적어 옷차림, 이동군기 등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게다가 훈련, 교육, 작업 모두 없는 날은 자유시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우기엔 물골(배수로)작업하고, 맑은 날은 총기손질이나 마일즈 영점 맞추고는 했다. 게다가 먼저 훈련나간 옆 중대가 거지꼴로 돌아오면 동정심과 더불어 다음은 우리 차례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그래도 3대대 대항군의 전투력은 현재의 KCTC 전갈부대의 전투 능력만큼 타부대를 압도했는데, 이는 훈련을 하러 오는 부대에 비해 대항군이 지형적으로나 훈련 횟수로나, 경험으로나 당연히 앞설 수밖에 없기 때문. 그래서 2003년 대항군 대대에서 일반 대대로 환원되기까지의 2년간 전적은 무패(648전 648승)라고 한다.

심지어 포병까지 전군 최초로 KCTC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여간 덕분에 여기 참여한 장병 대다수는 마일즈 장비는 중대급이든, 소대급이든 아주 질리도록 도가 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이 시절엔 똥군기조차 거의 없었다. 실제로 훈련이 많고 고되면 대충 씻고 빨리 자야 다음날 버틸 수 있기에 (아주 중대한 게 아닌 한) 갈굴 여력도 없다. 요약하면 "피곤하니 빨리 정리하고 자자". 심지어 병장 진급해도 딱히 좋지만은 않았는데, 이는 계급이 오를수록 책임과 할 일도 많아지기에 더 힘들어지고 골아파지는 그런 분위기였다. 예를 들어 오늘 중대전술 갔다오면 야밤에 전반야/후반야 투입되고 내일 오전 과업이 주특기이고 오후는 진지 보수이고, 그 담날은 사격... 이런 식.

이후 전문대항군연대가 창설되자 일부가 남아 해당 부대의 모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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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검 - 조국통일의 염원이 담긴 부대의 빛나는 기상.
방패 -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수호하는 독수리 용사의 애국 충정.
마름모 - 독수리 부대원의 강인함과 변하지 않는 충성심.
[1] 한국전 초반엔 1사단에 있다가 1950년 11월, 2사단 32연대장으로 부임했다. 그 후 51년 1월 벌어진 가평 전투에서 3대대 CP에서 진두지휘하다 중공군이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망을 굳히자 포로가 되어 치욕받을 바에야 자결하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이후 52년 6월 16일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2] 가평에서 중공군 124사단과 교전 중 자결. 사후 준장 추서.[3]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창룡 암살사건에 연루되었다.[4] 즉, 현재 수행하고 있는 KCTC 전갈부대의 원조격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