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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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제2대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인요한
印曜翰 | Ihn Yohan


파일:인요한1.jpg

영문명
John Alderman Linton
존 올더먼 린튼
출생
1959년 12월 8일 (64세)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1가 예수병원[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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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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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복수국적)[2]
현직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가정의학교실 교수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재단법인 천리포수목원 이사장
한국국제협력단 자문위원
김포시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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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순천 인씨[1]
부모
부친 휴 린튼(인휴)(1926~1984)
모친 로이스 린튼(인애자)(1927~2023)
형제자매
형 4명, 누나 1명
배우자
차혜진[2]
자녀
슬하 1남 3녀[3]
친척
진외증조부 유진 벨
친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인돈)
친할머니 샬롯 벨(1899년생)
조카 데이비드 린튼(인대위)[4]
학력
대전외국인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의학 / 석사)[5]
고려대학교 대학원 (의학 / 박사)[6]
신체
193cm
소속 정당

종교
개신교 (장로회)[7]
경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가정의학과 조교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가정의학과 부교수
박근혜 후보캠프 국민대통합위원장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민대통합위원장
새누리당 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
제4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 총재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1. 개요
2. 생애
3. 가족사
4. 정치 성향
5. 국민의힘 혁신위원장
6. 논란 및 사건 사고
6.1. 방송 태도 논란
6.2. 이준석의 인요한에 대한 인종차별성 영어 사용 논란
6.3. BTS 군면제 발언 논란
6.4. "준석이가 도덕 없는 건 부모 잘못" 패드립 논란
6.5. 공관위원장 셀프추천 논란
7. 호남 사랑, 순천 사랑
8. 여담
9. 소속 정당



1. 개요[편집]


재한 미국인 출신 대한민국의료인정치인.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세브란스병원 가정의학교실 교수 겸 국제진료센터 소장이다.

영어명은 존 린튼(John Linton)이며 한국어명인 인요한에서 성씨 인은 자신의 영어 성씨 린튼에서 린을 두음법칙을 적용해 인으로 한 것이다. 이라는 영어 이름은 요한에서 유래한 것이며 한국어 성경에는 요한으로 부르기 때문에 그대로 붙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2012년 귀화하면서 얻은 성씨와 본관은 순천 인씨[3]이다.

한국 최초의 재한 미국인 출신의 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959년 12월 8일, 전라북도 전주시 중화산동1가(現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1가) 예수병원에서 미국인 아버지 휴 린튼과 어머니 로이스 린튼 사이에서 5남 1녀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전라남도 순천시로 이사하여 유년 시절을 보냈고, 이후 대전광역시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4년간 가정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4]

부모가 모두 미국인이라서 원래는 단독 미국 국적이었지만[5] 한국형 구급차 앰뷸런스 개발 등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특별귀화하여 한국 국적과 미국 국적을 모두 가진 복수국적자가 되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당선 이후 대통령인수위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았고, 2015년에는 한국보건재단 4대 총재를 역임하였다. 이후 2023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6]


3. 가족사[편집]


인요한의 진외증조부 유진 벨은 스코틀랜드계 미국인이며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로 1895년 4월 8일 한국에 파송되어 광주·목포 지역에서 활동하며 학교와 병원을 설립한다. 그의 딸 샬롯 벨[7]은 인요한의 친할아버지 윌리엄 린튼[8]과 결혼한다. 윌리엄 린튼은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났으며 22세 때인 1912년 한국에 와서 48년간 전주군산 일대에서 선교와 교육, 의료봉사를 해왔다. 백범 김구 선생의 주치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고 3.1 운동 당시에는 기미독립선언서 작성 참여와 운동의 지원, 해외에 홍보를 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이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였다는 이유로 고초를 겪은 적 있는데, 그 공로가 인정되어 2010년에 3.1 운동 91주년 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국가보훈처 보도자료


1998년 2월 8일 KBS <일요스페셜>에서 방영된 '한국과의 기막힌 인연 - 린튼네 사람들'.

아버지 휴 린튼[9]은 윌리엄 린튼의 3남이다. 할아버지의 선교활동 영향으로 전라북도 군산에서 출생하였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태평양 전역에서 포로로 잡힌 한국인 노무자들을 돌보기도 했다. 이후 신학대학을 다니던 중 한국전쟁 소식을 듣고 해군장교로 복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였다. 이후 자신의 아버지인 윌리엄 린튼의 한국 선교활동을 이어받았다. 어머니 로이스 린튼[10]은 미국 플로리다 출생의 미국인이며 신학대를 졸업하고 결혼을 통하여 남편을 따라 한국으로 이주했고 현재도 한국에 거주 중이다.

둘째형 스티브 린튼[11]북한 어린이에게 의약품을 보내는 유진 벨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80회 이상 방북했으며 김일성과도 두 차례 만났다.

4대째인 인요한 자신은 2012년에 한국사회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하였다.

인요한의 형 스티브 린튼(인세반), 5대째인 조카 데이비드 조나단 린튼(인대위), 조카 레이첼 조이 린튼도 독립유공자의 자손에게 부여하는 대한민국 국적을 수여받고 복수국적을 허용받았다. 기사에 인요한의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의 독립운동 기여 공로가 소개되어 있다. 뉴스영상

연세대 의대 동창 인연으로 만난 치과의사 출신의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1남 2녀를[12] 두었으나 이혼했고, 이후 '남장로교 역사'를 주제로 인터뷰를 하러 왔던 한국인 여성과 인연이 되어 재혼했고 1녀를 두고 있다.[13] # 여담으로 그녀는 2007년 큰 논란이 되었던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의 피랍자 중 한 명이다.[14]

2021년 4월 유 퀴즈 온 더 블럭[15]에 인요한의 조카 데이비드 조나단 린튼(한국명 인대위)이 출연했다. 직업은 변호사로 인요한의 첫째 형(데이비드 역크 린튼)의 아들이다.


4. 정치 성향[편집]


한국 호남 출신에선 드문 보수주의자로 특히 순천에 영향력을 가진 보수성향 인물들에선 이정현[16], 천하람[17]과 같이 현재는 국민의힘 소속이다.[18] 인물중심주의를 지향하며 이 때문에 자신도 가끔 좌파인지 우파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고 인터뷰한 적도 있다.

호남이 고향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호남의 정서와 비슷한 부분도 있다. 후술되어있듯 고향인 호남에 대한 애착을 보이며, 5·18 광주항쟁 당시 전남도청에서 현장을 목격했다. 뉴스위크 등 외신과의 기자회견에서 시민군 통역관을 담당했던 경험도 있다. 방송이나 언론 인터뷰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생전 그와 인연이 있었으며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했다.[19]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도 노무현을 지지하였으며 참여정부에서 대북 정책 자문을 맡기도 했다. #

그러나 북핵 문제와 대북정책과 관련해 민주당과 정치적인 이견 차이를 띄면서 보수 노선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5일 뒤인 2003년 3월 2일, 대북 자문 목적으로 노무현 대통령과 독대를 한 적이 있는데 인 박사는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경한 견해를 내세웠지만, 노 대통령은 '우리가 잘하면 그들도 좀 바뀔 것이다'라며 낙관하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계 정당과 정책적인 차이를 느꼈다고 밝힌 적이 있다.

본인이 북한 정권이어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핵 포기 의사를 낮게 보기 때문인지 대북 온건책도 썩 좋게 보지 않는다. 그러나 제재와 고립을 통한 이른바 북한 붕괴론도 생각이 짧은 것 같다고 비판하는 등 자기만의 노선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도적 차원의 대북 의료지원은 보수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꾸준히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북한 어린이들이 병을 앓지 않고 살기 위해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장선상인지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를 지지했다.#[20] 그래서인지 박정희 전 대통령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엔 박근혜 정부가 자기 기준 자꾸 우경화해서인지 친박계와도 멀어져 일종의 비박계가 되었고,[21]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으나 탄핵에는 찬성하였고 강성 보수라기보다는 중도 보수라고 볼 수 있다. 이후 대화의 희열에 출연해 말한 바에 따르면, 자신이 박근혜 정권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새누리당에 들어갔지만 착오였다고 밝혔다. 인요한은 결핵 문제 해결을 위하여 의사 자격으로 방북한 경험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잘 살폈고 이를 보수정당이 북한을 제대로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를 추진해보았으나 오히려 당내에서 좌파로 몰리며 힐난을 받았다고 한다.


5. 국민의힘 혁신위원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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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3일 출범한 국민의힘의 당내기구 에 대한 내용은 인요한 혁신위원회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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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6.1. 방송 태도 논란[편집]



인 위원장은 3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사회자와 인터뷰를 하던 중 “윤핵관은 무슨 핵무기란 말인가 뭔가”라며 “나쁜 말이다. 점잖은 표현을 쓰라”고 말했다. 이후 사회자가 질문 과정에서 한 차례 윤핵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 인 위원장은 “윤핵관이라는 말 그만 쓰라니까. 다시 교정해서 얘기해”라고 지적했다.

방송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인 위원장의 태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인 위원장이 사회자에게 반말로 발언 시정을 요구한 데다, 시정 이후 “그렇지”라고 말하는 등 훈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전반적으로는 높임말을 썼으며, 사회자인 김태현 변호사를 '동생'이라고 부르는 등 중간중간 친근하게 대하면서 나온 말투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일부 누리꾼은 “방송 출연자는 시청자를 대상으로 말을 하는 것인데 이런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6.2. 이준석의 인요한에 대한 인종차별성 영어 사용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준석/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3. BTS 군면제 발언 논란[편집]


“방탄소년단(BTS)은 군대를 면제해 줘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JTBC 유튜브 라이브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남은 혁신 방향에 대해 "통합, 희생, 그다음에는 민생"이라고 설명하며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BTS를 봐라, BTS를 왜 군대를 보내냐"며 "(스포츠 경기에서) 메달 달았다고 하면 군대 안 가잖아요. 오늘 내가 발언 하나는 하겠는데 BTS 군대를 면제해 달라"고 말했다.

"BTS가 이미 군대에 갔다"는 진행자의 지적에는 "아니 그러니까 나온(남은) 사람도 얼른"이라고 답했다.#

논란을 빚은 후 인 위원장은 “예민한 문제인데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하였으며,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이제는 병력 특례를 줘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병역만큼은 절대 뛰어남이 보상이 되어서는 안 되고 모든 국민이 그 어려운 임무를 다 공동으로 질 수 있는 공정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6.4. "준석이가 도덕 없는 건 부모 잘못" 패드립 논란[편집]




이 문서는 나무위키의 이 토론에서 문단명을 "준석이가 도덕 없는 건 부모 잘못" 패드립 논란으로 하고 문단을 존치하기(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타 위키에서의 합의내용이 더위키에서 강제되지는 않지만 문서를 편집하실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용퇴론 갈등에 '패드립' 논란까지…설상가상 혁신위

2023년 11월 26일 국민의힘 청년 및 당원 혁신 트레이닝 행사에서 한국의 장점으로 부모로부터 여러 가지 가정교육을 받으면서 도덕성을 배운다는 얘기를 하던 중 이준석 전 대표를 '준석이'라고 칭하면서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 그것은 준석이 잘못이 아니라 부모 잘못이 큰 것 같다"고 말한 것이 알려져 논란이 되었다. 그러면서 "준석이가 버르장머리 없지만 그래도 가서 끌어안는 통합이 필요하다"고도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 #2

이에 이준석 전 대표는 바로 "정치 12년 동안 하면서 부모 끌어들여서 남 욕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나이 사십 먹어서 당 대표를 지냈던 정치인한테 '준석이'라고 당 행사에 가서 지칭하는 것 자체가 어디서 배워먹은 건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잘해보고 싶다' 이야기하면서 어머니, 아버지를 얘기하는가"라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

11월 27일, 논란이 급속도로 커지자 인요한 위원장은 혁신위 공지를 통해 "이준석 전 대표와 그 부모님께 과한 표현을 하게 된 것 같다"며 "이 전 대표와 그 부모님께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한다"고 잘못을 인정하였다. # 당일 인사차 방문하기로 예정됐던 한국노총 일정도 직전에 전격 취소했다. #

이 전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인 위원장이 "애가 잘못되면 이제 어른이 지적을 받는데 그런 의미에서 그냥 한마디 한 게 부모님한테 화살이 가서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해서 사과한다"고 말한 뉴스 방송화면을 캡처해 올리면서, "무슨 말인지 솔직히 해석이 어려워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혁신위원장으로서 하여간 수고하셨다"라고 답했다. #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 최고위원은 "인요한 위원장은 사과했는데, 이준석은 그동안 본인이 일으킨 일련의 논란들에 대해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다"고 하였다. #


6.5. 공관위원장 셀프추천 논란[편집]


'공천권 달라'는 인요한의 욕심... 길 잃은 국민의힘 혁신
김기현 "공관위원장 자리 논란 적절치 않다"…인요한 요구 거절

2023년 11월 30일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혁신위 회의 직후 입장문 발표 중 "혁신위에 전권을 주신다고 공언하셨던 (김 대표의) 말씀이 허언이 아니라면 저를 공관위원장으로 추천해주길 바란다"라고 말한 것이 혁신위원장의 공관위원장 셀프추천이 아니냐며 논란이 되었다.

인요한 위원장은 당의 답변을 월요일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였으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해당 발언으로부터 3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국회 상황이 매우 엄중한데 공관위원장 자리를 가지고 논란을 벌이는 것이 적절치 않다", "그간 혁신위 활동이 인요한 위원장이 공관위원장이 되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활동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불쾌함을 표출하며 제안을 거절했다.

이준석 前 국민의힘 대표는 "외부에 있던 분들이 정치에 들어오면 물러가야 할 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발언이 세지는 경우가 있다"라며 물러갈 때가 되었으니 흥분을 가라앉히고 혁신위 활동을 끝내라는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혁신위는 차기 총선 승리를 위한 당의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는 곳이지 의원들의 정치적 생명을 쥐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옥상옥이 아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인요한의 발언이 월권행위인 점을 강조하며 비판했다.

김근식 국민의힘 송파구 병 당협위원장은 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에서 해당 발언에 대해 "최고위에 대한 압박이라 생각한다. 자리욕심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공관위원장 단어 자체가 아닌 발언 전체의 취지를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재성 前 정무수석비서관은 인요한이 귀화 1호가 귀가 1호가 될 것이라는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고 말하며 애초에 혁신위는 성공하기 어려웠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7. 호남 사랑, 순천 사랑[편집]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 # 이라는 책을 쓸 정도로 자신의 고향인 전라도에 관한 애정이 깊은 인물이다.[22] 그 중에서도 순천시에 대한 애정이 큰 편인데, 태어난 곳은 전라북도 전주시이지만 어렸을 때 성장한 전라남도 순천시를 자신의 고향이자 뿌리로 삼고 있는 듯하다. 방송에 출연하면 "순천이 우주의 중심입니다."라는 말을 할 만큼 순천에 대한 애향심을 많이 보이고 있다. 그래서 2016년 6월 16일에는 고향 순천시의 순천만국가정원 명예 홍보대사 1호로 위촉되었다.기사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국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어학당 생활을 했을 때 한국어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매우 찐한 순천 사투리가 입에 붙어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한 인요한의 순천 친구들이 회상하는 내용에 따르면, 의사가 되고 나서 한턱 쏘기 위해 친구들을 서울로 초대했는데 덩치 큰 외국인이 찐득한 전라도 사투리로 "아따야~ 오랜만이다잉~"하며 친구들을 반겨 이목이 집중되었다고 한 에피소드부터, 첫 월급으로 부모님 장지갑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들어갔는데 친구들 앞에서 대뜸 "깎아주쇼!" 하는 패기를 보여줬다고 한다. 의사가 되고 나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고향 말보다는 표준어를 쓰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받아들여 공식석상에서는 되도록 표준어 억양을 구사하려고 하지만 편하게 말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고향말과 고향의 억양이 튀어나온다.

TV는 사랑을 싣고집사부일체 인요한 편에서 본인이 밝히기로 어렸을 때는 거의 본명처럼 불린 별칭이 인쨘이였다고 한다. 심지어 학교 상장에도 당시 인쨘이 라고 적힌 것으로 인증. 영어 본명 존 린튼에서 성씨는 할아버지 대부터 린튼씨에서 린을 따와 두음법칙으로 인이라 삼았고, 존이라는 이름은 당시의 외국 발음에 찐한 순천 사투리가 합쳐져서 쨘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인씨네 쨘이 인쨘이라는 뭔가 미국 스타일이면서 찐한 시골풍 이름이였다고 한다.[23][24]

순천에서 일반 한국 유치원과 한국 초등학교를 다녔다. 다만 당시 인요한의 형들이 한국 학교를 다녔던 바람에 영어를 잘 못하고 한국말을 더 잘했던 경험이 있는 탓에 부모님이 막내 아들 인요한만큼은 영어 교육을 잘 시켜야겠다는 중요성을 느끼셨다고 한다. 그래서 중간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 통신제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홈스쿨링을 통해 이수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는 형들을 따라 대전 외국인학교에 진학했지만 미국적인 분위기와 문화 차이 때문에 적응을 못해서 힘들었다고 하였다.

호남의 굴곡진 현대사와 인생을 같이 했다. 대학 재학 중 5.18 민주화운동의 소문을 듣고 광주에 몰래 들어가 당시 참혹했던 현장을 두눈으로 똑똑히 지켜봤고, 시민군의 영어 통역을 맡기도 했다.2006년 프레시안 기사2013년 동아일보 기사 이것이 훗날 전두환 정권에 찍혀서 데모 주동죄로 추방을 당할 뻔했다. 심지어 당시에 냉전 구도 속에서 대한민국 정치적 안정을 바라던 미 대사관 측은 전두환 군부에게 항의편지가 왔다고 하면서 '네가 폭동의 주동자야!'라는 비하를 듣기도 했다고. 당시 외신기자의 영어 통역을 맡은 것을 두고 '당신이 한 일은 통역이 아니라 데모 주동이다. 당신의 조상들이 한국에서 좋은 일을 하여 처벌은 하지 않겠으니 대한민국을 떠나라'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때 국외추방, 폭동의 주동자로 구속, 경찰에게 감시당하는 조건으로 고향에서 근신하기의 선택지가 있었는데 당시 인요한은 고향 순천 시골을 떠나고 싶지 않아서 고향에서 근신하기를 택했다. 집사부일체에서 푼 회고에 따르면 순천에 남기 위해 군사훈련까지 자처해서 받았을 정도였으니 인요한의 고향 사랑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문무대 훈련을 받고 대한육군협회에서 상을 받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전라도를 배신한 것 같다는 느낌에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훗날 보안사 요원이 인요한을 사찰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사찰 정도가 아니라 국가의 요주의 인물로 이름이 올라있었다는 사실, 당시 정보부에서 다시는 못들어오게 일가족 모두를 추방시킬 이야기까지 들었다고.

미국에서 넘어온 할아버지는 3.1 운동을 지원하고 해외에 알린 독립운동 기여자로, 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유엔군 참전용사로, 손자인 인요한은 5.18 민주화 운동의 진실[25]을 알리는데 참여하며 3대가 나란히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참여하고 기여한 역사를 가졌다.

이렇게 전라도와는 인연이 깊었던만큼, 전라도의 정당 지지 성향과는 성향이 정반대인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을 맡게 되었을 때는 상당히 의외라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 하지만 그의 과거 행적과 배경을 생각해 본다면 전혀 이상한 선택도 아니라는 평가도 많다. 애초에 보수 성향 자체는 10년도 더 전부터 드러내오고 있었다. 다만 주요 직업이 정치인이 아니라 일반인들은 잘 몰랐을 뿐이다. 또한 그의 고향인 순천 지역은 호남 중에서는 민주당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편으로, 새누리당 소속의 보수 후보인 이정현 의원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당선시켜준 곳이다.[26] 실제로 이정현 전 대표와 인요한 교수는 같은 순천 사람으로서 친분이 있다. 정확히는 이정현은 고향은 곡성군 목사동면이나 순천주암중학교를 졸업해 순천에서 유년기를 보냈고 19~20대 국회의원 임기를 순천에서 보내 순천인의 정체성도 가지고 있는 것이라서 넓은 의미에서 스스로를 곡성, 순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8. 여담[편집]


  • 한국형 앰뷸런스를 처음 개발한 인물이다. 아버지가 순천에서 교회 자재를 싣고 오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큰 병원이 있는 광주광역시로 택시를 타고 가다가 택시 안에서 사망했다. 당시에도 앰뷸런스는 있었지만 인요한 자신의 표현으로는 그냥 누워서 가는 택시 기능밖에 못하는 열악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후 아버지의 지인들이 보내준 돈으로 아시아 토픽을 개조해 병원으로 이송하는 시간 동안 응급처치와 의료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 앰뷸런스를 순천소방서에 기증하고 구급차 요원을 전문으로 양성하는 훈련을 전국에 정착시켰다. 이후에 개량을 거듭하며 전국에 보급하였다. 대화의 희열에서 요즘 앰뷸런스는 길이가 짧아 구급활동에 적합하지 않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들이 각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27]

  • 과거부터 귀화 제의를 꾸준히 받아왔으나 귀화를 미뤄온 이유는 이중국적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1980년대 5.18 민주화운동와 관련된 문제로 중앙정보부에 사찰당했던 기억 때문에 미국 시민권을 보유함으로써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남겨두려고 했을 가능성이 높다.[28]

  •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런저런 인연이 있다. 1994년에는 독대한 적도 있다. 그 자리에서 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복하지 않으냐고 따지자 김 전 대통령이 '보복이 도움이 되느냐.'며 자신을 타일렀다고 한다. 그리고 1996년에 김 전 대통령이 배탈이 나서[29] 탈수 증상이 왔을 때 자택에 찾아가 직접 진료한 적도 있다. 이러한 인연 덕에 김 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되었다. 회고하기를 당시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취임식에 원수나 다름없는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초대한 것을 보고 자신의 정치 성향을 떠나서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 2019년, 채널A '길길이 산다' 5회와 CBS '어른성경학교' 49회에 출연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 2018년, KBS 대화의 희열에 출연했다. 명백한 서양인 아저씨의 외모에선 상상하기 힘든 걸쭉하고 구수한 순천 사투리의 진수와 어렸을 때 이야기에서 비범한 스토리텔링을 느낄 수 있다.

  • 인요한의 친구들이 방송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회상에 따르면, 어렸을 때는 빼빼 마른 인상이였는데 자라면서 키가 190cm가 넘고 풍채가 상당한 거구가 되었다고 한다.

  • 한국어를 비롯해 7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

  • 자신의 조부가 3.1운동, 자신의 부친이 6.25 전쟁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자신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도청에서 시민과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통역을 했다고 한다. 그의 조상은 119년간 4대에 걸쳐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그의 진외조부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 선교사는 1895년 미국에서 조선에 온 후 전라도 등 남부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했다. 인요한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튼은 유진벨 선교사의 사위이다. 린튼 가문과 벨 가문의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한남대학교를 비롯한 다수의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을 세우고 결핵환자, 한센병 환자 등 아프고 어려운 이들을 품었다.

  • 특별귀화 1호 한국인으로 2012년 3월 21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특별귀화는 한국 정부가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국적이다.

  • SBS 예능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편에 의하면 순천기독진료소에 가끔씩 내려와 지역주민들에게 진료를 해준다고 한다. 순천의료원에서 매산중 방향으로 살짝 들어가면 있는 곳이다. 참고로 이 순천기독 진료소는 할아버지인 인돈(윌리엄 린튼) 선교사가 세웠고, 현재 2층과 3층은 순천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 한국에서 태어나고 오래 살았다 보니 당연히 완벽에 가까운 한국어를 구사한다. 타일러, 일리야, 다니엘 린데만 등이 인요한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이들은 성인이 된 이후에 한국으로 유학왔으며 후천적인 공부와 노력을 통해 학술적으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쪽이므로, 약간 경우가 다르다.[30] 전남 순천 태생인 만큼 외국인이라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구수한 서남 방언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한국적 정서가 곁들여진 오래된 관용어구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기도 한다. 다만 외국인 기준에서는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되 토종 한국인과 비교했을때는 여전히 어눌한 말투가 남아있고 단어를 헷갈리는 모습도 보이는데, 이는 청소년기에 한국의 정규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31] [32]

  • 한국어뿐만 아니라 당연히 영어 역시 원어민급으로 구사한다. 본인은 방송에 나와 하일처럼 영어를 잘 못한다고 너스레를 떨며 예능용 드립을 치기도 했지만, 아무리 고향과 주거지가 한국이라도 부모님과 형제들이 모두 영어를 쓰는 상황에서 영어를 접하지 않기는 어렵다.[33] 실제로 저서에 따르면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초등학생 때부터 미국인 가정교사에게 홈스쿨링을 받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외국인학교를 다녔으며,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한 이후 전문의 과정 또한 미국 의대 에서 마쳤기 때문에 '영어를 잘 못한다는' 방송에서의 그의 말은 정말 농담에 가까운 드립으로 봐야할 것이다. 광주 MBC 인터뷰 영상에서 세브란스병원 국제 진료소를 방문한 외국인 환자들과 유창한 영어로 소통하며 진료하는 모습이 나왔고 아리랑TV에서 유창한 영어로 인터뷰하는 영상이 있다. 대화의 희열에서도 자신들의 큰 형들은 영어를 거의 못한다고 예능용 드립을 치기도 했지만, 사실은 형제들도 당연히 네이티브 영어를 구사한다.


  • 한국미국 운전면허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 프로게이머 임요환과 이름이 비슷해서 발음할 때 혼동되곤 한다.


  • 아덴만 여명 작전 이후 석해균 선장을 오만에서 한국으로 이송할 때 이국종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 에어 앰뷸런스를 섭외할 수 있도록 돕고[34] 이후에도 급유나 한국 내 이송 등을 도왔다고 한다. 참고로 이국종 교수는 인요한 교수의 제자였던 적이 있기도 하다. 지금도 이국종 교수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 로버트 할리가 필로폰 투약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하고 희귀암에 걸렸을 때 치료해준 의사 중 한 명이다. 로버트 할리가 힘들 때 많은 도움이 되어줬다고 한다.


  • 한국유엔봉사단(총재 정형근[35])의 고문 및 자문위원단으로 있다.

  • 2019년에 빙그레 닥터캡슐 CF 모델로 출연한 바 있다. 2023년 인요한이 정치 활동을 시작한 후에도 아직도 일부 패키지에는 인요한의 얼굴이 인쇄되어 나오기도 해서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소소한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 2023년 11월 5일 KBS 9시 뉴스 에도 출연해 앵커와 인터뷰를 가기지도 했다.



9.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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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 현재
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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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주 출생이지만 유년 시절을 순천에서 보냈기 때문에 순천을 고향으로 여긴다.[2] 인요한은 국내형 구급차를 개발했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이후 개정된 국적법 제7조 제1항 제2호(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자)에 의해 특별귀화허가를 받고 2012년 3월 21일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함으로써 기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한국미국복수국적이 되었다. 다만 정계진출로 미래에 한국과 타 국가와 이해관계 충돌이 일어날 수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 대한민국 국회의원, 외교관 등으로 임용될 경우 무조건 미국 국적을 포기해야 한다.[3] 2012년 3월 21일 대한민국 성씨 본관으로 등록되었다. 즉, 등록당시의 시조는 인요한 박사이다(한국의 첫 특수귀화인). 하지만 이전 자신의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인돈)과 아버지 휴 린튼(인휴)를 가문의 시조 및 중시조로 삼고 있다. 유진 벨의 딸은 샬롯 벨이며 한국명은 인사례이다. 윌리엄 린튼이 세운 한남대학교에도 그를 기려 인사례 수양관이라는 건물이 있다. 샬롯 벨이 7대 교장으로 근무한 전주 기전여고에도 '인사례'로 표기되어 있다. 인애자는 미국인이며, 윌리엄 린튼의 아들 휴 린튼의 아내 '로이스 엘리자베스(베티) 플라워스 린튼'의 한국어명이다.[4] 저서에서 밝혔다. 미국에서 4년 살고 난 뒤 은근히 미국이 마음에 들어서 아예 이민을 생각했었지만 순천이 그리워져서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5] 대한민국 국적법은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부모가 모두 외국인이면 한국 국적을 받을 수 없다.[6] 2023년 10월 23일 내정되었다.# 총선 출마자윤석열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올랐던 인물이였으나 혁신위원장이 된 건 예상 밖이라는 의견이 많다.[7] Charlotte Witherspoon Bell Linton. 한국명 인사례. 전라남도 목포 출생이다.[8] William Alderman Linton. 한국명 인돈(印敦). 한남대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하다.[9] Hugh MacIntyre Linton. 한국명 인휴(印休).[10] Lois Elizabeth (Betty) Flowers Linton. 한국명 인애자(印愛子). 대화의 희열에서 인요한의 어머니 인애자는 백인과 인디언의 혼혈이라고 언급되었다.[11] Stephen Winn Linton. 한국명 인세반(印世潘).[12] 2000년대 중반에는 아들을 데리고 자주 인터뷰에 나오기도 했다. CTS <내가 매일 기쁘게>에서 아들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고 이중국적이 되었다고 언급했다.[13] 56세에 본 굉장한 늦둥이다. 전처에게서 난 장녀와 늦둥이의 나이차는 무려 26살이다.[14] 거기다가 한국에서 더 박해를 당했다고 하는 바람에 피랍자 중에서 더 큰 비난을 당한 사람이다.[15] 법의날 특집(104회, 21. 4. 28.)[16] 강경보수인 친박 출신임에도 순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을 2번 해봤다.[17] 비록 낙선했으나, 그래도 '이준석 키즈'라고 불릴 정도로 인지도가 있긴 하다.[18] 서울신문은 인요한의 고향인 순천이 정당보다는 인물 위주의 성향을 가졌다고 분석했다. 보수정당의 이정현 의원이 2번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도 재선했으며, 또한 과거 조충훈 순천시장이 무소속으로 2번 당선되고, 노관규 현 순천시장도 무소속으로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을 예로 들었다. #[19] 김대중 대통령의 제자가 보이지 않는다 인요한 중앙일보 칼럼.[20] 2006년 박근혜가 유세 중 피습을 당해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을 때 치료했던 인연이 있다.[21] 박근혜 정부가 출범 초부터 대북 강경 정책을 내세우고 끝내 개성공단까지 폐쇄하였기 때문에, 대북 사업에 적극적인 인요한에게는 당연히 이러한 강경정책이 불이익일 수 밖에 없다.[22] TV는 사랑을 싣고에서 언급되었는데 중학생이 되어 순천을 떠나고 대전광역시에 이사와 외국인 학교에 재학했는데 순천에서 같이 재밌게 놀던 친구들도 없을 뿐더러 학교 규율이 매우 엄격하고 심지어는 영어를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외국인학교 생활이 적응하기 매우 힘들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증세까지 있었다고 한다.[23] TV는 사랑을 싣고 출연 당시 인요한이 찾던 어릴 적 친구(45년만에 재회)는 제작진과의 통화 당시 인요한이라는 친구가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그런 친구는 없다고 대답했는데, 쨘이라는 친구는 아느냐 물었더니 그 친구는 안다고 대답했을 정도.[24] TV조선에서 나온 2명의 불알친구는 당시 쨘이, 존이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25] #[26] 물론 절대치로는 여전히 민주당 강우세 지역이다. 애당초 이정현이 재선까지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순천 출신에다 당적 신경 안 쓰고 지자체장들과 협력해 지역구 관리를 잘 해내서 능력을 보여줬던 이정현 후보 개인의 매력 때문이었지 보수 후보라서가 아니었다. 이정현이 박근혜의 최측근이라는 이미지가 씌어 탈당하고 5년이나 집 밖에 있다가 복당해서 전남지사에 출마했을 때에도 순천과 곡성만큼은 여전히 이정현에게 30~40%에 육박하는 지지를 보내줬었다.[27] 환자가 누워있는 침대 머리맡으로 의사가 지나갈 수 없는 형태이기에 기도 삽관이나 기타 의료활동에 부적합하다고 한다. 구급대원 사이에서도 과거 쓰이던 쌍용 이스타나보다 더 좁다고 불평하곤 했고, 이 때문에 현대 스타리아에서는 내부 공간이 조금이나마 커졌다. 이런 문제 때문에 벤츠 스프린터를 도입하기도 했는데, 과할 정도로 큰 데다 전고가 높아 낮은 높이의 교량이나 터널, 좁은 골목은 통과하기 힘들어 결국 도태되었고, 대체재로 현대 쏠라티를 도입했으나 역시 높은 전고로 실패로 끝났다.[28] 반대로 터키 출신 기자 겸 방송인 알파고 시나씨는 터키 정부의 언론 탄압으로 위협을 받아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인요한과 정반대의 케이스인 셈이다.[29] 김대중은 술담배를 다 즐긴 데다가 대식가여서 각종 성인병을 달고 살았고, 고문 후유증까지 도지면서 말년에는 건강이 좋지 못했다.[30] 그외 K팝 아이돌을 위해 청소년기 때 한국에 온 외국인들도 있는데, 이들은 아무래도 좀 더 어릴 때 온 만큼 더 유창하긴 하다.[31] 어린시절 인요한이 혹시 완전히 영어를 못하게 될까 어머니가 걱정이 많았다고 하며, 초등학교까지 홈스쿨링으로 미국 교육을 시켰고 중,고등학교는 대전외국인학교에서 영어로 생활하며 교육을 받았다.[32] 조나단(유튜버)의 경우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초,중,고 정규교육 과정을 거쳐 토종 한국인과도 구별되지 않는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것과 비교했을때, 청소년기 생활과 정규 교육과정을 어떤 언어로 거쳤는지가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33] 재미교포 2세들이 집에서는 한국어를, 밖에서는 영어를 쓰며 한-영 이중언어 화자가 되는 것과 유사한 케이스.[34] 상황이 워낙 급하고 시차나 정치적인 이유로 절차가 늘어질 것이 뻔했기에 이국종 교수가 외교부에 보고도 안 하고 38만 달러에 달하는 에어 앰뷸런스 이용 비용을 본인 이름으로 지불하는 데 서명했는데, 이때 인요한 교수가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이자 한국에서 국제 환자이송 업무를 담당하는 인터내셔널 SOS 코리아에서 일한 경력으로 이국종 교수도 모르게 이국종 교수의 신원을 스위스 측에 설명해줬기에 에어 앰뷸런스를 운영하는 스위스 기업도 믿고 에어 앰뷸런스를 보내줬다고 한다.[35] 참고로 이 사람은 고문기술자로 악명이 널리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