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카와 미츠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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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경력
3. 특징
3.1. 작품
3.2. 경영
4. 인맥
5. 작품


1. 개요[편집]


石川光久
일본의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Production I.G 의 창업자. 대표이사 사장, 회장을 역임했다.

2. 경력[편집]


대학 시절 좀 방황해서 학교를 안 나가고 놀면서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어느 날 분라쿠를 보고 감동해 인형극단에서 일했다. 그러다 잠시 할 일이 없어져 타츠노코 프로덕션에서 제작진행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애니메이션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원래부터 인간이 연기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인형이 움직이는 걸 더 좋아했는데 애니메이션도 그것과 비슷하다 느꼈다고 한다. 제작진행 시절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고생했는데 너무 재밌었다고 한다.

다만 너무 힘든 것도 있고 자신이 애니메이션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없어서 황금전사 골드라이탄의 제작진행을 하면서 번 돈을 전부 써서 1년 동안 해외 여행을 다녔으며 다시 돌아갈 생각은 안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냥 길을 걷는데 타츠노코의 사람을 우연히 만났고 "너 언제 일본 돌아왔냐. 너 우리회사에서 다시 일해." 라고 해서 끌려가서 다시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사소한 우연이 없었으면 자신은 애니메이션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운명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타츠노코 프로덕션에서는 그가 성실하고 겸손하다며 높게 평가해 사원으로 정식 채용하고 1년 만에 제작 데스크의 자리를 내줬으며 타츠코노 프로덕션의 설립자 요시다 타츠오(吉田竜夫)의 딸과 결혼해 사위가 되었다. 그래서 엄청나게 빠르게 출세했다. 나중에 이혼했지만 타츠노코 쪽과 원만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I.G 설립 이후에도 타츠노코의 경영을 자문해주었다고 한다.

다만 타츠노코 프로덕션의 소극적인 경영에 불만을 품고 "이대로라면 좋은 작품은 더 못 만든다." 라고 생각해 사표를 낸다. 그런데 마침 타츠노코에서 경영 문제로 구조조정이 있어 쫓겨난 직원이 많았다. 이시카와는 그들과 만나서 "이 사람들을 그냥 보내기 아깝다. 이 사람들을 모으면 명작이 나오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그 사람들과 평소 자신이 대단하다 생각하는 애니메이터를 캐스팅하고 프리랜서 자격으로 회사로 돌아가 "나에게 붉은 광탄 질리온을 맡겨달라." 라고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때 모은 애니메이터를 바탕으로 타츠노코 프로덕션에서 독립해 Production I.G 를 설립했다. I는 이치카와, G는 고토 타카유키라고 한다. 이후 많은 애니를 성공시켰다.


3. 특징[편집]



3.1. 작품[편집]


"애니메이션의 품질은 애니메이터가 전부다."라는 애니메이터 지상 주의를 주장한다. 애니메이터의 복지와 육성에 최선을 다 한다고 한다. 프로듀서에 따라선 연출을 더 중시하기도 하지만 이시카와는 애니메이터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대단한 애니메이터를 갖추면 대단한 연출가가 알아서 온다고 주장한다. 타츠노코 프로덕션 시절 황금전사 골드라이탄미래경찰 우라시맨에서 나카무라 타카시가 담당한 에피소드의 작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고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재능있는 애니메이터를 직접 발품을 팔아 캐스팅해서 군단을 만들었으며 그의 작품은 작화는 정점을 찍었다고 평가받는다. 오시이 마모루는 "단언컨데 미야자키 하야오스튜디오 지브리보다 I.G의 애니메이터가 더 뛰어났다." 라고 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직접 프로듀스한 작품의 작화는 주목해보면 좋다.[1]

2010년대부터 그가 키운 많은 프로듀서와 애니메이터가 WIT STUDIO로 독립하면서 I.G 본사 작품의 퀄이 다소 떨어졌으나 꾸준히 재육성해 2020년대 들어서 다시 퀄리티가 복원되고 있다. 그리고 애초에 WIT도 이시카와가 만든 회사다.[2]

담당 작품은 컬트한 연출, 어둡고 잔혹한 묘사가 포함된 작품이 많다. 그래서 취향을 좀 타는 편이다. 다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정말 좋아한다. 잔혹한 애니메이션을 선호하지 않는 일본보다는 서양에서 인기있는 작품이 많다.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 성향을 드러낸 적이 없으나 대부분의 작품에 사회 비판, 우익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 감독에 따라 뉘앙스는 달라지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다. 그래서 좌익 성향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꾸준히 있으며 우익 성향의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비판을 받거나 평점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그의 작품의 인기가 부진한 이유 중 하나가 고어와 정치적 내용 때문이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이시카와의 팬으로 "그의 작품은 매우 훌륭하다." 라고 했다. 킬빌의 애니메이션 파트의 제작을 의뢰할 때는 일본에 직접 막무가내로 찾아와서 제발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3.2. 경영[편집]


많은 프로듀서 사이에서 부럽다는 소리를 듣거나 존경받고 있는데 이건 그가 경영을 잘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예술적이거나 컬트해서 이게 성공하겠냐는 소리를 들은 작품[3]도 어떻게든 히트시키거나 수익을 냈다고 한다. 물론 도박적으로 제작하는 작품이 많아 망하거나 욕 먹은 작품도 꽤 많다. 성공한 작품으로 메꿨다는 이야기이다. 애니메이션이 일본 내수용이던 시절 일본에서는 적자가 났지만 직접 외국에 나가 발품을 팔아 수출로 흑자를 내기도 했다고 한다.

제작위원회에도 직접 많은 금액을 출자해 큰 수익을 올린다고 한다. 심지어 I.G는 제작위원회의 투자사 중 하나이기도 해서[4] 자신들이 제작하지 않는 다른 제작사의 애니도 성공한다고 판단하면 돈을 투자한다. 투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추구한다고 한다. 망하면 끝장인 투자를 여러 번 했다고 한다. 인생을 걸고 엄청난 도박을 연달아 한 것인데 그걸 성공시켰으니 프로듀서들 사이에서는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5] 그래서 I.G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수익, 자산 규모가 큰 회사이다. IG Port에 속한 회사를 전부 합치면 규모도 생각보다 거대하다. XEBEC도, WIT STUDIO도 사실 다 같은 회사를 망했을 때의 경영 리스크를 줄이겠다고 쪼갠 것이다.[6]

스스로도 자신의 기획 능력이 마루야마 마사오, 미나미 마사히코보다 떨어진다고 자학하면서도 이건 자신있다고 한다.


4. 인맥[편집]







5. 작품[편집]


전부는 아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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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회사도 그렇지만 I.G의 작품이라고 해서 전부 작화가 좋은 건 아니고, 이시카와가 직접 담당해야 정점이 나온다.[2] 와다 죠지나카타케 테츠야가 WIT로 독립하겠다고 했을 때 "아무것도 없이 독립하면 힘들어. 내가 투자해줄게" 라고 제안하고 거액을 투자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이시카와에게 간섭은 안 받지만 자회사이다.[3] 특히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을 지원했는데 주변에선 다들 미쳤냐고 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오시이의 작품으로 수익을 낸 거 하나로도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4] 이런 회사는 토에이 애니메이션, 선라이즈 정도 밖에 없다.[5] 사실 예전부터 파칭코와 도박을 좋아했다고 한다. 뒷일은 생각 안 하고 산다고 한다.[6] 이러면 한쪽이 망해도 한쪽은 살아남는다. 실제로 XEBEC은 망했다.[7] 이마이시가 트리거 외에 일을 받아주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8] 도박처럼 투자하는 프로듀서라 망한 작품도 꽤 있다.[9] 마이너 애니메이션이지만 작화가 좋은 걸로 애니메이터나 작화 매니아 사이에선 이름이 알려져 있다.[10] I.G 제작 분량 쪽 프로듀서.[11] 애니메이션이 많은 게임이며 키타쿠보 히로유키가 감독해 퀄이 높기로 유명하다.[12] 쿠엔틴 타란티노가 직접 캐스팅.[13] 유아사 마사아키의 단편 작품.[14] 직접 제작하진 않았지만 이 작품은 성공한다 생각하고 투자했다고 한다.[15] 오시이 마모루와 같이 만들 예정. 오시이는 이시카와가 터미네이터를 애니로 만들자고 하자 "이시카와, 너 미쳤어?" 라고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