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카와 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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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경력
3. 작품 특징
4. 인맥
5. 프로듀스 작품



1. 개요[편집]


堀川憲司
일본의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P.A.WORKS 사장. 1965년 5월 5일생. (58세)


2. 경력[편집]


도야마대학 이학부 화학과 출신. 애니메이션에 큰 관심이 없었으나 미야자키 하야오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하고 대학을 중퇴했다.

타츠노코 프로덕션에 입사했으며 Production I.G 설립 때 I.G로 이적했다. 이 두 회사에서 주로 마시모 코이치와 일했으며 자신은 연출가는 아니지만 마시모에게 작품을 만드는 법과 기본 자세를 배웠다며 스승으로 부른다. 포포로크로이스 이야기를 만들 때는 마시모와 함께 각본을 쓰기도 했다.

제작진행 시절 신세기 에반게리온오카무라 텐사이와 함께 18화를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1] 이 에피소드는 호평을 받아 에반게리온: 파에서도 대부분 그대로 재현되었다. 오카무라 텐사이는 이때부터 호리카와를 신뢰하며 계속 같이 일하는 파트너가 되었다. 에반게리온은 후반부에 스케줄이 꼬였는데 이때 호리카와 켄지가 도왔으며 그의 도움이 없었으면 작품이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18화는 애정이 깊어 당시의 자료도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데 아내가 대청소하다 버릴 뻔 했다고 한다.

이후 인랑, 메다로트에서도 제작진행을 담당하며 실력있는 애니메이터를 많이 끌어와서 작품을 살렸다. 메다로트를 만들면서 안도 마사히로(安藤真裕)와 친해졌다.

1990년대 후반엔 마시모 코이치와 함께 BEE TRAIN을 설립했다.

그러다 아내가 고향의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BEE TRAIN을 퇴사하고 2000년 도야마현으로 귀향해 P.A.WORKS를 설립했다. [2]

2019년 부터 일선에서 물러나 직접 프로듀스하지 않고 후배에게 프로듀서를 맡기며 주로 기획에만 관여하게 되었는데 이 후배들의 능력이 호리카와 켄지만 못해서 이때부터 P.A 작품의 질이 떨어졌다는 평이 많이 나오고 있다. 2022년부터 신인 제작진행을 많이 뽑고 직접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3. 작품 특징[편집]


Production I.G 시절엔 사람이 좋기로 소문이 났었고 따르는 애니메이터와 연출가가 많아 작화를 잘 살리는 제작진행으로 유명했다. P.A.WORKS를 설립한 뒤로는 애니메이터를 직접 키워서 쓰는 방침을 내세우고 있으며 이때의 애니메이터가 참가하는 일은 줄었다. 업계가 실력있는 프리랜서 애니메이터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계속 이렇게 하면 프리랜서 애니메이터의 섭외와 마감에 많은 시간이 들어가고, 후임 육성이 안 되는 여러 부작용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사 소속 애니메이터를 직접 가르쳐서 쓰는 구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출가는 여전히 최고급 베테랑으로 기용한다.

액션보다 드라마를 중시한 작품을 추구하며 직접 프로듀스한 작품은 드라마성이 있고 작화와 연출이 좋아 한국에서도 인기있는 작품이 많다. P.A의 애니메이터도 액션보다는 캐릭터의 움직임을 사람답게 묘사하는 연기 작화를 우선으로 배운다고 한다.

미술촬영을 중시해서 최고급 인력과 하청사를 쓰며 자연과 사람 사는 곳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는 것을 중시한다고 한다. 프로듀스한 작품은 개발이 덜 된 시골이 배경일 때가 많다. 그의 작품은 배경을 유심히 보면 좋다.

그의 단점으로는 마에다 준을 너무 중용하는 것이 꼽힌다. 아예 은퇴할 생각이었던 마에다 준을 붙잡아서 은퇴를 만류한 것이 호리카와 켄지이다. 그래도 호리카와 켄지가 직접 프로듀스한 마에다 준 작품은 호불호가 갈리긴 해도 흥행은 성공했으나 본인이 직접 프로듀스하지 않은 신이 된 날은 좋은 평가도 받지 못하고 흥행 실패작이 되었다.

이외에도 연출은 일정 이상의 품질은 보증하지만 스토리는 기복이 좀 있는 편이므로 [3] 호리카와 켄지의 프로듀스 작품은 스토리보다는 연출 위주로 보는 것이 좋다. 물론 잘 만든 작품은 스토리도 좋다.


4. 인맥[편집]




5. 프로듀스 작품[편집]


대부분 혼자 프로듀서한 작품은 아니고 공동 프로듀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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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가이낙스 제작이었으나 일부 에피소드와 극장판은 I.G 하청이었다. 원래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제작사 혼자 다 만드는 경우가 거의 없다.[2] 사명이 P.A가 된 건 2002년.[3] 프로듀서는 의견을 내는 것 말고는 스토리에 많이 관여하는 직책은 아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스토리를 쓰는 작가와 감독 (오카무라 텐사이, 니시무라 준지, 아사이 요시유키, 오카다 마리, 마에다 준)을 자주 기용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호리카와 책임이라고 볼 수 있다.[4] 레이튼 교수 시리즈 닌텐도 DS 3부작의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도 담당했다.[5] 도야마현 홍보 단편 애니메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