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 논란/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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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3년 8월
1.1. 8월 24일
1.2. 8월 25일
1.3. 8월 26일
1.4. 8월 27일
1.5. 8월 28일
1.5.1. 국방부 입장문
1.6. 8월 29일
1.7. 8월 30일
1.8. 8월 31일
1.8.1. 최종 철거 및 이전 결정
2. 2023년 9월
2.1. 9월 1일
2.2. 9월 4일
2.3. 9월 5일
2.4. 9월 7일
2.5. 9월 12일
2.6. 9월 13일
2.7. 9월 15일
3. 2023년 10월
3.1. 10월 4일
3.1.1. 교내 독립전쟁 영웅실 철거 결정
3.2. 10월 6일
3.3. 10월 13일


1. 2023년 8월[편집]



1.1. 8월 24일[편집]


8월 24일 오후 7시 54분 더불어민주당 소속 우원식[1] 의원실이 '독립전쟁 영웅 흉상철거 지시한 보훈부 규탄 기자회견'이라는 내용의 문자를 기자들에게 발송했다. 이어 오후 8시에도 동일한 내용의 문자가 발송됐다. 또, 육군사관학교의 독립군 흉상 철거를 규탄하는 독립유공자 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벌일 예정이라는 게시글들이 트위터 등 인터넷에서 유포됐다. 진위여부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고 갔으나 국회기자회견 일정에 게시글상 내용과 동일하게 '국가보훈부 규탄 기자회견'이 우원식 의원 주최로 예약된 것이 확인됐다. #


1.2. 8월 25일[편집]


국회에서 흉상 철거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회견에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홍범도장군, 우당이회영, 신흥무관학교,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2] 회견에서는 흉상 이전을 시도하는 보훈부를 규탄했는데 이에 국가보훈부는 보훈부 차원에서는 관련된 지시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육군사관학교는 교내에 있는 김좌진, 홍범도, 이회영, 이범석 등 5명의 독립군 장군과 독립운동가의 흉상을 이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육사는 "교내에는 학교 정체성과 설립 취지를 구현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 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념물 재정비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 다만 육군사관학교 측은 흉상 이전은 보훈부의 지시가 아닌 자체적인 계획이며, 안중근 장군 동상, 심일 소령과 강재구 소령 동상, 화랑상, 문무상, 국민교육헌장탑 등 다른 기념시설과 기념물은 그대로 존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

같은 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종섭 국방부장관은[3] "그 분들도 독립운동에 대한 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 장소가 독립기념관이기 때문에 독립기념관에 그런 분들도 모시고 한다"라면서 "이분들 중 소련 공산당가입했던 사람도 있다. 공산 세력과 맞서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홍범도 장군은 공산당에 가입했지만 1943년에 서거했고,[4] 박정희 대통령1962년 당시 건국훈장을 줬다. 해군홍범도함박근혜 정부2016년도에 만들어졌다"고 반박하면서 다른 네 사람은 공산당에 연루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1, #2

같은 날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등 관련 단체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사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반(反) 헌법적 처사라며 규탄하면서 "육사 교정에 세워진 독립전쟁 영웅 흉상을 철거해 독립기념관에 보관이 가능한지에 대한 검토 요청이 있었음을 독립기념관 관계자를 통해 확인했다. 국군의 기원인 독립전쟁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매우 심각하고 엄중한 문제"라고 밝혔다. 해당 단체들은 문재인 정부 지우기[5]를 하려다가 우리 국군의 정통성을 뿌리째 뒤흔드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말라고 했다. 또 "보훈부 승격 이후 행보가 우려스럽다. 본연의 역할보다 가짜 유공자 서훈 박탈 논란,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 삭제, 홍범도 장군의 서훈을 문제삼더니 이제는 독립전쟁의 역사까지 부정한다는 의심이 든다"며 윤석열 정부와 보훈부를 비판했다. #

독립기념관은 육사의 요청을 받고 흉상 전시는 어렵지만 수장고에 보관하는 조건으로 이전을 허락했다고 한다. # 즉, 철거가 이뤄져 기념관 측으로 이전하게 될 경우 상설 전시도 하지 않고 기념관 창고에 보관된다는 뜻이다. 이미 독립기념관에는 독립유공자들의 흉상이 있기 때문에 중복전시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1.3. 8월 26일[편집]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는 독립운동가 흉상을 철거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 국방부는 이러한 행태가 '독립군과 광복군 역사를 국군의 뿌리에서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소련 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이력 논란이 있는 인물을 육사에서 기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며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입당 전력이 흉상 철거의 이유 중 하나임을 재확인했다.


1.4. 8월 27일[편집]


한겨례에서 군 내 소식통을 통해 흉상이 철거된 뒤 해당 자리에 백선엽과 함께 맥아더밴플리트 장군[6]의 흉상을 설치하려고 한다는 내용을 공개하였다. #


1.5. 8월 28일[편집]



파일:국방부 앞 흉상.jpg


대한민국 국방부 앞 독립군·광복군 흉상
(서울 용산구 국방부/합동참모본부 공동청사 앞에 설치된 독립군/광복군 지휘관들의 흉상 모습)


국방부가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공동청사 앞 홍범도 흉상까지 철거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러한 상황에는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 과정에서 소련 공산주의 세력과 손을 잡았던 전력을 고려할 때 그 흉상을 국방부 등에 설치해온 것이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한다. 이는 최근 '공산 전체주의 세력'을 겨냥한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나 북·중·러 밀착을 경계하는 한미일 3국의 공조 강화 등의 흐름과도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홍범도함 함명 변경도 검토해야 할 사안으로 필요하면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 또 8월 28일 정례 브리핑에서 '홍 장군보다 남로당 조직책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기념물이 더 많지 않냐'는 지적이 나오자 "(박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고 국가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신 분" "홍범도 장군의 역사적인 가치는 다른 차원이라서 바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만 이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 그리고 홍범도 장군에 대해 자유시 참변 이전까지의 공적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자유시 참변 당시 재판위원으로 참석하거나 참변 직후 붉은군대의 대대장으로 보직받은 사실 등 행적에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며 이는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과 다른 길을 간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하면서, 일각에서 이를 이념전쟁과 친일행각으로 부추겨 정치 쟁점화시킨다며 안타깝다는 입장을 표했다. #


1.5.1. 국방부 입장문[편집]


8월 28일 오후 국방부가 기자단에게 보낸 입장문으로, # 언론사 중 한겨레가 전문을 보도했다. #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국방부 입장

이번 독립운동가 흉상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함.

육군사관학교는 공산주의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하기 위한 호국간성을 양성하는 기관임. 6.25전쟁 발발당시 육사 선배님들은 전선에 투입되어 북한 공산군에 맞서 싸웠고, 6.25전쟁 기간에 다시 개교하여 지금까지 북한과 공산주의 위협에 맞서 왔음. 육사의 전통과 정체성, 사관생도 교육을 고려할 때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더욱이 사관생도 교육의 상징적 건물인 충무관 중앙현관에 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어 왔음.

이 사안은 육사 내에 설치할 당시에도 적절하지 않다는 문제제기가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범도 장군 흉상 설치가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 없이 강행되었으며, 이후에도 지금까지 이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어 오고 있음.

육사는 2022년부터 학교종합발전계획을 마련하면서 우리나라의 국난극복사, 6·25전쟁 영웅, 육사의 표상, 한미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함께 기리는 방향으로 교내 기념물 재정비 방안을 검토하고 있음. 이러한 검토과정에서 논란이 되어 왔던 홍범도 장군의 흉상은 육사 교내보다는 독립운동의 업적이 가장 잘 선양될 수 있는 독립운동의 성지인 독립기념관에 모시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국가보훈부와 독립기념관에 협조를 요청하였음.

홍범도 장군께서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신 업적은 부정할 수 없으며, 정부도 이를 인정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을 수여하였음. 국방부가 이를 폄훼하거나 부정할 의도는 전혀 없음. 하지만, 장군께서 1921년 소련 자유시로 이동한 이후 보이신 행적과 관련해서는 독립운동 업적과는 다른 평가가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임.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 군정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소련 공산당의 자유시 참변재판에 재판위원으로 활동한 사실, 자유시 참변 발생 후 이르쿠츠크로 이동하여 소련 적군 제5군단 소속 ‘조선여단’ 제1대대장으로 임명 등의 역사적 사실이 있음. 이로 인해 1921년 6월 러시아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음.[7]

구체적으로, 1991년 한·소 수교 직후 발굴한 소련 측 정부문서에 따르면, 홍범도 장군이 1930년대에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기 위해 작성한 이력서에 “자유시 유혈사태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한인 빨치산지대 대표단원 자격으로 레닌 동지를 만나러 모스크바로 갔다”로 되어 있다는 것임. 자유시 참변사태는 1921년 6월에 자유시에서 무장해제를 거부한 독립군이 공격당한 사건을 말하는데, 홍범도 장군은 순순히 무장해제하는 편에 섰다는 평가임. 이때 독립군측이 400명에서 600명까지 사망하였고, 약 500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을 재판하는 위원으로 참가한 것임.

따라서, 홍범도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웠으나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간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과는 다른 길을 간 것임. 특히, 홍범도 장군의 빨치산 증명서에는 활동기간이 1919∼1922년으로 기록되어 봉오동과 청산리전투에도 빨치산으로서 참가했다는 의혹도 있음.[8]

그리고, 1922년 코민테른 ( 국제공산당 ) 이 개최한 ‘극동민족혁명단체 대표대회’에 한인대표 52명의 일원으로 참석하였고, 동년 레닌으로부터 권총, 상금, 친필서명된 ‘조선군대장’ 증명서를 접수하였으며, 1927년에는 소련공산당에 입당하는 등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

따라서,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하되, 이후 소련공산당 활동에 동조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달리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봄. 더욱이, 북한의 김일성이 소련공산당의 사주를 받고[9]

불법 남침하여 6.25전쟁을 자행한 엄연한 사실을 고려할 때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여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시 적절하지 않음.

앞으로 육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내 기념물 재정비계획에 따라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수호를 위한 장교양성이라는 학교의 정체성에 맞게 최적화된 교육환경을 조성할 것임. 특히, 사관생도들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포함하여 국난극복의 역사 전체를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할 것임.

그러나, 아쉽게도 일각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를 이념전쟁과 친일행각으로 부추겨 정치 쟁점화시키고 있는 현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함. 이러한 정치적 쟁점과 무관하게 사관생도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육사에서 육사의 정체성에 부합하도록 생도교육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수립하고 추진할 것임.

국방부는 육사를 포함한 사관학교들이 독립운동과 6.25전쟁을 포함하여 순국선열과 호국영웅들을 추모하고 그 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계승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예강군으로 육성하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임.



1.6. 8월 29일[편집]


국방부는 군 내부에도 역사와 전사를 연구하는 인력들이 있기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과 관련해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으므로 학계 등 외부 협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1, #2

육군사관학교가 소재한 서울특별시 노원구는 육군사관학교와 연계하여 진행되는 행사를 취소했다. #[10]




"홍범도, 김일성이 관계가 있어요?" 역사수업 된 국방부 질의응답 | 2023.8.29. YTN

이날 진행된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는 전날 국방부가 발표한 입장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 공세와 질타가 쏟아졌다. # 한 기자는 국방부가 독립운동가들의 흉상 이전을 '육사의 캠퍼스 종합발전계획에 따른 것이다'라고 밝힌 것과,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육사 이전 공약과 배치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만약 이 종합발전계획을 육사가 자체적으로 만든 거라면 육사는 군 통수권자의 공약을 정면으로 반대한 것이니 육사 교장을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해야 한다고 질타했다.[11]

◇서울신문: 어제 브리핑에서 홍범도함과 관련된 질문이 있었고 필요하면 (이름 변경) 검토한다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필요를 위한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어떤 조건이 충족이 되면 필요하다고 판단을 하는 건지?

◆국방부 대변인: 조건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요. 필요성이 있다면 검토하겠다 하는 원론적인 말씀을 드린것 입니다.

◇서울신문: 그러면 해군에 물어보고 싶은데, 함명을 변경한 전례로 나라가 망했을 때, 그러니까 소련 같은 경우[12]

그리고 히틀러가 알아서 마음대로 한 경우[13]가 있던데, 그 외에 선례가 있습니까?

◆국방부 대변인: 제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확인하고 있습니다.

국방부가 필요시 홍범도함의 이름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과 관련해서도 추가 질문이 나왔다. 함명 변겅 검토에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는 물론이고, 함명을 변경한 전례로 '소련 같이 나라가 망했을 때'와 '히틀러가 독단으로 변경한 경우'가 있다며 국방부가 이 둘과 동급이라는 것을 정면으로 지적했다. # 전날 국방부가 배포한 입장문에서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부분에 대한 기자들의 반박 및 지적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




[현장] 신원식·예비역 장성들 "육사 뿌리, 독립군 아니다...홍범도, 소련공산당원 각종 특혜" 주장 vs 독립운동가 단체 "경술국치급 모욕" | 2023.8.29. KBS News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서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과 예비역-안보 단체와 함께 진행한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 육사 공산주의자 흉상 존치 규탄대회' 기자회견 후 백브리핑에서 김영교 제대군인자유노동조합 공동대표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에 대해 "독립기념관 이전도 절대 안 된다"며 "홍범도는 파묘해서 북한으로 보내야 돼. 북한으로 보내려고 하고. 김정은이한테 우리는 보내려고 하는 거다"라고 제대로 막말을 쏟아냈다. # 신원식은 "육군사관학교는 1946년 조선경비대사관학교로 만들어지고 국방법 만들어져서 국군이 정부수립과 국가건국 된 후에 거기 해당되는 사람만 선양했다"며 그 정체성은 공산주의의 침략을 지켜낸 것이 그 정체성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대한민국 국군 및 사관학교들의 전신을 독립군 및 광복군과 더 나아가 군대해산에 항거한 대한제국군과 이어보려 한 그간의 노력을 뒤집는 발언이라 할 수 있다.


1.7. 8월 30일[편집]


국가보훈부가 홍범도 장군에게 추서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

국방부는 육사의 홍범도 흉상만 옮기고, 국방부 청사 앞 흉상은 존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또한 육사가 홍범도 장군 흉상만 독립기념관에 이전하고 그 자리에 더글러스 맥아더의 흉상을 배치하는 것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하였다. #

대통령실남로당 경력이 있는 박정희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의 경우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이에 야당은 잣대가 이상하다며 대통령실을 질타했다. #[14]


1.8. 8월 31일[편집]


육군사관학교가 이전을 고려하는 독립유공자 동상이 기존에 알려진 5기 외에 박승환 참령[15]의 동상도 포함되어 총 6기였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 #

앞선 8월 27일 국방부 대변인의 홍범도함 함명 변경 검토와 관련하여, 한덕수 국무총리도 홍범도함 함명 변경을 검토한다는 발언을 하였다. # 이 자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홍범도함이 '주적과 싸워야 하는 군함'이라고 하여, 홍범도가 국군의 주적과 연루되었다는 왜곡된 역사인식을 암시하였다.

백선엽과 함께 맥아더밴플리트 장군의 흉상을 설치하려고 한다는 내용에 대해 육군에서 확인 결과 검토된 바가 없다고 한다. 서우석 육군 공보과장 발언 하지만, 육사에 '한미동맹 공원'을 추진하고, 여기에 밴플리트, 맥아더, 백선엽 등 10대 영웅 동상을 만든드는 계획안이 채널A에서 보도 되었다. #

1.8.1. 최종 철거 및 이전 결정[편집]


결국 육군사관학교는 갖은 논란에도 홍범도 장군 흉상은 육사 밖으로 이전하고, 이회영 선생, 김좌진·이범석·지청천 장군 흉상은 교내 다른 장소로 이전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여기에 더해 충무관 안에 있는 박승환 참령의 흉상 또한 교내 다른 장소로 이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당초 의도대로 독립군·광복군 영웅 흉상 5개+1개를 이전하는 절차를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1, #2 여기에 본래는 거론되지 않았던 대한제국 군인 출신의 박승환 참령까지 철거 대상에 덤으로 추가된 상황. 심지어 박승환 참령 흉상은 본래 충무관 내부에 있던 것이라 교문에 있던 것도 아니기에 해당 흉상까지 옮긴다는 것을 교정 내로 옮긴다는 5개의 흉상도 '사관학교 내 건물 내부가 아닌 어딘가로 치우겠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2. 2023년 9월[편집]



2.1. 9월 1일[편집]





국방부, 5년 전엔 '홍범도' 이렇게 말했다…같은 국방부 맞나? | 2023.9.1. JTBC News

9월 1일, 국방부 유튜브는 '10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 인생 풀스토리'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영상은 오전 9시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영상에서는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 등을 다루었다. #

파일:국방TV 홍범도.jpg

이 유튜브 영상을 홍보하기 위해 올라왔던 페이스북 페이지 역시 같은 날 삭제되었다. 위 사진이 해당 페이스북 페이지에 수록되었던 이미지다. 상기한 영상에 그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되나#, 해당 영상이 9월 1일에 비공개 처리가 되었다. 다만, 페이스북에 업로드 된 영상#은 9월 1일 14시경엔 공개되어 있었으나 17시 기준으론 비공개 처리되었다.

국방부 유튜브에 올라왔던 김좌진 소개 영상도 9월 1일 15시경 비공개되었다가 17시 30분쯤 다시 공개되었다. #


2.2. 9월 4일[편집]


이종섭 국방장관이 손원일급 잠수함인 홍범도함의 함명 교체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고 국회에서 재차 발언했다. #


2.3. 9월 5일[편집]


경향신문에서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 철거를 주도했던 육사 '기념물 재배치 위원회'의 실무 총괄자가 나종남 육사 군사사학과 교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

특히 나종남은 뉴라이트 성향으로 평가받는 한국현대사학회 창립준비위원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교과서 현대사 집필진이었는데 윤석열 정부와 군이 소련공산당 가입 이력을 문제 삼아 홍 장군 흉상 철거를 결정하면서 친일 전력이 있는 백선엽 장군의 웹툰은 복원시키는 등 독립운동사 지우기에 나선 배경에 뉴라이트 세력이 있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2.4. 9월 7일[편집]


이장우 대전광역시장은 개인적으로 홍 장군 흉상이 육사에 있는 게 부적절하다 생각한다며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앞의 명예도로인 '홍범도장군로'의 폐지를 시사했다. 그러나 해당 명예도로 명칭의 폐지 권한은 광역자치단체장인 대전광역시장에게 있지 않고, 기초자치단체장인 유성구청장에게 있으며, 정용래 유성구청장은 결사 반대의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였다.

지역 시민단체와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등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고, 10일에는 해당 도로를 걸으면서 반대 목소리를 냈다.


2.5. 9월 12일[편집]


SBS의 김태훈 기자가 "군사편찬연구소가 최근 국방부에 홍범도 장군의 생애를 높이 평가하는 문건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 군사편찬연구소는 지난 7월 19일과 22일, 24일 각각 홍범도 장군 관련 문건을 작성해 지난달 국방부에 전달했고, 국방부는 이를 참고해 8월 28일 홍범도 장군 관련 입장문을 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SBS가 입수한 군사편찬연구소 문건들의 내용이 국방부 입장문과 많이 달라 큰 논란이 예상된다. 군사편찬연구소 측은 SBS에 "그동안 연구 성과에 기반해 객관적으로 문건을 작성했을 뿐"이고 "해석은 국방부의 몫"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군사편찬연구소 자료를 확인하고 그 입장을 제가 한번 확인하겠다"고만 대답했다. "국방부의 입장문이 역사왜곡이라고 지적받으면 뭐라고 대답하겠느냐?"는 질문에는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대답을 회피했다. #


2.6. 9월 13일[편집]


독립운동가 지청천, 윤기섭, 이상룡의 후손들이 항의 차원에서 육사 명예 졸업증을 반납한다고 밝혔다. #


2.7. 9월 15일[편집]


이종섭 장관의 해명과는 달리 검토 중이라던 시기에 이미 흉상을 교내 밖으로 옮기려 트럭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


3. 2023년 10월[편집]



3.1. 10월 4일[편집]



3.1.1. 교내 독립전쟁 영웅실 철거 결정[편집]



육군사관학교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옮기기로 한데 이어 홍범도, 안중근 등 독립 영웅의 이름을 딴 교내 독립전쟁 영웅실까지 없애기로 한 걸로 확인됐다. #


3.2. 10월 6일[편집]


흉상 설치를 주도했던 김완태 前 육군사관학교장(예비역 중장)이 국회 국방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16]에서 밝힌 바로는 흉상 설치 당시 "육사가 외부 지시 없이 자체적으로 판단한 것으로, 당시 교내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도 거쳤으며, 다섯 분의 독립영웅 흉상을 육사에 설치한 것은 국권을 강탈당한 상태에서 월급도 없고, 총기와 실탄도 주어지지 않는 악조건 속에서 목숨 바쳐 독립전쟁에 투신한 큰 업적이 있는 독립영웅들을 모셔 생도들에게 정신적 가치를 심어주기 위해서였다."면서 "코드를 맞추거나 지시에 의해 행동했다면 지휘관 보직인 육사 교장에 부임한 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8개월 만에 전역 조치를 당했겠나?"라고 밝혔다.(관련 기사)


3.3. 10월 13일[편집]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육사 동상 철거와 관련된 질의에 "일본 대사관 앞에 안중근 흉상을 두면 그게 적절한 것이냐"며 반문했다. #

[1] 우원식 본인이 의열단원 출신의 독립유공자 김한 선생의 외손자로 의열단이나 홍범도 관련 학술회의를 열고 독립운동 관련 연구를 진행해왔다. 현재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당시 황기철 국가보훈처장(특사), 배우 조진웅 등과 함께 대표단 자격으로 카자흐스탄행에 동행했다. #[2]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황운하 의원, 김을동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前 이사장, 現 상임이사), 황원섭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부이사장 등이 참석했다.[3] 당시 언론 보도내용의 사실을 확인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잠시 주저하였다. 장관 본인도 해당 사안이 논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듯 하다.[4]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세력을 부정하고 반공 노선을 타기 시작한 것은 1945년 대한민국 수립 이후이며, 그 이전에는 성향이 다를 뿐 독립운동을 같이하는 세력 정도로만 생각했다.(물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을 가졌던 현 대한민국 정부의 전신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시선으로 봤을 때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세력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독립을 바라는 마음 자체는 일치한다는 것만큼은 인정하고 있었다.) 이후 냉전이 심화되며 5년 뒤 6.25 전쟁이 발발하며 그때 이후 현재까지 공산주의는 완벽하게 적이 되었다. 그런데 그 이전, 아예 조국 독립도 보지못한채 타국에서 돌아가신 분을 현재의 기준을 가져다대어 '공산주의에 가담했으니 불편하다'라는 식의 판단을 해버린 것을 지적하는것이다.[5] 애초에 이 흉상들이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년에 건립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6] 현재 육사에는 이미 밴플리트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7] 그러나 국방부가 꺼내든 홍범도의 자유시 참변 개입 음모론은 현재 반대연구로 논파되어, 사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팩트체크]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 몰살된 '자유시 참변'에 가담? 홍범도 지우기 나선 국방부, 확인되지 않은 ‘자유시 참변’ 개입론 제기[8] 1946~1955년에 활동한 조선인민유격대와는 관련이 있을 여지조차 없다.[9] 김일성은 남침을 앞두고 스탈린의 승인을 얻으려 했는데, 스탈린이 미국과의 전면전으로 확전될 것을 우려하여 48회에 걸쳐 남침을 거부했다. 소련이 남침을 종용했다는 국방부의 주장과 다르게, 김일성이 고집을 부려 남침을 감행했다는 것이 세계 역사학계의 통설이다.[10] 여담으로 이 논란을 처음으로 제기한 우원식 의원은 노원구 을 국회의원이며, 노원구는 현재 구청장과 국회의원 모두, 서울특별시의회 시의원의 절반과 노원구의회 구의원의 상당수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11] 이는 해병대 제1사단 일병 사망 사고/수사 외압 논란과 관련하여 국방부가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을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한 것을 비꼰 것이다.[12] 소련 붕괴 이후 슬라바급 순양함들의 함명이 변경되었다.[13]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의 1번함인 도이칠란트를 국가 이름과 같다는 이유를 들어 뤼초(Lützow)로 변경하였다.[14] 그리고 박정희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킨건 옳지만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15] 대한제국의 군인으로서 일제의 군대 해산에 저항하여 부하들 앞에서 자결하였고 이에 분개한 부하들이 일본군과 교전을 벌였다.[16] 당초 10월 10일로 예정된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불출석 사유서와 서면 답변서를 국회 국방위원회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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