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경비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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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울산시·울주군(現 울산광역시)을 근거지로 했던 대한민국 육군 제2야전군사령부 소속 사령부.
1968년 당시 경상남도 울산시·울주군[1] 과 '대한민국 1호 국가산업단지'인 울산공업지구의 경비 및 1.21 사태 이후 북한군 특작부대 또는 간첩이 동해안을 이용하여 침투[2]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7월 9일에 대통령령에 의해 울산특정지역경비사령부(이하 울경사)가 창설되었으며, 초대 사령관에는 훗날 1973년 3.7 완전 작전으로 유명하게 되는 박정인 장군(당시 준장)이 임명되었다.
사령부는 경상남도 울산시 옥동(現 울산광역시 남구 옥동)에 있었으며[3] , 박정인 사령관 때 지어진 '부전장'이라는 관사가 선암저수지(現 선암호수공원) 부근에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울산에 행차했을 때 종종 들러가기도 했다고 한다.#
울경사는 울산 지역의 해안선(정자, 주전, 방어진, 온산 등), 항만(울산, 방어진, 장생포, 온산 등) 및 공업지구(울산미포, 온산) 경비[4] ·경계임무 및 공단 예비군 관리 등을 맡았다. 특이하게도 예하에 선박소대가 편제되어 육군 소속 경비정이 지역 해상 경계 및 의아 선박 검문·검색을 맡기도 했던 모양이다.
울경사가 창설되기 직전에는 해병1사단 예하 5연대가 울산 지역 해안선 등을 일시적(1년~1년 6개월 가량)으로 방어하고 있다가 울경사에 임무를 넘겨주었다.[5]
1982년에는 울산 지역 책임부대가 경상남도를 방어하는 39사단으로 넘어가면서 사령부는 해체되었고 예하 울산연대로 격하되었다.
1984년 1월 1일부로 연대 본부가 부산 동래에서 울산 옥동으로 이동하였으며, 동년 53사단 제127보병연대(現 제127보병여단)으로 개편되었다.
1. 개요[편집]
경상남도 울산시·울주군(現 울산광역시)을 근거지로 했던 대한민국 육군 제2야전군사령부 소속 사령부.
2. 상세[편집]
1968년 당시 경상남도 울산시·울주군[1] 과 '대한민국 1호 국가산업단지'인 울산공업지구의 경비 및 1.21 사태 이후 북한군 특작부대 또는 간첩이 동해안을 이용하여 침투[2]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7월 9일에 대통령령에 의해 울산특정지역경비사령부(이하 울경사)가 창설되었으며, 초대 사령관에는 훗날 1973년 3.7 완전 작전으로 유명하게 되는 박정인 장군(당시 준장)이 임명되었다.
사령부는 경상남도 울산시 옥동(現 울산광역시 남구 옥동)에 있었으며[3] , 박정인 사령관 때 지어진 '부전장'이라는 관사가 선암저수지(現 선암호수공원) 부근에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울산에 행차했을 때 종종 들러가기도 했다고 한다.#
울경사는 울산 지역의 해안선(정자, 주전, 방어진, 온산 등), 항만(울산, 방어진, 장생포, 온산 등) 및 공업지구(울산미포, 온산) 경비[4] ·경계임무 및 공단 예비군 관리 등을 맡았다. 특이하게도 예하에 선박소대가 편제되어 육군 소속 경비정이 지역 해상 경계 및 의아 선박 검문·검색을 맡기도 했던 모양이다.
울경사가 창설되기 직전에는 해병1사단 예하 5연대가 울산 지역 해안선 등을 일시적(1년~1년 6개월 가량)으로 방어하고 있다가 울경사에 임무를 넘겨주었다.[5]
1982년에는 울산 지역 책임부대가 경상남도를 방어하는 39사단으로 넘어가면서 사령부는 해체되었고 예하 울산연대로 격하되었다.
1984년 1월 1일부로 연대 본부가 부산 동래에서 울산 옥동으로 이동하였으며, 동년 53사단 제127보병연대(現 제127보병여단)으로 개편되었다.
3. 사령관[편집]
4. 여담[편집]
- 1972년 10월 유신 선포 직후, 그동안 박정희 정권을 비난했던 지역구 국회의원 최형우의 울산 지구당 인사들과 울산 지역 야당 인사들이 계엄군에 체포되어 울산경비사령부에서 한 달 동안이나 모진 고문을 받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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