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경비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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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경비사령부
파일:울산경비사령부.jpg

창설일
1968년(울산경비사령부)
해체일
1982년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제2야전군사령부
종류
기능사령부
규모
사단
역할
경상남도 울산시·울주군 경계 및 방어
초대 사령관
준장 박정인(조선경비사관학교 6기)
해체 전 사령관
준장 이덕만(육군종합학교 5기)
위치
경상남도 울산시




1. 개요
2. 상세
4. 여담



1. 개요[편집]


경상남도 울산시·울주군(現 울산광역시)을 근거지로 했던 대한민국 육군 제2야전군사령부 소속 사령부.


2. 상세[편집]


1968년 당시 경상남도 울산시·울주군[1]과 '대한민국 1호 국가산업단지'인 울산공업지구의 경비 및 1.21 사태 이후 북한군 특작부대 또는 간첩이 동해안을 이용하여 침투[2]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7월 9일에 대통령령에 의해 울산특정지역경비사령부(이하 울경사)가 창설되었으며, 초대 사령관에는 훗날 1973년 3.7 완전 작전으로 유명하게 되는 박정인 장군(당시 준장)이 임명되었다.

사령부는 경상남도 울산시 옥동(現 울산광역시 남구 옥동)에 있었으며[3], 박정인 사령관 때 지어진 '부전장'이라는 관사가 선암저수지(現 선암호수공원) 부근에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울산에 행차했을 때 종종 들러가기도 했다고 한다.#

울경사는 울산 지역의 해안선(정자, 주전, 방어진, 온산 등), 항만(울산, 방어진, 장생포, 온산 등) 및 공업지구(울산미포, 온산) 경비[4]·경계임무 및 공단 예비군 관리 등을 맡았다. 특이하게도 예하에 선박소대가 편제되어 육군 소속 경비정이 지역 해상 경계 및 의아 선박 검문·검색을 맡기도 했던 모양이다.

울경사가 창설되기 직전에는 해병1사단 예하 5연대가 울산 지역 해안선 등을 일시적(1년~1년 6개월 가량)으로 방어하고 있다가 울경사에 임무를 넘겨주었다.[5]

1982년에는 울산 지역 책임부대가 경상남도를 방어하는 39사단으로 넘어가면서 사령부는 해체되었고 예하 울산연대로 격하되었다.

1984년 1월 1일부로 연대 본부가 부산 동래에서 울산 옥동으로 이동하였으며, 동년 53사단 제127보병연대(現 제127보병여단)으로 개편되었다.


3. 사령관[편집]



역대 울산경비사령관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박정인
예) 준장
조선경비사관학교 6기
제3사단
68.07.26.~71.06.10.
2대
정형택
준장[6]

사령관
71.06.10.~73.04.05.
3대
이종숙
준장[7]

사령관
73.04.05.~75.03.31.
4대
이필조
예) 소장
육군종합학교 12기
제2훈련소
75.03.31.~76.06.14.
5대
박찬수
예) 준장
육군사관학교 10기
前 국방부 군사연구위원
76.06.14.~79.02.07.
6대
강호원
예) 준장

사령관
79.02.07.~80.08.21.
7대
이덕만
예) 준장
육군종합학교 5기
사령관
80.08.21.~82.04.15.


4. 여담[편집]


  • 1972년 10월 유신 선포 직후, 그동안 박정희 정권을 비난했던 지역구 국회의원 최형우의 울산 지구당 인사들과 울산 지역 야당 인사들이 계엄군에 체포되어 울산경비사령부에서 한 달 동안이나 모진 고문을 받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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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명, 정자 및 온산 등 당시 울주군 지역 해안선[2] 60년대에 울산 전하리와 일산진 마을 등 해안가로 간첩들이 침투한 적이 있다.[3] 현재 53사단 127여단 주둔지와는 위치가 달랐다는 말이 있다.[4] 울산-언양간 고속도로 진입로와 공단 진입로 등에 검문소와 경비초소를 설치·운용하기도 했다.[5] 같은해 포항에서는 이 해병1사단을 주축으로 한 포항특정지역경비사령부(포특사)가 창설되었고, 현재까지 존재한다.[6] 당시 계급[7] 당시 계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