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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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살려주세요…."
"오줌을 쌌었습니다. 산발을 한 시중이 부월을 들고 들이닥쳐서는 나더러 임금이면 임금답게 추상같이 호령을 하라 하셨지요. 그때 과인이 뭐라 했는지 아십니까? 살려달라 그랬습니다. 오줌을 질질 싸면서 말이에요. 내관 놈들이 쑥덕대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선왕의 아들이면 저럴 리가 없다고, 필경 신돈의 자식이라고! 망극할 것 하나 없습니다. 시정잡배들의 술자리에서 제일 잘 팔리는 안주거리라지 않습니까? 경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1. 개요[편집]
유년기 시절의 배우는 정윤석[1] , 성인 시절의 배우는 박진우.
정윤석 군은 아내의 유혹에서 정니노로 나왔는데, 여기서도 이름이 모니노[2] 라 많은 사람들이 뿜었다 카더라. 주몽과 왕과 나, 태왕사신기 때는 5살이어서 12살이 된 지금 오랜만에 출연한 사극에 적응을 할까 걱정했는데 매우 훌륭하게 심약하고 순수하지만 차츰 정치를 알게 되는 어린 우왕의 모습을 표현해주었다.[3] 박진우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아래 항목 참조.
1.1. 박진우의 연기에 대하여[편집]
박진우의 연기에 대해서 희대의 명연기다 칭송하는 시청자들도 있는 반면 너무 과장되고 연극적이라 부담스럽고 강약조절이 조금 아쉽다거나 말 그대로 "미친" 연기라는 등의 악평도 있다.
그래도 주요 인물들을 연기하는 배우들 중에서 가장 젊고 사극 경험이 많지 않은 배우가 쟁쟁한 중견 배우들 사이에 끼어서 소화해내야 하는 배역으로 이 정도 관심을 받으며 평가를 받는 것만 해도 꽤 대단한 선전이었다. 박진우는 본 작품의 주요 인물 중 가장 젊다 할 수 있는 안재모보다도 네 살이나 어리다. 특히 사극 연기의 경험으로 치면 사극 연기에 잔뼈가 굵다 못해 만렙의 경지에 이른 안재모와 박진우와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단, 박진우는 사극 경험이 많진 않으나 본 작품이 그의 첫 사극은 아니다. 허구가 많이 들어간 작품이긴 하나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해당 사극은 다루고 있는 시기와 제한된 분량 관계상, 주연급들을 다루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조연급 인물인 우왕이 출연하는 장면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 고뇌하는 장면이나 개그 장면 등 입체적인 장면을 줘서 인간성을 강조하는 주연들과는 달리, 우왕이 나오는 장면은 대부분 인간적인 모습을 묘사하기보다는 스토리 진행을 위하여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기능적'인 장면이 많고, 이렇게 '극적인 순간'에만 출연 장면이 몰려 있다보니 감정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만 나온 경향이 있는 편이다.
우왕이 인두로 몸을 지져 흉터를 내는 장면은 원래 대본에 없었지만 박진우가 감독과 상의해서 추가된 것이며, 자신이 직접 인두로 몸을 지져서 연기한 것이라고 한다.[5] # 마지막 최후 장면은 그간 박진우의 연기를 안 좋게 평가했던 이들도 좋은 평가를 내릴 정도. 작중 우왕은 똘기넘치는 막장 인간으로 묘사되며 출생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는게 이전부터 자주 언급되었기에, 출생 문제로 폐위당한 우왕이 저런 짓거리를 해도 시청자들이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던 것.
2. 극중 묘사[편집]
2.1. 소년기[편집]
유모 장씨에게 꽤나 의지한다. 아버지 공민왕으로부터는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다시 궁으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공민왕이 아들 모니노와 식사를 같이 하고, 이때 보여준 아버지의 모습에 매우 기뻐했다.
2화에서 공민왕이 "모니노는 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왕이 되지 못하는 왕자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다. 내가 죽은 뒤, 모니노는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다"라며 정도전에게 "모니노를 지켜 달라"고 부탁하고 정도전으로부터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훗날 우왕이 왕이 되고 나서 정도전 일파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3회에서는 아버지를 잃고 실의에 빠져 정치에 회의를 느끼지만,[6] "왕이 되지 못하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이인임의 경고를 듣는다. 이어 탐라에서 돌아온 최영을 맞이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명을 내려보라는 최영의 호통[7] 을 듣고 겁에 질려 살려달라고 빌면서 이인임을 제외한 태후와 최영, 그리고 중신들의 탄식을 사고 만다. 후일 장성해서 말하길 아예 오줌을 지렸다고. 실제로 최영과 처음 대면하는 장면에서도 부월을 받고 천세를 받을 때 오줌을 지리는 모습이 나온다.
7회에서는 이인임 일파의 뜻을 받아들여 이인임을 지원 사격해 전세가 역전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회에서 최영에게 받은 모멸감도 있었지만 그 이전에 뚜렷한 대체재나 왕권강화 없이 이인임이 처벌받게 되면 가장 크게 흔들리는건 그 이인임에 의해 옹립된 임금 자신의 권위이기 때문이다.[8] 이유가 뭐든 왕 입장에서는 타당한 판단이었다.
2.2. 성년기[편집]
10회부터 다 자란 성인이 되어 등장했는데, 할머니 명덕태후의 승하를 슬퍼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한다. 이후 후사를 이을 원자의 탄생을 기뻐하며
궁궐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던져 환관들을 맞추는 위험한 놀이를 하거나, 최영의 간언도 개무시하고 만취한 채로 침전에서 퍼질러 자기나 하는 등, 슬슬 역사상에 나온 비행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16화에서 모후 뻘인 정비 안씨의 처소에서 술주정을 부리는데, 안씨의 미모를 두고 희롱하는 등 개막장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17화에서도 술에 취해 모후의 처소 앞에서 또 주정을 부려 정비와 얘기를 나누던 이인임도 더는 두고 보기 힘들어
18화에서도 역시 술 마시고 "사냥을 나갈 것"이라고 행패를 부리면서 만류하는 신하들을 활로 위협하다가, 그걸 본 이인임한테 활을 내려놓으라는 말을 듣는다. 처음에는 이에 반발하여 이인임에게 활을 겨누어 위협했으나, 그가 전혀 겁먹지 않고 다가가 직접 활을 내놓으라고 말하는 것에 기죽으면서, 자기 편이 아무도 없고 외로워 "모두를 죽이고 싶다"며 속마음을 털어놓어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10] 그러자 과거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했던 말을 이인임이 되새겨주자,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이인임을 국부로 삼는 희대의 인사를 단행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사에는 관심이 1도 없는지, 저자로 나가 난봉을 부리는 모습이 나왔고, 심지어 19화에서는 사람을 묶어 놓고 질질 끌면서 말을 타는 모습까지 보였다.[11] 이후 남은을 발로 걷어찬 뒤 화를 내며 하는 말이 참으로 가관인데, "평소에 말을 어찌 먹였길래 저 물건 하나 못 끌어서 빌빌댄단 말이냐? 속력이 나지 않으니, 재미가 없지 않느냐!"라는 말을 한다.
20화에서는 임견미와 염흥방에게 "국고가 떨어져서 연회를 즐길 수가 없으니, 국고를 채워 놓으라"는 어명을 내린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는 말하지 않아도 채워주시곤 했는데 내가 이런 말까지 해야하냐"며 둘을 닥달한다. 작중에서 이인임은 우왕이 환락에 빠져 아무 일도 안 하기를 바랬는지, 우왕의 유흥비 정도는 자기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채워놓고 있었던 듯[12] 하며, 우왕은 이 점을 들먹이며 임견미와 염흥방을 타박한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임견미와 염흥방은 얼른 돈을 바치지 않고 "연회랑 왕실 행사를 줄이라"며 미적거리는 반응을 보여서, 우왕은 그들에게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혹시 이인임에게 변고가 생기면 임견미와 염흥방이 눈치 볼 사람 없이 날뛸 것을 생각하고, 이인임 다음으로 믿을 만한 사람을 생각하다가 최영에게 찾아가 "칼을 갈아 놓으라"고 한다.
그러나 바로 이성계가 어전에 들어오면서 최영 장군을 돕겠다고 지원을 자청하자 윤허는 해주겠지만 교지는 내릴 수 없으니 실패할 경우 자신은 모르는 척할 것이라고 한다. 결국 최영과 이성계에 의해 이인임 일파는 모두 제압되고 이후 이인임의 집에 가서 자신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하소연한다. 하지만 의식불명인 줄 알았던 이인임이 일어나 무신정권 시절을 입에 담으며 겁을 주자 대신들을 모아놓고 이인임의 죄를 사면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인임과는 사면 교지를 내릴 때까지 다시 만나지 않기로 약속한 듯 하나, 최영이 사대부들의 설득에 흔들리기 시작하자 다시 이인임을 찾아가서 동정론을 유발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리고 앞서 이인임의 충고를 듣자고 비밀리에 행차한 게[13] 어가를 관리하는 남은에게 걸려 정도전 귀에 들어갔고 이는 이인임의 파멸을 불러온다.
23화에서 위기에 몰린 이인임이 하륜에게 우왕을 데려오라고 하지만 우왕은 채비를 하겠다고 말만 하고 가지 않은 데다 아예 만나지 않기 위해 숙위병들에게 이인임 및 관계자를 막으라고 시켰다. 이로서 이인임의 몰락이 확정되었다.
24화에서는 요동 정벌을 허가해달라는 최영의 말에 고민하다가 자신의 혈통이 의심받던 때를 떠올리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신하들의 반대에도[14] 요동 정벌을 허가한다. 고려를 무시하고 영토를 뜯어가려는 주원장의 태도에 혈통 문제로 무시당하던 트라우마가 자극당하고, 최영이 공민왕이 고토를 되찾은 것을 상기해주자 자신도 아버지 공민왕과 같이 무공을 보여서 인정을 받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출정하지는 않았고, 위화도 회군의 안전핀이었던 최영까지도 서경에 머물던 게 큰 문제.[15]
25 - 26화에서는 더욱 정서적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여 자객이 습격해오는 등의 악몽에 시달려서 항상 칼을 갖고 다니다 함부로 휘둘러서 내관들이 기겁하게 만든다. 불안감 때문에 자신이 직접 위화도로 가서 공요군을 이끌겠다는 사령관 최영을 붙잡고 가지 말라고 애원한다. 회군을 요청하는 일선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격지심과 이성계에 대한 반감까지 겹쳐서 사정을 알아주기는 커녕 더욱 무리하게 계획을 강행하려 든다. 이는 가뜩이나 사정이 어려웠던 위화도의 원정군을 빡치게 만들어 반란을 일으키는 원인제공을 한다. 그리고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소식을 듣고는 아연실색해서 자리에 주저앉는다.
27화에서는 급히 개경으로 환궁한 뒤 자포자기한 듯 전투 지휘는 최영에게 맡겨 버리고 술만 마신다. 그러면서도 이성계의 최영 탄핵 상소를 내쳤는데, 최영의 실각은 곧 자신의 무력화였기 때문이었다. 술만 마시고 있어도 개경으로 환궁한 뒤의 상황판단 자체는 정확했는데 그렇게 해서 이성계를 진압하기엔 너무 늦었다. 최후의 저항도 모두 무너지고 이성계 등 회군한 장수들은 최영의 탄핵을 요구하고 이도저도 못한 상황에서 최영과 마지막 독대를 나누는데 이 때 보여준 연기력이 제법 절륜이란 평을 받고 있다. 패배하고 돌아와 죽음을 청하는 최영에게 "중과부적이었지 않습니까.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위로하는 장면은 우왕의 최영에 대한 감사와 진심을 느끼게 만든다.
28화에서 이성계 등에게 군권을 반납받고 토사구팽해버리려는 계획을 세우나 이를 알게 된 장수들이 빡쳐서 반납은 커녕 자신의 폐위를 원한다는 소식에 격노한다. 하지만 그들을 제압할 무력이 없기에 자신에 대한 서운함이 있으면 용서달라는 말을 정몽주와
이성계가 나간 뒤, 이대로 가다가는 폐위당하겠다는 불안감에 칼을 빼들고 어차피 이판사판입니다[16] 라는 말과 함께,[17] 환관들을 무장시킨 다음[18] 자신도 직접 갑옷을 입고 장수들이 회합하고 있다는 이성계의 집을 기습한다.[19] 하지만 모든 걸 알고 있던 이성계는 이지란을 시켜서 자신의 사가에 호위병을 단단히 배치시켜놓았고 우왕과 내시들은 집 안에 들어오자마자 매복한 정예군에게 완전 포위당한다. 결국 우왕은 싸움 한 번 못하고 진압당한다. 그리고
"그대를 믿었던 자들의 최후를 뻔히 아는데, 과인이 어찌 너를 믿을 수 있겠느냐? 광평군이 그랬고, 최영이 그랬느니라! 헌데, 과인이라고 다르겠느냐? 자, 어디 네 마음대로 해보거라! 목을 자르던, 사지를 자르던 어디 네 마음대로 해보란 말이다! 이게, 네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더냐?"
라고 말하고는 크게 웃는데, 그 웃음에 광기가 서려 있다. 이인임, 최영 등 강한 신하들에게 철석같이 믿고 의지해오며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을 보여준 우왕이지만, 그런 그로서도 이성계는 최후까지 믿을 수 없었던, 의지하고 싶지 않았던 인물이었던 것. 사실 그간 우왕이 지속적으로 보여준 이성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을 생각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20] 그리고 나레이션을 통해 폐위되어 유배되었음이 알려진다.
31회에서는 강화도 행궁에서 자신을 '전하'라 부르던 궁녀에게 화가 나 그녀를 죽이려 들자, 궁녀가 겁에 질려 '폐하'라 부르는 장면으로 등장. 거의 궁녀를 칼로 죽이기 직전에 강 내관이 이인임의 죽음과 도당에서 사전 혁파 논쟁이 일어난 사실을 알리면서 칼을 버리고 "이성계 그 놈이 별 짓을 다한다"며 웃는다. 32회에선 이성계 일파가 주도한 전제개혁 대신 이색의 1전1주제가 통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좋아하며, 김저, 정득후를 행궁으로 불러 "이성계를 암살하라"는 밀명을 내린다. 그러나 33회에서 곽충보의 밀고로 김저와 정득후의 거사가 실패하고, 그의 눈 앞에서 변안열도 잡혀가면서 다시 유폐당한 후 강화도를 떠나 강릉으로 유배를 갔다.
2.2.1. 최후[편집]
왕씨 고려를 지키기 위해 정몽주가 폐가입진(廢假立眞)을 주장하면서 우왕은 가짜 왕으로 낙인 찍혔고, 결국 34회에서 참형에 처해지며 사약을 마신 아들 창과[21] 함께 처형당한다. 야사에서 자신이 왕씨의 핏줄이란 증거로 겨드랑이에 용의 비늘이 있다 얘기하던 부분을, 용의 눈물에서는 위엄있게 실제로 있는 용의 비늘을 보여준 후 사약을 마시고 죽는 것으로 연출한 반면에, <정도전>에서는 자기 몸을 인두로 지진 흉터를[22] 비늘이라고 외치며 자신이 끝까지 왕씨임을 주장하다 결국 칼을 맞고 절명하는 것으로 처리되었다.[23] 마지막 장면.
야사를 반영하여 죽는 순간에 저주를 내리며 섬뜩하게 웃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저주가 뒷날에 벌어질 일의 서막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보면 더욱 소름끼치는 일이다. 참고로 야사에도 등장하는 우왕의 저주와 그에 관한 자세한 일화는 사인검과 우왕과 야사 문서를 참고하자.(우왕이 병사들에게 끌려나온다)
우왕: 놔라, 이놈들! 놓아라! 놓으라 하지 않느냐! 놔라!
(강제로 꿇어앉은 우왕에게 신하가 교지를 읽는다)
신하: 죄인 신우를 참하라는 어명이 내려졌소이다!
강 내관: 폐하...
우왕: 네놈이 지금 짐을 가리켜 신우라 하였더냐?
신하: 시간 없다! 속히 어명을 집행하라.
(무관 한 명이 검을 뽑고, 우왕이 자신을 꿇어앉힌 병사 둘을 뿌리치고 일어난다)
우왕: 네 이놈! 도성으로 가거든 똑바로 전하거라, 짐은 신씨가 아니라 왕씨라고! 신돈의 아들 신우가 아닌, 공민대왕의 장자 왕우라고 말이다! 알겠느냐?
신하: 무릎을 꿇으시오!
우왕: 믿지 못하는 것이냐? 오냐, 좋다!
(우왕이 왼쪽 가슴의 흉터를 신하에게 보여준다)
우왕: 보아라, 이게 내가 왕씨라는 증거이니라!
(하지만 신하들은 시큰둥하고, 강 내관만 우왕을 안타깝게 바라본다)[24]
우왕: (다시 흉터를 보여주며)이게 서해 용왕의 후손들이 갖고 있다는 용의 비늘이니라! 봐라, 이게 왕씨의 증표다! 이래도 내가 신우 같으냐? 내가 신돈의 아들인 것 같냔 말이다.
(신하가 무관에게 눈짓으로 지시를 내린다)
우왕: 이놈들이 어찌하여 대답을 않는 것이냐? 나는 왕우, 공민대왕의 아들이니라!!
(뒤에서 무관이 칼로 우왕의 등을 베고, 우왕이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우왕: 내 성씨를 바꾸고... 아비를 갈아치운 놈들...(우왕이 입에서 피를 토한다) 그 놈들에게... 서해 용왕의 저주가 내릴 것이야... 이히히히...
(우왕이 쓰러져 숨을 거두고 강 내관이 통곡한다)
3. 캐릭터 설정[편집]
드라마상으로만 보면 굉장히 불우한 인물. 왕의 사생아로 태어나 처음에는 존재조차 감춰지다 나중에야 공인받았지만 그 때부터 신돈의 아들이라는 의혹이 쌓였고 아버지 공민왕은 죽은 노국대장공주만 그리며 그런 아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하다 죽어버렸다. 제대로 제왕수업을 받은 적도 없이 허공에 붕뜬 상태에서[25] 이인임에 의해 생각지도 못한 왕이 되었으나 친모는 산 채로 강물에 던져진 지 오래고, 할머니는 자신의 혈통을 부정하며 임종 직전까지 사랑을 준 적이 없었다. 그나마 의지하던 유모는 다른 사람도 아닌 최영의 손에 죽었다.
제대로 사랑받은 적이 없는 셈인데 부친대에 이미 피폐해질 만큼 피폐해진 나라사정이 주는 부담은 또 엄청나게 많다.[26] 자신을 왕위에 올려준 사람이자 그나마 믿고 기댈만한 상대였던 이인임이 하필이면 나라를 좀먹은 권신이자 자신에게 모멸감을 주는 인물로 자신의 권세를 위해 우왕이 제대로 왕 노릇을 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막았다.[27] 이렇게 되니 왕임에도 나라일에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유일한 자유는 유흥 뿐이었다. 인간적으로 성숙하기 힘든 불행한 가정환경에 제대로 뭘 배운 적도 없고[28] 결정한 적도 없으니 성격이 막돼먹으면서도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우유부단함이 나중에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본인은 그토록 의심받고 집착하는 혈통 외엔 아무 가치도 없는 인간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인임 일파처럼 국정을 농단하기 위해 이용하려 드는 이들이나 최영과 정몽주처럼 고려의 전통적 질서에 의거하여 충성을 바치는 이들에게나 의의가 있을 뿐, 정도전이나 윤소종, 이성계처럼 국가의 번영과 개혁에 의의를 두는 이들에게 우왕은 그야말로 애물단지가 따로 없었다. 정도전이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밥버러지도 이런 밥버러지가 없었던 셈. 우왕이 자신의 혈통과 관련해 서해용왕이란 미신적 요소[29] 를 운운하는 걸 보면 그런 혈통을 통한 포장 외엔 스스로에게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무모한 짓을 일삼으며 화를 자초하고, 무분별한 행동으로 자신은 물론 아들의 죽음까지 초래하게 된다.
이성계를 정말 싫어하여 막 대한다. 처음에는 "왜구의 침입에 이성계를 부르는 게 좋지 않냐"고 하고, 황산대첩 후 상을 내릴 때도 흐뭇한 표정이었으나, 이후 "이인임을 명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자"고 한 이성계에게 화를 내거나, 최영이 요동정벌을 위한 군사를 훈련시키는 자리에서 윽박지르는 등, 이인임이나 최영에겐 약한 왕이 이성계에게는 강하다. 나중에 최영에게 그런 속내를 토로하는데, "이성계가 겁나서 그랬다"고 말한다.
33회에서는 위에서 언급된 캐릭터 설정들을 반영해서 김저의 이성계 암살 계획이 들통난 후 자신을 왜 죽이려 했냐는 이성계에게 "짐과 네놈이 같으냐? 네놈과 짐은, 혈통부터가 다르지 않느냐! 짐은 서해 용왕의 후손인 왕씨, 기껏해야 너는 천한 북방의 야인들[30] 과 빌붙어 먹은 촌뜨기가 아니더냐!"라고 비아냥거리면서 혈통 컴플렉스와 이성계에 대한 반감을 동시에 드러냈다. 그리고 이 대사는 바로 다음회인 34회의 우왕 사망 플래그가 되어버린다. 우왕의 사주로 일어난 김저와 정득후의 암살 미수 사건으로 우왕은 물론 그의 아들인 창왕과도 공조를 완전히 포기한 이성계 일파와 무능한 저 둘을 폐위시켜서라도 고려 왕조를 지키려는 정몽주의 생각이 맞아떨어지면서, 우왕은 공민왕의 장자가 아니라 신돈의 사생아이며 그의 아들인 창왕 역시 신돈의 핏줄이라는 소문을 이용해 가짜를 폐하고 진짜를 세운다는 폐가입진을 명분으로 삼아 우왕과 창왕 부자를 나란히 참살해버린 것이다. 자신이 유일하게 자랑거리로 삼고 집착하며 내세우던 서해 용왕의 후손이자 고려 왕가의 후손이라는 혈통마저 부정당한 채, 아들과 함께 나란히 신돈의 핏줄로 몰려 처형당했고 사후에도 역사서에 반역자로 기록되었으니 우왕에게 있어 이보다 더 비참한 최후는 없었을 것이다.[31]
4. 기타[편집]
정도전 갤러리에선 얼음과 불의 노래의 조프리 바라테온과 비교되기도 했다. 무능한데 지나치게 오만하고 포악하다는 점, 포악하다 못해 똘끼까지 넘친다는 점, 무모한 짓과 병크를 반복한다는 점, 이렇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부모에게 제대로 된 사랑과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32] 그리고 겉으로는 강한 척 하지만 실상은 무능력하고 나약한 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출생의 비밀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의외로 공통점이 꽤 많다. 차이점은 우왕은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이라도 있고, 자기에게 치욕을 준 상대라도 충성심만 확실하면 크게 믿는다. 조프리는 자기를 오줌 지리게 하고 목숨을 구걸하게 한 최영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할 사람이 절대 아니기에 오히려 본인이 직접 최영을 석궁으로 쏴 죽이러 들 것이다.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실황을 할 때 야갤러들이 자학의 의미로서 우왕+ 야갤러란 의미로 우갤러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는 짓이 자신들과 비슷하다는 반쯤 자학의 의미가 담긴 별명.
정도전이 종영된지 8년이 지난 후 자사의 드라마인 태종 이방원에서 다시 우왕이 등장했는데 임지규가 배역을 맡았다. 1화부터 4화까지만 나오는 적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박진우보다는 아니지만, 임지규도 제법 광기 넘치고 포악할뿐만 아니라 아버지인 공민왕의 죽음에 대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건 동일하다. 이성계에 대한 증오에 매몰되어 위화도 회군 직후 정도전에서도 묘사된 것처럼 환관들을 무장시켜 직접 이성계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하여 폐위되고,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김저와 정득후에게 이성계의 암살을 사주하며 온갖 무리수를 두다가 자신은 물론 아들의 죽음까지 자초하는 모습도 비슷하다. 다만 폐가입진으로 처형당할 때 야사를 반영하여 자해하여 낸 화상 자국을 용의 비늘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은 고려 왕씨가 맞다고 주장하다가 단번에 등을 베여 죽은 박진우의 우왕과 달리, 임지규의 우왕은 용의 비늘을 보여주며 고려 왕씨의 혈통이라고 주장하는 건 안 나왔고 이성계와 그의 가문에게 온갖 저주를 퍼붓다가 등이 베이고 칼에 두 번 찍혀서 훨씬 더 잔인하게 죽었다.[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