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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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일반적인 의미
2. 伏線 (문학)
2.1. 떡밥과의 차이점
2.2. 관련 문서



1. [편집]



1.1. 일반적인 의미[편집]


겹줄(═)을 한자로 복선이라고 한다.

확장 ASCII 코드에도 괘선 문자의 일종으로 들어있다. 예전 DOS 사용자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KS X 1001 완성형 코드에는 복선으로 된 괘선 문자가 없고 굵은 선이 복선을 대신한다. (Microsoft Windows 기준으로) 입력창에서 ㅂ을 누르고 한자를 눌러보자.


1.2. 철도 용어[편집]


철도가 하나가 아닌 둘 이상이 놓여있는 철도를 복선철도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2. 伏線 (문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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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용어인 '떡밥'이라는 단어에 대한 내용은 떡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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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 Foreshadowing

문학 작품 등에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미리 독자에게 암시하는 기법. 국어 사전 내용

떡밥이나 플래그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은데, '복선'이란 용어는 어디까지나 문학계의 논문에도 사용되는 전문용어이기 때문에 떡밥 또는 플래그와 혼동하는 사람이 많더라도 그 뜻을 분명히 가려서 원래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자세한 차이에 대해서는 후술 문단으로.

플래그사망 복선, 패배 복선, 배신 복선 등 복선으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는 오역으로, 플래그라는 단어는 클리셰에 더 가까운 뉘앙스를 준다. 플래그는 복선의 조건인 '처음 볼 때 그것이 사건의 진행을 암시한다는 관계성을 모른다'는 점을 충족하지 못하는 만큼, 엄밀히 말해 복선이 아니고 떡밥에 해당한다.

  • 예시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는 소녀가 이런 말을 한다. "난 보랏빛이 좋아." 보랏빛은 고귀함이나 외로움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죽음의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후 소녀는 죽는다.[1]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은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로 시작된다. 비는 음산한 분위기, 눈물(슬픔), 죽음을 암시하고 이후 작품 역시 부인이 죽으며 그렇게 진행된다.


2.1. 떡밥과의 차이점[편집]


일단 떡밥은 복선과 달리 학술 용어가 아니고 사전에 실린 용어도 아닌 은어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2] 일반적으로 떡밥은 이야기에 무언가가 숨겨져 있음을 대놓고 드러내어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수법인 반면, 복선은 처음 볼 때는 사건과의 관련성을 깨닫기 어렵지만 나중에 돌이켜볼 때 사건의 진행을 암시했던 것임을 깨달을 수 있는 장치를 뜻한다.

떡밥과의 차이점을 명확히 하자면, _떡밥은 그 존재를 독자가 확실히 인지하는 것을 의도하고 글의 진행을 예고하거나 이야기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인 반면, 복선은 이야기의 진행과 반드시 관련되지는 않는다._ 복선과 떡밥 둘 다 이후의 전개와 연관되지만, 사용 방식부터가 다르다. 가령 주인공이 수사하는 살인사건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어떤 기업의 범행으로 밝혀지는 이야기라고 할 때, 떡밥이라면 당연히 주인공이 엉뚱한 추론만 하는 사이 누가 봐도 수상쩍게 생긴 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해당 기업 로고가 달린 차를 타고 살인현장에서 떠나는 장면이 비중 있게 나올 것이다. 하지만 복선은 그렇게 명백하게 나오지 않고, 가령 현실에서 일어난 비슷한 사건의 특정 요소를 인용하거나 하는 식으로 보는 사람이 처음에는 쉽게 느끼기 어려울 정도의 징조나 암시 수준에 그친다.

이렇게 떡밥은 그 목적부터가 대놓고 글의 진행을 예고하거나 영향을 주기 위한, 개연성을 강화하려는 설정인데, 복선은 글의 개연성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또한, 소나기의 보랏빛에 대한 발언이나 운수 좋은 날에서의 추적추적 내리는 비 같은 것들은 작품 내적으로는 진행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편의상 작품 내 등장인물이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는 것은 떡밥으로, 작품 내 등장인물이 제4의 벽을 넘지 않으면 모를 수 밖에 없는 것은 복선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즉, 떡밥은 작중에서 사용했다면 반드시 나중에 그 떡밥에 대한 추가적인 묘사를 해서 마무리를 지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를 실패할 경우는 작품의 개연성이 구멍투성이가 되어서 결말 부분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지만, 복선은 작중에서 사용했더라도 그것이 복선인지 사용 단계에선 아무도 알 수 없으며, 나중에 결말에서 복선을 회수했을 때에 비로소 복선임이 명확해지고 글의 매력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3] 떡밥이 회수되지 않으면 글의 구조적 완성도나 개연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과 별개로, 떡밥이 미리 제공되지 않는다고 해서 꼭 개연성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자세한 것은 떡밥 문서로.

대중 창작물에서는, 복선이 저절로 배치되지 않은 채 갑작스러운 반전이 일어나면 반감을 사기 쉽다. 그리고 작품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때 개연성이라는 표현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복선 없는 반전을 '개연성이 없다'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복선은 존재하는 것이 더 개연성이 없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어떠한 사건이 일어날 징조가 미리 일어나야 할 논리적, 과학적 이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복선을 넣는 것은 문학의 최대 목적은 개연성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감상자들이 복선 없는 반전에 어색함이나 반감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개연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적 본성장르의 관습 때문일 뿐이다. 인간은 이야기를 논리적, 인과적으로 이해하기를 바라는 본능이 있고[4], 이는 작품의 내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오랜 세월 축적된 장르의 관습에 따라 복선을 통해 앞의 전개를 예측할 수 있고, 예측에 실패했더라도 나중에 돌이켜 보면 자신이 예측할 수 있었음을 한탄하게 된다. 그럴 경우 작가에 대한 비난을 하지 못하게 되고 작품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복선이 반드시 숨겨져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드러나더라도 복선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스토리의 완결성과 별개로 존재하는 장치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운수 좋은 날에서의 복선은 상당히 노골적이지만[5], 그럼에도 교과서적인 복선으로 인정받는다.

당장 떡밥 문서에 나온 복선의 예시인, '현실에서 일어난 비슷한 사건의 특정 요소를 인용했다는 것'이 바로 제4의 벽을 넘은 것(현실)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작가 입장이 포함되지 않은, 독자 입장만에서의 구분법이라 정확하게 들어맞지는 않으며 독자 입장에서는 작가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작가가 설명하지 않는 한 이렇게 구분할 수 밖에 없다. 한국의 문단이나 문학계와는 다르게 영미권에서는 복선과 떡밥을 구분하지 않고 둘 다 Foreshadowing(앞으로의 전개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한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어느쪽이 옳다 그르다를 판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복선의 정의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순수문학계나 강단과는 달리, 일반에서는 그저 '숨겨놓은 떡밥' 정도로 쓰이고 있다. 이는 일반 대중들이 복선과 떡밥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_복선은 엄연한 학문적 용어이기 때문에 대다수 일반인이 단어 뜻을 오용한다고 마치 표준어를 고치듯이 복선의 정의를 바꿀 수는 없는 일_이다. 학술적으로 정의된 개념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오용한다는 것을 이유로 '그게 그거다, 구분의 실익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군중에 의거한 논리적 오류에 해당한다.


2.2. 관련 문서[편집]




3. [편집]


항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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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와 관련해 작가 황순원이 단지 보라색이 예뻐서 이런 구절을 넣었다는 카더라가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 카더라가 퍼진 건 기껏해야 2011년인데 황순원은 2000년에 타계했다. 게다가 애초에 황순원 본인은 살아생전 인터뷰를 모두 거절했다.[2] 국어 사전[3] 특히 다시 감상할 때 더욱 매력있기도 하다.[4] 현실의 사건들과 이야기의 차이점이기도 하다.[5] 물론 이는 복선을 찾아내는 것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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