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종(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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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오으로 덮는다 하시니 어이가 없어 드린 말씀입니다."[1]


"어차피 망해 없어질 나라이니, 종말이나마 화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 개요
2. 작중 행적
3. 캐릭터 설정
4. 기타


1. 개요[편집]


배역은 이병욱[2]. 여담으로 세종 때 예문관 대제학을 맡았고 대왕 세종에서도 비중있게 묘사된 윤회의 아버지이다.

염흥방과 마찬가지로 호가 동정. 이쪽은 桐亭인데, 염흥방과는 달리 대놓고 인물자막으로 '동정 윤소종'이라거나 윤소종을 가리킬 때마다 '이보게 동정' 하는 대사가 계속 나오는지라 시청자들에게 대단히 묘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래서 정도전 갤러리에서는 아다갑이라는 괴이한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시청자들뿐만 아니라 현장의 다른 배우들 역시 윤소종 역의 이병욱을 더러 동정이라 놀린다고 한다.


2. 작중 행적[편집]


남은이 혈기방장한 것으로 젊은 시절의 정도전을 능가한다면, 윤소종은 젊은 시절의 정도전이 공자님 현신으로 보이게 만드는 여말선초 최강의 독설가라고 할 정도이다.

최초 등장은 22회로 정도전과 우연히 길에서 부딪쳤을 때 정도전은 동문 후배라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지만, 고개만 한번 까딱이고 무시하며 떠난다. 옆에 있던 남은은 '저 사람이라고 당신 소문 못 들었겠냐?'라고 일러준다. 이인임에게 무릎 끓고 벼슬 달라고 빌었다는 소문이 있다지만 엄연히 동문 선배이고 염흥방처럼 조정에서 전횡하는 것도 아닌데 저러는 것을 보면 매우 꼬장꼬장한 성격으로 보인다. 정도전은 야인 생활하더니 성미가 더 팍팍해졌다며 투덜거렸다. 최영이 이인임을 사면하려는 움직임에 권근, 이숭인, 남은을 비롯한 사대부가 반대하여 도당 앞을 점거하자 그 자리에 등장하여 이인임 사면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반박하는 강직함을 보여주었다.

윤소종: "궁금합니다. 대체 대감께서 말씀하시는 이인임의 공로가 무엇입니까? 티끌만한 공이라도 있다면 소인, 무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직하겠습니다."

최영: "......."

윤소종: "이인임은 사직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부귀영화만을 탐닉하였습니다. 벼슬을 팔고 뇌물로 옥사를 해결하니 관료들은 직무를 등한시하고 권문세가에 줄대는 데만 혈안이 되었습니다."

최영: "......."

윤소종: "대국과의 외교에 실패하였고, 외적을 막지 못했고, 백성들을 먹이지 못했습니다."

정도전: "......."

윤소종: "헌데 어찌하여 대감께서는 공로 운운하며 터무니없는 망발을 늘어놓는 것이오이까?!"


최영은 화가 나 칼을 뽑아들었지만 워낙에 논리정연하고 바른 말이었기에 반박도 못한 채 칼을 거두고 물러나야 했다. 한편, 역성이란 대업을 위해 인재를 모으는 중이던 정도전이 이 모든 걸 지켜보고서 흐뭇한 표정으로 윤소종을 눈여겨본다.

뒤이어 최영과 배극렴, 변안열의 대화에서 나름의 이유가 나왔는데, 원래 일찍 문과에 급제한 수재였으나 이후 정도전 못지않게 귀양살이를 한 것으로 보인다.

23회에서는 귀양가는 이인임을 보며 "순진한 최영이 늙은 도적을 살려주는구만. 능지처참효수를 당해야할 도적놈을 함거씩이나 태워서 유람을 보내다니. 참으로 빌어먹을 세상이 아닌가!" 하고 탄식한다. 이 대사는 실제로 고려사 최영 열전에 기록된 대목으로, 백성들이 '정직한 최공(崔公)이 사사로운 정으로 늙은 도적을 살려줬다'고 비판했다고 전해진다.

25회에서는 요동 정벌과 동시에 진행된 칭제건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사대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원정이 실시되면 나라가 망하는데 그런 문제를 논의하냐고 일갈한다. 반대 명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이색에게 그게 아니라 최영이 무서워 요동 정벌을 막지 않은게 아니냐고 까버리고 어차피 망할 나라 칭제건원하면 화려하기는 하겠다며 폭언을 퍼부으며 빈정거린다. 이때 그를 보는 정도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26회에선 자신을 포섭하기 위해 부른 정도전에게 처음에는 평소처럼 까칠하게 굴지만, 정도전이 반역이 꼭 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협력을 요청하자 그 대답을 통해 정도전이 처음부터 역성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음을 깨달으며 "이것이 영감의 본 모습이셨습니까?"란 질문과 함께 썩소를 짓는 모습을 보이면서 정도전의 부탁을 수락한다. 즉, 이 말을 듣는 순간부터 정도전의 혁명에 찬동하기로 결심한 것. 아마 실제 역사에서는 남은의 역할이었던 회군의 정당성 부여와 최영에 대한 탄핵을 대신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28회에서 정도전의 사주를 받아 우왕의 폐위 여론을 조성하고 이성계에게 한서 곽광전을 건네 넌지시 폐위를 권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친구이자 만만치않은 아가리 파이터 조준과 만나기도 한다. 29화부터는 남은, 이방원과 함께 정도전 일파에 자연스럽게 끼어있다. 이후 토지제 개혁을 준비중인 정도전의 부탁으로 조준과 다리를 놓아주었다.

30회에서는 이인임의 복귀를 지지하는 이색에게 꼬장꼬장 대드는 성질머리를 보여준다. 게다가 정도전이 이색에게 폭언을 저지르자 주변 사람들은 경악스런 표정을 짓는데 조준과 함께 단 둘이서만 몰래 속시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31화에선 정도전, 남은, 조준, 이방원과 함께 목숨을 걸고 역성혁명을 성공시킬 것을 결의한다.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겠냐는 물음에 혹세무민하고 수탈을 일삼는 불교를 억압하고 성리학을 국시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조준의 토지개혁안을 반대하는 사대부들에게 언제부터 지주들의 불안까지 사대부들이 신경써주었냐며 비난, 그리고 사대부중에서도 대농장 지주가 많음을 들먹이며[3][4] "지주 놀음은 퇴청 이후에나 하십시오. 소작인들이 일을 하는 농장있는 으리으리한 기와집에 들어가 노비들이 올려주는 식사를 드시면서 말입니다!"라는 광역 디스를 행한다.[5]

32회에서는 최영의 처형 장면에서 "최영의 공은 한 나라를 구했으나 그 죄는 천하를 덮었다." 라는 발언을 하면서 최영을 디스한다. 단, 실제 역사에서는 극중에서처럼 형장에서 말한 게 아니고 고려사에 담긴 최영에 대한 윤소종의 평가로 나온다. 끝내 최영이 처형당할 때, 그와는 반대편에 섰던 이들조차 그 장면을 안타깝게 지켜보는데 반해 본인만 평안한 표정이었다.[6] 이후 온건파 사대부들과의 사전혁파 vs 일전일주제 대립에서도 여지없이 폭풍 어그로를 끈다. 사전제를 폐지한 주나라는 8백년이 갔지만[7], 그렇지 않은 진나라는 15년을 갔다고 주장하는데 사전제를 유지한 고려는 5백년을 유지했다는 반박에 "지금의 고려가 나라였습니까?"라는 말을 꺼낸다. 그 말에 조준마저 당혹해서 윤소종을 말리고, 사정을 간파한 하륜에게 "사전을 혁파하지 않으면 나라라도 뒤집어 엎겠다는 소리로 들리는군요."라며 돌직구를 맞는다. 당사자는 아무 변화없이 편안한 표정이었지만 조준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식겁했다.

35회에서는 정도전이 정몽주에 대한 정과 탄핵의 남발에 대한 경계 때문에 정몽주의 탄핵을 거부하자, 이에 둘 사이의 우정 때문에 그러느냐며 의문을 표해 정도전을 흠칫하게 만든다. 그리고 기어이 독단적으로 간관들을 데리고 창왕 옹립을 주도한 이색을 탄핵한다. 정몽주가 안 된다길래 이색을 탄핵했습니다.라며 이색을 탄핵한 이유를 밝히는데, 사실 그전부터 고려 성리학의 유종이자 자기 스승인 이색을 거짓된 왕을 보위에 올린 역신이라며 거침없이 비난하곤 했었다. 이에 놀라 급히 궁궐로 온 정도전에게 되려 '칼을 휘두르는데 망설이지 마라', '방해된다면 정몽주라도 쳐야 한다.'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8] 윤소종의 충고를 듣고 정도전은 이색의 탄핵을 찬성하고 밀어붙인다.

36회에서는 정도전이 가택 연금된 상황을 두고 공양왕에게 지금 정쟁을 원하는 거냐고 강경하게 따지다가 불경죄로 끌려나가 형장을 맞고 옥에 갇혔다.

공양왕이 화를 낸 건 절대 과민반응이 아니다. 본래 임금의 권위 아래에 한뜻으로 집결하여 어명을 받드는 것이 신하의 의무인데, 붕당을 짓고 정쟁을 벌이는 것은 결국 그들의 주군인 임금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싸우겠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신하들은 (현실이 어떻다 할지라도) 임금의 어전에 대고 함부로 붕당이니 정쟁 운운하는 얘기를 꺼내기를 삼갔다. 조선시대 명재상 이준경은 유언으로 붕당의 위험을 언급했다는 것만으로 이이를 비롯한 사대부들에게 가열차게 까이기도 하였다. 그러니 윤소종이 도당도 아니고 어전에 대고 '정쟁을 바라느냐'고 일갈한 것은 공양왕 말마따나 왕을 협박하는 소리로 비춰질 공산이 크다. 쉽게 말하면 왕에게 대놓고 "지금 우리랑 한판 뜨자 이겁니까?"라고 따지는 거다. 타의에 의해 강제로 왕위에 올려진 허수아비 왕이라지만 이런 언행은 금도를 넘은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몸을 사리던 공양왕조차도 "그대가 과인을 겁박하는 것이오?"라며 강경하게 나갔고, 이때 같이 갔던 한 성질하는 남은, 조준도 당황하면서도 반대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윤소종이 잡혀가는 걸 바라만 봐야했다.

이후 향처 한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이성계가 도성을 떠나기 전에 정몽주에게 요청해서 풀려났다. 37회에서는 천출이라 탄핵받은 정도전을 구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38회에선 이성계가 낙마사고를 당한 후 공격당할 것을 대비해서 움직이려고 했지만 한발 늦어서 귀양을 가게 되었다. 40회에선 정몽주 척살 이후 조정에 귀환해 조준, 남은과 함께 공양왕의 폐위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인다.

41회에서 이성계가 즉위한 뒤 이색 문하 유생들이 무언의 시위의 의미에서 과거에 불참하고 다른 유생들이 이에 가담하자 정도전, 남은과 함께 이 문제를 논의한다. 본인은 역시나 강경책을 주장했지만 다시 과거를 실시하라는 정도전의 지시에 순응. 42회에서는 의안군 방석을 올리면 불화의 불씨가 될 것이라면서 반발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정도전까지 방석을 지지하자 조준과 달리 수긍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이후에는 정도전과 함께 『고려국사』 편찬에 참여한다.

43회에서 세자 이방석의 스승으로 나와 태조 앞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첫 등장했다. 이후에는 계룡산 천도를 강행하려는 태조 앞에서 지지않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신료들과 연좌시위까지 벌였다. 이때 태조의 지시를 받은 이지란이 숙위병을 동원해 해산시키고 순군옥으로 압송될 위기에 처했으나 조준이 좌시중의 권한으로 막았고 곧 명나라 사신길에서 돌아온 정도전의 변호로 무사히 넘어가고 해후를 풀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도전은 최씨 부인의 입을 통해 그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앞서 대전 앞에서 신료들과 석고시위를 하던 윤소종이 천도 문제가 해결되자 정도전의 손을 잡고 일어나는 장면에서, 힘겹게 일어나는 데다가 비틀대기까지 하던 모습은 그의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복선이었던 듯하다.

사망 이후 일대기를 설명하는 나레이션이 흘렀다.

"윤소종. 찬성사를 지낸 윤택의 손자로, 공민왕 대에 장원으로 급제한 후 성균사예, 성균관 대사성 등을 역임했다. 대쪽같은 성품으로 부패한 관료들과 불교의 폐단에 대한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이로 인해 남을 비방한다는 이유로 탄핵을 당하기도 하였다. 경사를 두루 섭렵하고 시문에 능했으며 가산이 궁핍해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태종과 세종조에 천재로 이름을 날린 윤회의 아버지다. 본관은 무송, 호는 동정이다."


3. 캐릭터 설정[편집]


언변이 장난 아니라서 그런지 등장할 때마다 실시간 검색어에 자주 오른다. 타고난 언변과 싸움닭 기질로 혁명파 내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하고 있지만, 그 싸움닭 기질 때문에 공양왕에게 찍혀서 귀양을 갔고 정몽주 사후, 즉 고려가 망하기 직전에 가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하필 여말 최고의 격동기에 정계를 떠나있었던 탓에 공신책록에서 밀렸다. 건국 후에는 정도전과 함께 고려사 편찬에 참여하는 등 다시 날개를 펴나 싶었으나 겨우 1년만인 1393년 병사한다. 어쩌면 5년 뒤에 벌어질 참상을 생각해보면 험한 꼴 안 보고 곱게 죽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윤소종 역시 곽광전 일화에서 엿보이듯 은근히 줄을 능숙하게 타는 편이었고, 이방원은 윤소종의 아들인 윤회를 매우 총애했다고 하였으며, 윤소종은 정도전과도 친분이 있긴 하지만, 조준과의 인연이 정도전보다 더 깊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생존했을 확률도 충분하다. 심지어 정도전의 최측근이던 남은도 태종이 즉위 후 무인정사 때 안 죽었으면 지금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으며, 방번에게도 거사에 동참할 걸 권유한 걸 보면 남은과 이방번도 반드시 죽일 대상으로는 생각 안 한 것으로 보이니, 윤소종도 적극적으로 정도전과 방석의 편을 들지 않는 이상 꼭 죽일 생각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담으로 정말 일찍 죽은 게 복이 된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은 배극렴이다. 배극렴은 이방석을 지지한 것으로 졸기에서 대놓고 욕먹은 사람이라 무인년까지 살아있었다면 100% 죽었을 것이다.

작중 굉장히 냉철한 인물로 묘사되어 놀라울 정도로 표정이 잘 안 바뀐다. 정도전이 역성의 뜻을 내비치며 끌어들일 때도, 위화도 회군 때 최영에 대한 탄핵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도, 자신의 말을 역모로 해석할 여지가 있음을 암시하는 말을 하륜에게서 들을 때도, 심지어 자신의 간언에 진노한 공양왕이 자신을 끌어내라고 숙위병들을 부를 때도 항시 평온한 표정으로 일체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이 특징은 평온한 표정과 목소리로 엄청난 내용을 말해서 상대방을 경악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두드러진다. 그나마 윤소종이 당황한 때는 첫 등장에서 정도전과 부딪혔을 때,[9] 도당 앞에서 시위하던 정도전이 얻어터지는 모습을 보고 남은과 같이 걱정하며 달려갈 때, 정몽주의 폐가입진론으로 이성계가 아닌 정창군 왕요가 왕이 되었던 때[10] 정도. 다만 28화에서 친구인 조준과 만났을 때는 평소 그답지 않게 상당히 반가워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원체 포커페이스라 그렇지 사실 남은 만큼이나 자기 혈기를 주체 못하는 편이다. 좋고 싫음도 극명하고, 마음에 안들면 꼭 표현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행동을 예측하기는 쉬운 편.

본작에서는 실제와는 달리 매우 강직한 인물로서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적아군가리지 않고 독설을 잘 날렸다.[11] 이런 성품때문에 정도전에게도 신뢰를 많이 받았고 사망으로서 정도전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윤소종이 죽은 뒤에 정도전의 독주로 조준과의 사이가 갈라졌는데, 만약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조준과의 불화을 조정해준다던가 정도전에게 직언을 하여 바로 잡아줬을 거라고 예상했다.

여담으로 적지 않은 여성 시청자들이 섹시함에 반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병욱 배우 본인이 원래 모델 출신인데다 비주얼이 훈훈하고, 단정한 포커페이스와 깔끔한 목소리의 매력이 크게 어필한 듯하다. 이런 피지컬도 피지컬이지만, 드라마 전개상 주요 등장인물들이 대체로 답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잦은데도 어떤 상황에서나 말을 절대로 가리지 않는 직설적인 성격도 섹시함을 유발하는 한 요소에 해당할 것이다.

4. 기타[편집]


본판인 역사인물 윤소종 문서보다 본 문서가 먼저 개설되었다. 사실 윤소종이 역사상에서 그렇게 존재감이 큰 인물이 아니었는데 본 드라마에서 재창조에 가까울 정도로 두드러지게 묘사한 인물이지만 실제 기록되어있는 타협없는 뚝심어린 성격이 고증되었다. 또한, 역성혁명파의 일원으로서 활동한 것은 사실이며 정도전, 남은, 조준 등에 비하면 밀리지만 그들 다음 가는 정도로는 활약했다.[12]

2014년 3월 22일에 실시된 사회복지직 공무원 시험에 윤소종이 언급되어 화제가 되었으며 '사회복지직 윤소종'이라는 검색어 자동완성도 생겨났다. 게다가 시험 문항에서는 하필이면 온건파 사대부에 해당하는 예시로 이색, 정몽주와 함께 묶여있었는데, 보통 아예 모르는 예시 하나가 잘 아는 두 개와 함께 묶여 있으면 맞겠거니 하는게 사람 심리라 낚시성이 강했다. 교과서뿐만 아니라 웬만한 공무원 시험 교재에도 이인임, 염흥방, 임견미는 나와도 전혀 언급되지 않는 윤소종이 나온 것으로 보아 출제위원이 본 드라마의 팬이 아닐까 추측하는 사람이 많다. 드라마를 열심히 챙겨본 팬들은 씩 웃으며 풀었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멘붕.

하차 직전, 갤러리에 직접 인증을 남겼다.#

담당 배우가 태조 왕건에서 일인 다역을 했고, 마지막에는 신라의 마지막 태자인 마의태자를 연기하였는데, 수백년 뒤 환생하여 전생의 조국 신라를 흡수한 고려에게 복수하여 조선을 건국하는데 보탰다는 배우 개그가 나온다. 그런데 또 천추태후에서는 고려를 위해 목숨을 바쳐 죽은 하공진의 역할을 했기도. 하공진은 본 드라마의 하륜의 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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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영이인임을 옹호하는 것을 보고 이를 궤변이라고 말하여 사이다를 날린 후 최영이 반문하자 그에 대한 대답.[2] 태조 왕건에서 마의태자를, 무인시대에서 최충헌의 외조카인 박진재를, 명성황후(드라마)에서 김옥균을, 서울 1945에서 오철형을, 대왕 세종에서는 김종서를, 근초고왕에서는 부여휘를 맡았었다.[3] 고려말 권문세가와 신진사대부 사이의 알력 다툼이 많다보니 이들이 서로 완전히 다른 집단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대부 집단은 권문세가를 포함한 다양한 출신의 인물들이 이색을 중심으로 성리학 공부에 매진하며 모인 사람들이라 내부적으로는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었다.[4] 하륜과 이숭인은 신진사대부의 일원이지만 무려 그 이인임과 인척관계를 맺고 있는 권문세가의 일원이기도 했고, 이색 본인도 사대부들의 스승이지만 다수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지주이기도 했다.[5] 이 말을 들은 권근은 "예 그러지요. 우리는 사전을 없애자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으니 퇴청 이후에 지주 놀음이나 하겠소이다."라고 받아쳤다.[6] 두 배우의 이전 작을 생각하면 굉장히 묘하다. 그 작품에서 최영 역의 서인석은 그 유명한 견훤이었고, 윤소종 역의 이병욱은 마의 태자였다.[7] 이 말이 틀린게 사실 주나라는 800년 사이에 춘추전국시대로 분열되었었다.[8] 이성계가 정도전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정몽주만큼은 척을 지지 말라고 충고을 한 적이 있는데 이와 대비되는 장면이다.[9] 자신과 부딪힌 상대가 정도전인걸 알고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쿨하게 지나친다.[10] 이 때 윤소종은 손님맞이(...) 격으로 남은, 이방원과 흥국사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11] 다만 깐깐하다 싶을 정도로 타협 없는 성격을 지녀서 주변의 적대를 받았다는 실제 기록의 고증은 있는지라 여기에 혁명파에 걸맞는 방향으로 성격을 살짝 강직한 방향으로 표현했다.[12] 이성계의 부상을 틈타 정몽주가 정도전 일파를 대대적으로 탄핵할 때도 정도전, 조준, 남은에 이어 4번째로 상소에 이름이 올랐다. 딱 4인자 취급을 받았다고 보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