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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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분파
2.1. 고전적 자유주의
2.1.1. 글래드스턴 자유주의
2.1.2. 맨체스터 자유주의
2.1.3. 급진주의
2.1.4. 신자유주의
2.2. 사회자유주의(새자유주의)
3. 인물
4. 언론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영국의 자유주의(Liberalism in the United Kingdom)는 영국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의 한 형태이다.

영국에서 자유주의는 미국처럼 보수주의에 대항하는 개념으로 쓰이지는 않는다. 미국처럼 중도좌파에 한정된 개념도 아니고, 단순히 이념을 실질적인 스탠스(정치적 스펙트럼)에다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1] 엄밀한 철학적, 논리적 분류에 근거해서 자유주의를 나눈다.[2]


2. 분파[편집]


현대 영국에서 자유주의는 크게 자유민주당을 주축으로 한 중도~중도좌파 사회자유주의보수당을 주축으로 한 중도우파 고전적 자유주의로 나뉜다. 이렇게 자유주의가 곧 현대자유주의만을 의미하는 미국과 달리 엄밀하게 학술적 분류를 선호하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노동당의 경우 스스로 자유주의라고 칭하기를 꺼리는 편이다.[3][4]

2.1. 고전적 자유주의[편집]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고전적 자유주의

영국의 고전적 자유주의는 토머스 홉스존 로크로부터 기원되었다. 영국에서 고전적 자유주의로 분류되거나 관련 있는 사상들은 다음과 같다.

2.1.1. 글래드스턴 자유주의[편집]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글래드스턴 자유주의

영국의 고전적 자유주의는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자유주의 철학으로 발전되었다. 영국의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무역을 신봉하며 사회복지를 위한 국가의 개입에 회의적이였고 자유방임주의를 지지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온건 보수주의 이념이였던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일국 보수주의'가 노동환경 개선, 복지정책과 시장개입 옹호, 친노동 성향을 보였던 것과 대조되었다.


2.1.2. 맨체스터 자유주의[편집]


영어로는 Manchester Liberalism라고 하며, 맨체스터 학파(Manchester School)라고도 한다.

리처드 코브덴존 브라이트가 주도했으며 자유무역자유방임주의적 경제 시스템을 통해 더 평민중심적으로 평등주의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19세기 초에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흔했던 중상주의 경제정책을 혐오했다. 수입 할당, 가격 상한, 시장 개입에 부정적이였으며 반옥수수법(Anti-Corn Law)에 반대했다.


2.1.3. 급진주의[편집]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급진주의(역사적)

급진주의자들은 차티스트 운동을 주도했고 이들은 사회자유주의로 발전한다. 제러미 벤담공리주의 철학은 존 스튜어트 밀이나 토머스 힐 그린 같은 초기 사회자유주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2.1.4. 신자유주의[편집]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신자유주의

1970~1980년대 이후 글래드스턴 자유주의에 기반한 자유방임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게 된다.


2.2. 사회자유주의(새자유주의)[편집]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새자유주의

1900년대부터는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자유방임주의,고전 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또한 노동착취나 빈부격차, 사회적 보수성 등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자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자유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지게 된다.

1895년 이전까지 자유당은 자유 시장, 낮은 세금, 선택의 자유, 자유방임주의 등등 글래드스턴 자유주의를 옹호했으나 총선에서 친노동 포퓰리즘에 기반해 일국 보수주의를 내세운 보수당에게 발리게 되자, 1895년 이후에는 토머스 힐 그린, 허버트 새뮤얼 등 복지국가를 옹호하는 급진주의자들이 자유당의 개혁을 이끌게 되었고, 이들은 자신들의 이념을 '새 자유주의'(New Liberalism)로 명명한다. 이들은 페이비언 사회주의에도 영향받았다.

1905~1916년 자유당 정부는 영국의 복지국가 체제를 다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노령연금법, 의료보험법 등이 제정되었다. 또한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에 의해 토지 소유세, 부유세까지 제안되었으나 보수당 중심 상원이 거부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자유당은 점점 민심과 괴리되었고 고전적 자유주의나 보수자유주의적 유권자들은 스탠리 볼드윈이 이끄는 보수당으로, 적지않은 사회자유주의자들과 급진주의자들은 노동당으로 지지층이 분열되면서 1920년대 이후 자유당은 주요 양당의 위치를 노동당에게 넘겨주게 된다.

그러나 이후에도 자유당은 고전적 자유주의보다는 새 자유주의(=사회자유주의) 친화적인 노선에 더 집중하였다. 사실상의 후신인 자유민주당도 고전적 자유주의보다는 사회자유주의를 더 고집하고 있다.[5]

참고로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장했던 케인스 경제학으로 유명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자유당원이였다.


3. 인물[편집]




4. 언론[편집]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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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쉽게 말해서 모든 자유주의 이념을 모든 일국 보수주의/사회민주주의(한국에서 말하는 소위 '공화주의') 이념보다 우측/좌측에 위치한 것처럼 퉁친다던가 하는 식의 오류를 말한다. 예를 들자면 영국에서는 고전적 자유주의가 일국 보수주의보다 우측, 특히 경제적으로 확실히 우측으로 간주된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중도좌파 언론 가디언도 사회민주주의 언론으로 분류되지 않으며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중심이 된)단순 자유주의 좌파 언론으로 분류된다.[2] 그렇기 때문에 윈스턴 처칠이 '중도우파' 고전적 자유주의로, 토리 사회주의까지 내세운 당대 시대의 '중도~중도우파' 일국 보수주의보다 우측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정작 처칠은 영국 본토에선 보수주의자보다는 (사회주의에 비판적인) 강경한 고전적 자유주의보수자유주의자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다.[3] 토니 블레어조차도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묘사하기 보다는 "신노동당", "제3의 길",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등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았다.[4] "British Political Speech". Retrieved 24 March 2017.[5] 물론 당 내부에 고전적 자유주의자나 사회민주주의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