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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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계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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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동양방송 로고_White.svg 연기대상 대상
[1]

여운계
김성원
이순재
김희준
사미자
(1970년)

안인숙[2]
(1971년)

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파일:baeksangartsawards4.png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제10회
(1974년)


제11회
(1975년)

신설

여운계
(어머니)


김자옥
(수선화)
안인숙
(윤지경)
정혜선
(갈대)




여운계
呂運計 | Yeo Un-g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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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40년 2월 25일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現 화성시)
사망
2009년 5월 22일[1] (향년 69세)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부평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함양 여씨[2]
신체
163cm, 58kg, 240mm
가족
배우자 차상훈[3]
슬하 1남 1녀
학력
무학여자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국문학[4] / 학사)
종교
불교
데뷔
1962년 KBS 공채 탤런트

1. 개요
2. 생애
3. 출연작




1. 개요[편집]


대한민국배우.


2. 생애[편집]


무학여자고등학교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당시로서는 굉장한 고학력이었는데, 전국에 대학생이 10만여 명에 불과한, 200명에 단 1명도 안 되던 때였기 때문이다. 특히 여대생은 훨씬 더 드물던 시절이고, 특히 연예계에는 대졸자가 남자도 몇 명 안 될 정도로 흔치 않았고, 고졸도 고학력 취급 받던 시절이었다. 여운계와 비슷하거나 더 윗 연배에서 명문 대학을 다닌 여배우들이라곤 김혜자, 박정자, 손숙 정도가 있다.

1962년에 실험극단 단원으로 지내다가 KBS 공채 탤런트에 합격한 뒤 1964년 TBC의 공채 탤런트에 다시 합격하여 대한민국 최초의 일일 연속극 <눈이 나리는데>의 시골 다방 마담 역할로 안방극장에 데뷔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24세 때부터 벌써 할머니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1970년 TBC 연기대상에서 여러 배우들과 함께 초대 대상을 수상했고, 1974년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처음으로 신설된 TV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5]을 단독으로 수상하였다.[6]

이후 여러 역할을 맡아 활약하였으며 동시에 길은정이 직장암 투병으로 하차한 EBS의 어린이 프로 만들어 볼까요에서 '요요 할머니'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1998년 드라마 왕과 비에서 폐비 윤씨의 모친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고 1999년 김수현 작가의 작품 청춘의 덫에서도 할머니 역을 맡아 극의 중심을 잘 잡았다. 그리고 2003년 드라마 대장금에서 주인공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부정한 권력에 맞서다 퇴장하는 '정 상궁' 역으로 좋은 연기를 선보였다. 대장금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일본 도쿄에서 팬미팅을 가지기도 했다.

대망의 2005년 영화로는 마파도, 드라마로는 내 이름은 김삼순, 시트콤으로는 안녕, 프란체스카에 연이어 출연하였고 세 작품 모두 종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현재 2-30대 청년들에게도 '여운계'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게 되었다.

2007년, 신장암으로 SBS 드라마 <왕과 나>에서 중도 하차하고[7] 투병 생활을 하다가 3달 후 재기한 다음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에 출연하였다.

그러나 2009년 폐렴에 걸렸다는 보도와 함께 장화홍련 촬영 도중 중도 하차했는데, 이와 함께 신장암이 폐로 전이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2009년 5월 22일에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 전에는 작품 활동 외에는 제주도에서 요양 생활을 했다. 말년의 일상이 담긴 영상.

전원주, 나문희, 선우용여, 사미자, 엄앵란과 친한 관계였으며, 전원주, 사미자와는 본인들의 성(姓)을 따 '여전사' 모임이라 칭하기도 했다. 나문희는 장례식 내내 빈소를 지키고 영결식까지 참여할 정도로 우애가 깊었다.

견미리와 거의 모녀지간이나 다름 없이 지냈으며[8], 실제로 견미리가 사석에서 여운계를 '엄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1972년 ~ 1974년에 같은 동네에 있던 당시 고등학생이던 손석희와 탁구 복식조를 하였다.

한국 노배우 폭이 좁아서인지 그의 사후 카랑카랑하고 날카로우며 심지 깊은 노년 여성역이 잘 보이지 않는 편[9]이다.


3. 출연작[편집]



3.1. KBS[편집]




3.2. SBS[편집]


  • 분례기
  • LA 아리랑
  • 아빠는 시장님
  • 사랑하니까 [12]
  • 지평선너머
  • 사랑해 사랑해 - 봉숙의 어머니
  • 7인의 신부 - 나갑순
  • 청춘의 덫 - 윤희의 외할머니
  • 그녀의 선택
  • 소문난 여자 - 한영순, 임예분
  • 오픈드라마 남과 여 - 골목을 돌아서면
  • 해 뜨는 집 - 김순녀
  •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 - 이끌순
  • 불량주부[13] - 노진예
  • 내 사랑 못난이 - 조옥자
  • 불량가족 - 박복녀
  • 왕과 나
  • 쩐의 전쟁
  • 우리 집에 왜 왔니


3.3. MBC[편집]




3.4. EBS[편집]


  • 만들어 볼까요[15]


3.5. 영화[편집]




3.6. 예능[편집]


  • 2006년 개그콘서트 - 집으로에서 할머니로 출연하던 김준호가 신혼여행[16]으로 불참했을 때 특별출연했다. 당시에 이효리가 Get Ya로 활동할 때였는데, 여운계가 이효리의 핫팬츠 복장으로 춤도 췄다.(!!!)
[1] 공교롭게도 노무현 前 대통령과는 기일이 하루 차이이다.[2] 29세손 '운(運)'자 항렬로 이 항렬에 유명한 사람이 바로 여운형이다.[3]경기대학교 교수[4] 現 국어국문학[5] 해당부문만 아니라 1974년 시상식부터 TV부문 전체 카테고리가 추가되었다. 1974년 이전에는 영화, 연극부문만 시상.[6] 참고로 여운계가 수상했을 당시 TV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부문도 신설했는데 첫 수상자는 최불암이었다.[7] 그러나 당시 맡은 배역이 주인공 김처선이라든가 기타 내시 역할의 조연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요한 역할이어서 배역 자체를 없애지 않고 김수미가 여운계의 배역을 대신 맡았다. 두 배우는 그 전에 <안녕 프란체스카 3>에서도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8] LA 아리랑대장금에서 호흡을 맞췄다.[9] 같은 연배의 연기를 했던 배우들은 전부 희생하는 엄마, 혹은 가부장적인 남편 앞에서 일탈을 꿈꾸는 아내 역을 많이 했는데, 여운계는 상대적으로 커리어우먼, 도회적인 중년 여성 역할을 많이 했다. 이미지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남다른 배우였기 때문.[10] 유작으로, 전술된 병세 악화 후 사망으로 인해 결국 전양자로 캐스팅이 교체되었다.[11] 원작드라마 아씨(동양방송)와 동시 출연했다.[12] HBS와 공동으로 방송하였던 관계로 지상파 외 드라마 출연작에도 들어가는데, 지상파 외 드라마로는 유일한 출연작이다.[13] 사랑이 뭐길래에서 손녀로 나왔던 신애라가 여기선 며느리로 나왔다. 사랑이 뭐길래에 이어 기독교 권사를 연기했다.[14] 배우 본인은 불교 신자인데, 이 드라마에서 기독교 권사를 연기했다.[15] 암 판정을 받고 방송에서 하차한 길은정의 후속 MC로 발탁이 되었으며, 얄궃게도 프로그램의 MC를 담당했던 두 사람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16] 이 때의 부인과는 나중에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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