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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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262f61><width=10%><:>훈련 시설 ||시우다드 데포르티바 아틀레티코 데 마드리드 ||




1. 창단
2. 20세기
3.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 부임 이전의 시기
3.1. 2009/10 시즌
3.2. 2010/11 시즌


1. 창단[편집]


1903년 4월 26일에 마드리드에서 공학을 배우던 바스크인 3명이 모여 창단했는데, 이 과정은 바르셀로나의 RCD 에스파뇰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1] 마드리드로 돈을 벌러 이주한 바스크인들이 바스크 지역에 있는 축구 클럽들을 응원하러 매주 긴 거리를 이동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응원했다. 마드리드에 위치해 있지만, 응원하는 팬층이 대부분 카스티야인들이 아니기도 하고 창단 목적이 카스티야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마드리드에서는 그다지 사랑받지 못하는 클럽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아틀레틱의 위성구단으로 있었다.

바스크인들이 세운 구단이기에 구단명이 초창기에는 Atlético de Madrid가 아닌 Athletic Madrid였다. 스페인과의 차별화 및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바스크인들의 특성상 영어로 구단명을 지은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바스크 민족의 구단'이라는 정체성이 사라져가고 '마드리드 연고지의 구단'이라는 정체성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구단명을 영어에서 표준 스페인어로 변경하였다. 현재는 카스티야인이 팬의 대부분이며 스페인 현지 팬들도 웬만하면 마드리드 거주자들이다. RCD 에스파뇰과 비슷한 경우이다.[2]

파일:Atleticomadrid_History.jpg

유니폼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아틀레틱 클루브 산하에 있던 시절 아틀레틱 클루브의 파란색과 흰색의 줄무늬 상의와 파란색의 하의 유니폼을 그대로 착용하였다.[3] 이 동일한 유니폼 전통은 1921년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아틀레틱 클루브에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나서도 이어진다. 그러나 1910년, 아틀레틱 클루브 측에서 블랙번의 유니폼을 지급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차선책으로 사우스햄튼 FC의 유니폼을 스페인으로 가져온 아틀레틱 클루브는 아예 팀 유니폼 자체를 사우스햄튼처럼 빨갛고 흰 줄무늬의 상의와 검정색 바지로 바꾸기로 한다.[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빨갛고 흰 줄무늬 상의만 받아들이고 파란색의 하의는 유지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는 현재 팀 컬러의 바탕이 되었다.

2. 20세기[편집]


1939년 사라고사의 아비아시온 나시오날과 합병해 '아틀레틱 아비아시온 데 마드리드'로 이름을 변경했고, [5] 1941년에 독재자 프랑코 총통이 스페인어만 쓰도록 강요해서 '아틀레티코 아비아시온 데 마드리드'가 됐다. 1947년 현 명칭으로 개칭한 후 점차 상승세를 보여 1949/50, 1950/51 시즌에 라 리가를 연속으로 제패했고, 1961년에 유러피안 컵 위너스 컵을 우승하는 등 1974년까지 리그 우승 5번, 코파 델 레이 우승 4번, 유럽대항전 우승 1회를 각각 기록했다. 루이스 아라고네스 등이 이 시기를 빛내기도 했다.

1974년에 아라고네스가 감독으로 돌아와 2003년까지 총 7번이나 감독직을 왔다갔다하며 팀의 체계를 다시 다듬기도 했으나, 줄곧 연고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 CF와 동부 지역의 FC 바르셀로나에 가려져 조용히 지내다가 85년 컵위너스 컵 준우승[6]을 거두기도 했으며 그나마 코파 델 레이는 몇 번 우승했다. 그 사이 비센테 칼데론 회장이 1987년에 타계하고 그 자리에 헤수스 힐[7]이 선임되었다.

1995년 라도미르 안티치 감독 부임 후, 임기 첫 시즌이던 1995/96 시즌에 19년 만에 프리메라 리가 우승을 차지하며 팬들을 기쁘게 했으나, 이후 중상위권에 머물다 99-00 시즌에 들어 충격의 강등을 당한다. 이 당시 멤버 수준은 이름 값만 따지면 강등이 아니라 오히려 우승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8] 네덜란드 출신의 스트라이커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9], 스페인 대표팀의 키코, 바라하, 발레론 그리고 카프데빌라, 아르헨티나 출신의 솔라리, 파라과이 대표팀 주전 수비수 아얄라와 가마라 콤비에 스페인 No. 2 골키퍼 몰리나 같은 선수들에 감독은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였다. 원인은 탈세로 징역을 산 경험도 있었던 막장 구단주 헤수스 힐에게 있었는데, 방만한 투자에 손실을 입은 구단주가 선수단의 주급을 일방적으로 체납하면서 선수단 분위기가 와해 지경에 이르렀던 것.


3.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 부임 이전의 시기[편집]


2000/01 시즌에는 2부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4위를 기록하며 승격에 실패했으나,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이 7번째로 감독직에 복귀한 후 페르난도 토레스의 맹활약에 힘입어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승격에 성공했다.

2002/03 시즌에는 헤르만 부르고스와 페르난도 토레스의 활약으로 승점 47점을 기록해 오사수나와 동률을 이뤘으나, 골득실에서 밀려 12위로 마무리했다. 당시 득점은 51점으로 나쁘지 않았으나, 56점을 실점했을 만큼 수비가 빈약했다.

2003년에 팀 지휘봉을 이어받은 그레고리오 만사노 감독은 아르헨티나 리버 플레이트에서 마티아스 레퀴를 1년 임대 영입했고, 라치오에서 디에고 시메오네를 복귀시킨 후 말라가에서 키키 무삼파까지 영입하며 포부를 드러냈지만 중위권만 맴돌 뿐이었고, 결국 만사노 감독이 1년만에 경질된다.

2007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토레스를 리버풀 FC로 떠나보낸 뒤 비야레알 CF로부터 유러피언 골든슈와 피치치상[10]을 수상했던 스트라이커 디에고 포를란을 영입함과 동시에 벤피카 출신의 시망 사브로사, 아스날 출신의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를 영입하는 등 활발한 이적시장을 보냈다. 이후 07/08 시즌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의 지휘 아래 리그를 4위로 마무리하며 1996/97 시즌 이후 팀의 두번째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성공한다.[11]

2008/09 시즌에는 전반기에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에 성공하고 리그에서도 가공할만한 공격력을 앞세워 챔스권을 수성하는듯 했으나 2009년 들어 성적 부진으로 인해 아기레 감독을 경질했고 아벨 레시노 감독을 선임했다. 팀의 주전 공격수인 디에고 포를란-세르히오 아구에로로 이루어진 투톱 라인이 수준급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극심한 수비불안에도 불구하고 발렌시아 CF, 비야레알 CF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리그 4위를 달성해 2년 연속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성공했다. 포를란은 엄청난 골결정력을 보여주며 라리가 득점왕을 달성했고, 아구에로는 리오넬 메시와 함께 아르헨티나의 신성이라고 불리며 상위 팀들이 이적시장마다 노리는 선수가 되었다.


3.1. 2009/10 시즌[편집]



2009/10 시즌에는 아구에로, 포를란 같은 수준급의 선수들을 갖고 있으면서도 최악의 수비력 때문에 한때 강등권까지 내려가는 등 꽤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중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에서 첼시 FC에게 4-0의 스코어로 패배하면서 아벨 레시노 감독이 경질되고 키케 플로레스 감독이 선임되게 된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에서 3위의 성적을 거두며 UEFA 유로파 리그로 진출하게 되었고 32강부터 스포르팅 CP, 갈라타사라이 SK, 발렌시아 CF, 리버풀 FC를 연달아 꺾으며 결승까지 진출하게 된다. 코파 델 레이에서 결승전까지 올라갔으나 세비야 FC에 2-0으로 져서 준우승했다. 우승팀 세비야가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확보한 덕분에 리그에서 9위로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 진출권은 확보된 상태였다.[12]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2009-2012).svg
2009-10 UEFA Europa League Final
2010. 05. 12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독일, 함부르크)

파일: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로고(1970~2016).svg

2 : 1

파일:풀럼 FC 로고.svg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풀럼 FC
32' 디에고 포를란
116' 디에고 포를란

파일:득점 아이콘.svg
37' 시몬 데이비스
Man of the Match: 디에고 포를란


결승전에서 연장전까지 접전을 펼치며 풀럼 FC를 2-1의 스코어로 꺾고 구단 첫 UEFA 유로파 리그 우승을 달성하였다.[13][14]


3.2. 2010/11 시즌[편집]



2010년 8월에는 유로파리그 우승팀의 자격으로 09/10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인테르UEFA 슈퍼컵에서 만나게 되었고 레예스아구에로의 활약으로 팀의 첫번째 슈퍼컵 우승을 경험했다.

파일:UEFA 슈퍼컵 로고 (2006-2012).svg
2010 UEFA Supercup
2010. 08. 27

스타드 루이 2세 (모나코, 퐁뷔에유)

파일: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엠블럼(2014~2021).svg

0 : 2

파일: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로고(1970~2016).svg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파일:득점 아이콘.svg
62'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83' 세르히오 아구에로

Man of the Match: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2010/11 시즌에는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내며 리그 7위에 머물렀고 코파 델 레이 8강전과 UEFA 유로파 리그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15]로 인해 지난 시즌 트로피를 들어 올렸던 키케 플로레스 감독이 시즌을 마치자마자 경질됐다. 그레고리오 만사노 감독이 대체 감독으로 복귀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팀의 핵심이었던 세르히오 아구에로디에고 포를란[16]이 각각 맨체스터 시티 FC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하게 되고, 2시즌 동안 골문을 지켰던 다비드 데 헤아 또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티보 쿠르투아첼시 FC에서 임대 영입했고 갈라타사라이 SK에서 활약하던 아르다 투란에 이어 4000만 유로라는 엄청난 금액으로 유로파리그에서 무려 17골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득점왕을 차지하고 미니 트레블을 이끈 라다멜 팔카오FC 포르투에서 영입한다.

2011/12 시즌 도중인 2011년 12월, 만사노 감독 또한 리그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중위권에 맴도는 성적부진으로 경질되고 후임 감독으로 현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입지를 바꿔 놓은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부임한다.

4. 디에고 시메오네의 시대[편집]



4.1. 2011-12, 2012-13 시즌[편집]


11/12 유로파 리그 48강 본선 조 추첨에서 우디네세 칼초, 스타드 렌 FC, 셀틱 FC와 같은 조를 이루게 되었다. 이후 조 1위로 32강에 진출하며 SS 라치오와 맞붙게 되었다. 원정 1차전 경기에서 3:1, 홈 2차전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종합 스코어 4대1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16강 상대인 베식타스 JK와의 경기 또한 홈 1차전에서 3:1으로 승리했다. 그리고 원정에서도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8강 상대는 하노버 96으로 추첨이 이뤄졌다. 1,2차전 2경기 모두 2:1로 승리하며 4강에 진출해 같은 리그의 발렌시아 CF와 결승 진출을 다투게 되었다. 1차전 홈 경기에서 4:2로 승리를 가져오면서 결승 진출에 유리해졌고, 이어진 원정 2차전에서도 1:0으로 승리하면서 팀 역사상 두번째로 유로파리그 결승에 진출해 같은 리그 팀인 아틀레틱 클루브와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다.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2009-2012).svg
2011-12 UEFA Europa League Final
2012. 05. 09

아레나 나치오날러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파일: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로고(1970~2016).svg

3 : 0
파일:아틀레틱 클루브 로고.svg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아틀레틱 클루브
7' 라다멜 팔카오
34' 라다멜 팔카오
85' 지에구

파일:득점 아이콘.svg

Man of the Match: 라다멜 팔카오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는 점유율에서 밀렸지만 라다멜 팔카오가 전반에 첫 두 슈팅을 완벽하게 골로 연결시키며 승기를 잡았고 지에구가 85분에 쐐기골을 넣으면서 초대 유로파 리그 챔피언다운 모습을 보였다.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던 페르난도 요렌테와 비교되는 팔카오의 결정력, 지쳐있던 빌바오의 수비수와는 달리 탄탄한 수비 집중력을 보였던 아틀레티코의 경기력이 빛나는 경기였다.

아틀레티코는 2시즌만에 유로파리그 트로피를 다시 들어올렸고, 팔카오는 FC 샬케 04클라스얀 휜텔라르를 제치고 2년 연속 유로파 리그 득점왕이 되었다.

11/12 시즌 리그에선 38라운드까지 4위인 말라가 CF와 경쟁했지만 결국 마지막 라운드에서 말라가가 스포르팅 히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아쉽게 5위에 머물게 되었고, 다음 시즌도 유로파 리그 진출로 만족해야 했다.

파일:UEFA 슈퍼컵 로고 (2006-2012).svg
2012 UEFA Supercup
2012. 08. 31

스타드 루이 2세 (모나코, 퐁뷔에유)
파일:첼시 FC 로고.svg
1 : 4

파일: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로고(1970~2016).svg


첼시 FC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75' 게리 케이힐
파일:득점 아이콘.svg
6' 라다멜 팔카오
19' 라다멜 팔카오
45' 라다멜 팔카오
60' 주앙 미란다

Man of the Match: 라다멜 팔카오

모나코에서 열린 UEFA 슈퍼컵11/12 시즌 챔스 우승팀이었던 첼시 FC와 붙게되었고, 팔카오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팀 통산 두번째 슈퍼컵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12-13 시즌엔 리그 15 라운드까지 FC 바르셀로나에게 3점차로 밀린 2위를 기록하면서 17년 만의 우승을 노릴 기회가 온듯 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에게 1:4로 대패하며 차츰 밀리기 시작하더니, 24 라운드에는 1위 바르셀로나와 무려 12점차로 밀려 있다. 설상가상으로 유로파 리그에서는 32강에서 FC 루빈 카잔에게 1승 1패를 기록하고 원정다득점 원칙에 의해 탈락했다. 그 뒤로 레알 마드리드 CF에게 추격을 허용하면서 3위로 내려갔지만 36 라운드까지 승점 72점으로 남은 2경기랑 상관없이 3위가 확실시 되면서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확정지었다.

파일:_P7Q0783.jpg

2013년 5월 17일 열린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를 연장 접전 끝에 2:1로 누르고 17년 만의 코파 델 레이 우승에 성공했다. 참고로 이 승리가 21세기 들어 레알 마드리드를 누른 첫 승리였다.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부임한지 약 1년 6개월만에 우승 트로피를 3개[17]나 들어올리며 리그 우승에 대한 기대를 갖게하였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 모두를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난다.


4.2. 2013-14 시즌[편집]


성공적인 시즌을 이끈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이 4년 재계약을 체결하며 구단에 장기적인 안정감을 되찾겠다고 밝혔다. 곧이어, 유망주 올리베르 토레스하비에르 만키요가 재계약을 체결했으며, 잇달아 팀의 주축인 후안프란, 주앙 미란다, 코케, 디에고 고딘, 필리피 루이스, 아르다 투란, 디에고 코스타 모두 장기 재계약을 체결하였다. 즉, 주전 11명 중 7명이 재계약을 체결했으며, 임대를 연장한 티보 쿠르투아까지 합하면 8명이다. 여러 이적 떡밥에도 불구하고, 라다멜 팔카오를 제외한 모든 주축 선수들이 잔류를 선택한 것이다.

13-14 시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선 FC 바르셀로나와 맞붙게 되었다. 1차전 홈경기에서 1-1 무승부, 2차전 원정경기에서 0-0 무승부로 비등하게 싸웠으나 원정다득점 원칙에 따라 아쉽게 준우승을 거뒀다.

챔피언스 리그에선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FC 포르투, FK 아우스트리아 빈과 같은 조를 이루면서 가장 행운의 조란 평을 받았다. 1차전 제니트와의 홈경기에서 3-1로 승리한 뒤 이후 4전 전승으로 일찌감치 조 1위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16강전 상대는 AC 밀란이다.

7라운드 리그 첫 마드리드 더비,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원정경기에서 디에고 코스타의 골로 1:0으로 승리하면서 레알과의 승점차를 5점차로 만들어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더불어 이 승리로 1999년 이후 리그에서 이어오던 마드리드 더비 무승을 14년 만에 끝냈다. 이런 파죽지세로 리그 12라운드까지 11승 1패로, 11승 1무 승점 34점인 바르셀로나에 이어 조 2위를 지키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는 9승 1무 2패로 여전히 승점 5점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르샤가 15라운드 경기에서 빌바오에게 0:1 충격패를 당하면서 AT 마드리드는 어부지리로 바르샤에 승차 없는 2위를 기록하게 됐다. 18라운드까지 16승 1무 1패로 바르셀로나와 동률을 이룬 채로 득실에서 밀려 2위를 지키고 있다. 시즌 전반기 마지막 경기, 홈에서 바르셀로나를 맞이해 선전했지만 무득점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리고 22라운드, 레알 소시에다드를 4-0으로 꺾고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리그 1위로 올라섰다! 아틀레티코가 리그 정상에 오른 것은 우승을 달성한 1996년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23 라운드에서 알메리아에게 충격패를 당하며 우승경쟁은 또 다시 혼전상황이 됐다. 24라운드에서 바야돌리드를 3-0으로 이겼지만 23차전 패배 여파로 1위에서 3위로 추락했다. 다만 1위 바르셀로나, 2위 레알 마드리드랑 똑같은 승점 60점이기에 3월 2일에 벌어질 26 라운드에 펼쳐질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가 고비가 될 전망이었는데...

경악스럽게도 2월 24일에 벌어진 25차전 오사수나 원정에서 예상치 못한 0:3 참패를 당했다. 리그 16위이던 오사수나는 이 승리로 12위까지 순위가 올랐으며 아틀레티코는 바르셀로나와 같은 19승 3무 3패를 기록하여 그대로 3위 자리를 굳혔다. 이겼더라면 2위 자리로 올라갔을 테지만 이 패배로 26라운드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 총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이어진 26차전에서 2-1로 앞서나갔으나, 후반 10분 정도 남겨 두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2-2로 비기면서 3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겼더라면 승점 63점 동률을 이루고 상대 전적에서 앞서 리그 1위에 올랐을 것이기에 아쉬움이 큰 경기이다.

더불어 2월에 가진 코파 델 레이 4강전에선 레알 마드리드에게 0-3, 0-2 참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한편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에선 AC 밀란을 상대로 원정 1차전에서 경기 내내 밀리고 막히면서 고전을 하였지만 후반 세트피스 상황에서 코스타의 골로 1:0으로 승리하면서 2차전 홈 경기를 조금이나마 여유 있게 하게 되었다. 그리고 2차전 홈 경기에선 밀란을 상대로 4-1 대승을 거두면서 기분좋게 8강에 진출했다. 8강 상대는 FC 바르셀로나로 결정되었다.

29 라운드 엘 클라시코전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에게 3-4로 패배했고, 아틀레티코는 베티스를 2-0으로 꺾음으로서 리그 1위에 올라섰다. 30 라운드에서는 그라나다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한 뒤 레알 마드리드가 예상을 뒤엎고 30 라운드인 세비야 원정에서 1-2로 역전패하며 아틀레티코의 1위 자리는 더더욱 굳혀졌다. 고비가 될 전망이었던 31 라운드 원정 경기에서도 만만치 않은 4위 팀 아틀레틱 클루브를 2-1로 누르고 리그 1위로 순항 중이다.

남은 리그 7경기중 6경기가 비야레알, 엘체, 헤타페, 말라가와 같이 중하위권 팀들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 그러나 마지막 38 라운드가 최대 고비인데, 거짓말 처럼 2위이자 아틀레티코를 1점 차로 추격 중인 FC 바르셀로나 원정경기가 남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사실상 리그 결승전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챔피언스 리그 8강 1차전,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캄프 누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괜찮은 결과를 얻었다. 이 결과에 대해 감독 시메오네는 포기를 모르는 심장을 가진 남자들의 팀이라고 표현하며 팀을 칭찬했다. 그러나 불안불안하던 코스타가 기어이 햄스트링 부상에 걸리고 말았다. 앞으로 있을 2차전은 고사하고 남은 리그 일정에 먹구름이 꼈다.

하지만 다행히 디에고 코스타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8강 2차전 홈 경기에서 코케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40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올랐다! 추첨 결과 4강 상대는 첼시 FC로 결정되었다.

리그도 33라운드까지 치르면서 우승을 향한 희망적인 행보를 계속 보이고 있는데, 바르셀로나가 원정에서 0-1로 그라나다에게 패배하는 사이 비록 강등권에 처해 있지만 그 반대로 강등권 탈출을 목적으로 필사적으로 나올 게 뻔해 까다로운 헤타페 원정을 2-0으로 이겨서 3위로 떨어진 바르셀로나와의 승점 차를 4점 차로 벌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2위로 올라선 레알이 승점 3점 차로 추격하고 있으나 승자승 원칙에 따라서 승점 동률일 경우 아틀레티코가 앞서기 때문에 한 경기는 여유가 있는 셈이다.

이제 남은 리그 상대는 엘체, 말라가, 레반테 같은 중하위 팀들과 8위 발렌시아, 그리고 38 라운드 리그 마지막을 장식할 FC 바르셀로나 원정이 남아 있다. 발렌시아 원정과 바르셀로나 원정이 고비인데 발렌시아 원정은 1-0으로 이겼고 엘체도 2-0으로 이기면서 이제 레반테-말라가-바르셀로나 경기만 남겨두고 있다. 여기서 레반테와 말라가만 이겨도 18년 만에 우승 확정이다.

그러나 36차전 레반테 원정에서 0-2로 패하면서 아직 마음 놓을때가 아니게 되었다. 다행히 다음 말라가전을 이기고 바르셀로나 경기 결과도 신경쓰게 되었다.

홈에서 열린 챔스 4강 1차전 첼시와의 경기에서는 작정하고 수비적으로 나온 첼시의 방패를 뚫지 못하고 0-0으로 경기를 마감했다. 아틀레티코로써는 가비가 2차전에 경고 누적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게 뼈아프지만 첼시도 존 오비 미켈프랭크 램파드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고 페트르 체흐존 테리가 부상을 입어 출전이 불투명한지라 아직 승부는 쉽게 예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2차전에서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선제골을 실점했음에도 불구하고[18] 첼시의 수비 불안을 틈타 3골을 넣는 데 성공하며, 40년 만에 챔스 결승에 진출하는 쾌거를 얻었다. 결승 상대는 영원한 더비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 CF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같은 지역 팀끼리 붙는 것은 사상 최초의 일이라 한다.

리그 37라운드 홈에서 치러진 말라가전에서 1-1로 겨우 비기면서 결국 리그 우승 여부를 38 라운드 바르셀로나 원정으로 치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안방에서 겨우 비겼던 바르셀로나인지라 매우 힘든 상대이기에 말라가전 무승부가 두고두고 아쉬울 듯하다. 리그 우승을 위해서는 FC 바르셀로나와의 원정경기에서 최소한 무승부를 기록해야 한다. 패할 경우 승점이 똑같이 89점인 상태에서 상대전적이 바르셀로나에게 밀려 우승을 내주기 때문이다.


전반에 디에고 코스타[19]아르다 투란이 부상으로 교체되었고 알렉시스 산체스에게 전반 33분에 선제골을 실점했지만 전반 추가시간에 디에고 고딘이 감각적인 헤더 동점 골을 넣으면서 균형을 맞췄다. 이후 철옹성같은 수비를 보여준 아틀레티코가 바르셀로나의 맹공을 버텨냈고 경기는 결국 1-1 무승부로 마무리. 승점 90점으로 18년 만에 10번째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파일:2014_05_17_2.jpg
2014년 5월 17일, 리그 우승 직후 캄 노우에서

이는 2003-04 시즌 발렌시아 CF가 우승을 차지한 뒤로 줄곧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계속 우승을 독점하던 라리가에서 10년 만에 다른 팀이 우승한 기록이다. 덤으로 지난 시즌 3위로서 바르셀로나의 우승을 바라봐야 했던 설욕을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우승 결승과 같은 리그 경기로 제대로 갚아줬다. 또한, 네이마르 주니오르가레스 베일을 영입하며 클럽 이적료를 갱신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라다멜 팔카오를 떠나 보내며 클럽 이적료 기록을 갱신한 아틀레티코의 우승은 팬들에게 뜻깊은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시즌 더블을 위해 레알 마드리드 CF와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맞붙는 일뿐이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디에고 코스타와 아르다 투란이 부상으로 결승에서 결장할 수 있지만 레알 마드리드는 중원의 핵심 중의 핵심인 사비 알론소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기에 양 팀 모두 어느 정도 전력의 누수가 있는 상태에서 맞붙게 되었다.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화이트.svg
2013-14 UEFA Champions League Final
2014. 05. 25

에스타디오 다 루스 (포르투갈, 리스본)
파일:레알 마드리드 CF 로고.svg
4 : 1

파일: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로고(1970~2016).svg


레알 마드리드 CF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90+3' 세르히오 라모스
110' 가레스 베일
118' 마르셀루
120'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PK)

파일:득점 아이콘.svg
36' 디에고 고딘
Man of the Match: 앙헬 디 마리아

아틀레티코는 세르비아에서 무면허 시술까지 받고 선수 생명을 담보로 혼신의 힘을 다했던 디에고 코스타의 초반 아웃에도 불구하고, 튼튼한 방어와 고딘의 선제골로 90분 내내 레알 마드리드를 몰아붙였다. 옐로카드를 미친듯 수집했는데도 한 명도 퇴장당하지 않는 무서운 전술도 보여줬다. 1:0으로 경기를 리드하며 정규시간은 종료되고 추가시간은 5분이 주어졌다. 그때까지 경기는 AT 마드리드 쪽으로 기울고 클럽 역사상 최초의 빅이어는 거의 AT 마드리드에게 왔었다.

하지만 경기종료 2분전세르히오 라모스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스코어는 1-1 동점인채로 연장전으로 이어지자 아틀레티코의 선수들은 체력이 완전히 방전된 채로 경기를 뛰었고 연장후반 5분 베일의 역전골을 시작으로, 마르셀루의 쐐기골, 호날두의 마무리 골까지 허용하며 1:4로 완패해 리스본의 악몽을 맛보면서 레알 마드리드가 라 데시마를 달성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20]

레알에 비해 선수진이 얇은 AT 마드리드로서는 동점을 허용한 시점에서 패배를 각오해야만 했다. 우선 아틀레티코가 철벽 같은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도 충분히 단단하고 코스타도 없는 상황이라 아틀레티코 역시 다득점을 하기엔 2% 부족했다. 따라서 아틀레티코도 골 넣기 힘든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상대 실책으로 얻은 1골을 무조건 지킬 필요가 있었고, 동점이 되면 연장 간다는 각오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틀레티코는 선수진 차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정규 시간 동안 찍은 무지막지한 활동량이 문제였다. 강한 압박으로 승부를 보려는 팀들은 대개 20분을 넘기지 못하고 자빠지지만, 아틀레티코는 후반 중반까지도 압박 강도를 유지하며 우세한 경기력을 가져갔다. 이제 체력이 떨어지고 레알 마드리드가 일방적으로 공격할 때 이를 어떻게든 막기만 하면 작전대로인 상황. 하지만 쏟아지는 코너 킥을 견디지 못해 이번 시즌 첫 코너 킥 실점을 허용했고, 이 시점에서 이미 아틀레티코의 앞길은 암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리그 우승,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이라는 아틀레티코로서는 대기록을 세운 시즌이다. 이 시즌을 계기로 빅클럽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시메오네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가장 중요했던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4.3. 2014-15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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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15-16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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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2016-17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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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2017-18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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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2018-19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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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19-20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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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2020-21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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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2021-22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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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 2022-23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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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2023-24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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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묘하게도 분명 소수민족인 바스크인들이 스페인 축구에선 상당한 지분을 차지한다.[2] 출처 : 세계 최대 규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페이스북 팬그룹 Atlético de Madrid[3] 당시 아틀레틱은 블랙번 로버스 FC에서 유니폼을 일정량 지급받았다고 한다.[4]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인 이유가 당시에 빨간색과 흰색의 조합이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매트리스를 제작하고 남은 천을 축구 유니폼으로 쉽게 변환할 수 있었기 때문. 그리고 이는 팀의 별명인 Los Colchoneros(매트리스 제작자)의 기원이 되었다.[5] 아비시아온 나시오날(Aviación Nacional)은 1939년 스페인 공군에 의해 창설되었다. 그들은 1939-40 시즌 동안 프리메라 디비시온에 자리를 약속받았으나, RFEF에 거절당해 합병상대를 찾던 중 레알 마드리드에 1차로 거절당하고 2차로 제안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제안을 받아들였다. [6] 우승은 FC 디나모 키예프[7] 1991~2002년까지 마르벨라 시장을 지내기도 했다.[8] 실제로 해당 시즌 코파 델 레이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도 강등되었다. 참고로 이때 우승은 에스파뇰이 차지.[9] 해당 시즌 리그 득점 2위로 24골을 기록했었다.[10] 라리가 득점왕[11] 오랜 유럽대항전 공백으로 인한 낮은 UEFA 점수 때문에 분데스리가의 강호 샬케 04를 3차 예선에서 만나 1차전 1:0 패배 후 2차전 4:0 대승으로 본선에 진출했다.[12] 다만 유로파리그에서 우승하면서 예선이 아닌 본선에 직행하게 됐다.[13] 기존의 UEFA컵이 유로파 리그로 개편된 첫 시즌의 우승이니 초대 챔피언의 칭호도 획득한 셈이다.[14] 여담으로 두 팀의 스폰서는 한국기업인 기아LG였다.[15] 그리스에서도 강팀 반열에 들지도 못하는 아리스에게 홈에서 패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16] 포를란은 2010 월드컵에서 '자블라니 마스터'라 불리며 골든볼을 수상했던 활약이 무색하게 2010-11 시즌 내내 노쇠화가 왔는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인테르에서도 활약이 그리 좋지 않아 1년 만에 브라질 리그 SC 인테르나시오나우로 이적해 유럽 무대에서의 커리어를 마감했다.[17] UEFA 유로파 리그, UEFA 슈퍼컵, 코파 델 레이[18] 이때 토레스는 옛 팀에 대한 예우를 지켜 세레머니를 하지 않았다.[19] 햄스트링 부상으로 나간 코스타는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팀을 도울 수 없는 분함과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도 나갈 수 없을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인지 서럽게 울어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20] 더군다나 후안프란알바로 모라타에게 백태클을 당하며 부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체카드가 소진되어 연장전 내내 절뚝거리며 경기를 치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