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헬 디 마리아

덤프버전 :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디마리아는 이 문서로 넘어옵니다. 페어리 테일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디마리아 이에스타 문서
디마리아 이에스타번 문단을
디마리아 이에스타#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SL 벤피카 로고.svg
[[SL 벤피카|{{{-1 SL 벤피카
]] [[SL 벤피카/2023-24 시즌|{{{-1 2023-24 시즌]] [[틀:SL 벤피카|{{{-1 스쿼드]]
1 트루빈 · 4 안토니우 S. · 5 모라투 · 6 · 7 네리스 · 8 아우르스네스 · 9 카브라우 · 10 쾨크취
11 디 마리아 · 13 유라세크 · 14 베르나트 · 17 G. 게드스 · 19 텡스테트 · 20 J. 마리우 (VC) · 22 시키뉴
24 소아르스 · 27 하파 · 30 오타멘디 (C) · 33 무사 · 38 주앙 빅토르 · 44 토마스 A.
45 코쿠보 · 47 고베이아 · 61 플로렌티누 · 75 A. 고메스 · 87 네베스
{{{#fff * 이 표는 간략화된 버전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주세요.
* 본래 스쿼드에 변동이 있으면 두 틀 모두 수정해주세요.}}}


앙헬 디 마리아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리그 1 심볼.svg

2015-16 · 2019-20
파일:라리가 심볼(2016~2023).svg

파일:Coupe de France 2021 logo.png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심볼.svg


베스트팀
파일:1200px-Logo_UNFP.svg.png

2015-16 · 2018-19
파일:European_Sports_Media_logo.png

2015-16 · 2019-20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심볼.svg

파일: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심볼.svg

파일:attachment/FIFPro_logo.png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ED1C35; font-size: 0.9em"
2014 FIFPro 11
파일:유럽 축구 연맹 로고.svg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1868D6; font-size: 0.9em"
2014 UEFA 올해의 팀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앙헬 디 마리아의 기타 정보







파일:DiMaria2324.jpg


SL 벤피카 No. 11

{{{#000,#fff 앙헬 디 마리아
Angel Di María
본명
앙헬 파비안 디마리아 에르난데스
Ángel Fabián Di María Hernández
출생
1988년 2월 14일 (36세)
아르헨티나 산타페 주 로사리오
국적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display: none; display: 아르헨티나"
행정구
]]
| [[이탈리아|

이탈리아
display: none; display: 이탈리아"
행정구
]]

신체
180cm / 체중 75kg
포지션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주발
왼발
등번호
아르헨티나 대표팀[1]
11
SL 벤피카
소속
유스
CA 로사리오 센트랄 (2001~2005)
프로
CA 로사리오 센트랄 (2005~2007)
SL 벤피카 (2007~2010)
레알 마드리드 CF (2010~201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4~2015)
파리 생제르맹 FC (2015~2022)
유벤투스 FC (2022~2023)
SL 벤피카 (2023~)
국가대표
135경기 29골[2] (아르헨티나 / 2008~2024 )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1. 개요[편집]


아르헨티나 국적의 SL 벤피카 소속 축구 선수. 포지션은 윙어.

빠른 스피드와 기술, 그리고 왼발에서 나오는 뛰어난 어시스트 능력을 갖춘 테크니션이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팀 통산 10번째 UCL 우승에 큰 공을 세웠으며,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리그 1 5회를 포함한 총 18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한편, 국가대표팀에서는 2021 코파 아메리카2022 월드컵 결승전에서 모두 골을 기록하며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결승전의 황제”.


2. 클럽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앙헬 디 마리아/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3.1. 청소년 대표팀[편집]


2006년 8월 31일 부산컵 국제청소년대회 U19매치에서[3]가 아르헨티나 U19팀으로 출전하였고, 한국 U19팀에게[4] 1:2[5]로 패하였다.[6]

그리고 2007년 디 마리아는 아르헨티나 U-20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파라과이에서 열린 2007년 CONMEBOL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였다. 그 해 캐나다에서 열린 2007년 FIFA U-20 월드컵에도 출전하였고, 그 대회에서 그는 3골을 득점하여 아르헨티나의 우승에 공헌했다.


3.1.1. 2008 베이징 올림픽[편집]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할 올림픽 대표팀 선수 명단에 포함되었다. 네덜란드와의 8강전에서 그는 연장 전반 15분 리오넬 메시의 패스를 골로 성공시켰고, 팀이 2-1로 승리하는데 공헌하였다.

파일:external/images.cdn.fourfourtwo.com/pa-6269654.jpg}}}

그리고 나이지리아와의 결승전에서 후반 12분 메시의 패스를 받아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칩샷으로 결승골을 성공시켰고, 1-0으로 승리하여 아르헨티나 올림픽 대표팀의 2연속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하였다.


3.2. A 대표팀[편집]


이러한 활약으로 2008년 9월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 공식 데뷔하였다.

3.2.1.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편집]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선 마라도나 감독 부임 이후 지역 예선 초반에 퇴장당하는 불운으로 눈물을 삼켜야했다. 디 마리아의 부재 역시 아르헨티나의 막장 경기력에 크게 일조했는데 이후 지역 예선이 거진 다 끝나갈 무렵에서야 간신히 출장 정지가 풀렸다. 그때는 이미 이과인이 팀에 합류한 이후. 32개국 본선에선 조별리그 B조 나이지리아와의 첫 경기에서 리오넬 메시, 카를로스 테베스, 곤살로 이과인 등에 밀려 중앙에 자리잡았지만[7] 그래도 대회 기간 내내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측면과 중앙에서 전방에 볼을 배급하고 압박에 대응하며 메시를 받쳐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막시 로드리게스와 동선이 너무 많이 겹치는 바람에 겹친 만큼 공백이 생겨버렸고 이걸 요아힘 뢰프가 칼같이 잡아내 8강 독일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3.2.2. 2011 코파 아메리카 아르헨티나[편집]


201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벤치 멤버였다. 그래서 콜롬비아전에서는 아예 결장했고 볼리비아전에서는 후반전만 출전했다. 하지만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인 코스타리카전에서는 이과인과 같이 선발 출장했는데 본격 2008 베이징 올림픽 모드가 발동하면서 전광석화 같은 플레이를 선보였다. 코스타리카 진영을 마구 유린하며 돌아다녔고 후반전에는 기어이 쐐기 골을 때려 넣어 아르헨티나가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3-0으로 승리하여 8강 진출을 하는 데에 일조했다. 하지만 8강에서는 테베스의 트롤로 우루과이에 승부차기 패배를 당한다.


3.2.3.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편집]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남미 예선에선 아르헨티나 대표팀에 소속되어 모든 경기를 개근했다. 리오넬 메시는 건강 문제로, 세르히오 아구에로는 부상으로, 곤살로 이과인은 카드 문제로 엔트리에 올라가지 못했을 때에도 디 마리아는 끝까지 남아서 팀을 지켰다. 월드컵 32개국 본선에 진출한 아르헨티나 대표팀 16강전에선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메시의 어시스트를 받아 천금같은 결승골을 터뜨리며 1:0으로 스위스를 무너뜨리고 자국이 8강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공헌[8]을 했다.[9] 그 와중에 32강 본선 조별리그에서 이란을 상대로 역 침대축구를 시전하며 축구 팬들에게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파일:external/www.cbc.ca/angel-di-maria-world-cup.jpg }}}

8강에서도 이과인의 골을 도우며 드디어 밥값하나 싶었으나 햄스트링 부상으로 쓰러지며 잔여 경기에 출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4강전 이후론 부상때문에 출전 못했고, 메시에게 가는 과부하를 줄여 줄 공격수가 사라진 아르헨티나는 결승전에서 패한다.[10]


3.2.4. 2015 코파 아메리카 칠레[편집]


2015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8강전까지 4-3-3의 3톱의 왼쪽 윙어로 모든 경기에 선발 출전했지만 자메이카전을 제외한 경기에서 상당히 부진한 모습을 먹으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파라과이와의 4강전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면서 맹활약을 펼쳤고, 아르헨티나는 파라과이를 6-1로 이기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결승전에 선발 출전했으나 전반 중반 무리한 단독 돌파 도중 햄스트링이 갑자기 올라오른 바람에 에세키엘 라베시와 교체 아웃되며 1년 전의 불운을 또다시 이어갔다. 팀은 칠레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아르헨으로서는 디 마리아의 아웃이 뼈아픈게, 디 마리아가 나가리 될때마다 팀내 드리블 비중이 메시에게 쏠려지고 상대팀은 메시만 막으면 되는 전술로 일관을 하다 보니 결승에서 경기 자체가 안 풀리게 되는게 연속이었다. 만약 디 마리아가 결승전에서 제대로 뛸 수만 있었어도 메시는 플레이메이킹 부담을 덜고 훨씬 공격임무를 많이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3.2.5. 코파 아메리카 센테나리오[편집]


16개국 본선 조별리그 칠레전에서 선발 1골 1도움을 해내며 승리의 1등공신이 되었고 조별리그 파나마전에서 교체로 들어와 1도움을 해냈다.그러나 허벅지 부상을 크게 입어 8강전까지 명단제외되었고 4강전에서도 벤치 신세였다.

결승 칠레전에서는 선발로 나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서 후반 12분 마티아스 크라네비테르와 교체되었다. 경기는 연장 무득점으로 2015년과 같이 승부차기를 하게 되었는데 컨디션 때문인지 승부차기 키커로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결과도 4:2로 아르헨티나가 준우승했다.


3.2.6.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편집]


2018 러시아 월드컵 남미예선전에서는 경기마다 힘을 쓰지 못하며 메시를 돕기는 커녕 오히려 부담만 늘여버렸다.[11] 그래도 최종 엔트리에는 선발되었는데 그동안 성인 국대에서 달고 있던 7번을 에베르 바네가에게 넘겨주고 본인은 베이징 올림픽때 달았던 11번을 달았다.

파일:아르골1.gif

프랑스전에서 나온 엄청난 동점골

토너먼트 16강 프랑스전에서는 1대 0으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엄청난 왼발 중거리 동점골을 터트렸다. 하지만 프랑스와 엄청난 난타전을 벌이다가 4대 3으로 패배하며 그대로 16강에서 탈락(16등). 그리고 이 골에 가려져서 그렇지, 디마리아의 경기력은 굉장히 좋지 못해서 아르헨티나의 부진에 일조한 측면도 있다.

2019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에서는 한 골도 넣지 못하는 등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보다도 더 부진했다. 친구 메시와 함께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그 이후 19-20 시즌에는 소속팀 파리를 챔스 결승전에 올려놓는 등 엄청난 활약을 보였고 당연히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남미 지역 예선 명단에 들 것으로 보였는데...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은 2022 카타르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 명단에 디마리아를 포함시키지 않았고, 그렇게 디마리아는 현재 대표팀 승선에 탈락했다. 본인은 이에 크게 격분한 상태다. 후배 파울로 디발라는 19-20 시즌 챔스 16강에서 올랭피크 리옹에게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2-2 패배를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대표팀에 차출된 것을 보면 화낼 만도 하다.


3.2.7. 2021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편집]


2021 코파 아메리카 브라질에선 주로 조커로 출전하는 중인데, 메시와 함께 재작년 코파 아메리카보다 더 좋은 폼을 선보이는 중이다. 조별리그 3차전 파라과이전에서 기막힌 스루패스로 파푸 고메스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8강 에콰도르와의 경기에서는 강한 전방압박을 통해 상대 수비진의 빌드업 미스를 유발해 스코어를 2:0으로 만드는 쐐기골에 기여했고,[12] 후반 추가시간 골문과 가까운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내며 메시의 프리킥 골에도 기여했다.

파일:FB_IMG_1654005924412.jpg

결승전에서 칩슛으로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넣은 디 마리아

그리고 대망의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로드리고 데파울이 브라질 파이널 서드로 길게 붙여준 공을 잡고 헤낭 로지의 미스를 틈타 1:1 찬스를 맞았고 침착하게 장거리 칩샷으로 골키퍼 에데르송 모라에스의 키를 넘기고 팀의 결승골을 득점, 1993년 코파 우승을 마지막으로 28년간 쭉 이어져온 아르헨티나의 국대 무관을 깬 주역이 됐다.[13] 경기 직후 공식 MOM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14]


3.2.8.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편집]


남미지역예선에서는 18경기 중 15경기 출장 3골 1도움을 기록했다. 촉발되는 세대교체로 인해 선발보다는 교체자원으로 쓰이는 모습이다. 소집횟수에 비하여 활약이 적어 노쇠화 이슈와 함께 이번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국대를 은퇴하는 편이 좋겠다는 말도 나온다.

3월 A매치를 마치고 디마리아 본인이 은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32강 조별리그 1차전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오프사이드에 걸리고 부정확한 크로스 등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충격적인 패배에 일조했다. 돌파 등의 개인기량 면에서는 팀의 에이스인 메시가 공을 여러번 뺏기며 턴오버로 실점에 기여하던 반면 상대의 압박에도 볼키핑을 잘해내는등 볼운반을 잘해냈지만 라우타로 등의 아르헨티나 공격진이 침묵하고 아무도 침투를 안하자 그냥 측면에서 공격수에게 전달하지 않고 냅다 공간에 크로스를 갈겨버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디마리아의 부진이라기엔 아르헨티나 공격진들의 작업이 정확하지 못했고 단조로운 공격에 전부 오프사이드가 걸렸다.

2, 3차전인 멕시코전과 폴란드전에서는 라우타로 마르티네즈가 빠지고 훌리안 알바레즈와 메시를 위주로 공격진을 세우자 디마리아도 윙어로서 하던대로 1인분 했고 메시의 활약으로 아르헨티나도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토너먼트에서는 8강전에서 연장전 후반에 교체투입된 것을 제외하고는 출전이 전무하다. 그래도 팀은 호주, 네덜란드, 크로아티아를 차례로 격파하며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결승 프랑스전에는 선발로 출장했다. 전반 초반 오픈 중거리 찬스에서 오른발로 홈런을 날렸지만,[15] 이후 21분쯤에 멋진 드리블로 우스만 뎀벨레에게 걸려 넘어져 페널티킥을 얻어내며 왜 본인이 빅 게임 플레이어인지를 증명했다. 그리고 이를 리오넬 메시가 성공시켰다. 이후 절묘한 역습 상황에서 알렉시스 맥 앨리스터가 적절하게 찔러준 컷백을 다이렉트로 잘 밀어 넣으면서 스코어를 2:0으로 만들었다. 하트 세레머니를 펼친 이후에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16] 이렇듯 스칼로니 감독의 승부수로서 만점짜리 활약을 펼친 이후 후반 19분 마르코스 아쿠냐와 교체 아웃되었다.[17] 팀은 전후반 2:2로 종료 후 연장전에서도 한 골씩 득점하는 매우 치열한 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승리하며 우승을 거두었다. 프랑스의 동점골이 나올 때마다 혹여라도 우승에 실패할까 초조해하면서 벤치에서 울먹이는 장면이 은근히 포인트.

파일:1000002333.jpg}}}
이번 대회에서 훌리안 알바레스, 엔소 페르난데스 등 메시를 우상으로 삼고 메시의 우승을 위해 온몸을 불사른 젊은 선수들의 투지에 디 마리아가 다소 묻혔지만, 결승전에서 빅게임 플레이어의 면모를 발휘해 대활약을 하면서 결국 메시의 대표팀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자신임을 저번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 이어 다시 한 번 입증했다.[18]

메시에게 임팩트가 몰려서 그렇지 디 마리아도 마지막 월드컵이었는데, 결승전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며 라스트 댄스를 멋지게 장식했다. 2014년에는 맹활약하다 부상으로 빠지며 결승전에 뛰지 못했는데, 2022년에는 그 반대로 부상으로 신음하다 결승전에서 대활약을 펼쳤다.


3.2.9. 2024 코파 아메리카 미국[편집]


SNS를 통해 이번 코파 아메리카를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며 이번이 디 마리아의 마지막으로 참가하는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가 될것으로 보여진다.

예선 2차전 지옥이라는 볼리비아 원정에서 2어시를 기록하며 3-0 대승을 이끌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남미 출신답게 볼을 다루는 컨트롤이 뛰어나고 화려한 개인기술을 갖추고 있어, 측면에서의 드리블 돌파를 즐겨한다. 1대1 돌파는 물론, 다수의 압박을 벗겨내는 탈압박과 볼키핑은 월드클래스로 평가받는다. 몸이 매우 유연해 상체 페인팅을 적극 활용해 흐물거리는 형태로 상대의 무게중심과 타이밍을 뺏는 정교한 드리블을 구사한다. 가볍고 유연한 본인의 신체적 특징을 이용해 굉장히 볼을 빠르게 끌고 가는데, 속도가 붙거나 수비의 몸싸움이 들어와도 공을 잃어버리지 않고 섬세하고 정교한 볼 터치로 본인의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컨디션이 좋을때는 본인만 빨리감기한 것 처럼 보일 때도 있을 정도.

극단적인 왼발잡이이지만 이 왼발만으로 할 수 있는 플레이가 매우 많다. 드리블 할 때나 기본적인 패스를 할 때도 거의 왼발만 쓰는데, 플레이가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왼발 각이 없음에도 아웃프런트나 라보나 킥을 활용해 각을 만들어내는 신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마른 체격과 상반되게 엄청난 왼발 킥력을 보유하고 있어 파워풀한 중거리 슛을 활용한 득점을 심심찮게 기록하며, 프리킥과 코너킥도 도맡아서 차고 있고 좌우 측면에서 정확하게 올려주는 크로스 및 얼리 크로스 외에도 후방에서 찔러주는 롱패스의 정확도 또한 준수하다.

실력 여부를 떠나 축구를 굉장히 멋있게 하기로 유명하며 패스, 터닝슛, 드리블 등이 하나같이 폭풍간지이다.

단점이 있다면 180cm에 69kg이라는 매우 마른 피지컬 때문에 몸으로 밀어붙이는 수비수에게는 크게 밀린다. 대표적인 경기가 2010 월드컵의 나이지리아전과 독일전. 이 때문에 동료 선수들로부터 Fideo(국수)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19]# 또한, 앞서 서술한 대로 극단적인 왼발잡이이기에 플레이에 제약이 있으며, 오른발 타이밍에 걸릴 경우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경험이 쌓이며 오른발 스루패스 정도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구사하지만 킥은 아쉬운 편. 대표적으로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서 왼발에 걸린 찬스는 깔끔하게 꽂아넣었지만 오른발에 걸리자 홈런을 쏴 버렸다.

벤피카 시절에는 킥력과 드리블만 돋보이고 피지컬이나 다재다능함은 아쉬웠던 전형적인 공격형 윙어였으나, 주제 무리뉴 감독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 수비가담과 동료를 활용하는 연계 플레이에 대한 이해도, 파이널 서드에서의 시야 확보와 찬스 메이킹에 눈을 떠서 레알 마드리드의 주축 윙어로 자리잡았다. 특히 11-12 시즌에는 리그에서만 15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레알 마드리드의 찬스 메이커로 자리잡기도. 하지만 오른쪽에 서는 극단적인 왼발잡이라는 점과 하이 리스크 - 하이 리턴의 모험적인 플레이 때문에 항상 기복이 심했고, 실제로 12-13 시즌 부진 이후 방출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카를로 안첼로티 부임 이후 13-14 시즌 외질이 아스날로 떠나며 잔류했고, 중앙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세부적으로는 4-3-3 포메이션의 왼쪽 메짤라로 기용되어 좌측면과[20] 중앙을 오갔는데, 이에 따라 왼발 사용이 매우 자유로워져서 자신의 단점인 오른발이 가려졌고, 넓은 폭의 활동량, 최상급의 테크닉과 스피드를 활용한 돌파력, 유려한 탈압박과 더욱 스텝업한 패스 및 시야로 대활약을 보여주며 라 데시마의 주역으로 우뚝 올라섰다. 이후 맨유 시절 루이 판할의 잘못된 활용과 본인의 잉글랜드 무대 적응 실패로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낸 뒤[21] 이적 과정에서 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매우 실망스러운 면모를 보이며 파리 생제르맹으로 떠났고, 파리에서는 첫 시즌 프리롤을 맡아 대활약 한 뒤 이후 우나이 에메리 강점기 시절 역시 잘못 활용되며 부진했으나 토마스 투헬 부임 이후에는 제대로 활용되며 네이마르와 음바페의 존재감에도 밀리지 않고 주전 급 선수로 롱런하고 있다.

파리에서 디 마리아가 놀랍도록 발전 한 능력 중 하나는 경기 조율 능력이다. 사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마지막 시즌에 에이스 급 활약을 보여줬음에도 안첼로티가 디 마리아를 매각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 것은 디 마리아가 자신의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너무나도 리스크가 큰 경기 운영을 하고 공을 소유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장면에서 턴오버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좀 더 경기 조율이 되면서 안정적인 하메스 로드리게스를 영입했다.[22] 허나 파리 시절부터는 노련미가 더해져 경기 조율 능력이나 성공 확률이 높은 플레이를 선택하는 판단력의 유연함이 여러모로 발전을 하게 되었다. 공을 끄는 버릇도 투헬 부임 이후에는 많이 사라진 편이다. 전체적으로 기량이 완숙되면서 기복이 크게 줄었다.

또한 큰 경기에 굉장히 강한 선수로, 많은 이목이 집중되는 경기에서 자신의 장점을 살려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거나 중요한 어시스트를 하는 활약을 자주 보여주었다. 레알 시절 주인공은 명백히 호날두였으나, 라 데시마를 달성한 경기의 MOM은 디 마리아였다. PSG 시절 역시 스포트라이트는 즐라탄과 네이마르가 가져갔으나, PSG의 첫 챔스 결승 진출을 이끈 선수는 디 마리아였다. PSG가 챔스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여줄 땐 거의 매번 디 마리아가 날뛰었고, 반대로 그가 침묵하면 파리는 우세한 상황에서도 맥없이 패배했다. 대표팀에서 역시 세르히오 아구에로, 곤살로 이과인 등 대표팀만 가면 기대 이하인 아르헨티나의 공격수들 사이에서 메시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장황하게 설명할 것 없이 올림픽, 코파 아메리카, 월드컵 결승전에서 모두 득점을 기록한 선수며, 월드컵 결승을 제외하곤 모두 팀의 우승을 확정짓는 결승골이었다. 월드컵 결승에서도 결승골이 아니었다 뿐이지 1골 1PK 유도로 맹활약하며 그 프랑스의 우측면을 처참히 유린했다. 물론 대표팀에는 역대 최고의 선수인 메시가 존재하지만, 결국 메시의 첫 국가대표 메이저 트로피도 디 마리아의 발끝에서 탄생했다. 이에 더해 메시와 본인의 마지막 월드컵이었던 2022 월드컵 결승에서도 좋은 폼을 보여주더니 PK를 얻어내고 골까지 터뜨리는 등 36년만의 월드컵 우승에 크게 일조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상대적으로 스타성이 부족한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팬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주고 있다. 언제나 화려한 동료들과 플레이하지만, 팀이 위기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그 어떤 선수들보다도 더욱 빛나는 활약을 하는 선수이다.

종합하자면, 세계 정상급의 테크닉, 빅클럽 수준에서도 평균을 상회하는 스피드와 패스 능력, 높은 전술 이해도, 그리고 빅 게임 헌터 기질을 바탕으로 롱런하고 있는 2010년대 최고의 윙어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 아르헨티나 U-23 축구 국가대표팀



5.2. 개인 수상[편집]




6. 디 마리아에 대한 말, 말, 말[편집]


당신은 매경기 그의 플레이로 2배의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디 마리아의 드리블 10번 중 7번은 성공한다고 보장한다. 요즘엔 보기 힘든 플레이다. 그는 엄청나다. 그의 피 속엔 축구선수의 피가 흐르고 매일 기본기가 향상되고 있다. 그는 왼쪽 측면에서만 머물러서 플레이하진 않는다. 그는 지금 플레이로 보여주고 있으며, 볼을 향해 질주하고 수비수들은 모두 그를 잡으려고 한다.

디에고 마라도나


그는 엄청나게 빠르고 말도 안되는 왼발을 가진 사나이다. 그는 수비수들을 미치게 만든다. 그는 겁먹지 않고 1:1에서 멈추지도 않으며 윙쪽에서 볼을 멋지게 다루고 양발로 슛을 때릴 수 있다. 그는 윙어로도 플레이할 수 있고 2선에서 공격수로도 플레이할 수 있다.

하비 가르시아


디 마리아의 에너지, 속도, 재능은 팀에 많은 것을 기여할 수 있다. PSG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성공이 필요하다. 디 마리아는 팀을 다음 스테이지로 이끌 수 있는 유형의 선수고 PSG를 도울 수 있는 선수다.

지네딘 지단


지금 디 마리아가 세리에 A에 합류하는 것은 마라도나가 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재 이탈리아 세리에 A는 기술적으로 발전하지 못했지만, 디 마리아는 훌륭한 테크닉을 가진 선수다. 골문 앞에서 득점할 수 있는 능력 역시 가졌으며 상대 수비를 드리블로 제쳐낼 수 있다. 결정적인 어시스트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활동량 역시 많다. 우린 완벽한 '프로 선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디 마리아가 세리에 A로 향한다면 마라도나처럼 될 수 있다. 파리 생제르맹에 있었을 때 네이마르, 조금 더 어렸던 킬리안 음바페, 마르코 베라티와 함께 뛰었지만, 디 마리아는 세 선수와 비교해 부족함이 없었다.

잔루이지 부폰


늘 디 마리아의 경기를 보면 감탄했다. 에서 0-4로 패했던 경기가 기억난다. 당시 디 마리아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고, 우리는 그를 멈추기란 어려웠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23]



7. 논란[편집]



7.1. 탈세 논란[편집]


2017년 6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활약하던 2012년과 2013년에 15억에 달하는 금액을 파나마 유령회사를 이용해 탈세했다는 기사가 BBC, 더 가디언, 텔레그래프 등 다수의 언론이 앞다퉈 보도했다. 원문 기사

결국 2017년 12월, 디 마리아가 탈세를 시인하고 징역 1년[24], 기존 탈세액 15억에 10억을 추가로 납부하기로 하였다는 기사가 카데나 세르의 기사를 인용한 문도 데포르티보에 보도되었다.


8. 여담[편집]


  • 메시와는 16년 지기 친구이자 국가대표 커리어의 대부분을 함께한 가장 든든한 파트너이기도 하다. 국가대표에서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리오넬 메시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메시의 국가대표 동반자였다. 국가대표로 들어온 메시의 옆에는 항상 디마리아가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메시의 국가대표 커리어 초창기가 불운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디마리아 역시 국가대표 운이 없는 선수로 꼽혔으나[25][26] 커리어 막판까지 포기하지 않은 결과 메시와 디마리아는 모든 메이저 대회를 우승한[27] 아르헨티나 최고의 레전드로 남게 되었다.

  •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명실공히 결승전의 사나이다. 메시가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할 때마다 결승전에서 디 마리아가 골을 넣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1골, 코파 아메리카 때 1골, 피날리시마 때 1골,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때 역시 1골 + 1 페널티킥[28]을 달성했다.

  • 대표팀에서 별명이 국수(Fideo)라고 한다. 마른 몸매 때문인 듯. 국내팬들 사이에서 불리는 별명은 도비이다.

  • 레알 마드리드에 함께 있을 당시 디 마리아는 외질과 친분이 깊었는데 이땐 외질 뿐만 아니라 이과인, 호날두 등과도 모두 친했고 특히 디 마리아와 이과인은 국적도 같은 아르헨티나라서 축구를 할 때 두 사람은 시종일관 같은 팀이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과 바르샤의 에이스인 리오넬 메시와는 고향까지 같은데다가 레알 마드리드 시절을 거치며 굉장히 친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둘은 파리 생제르맹 FC에서 같이 뛰게 된다.


  • 2014년 월드컵 지역 예선, 페루와의 원정 경기에서 페루의 훌리건들이 경기 전날 돌팔매질로 소속 팀 버스의 유리창을 깨는가 하면 밤새도록 호날두를 연호하는 바람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아무 활약 없이 막시 로드리게스와 교체되었는데 울면서 벤치로 들어가는 것을 페루 선수가 달래려고 하자 이를 뿌리쳐서 경고를 받는 바람에 교체 도중 경고를 받는 이색적인 기록을 남겼다.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디마리아가 없는 경기에서 심하게 고전한다. 2010년 월드컵 지역예선 볼리비아 원정경기에서는 디마리아가 퇴장당하자마자 팀이 급격하게 폭망해서 결국 1-6으로 대패하고 말았는데 디마리아가 퇴장당한 직후 5점이나 실점했다. 그리고 2014년 월드컵 4강에서 디마리아 없이 네덜란드와 맞붙어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는 난타전을 벌였고 결승에서도 디마리아 없이 뛰어 패하는 바람에 준우승을 하고 말았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전반전 내내 프랑스를 경기력으로 압살하며 무난하게 2:0 승리를 챙길 듯 했지만 디마리아를 교체한 이후 발생한 공백을 프랑스가 파고들면서 승부차기까지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있었다.

  •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디에고 마라도나가 인터뷰에서 디마리아를 깐 적이 있다. 디마리아의 소원을 물었더니 월드컵 우승이 아니라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라고 했다며 이런 마인드니 우승을 못한다라고 대차게 까면서 라떼는 말이야를 시전했다. 그런데 결국 디마리아는 챔피언스 리그 우승과 월드컵 우승을 모두 이루어냈다(...) [29]

  • 주로 손을 하트 모양으로 그리는 세레모니를 많이 한다. 딸이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2개월 동안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딸과 아내에게 보내는 사랑의 표현이라고 한다. 이너웨어에 아내와 딸의 사진을 프린트 해서 입고 다니기까지 한다. 여러모로 팔불출. 그런데 팔불출일만한 게 딸이 아주 이쁘고 귀엽다.


  • 프로에 데뷔 할 때인 20살 무렵에는 키가 167cm였지만 계속 성장하며 180cm까지 컸다는 얘기가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30]

  • 왼손잡이이다. 이 곳 참조 사실 축구선수들이 주로 쓰는 손발이 안 맞는 경우는 꽤 많다. 이케르 카시야스만 해도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고 왼발로 차지만 반대로 왼손 쓰면서 오른발 쓰는 선수들도 꽤 많다. 또한 왼발잡이인 메시도 일상생활은 오른손으로 한다.

  • 홀쭉한 볼살이 돋보이는 외모에 걸맞게, 체구가 매우 깡말랐다. 살이 찌지 않는 체질 중에서도 극단적인 체질인데 심하면 180cm에 55kg의 저체중으로 까지 떨어지기도 하며 작정하고 살을 찌운 것조차 75kg가 최대기록 이라고 한다.


  • 클럽팀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대표팀에선 리오넬 메시와 모두 뛰어본 선수다. 참고로 메시와 호날두 중 누구의 검열삭제 크기가 더 크더냐(...)는 메호대전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디마리아 왈 메시가 더 크더라고...참고로 메시와 호날두와 둘 다 같이 뛰어본 선수들 중에서 가장 오래 같이 뛰어 본 선수로 호날두의 국대를 제외하고는 다 뛰어봤다.

  • 검열삭제가 매우 크다고 한다. ## 사실 디마리아처럼 키크고, 코크고, 마른 몸매가 검열삭제가 크다는 얘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이 퍼져 있는 얘기기는 하다.

  • FIFA 20부터 FIFA 22까지 피파 유저들한테는 뒷통수를 후려갈기는 폭탄 취급 받고있는데, 리오넬 메시와 같은 아르헨티나 선수에 포지션도 RW(오른쪽 윙어)로 나왔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와 RW까지 나왔는데 마지막에 바르셀로나 로고가 아닌 파리 생제르맹 로고가 나온다면 많은 게이머들이 깊은 빡침을 느낀다고. FIFA 22부터는 소속팀까지 같아져서 통수력이 급증했다. 이외에도 조르조 키엘리니레오나르도 보누치(이쪽은 이탈리아, 센터백, 피에몬테 칼초까지 똑같다.), 세르히오 라모스제라르 피케(이쪽은 둘다 스페인 선수에 센터백이지만 라모스는 레알, 피케는 바르샤 소속이다.)[31], 루카 모드리치이반 라키티치(이쪽은 둘다 크로아티아 선수에 중앙 미드필더이지만 모드리치는 레알, 라키티치는 세비야소속이다.) 등이 있다. 하지만, 이젠 유벤투스로 이적했기 때문에 FIFA 22 같은 불상사는 피할 수 있게 되었다.

  • 다소 기복은 있었지만 국대나 클럽이나 큰 경기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쌓아올린 커리어를 보면 아르헨티나의 레전드 윙어로 불릴만한 선수지만, 같은 국대에 하필이면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있어서 은근히 묻히는 편이다.

  • U-20[32] + 올림픽 축구종목 + 지역 컵 대회(코파 아메리카) + 피날리시마(코파 우승 va 유로컵 승자) + FIFA 월드컵을 모두 우승한 단 둘 뿐인 선수이다. 다른 하나는 다름 아닌 리오넬 메시이다. 이는 2008 올림픽부터 시작해 2022 월드컵까지 다른 동료들이 떠나가고 새로운 동료들이 오고 하는 와중에도 오직 디 마리아만큼은 변함없이 늘 메시와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플레이에 기복이 있는 편이라 결승까지 가는 과정은 버스를 좀 타지만 반대로 결승전에 나서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대활약 하는 것이 디 마리아의 특징이었다.

  • 아르헨티나의 우승이 확정되자 호날두에게 인스타 계정을 언팔당했다는 가짜뉴스가 돌았지만#, 사실 호날두와 디 마리아는 애초부터 서로 팔로우한 적이 없었다. 아르헨티나 우승 후 호날두의 팔로우 목록에 디마리아가 없는 것을 확인한 어느 트위터리안이 성급하게 호날두가 언팔해버렸다고 판단한 것이 널리 퍼져버린 것.# 다만 그 뒤에 언팔당한 린가드와 호나우두는 진짜였다.

  • 메시에게 엄청난 충성심을 보이는 현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국내에서는 메시해적단사실 대부분 구토해적단이라 부른다이라 칭하는데, 이는 현재 아르헨티나 스쿼드가 대부분 어린시절 메시를 동경하던 유소년들이 성장해서 자신의 우상과 함께 뛴 경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 마리아는 메시와 맞먹는 짬밥을 가진 최고참이라[33] 어느 한 해적단원이 아니라 부선장으로 칭해진다.

  • 알파호르[34]를 상당히 좋아한다.

9. 같이 보기[편집]



파일:SL 벤피카 로고.svg


[ 펼치기 · 접기 ]
등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비고
1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GK
아나톨리 트루빈
Anatoliy Trubin

6
파일:덴마크 국기.svg
DF
알렉산데르 바
Alexander Bah

7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다비드 네리스
David Neres

8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MF
프레드릭 아우르스네스
Fredrik Aursnes

9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아르투르 카브라우
Arthur Cabral

10
파일:튀르키예 국기.svg
MF
오르쿤 쾨크취
Orkun Kökçü

11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FW
앙헬 디 마리아
Angel Di Maria

13
파일:체코 국기.svg
DF
다비드 유라세크
David Jurásek

15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FW
곤살루 게드스
Gonçalo Guedes

18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MF
파울루 베르나르두
Paulo Bernardo

19
파일:덴마크 국기.svg
FW
카스페르 텡스테트
Casper Tengstedt

20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MF
주앙 마리우
João Mário
부주장
21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MF
안드레아스 시엘데루프
Andreas Schjelderup

22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MF
시키뉴
Chiquinho

24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GK
사무엘 소아르스
Samuel Soares

25
파일:미국 국기.svg
DF
존 브룩스
John Brooks

27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MF
하파 실바
Rafa Silva

30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DF
니콜라스 오타멘디
Nicolás Otamendi
주장
31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DF
질 디아스
Gil Dias

33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FW
페타르 무사
Petar Musa

34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DF
안드레 알메이다
André Almeida

44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DF
토마스 아라우주
Tomás Araújo

61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MF
플로렌티누 루이스
Florentino Luís

66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DF
안토니우 실바
António Silva

72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DF
토마스 아라우주
Tomás Araújo

77
파일:브라질 국기.svg
GK
에우통 레이치
Helton Leite

91
파일:브라질 국기.svg
DF
모라투
Morato

99
파일:그리스 국기.svg
GK
오디세아스 블라호디모스
Odisseas Vlachodimos

#
파일:스페인 국기.svg
DF
후안 베르나트
Juan Bernat
[1]





파일: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 펼치기 · 접기 ]

||<table width=100%><tablebgcolor=#fff,#191919><rowbgcolor=#abdded,#114453> 포지션 || 등번호 || 한글 이름 || 영어 이름 || 출생 || 출장 || || 클럽 || 비고 ||
||<|3> GK || 1 || 프랑코 아르마니 || Franco Armani || 1986년 10월 16일 || 15 || 0 || 파일:CA 리버 플레이트.png CA 리버 플레이트 || ||
|| 12 || 아구스틴 마르체신 || Agustín Marchesín || 1998년 3월 16일|| 7 || 0 || 파일:FC 포르투 로고.svg FC 포르투 || ||
|| 23 ||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 || Emiliano Martinez ||1992년 9월 2일 || 9 || 0 || 파일:AVFC.png 아스톤 빌라 FC || ||
||<|7> DF || 19 || 니콜라스 오타멘디 || Nicolás Otamendi || 1988년 2월 12일 || 74 || 4 || 파일:Benfica.png SL 벤피카 || ||
|| 3 || 니콜라스 탈리아피코 || Nicolás Tagliafico || 1992년 8월 31일 || 28 || 0 || 파일:AFC 아약스 로고.svg AFC 아약스 || ||
|| - || 후안 포이스 || Juan Foyth || 1998년 1월 12일 || 10 || 0 || 파일:비야레알 CF 로고.svg 비야레알 CF || ||
|| 4 || 곤살로 몬티엘 || Gonzalo Montiel || 1997년 1월 1일 || 6 || 0 || 파일:CA 리버 플레이트.png CA 리버 플레이트 || ||
|| 2 || 루카스 마르티네스 || Lucas Martínez || 1996년 5월 10일 || 6 || 0 || 파일:Fiorentina.png ACF 피오렌티나 || ||
|| 14 || 파쿤도 메디나 || Facundo Medina || 1999년 5월 28일 || 1 || 0 || 파일:Lens.png RC 랑스 || ||
|| 15 || 네우엔 페레스 || Nehuén Pérez || 2000년 6월 24일 || 0 || 0 || 파일: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로고.svg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 ||
||<|8> MF || 5 || 레안드로 파레데스 || Leandro Paredes || 1994년 6월 29일 || 28 || 3 || 파일:파리 생제르맹 FC 로고.svg 파리 생제르맹 FC || ||
|| - || 마르코스 아쿠냐 || Marcos Acuña || 1991년 10월 28일 || 27 || 0 || 파일:Sevilla.png 세비야 FC || ||
|| - || 에두아르도 살비오 || Eduardo Salvio || 1990년 7월 13일 || 13 || 0 || 파일:BocaJuniors.png CA 보카 주니어스 || ||
|| - || 알렉시스 맥 앨리스터 || Alexis Mac Allister || 1998년 12월 24일 || 2 || 0 || 파일:BHA.png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 ||
|| 8 || 로드리고 데 파울 || Rodrigo De Paul || 1994년 5월 24일 || 21 || 0 || 파일:Udinese.png 우디네세 칼초 || ||
|| 16 || 기도 로드리게스 || Guido Rodríguez || 1994년 4월 12일 || 10 || 0 || 파일: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로고.svg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 ||
|| 17 || 니콜라스 도밍게스 || Nicolás Domínguez || 1998년 6월 28일 || 8 || 1 || 파일:Bologna.png 볼로냐 FC 1909 || ||
|| - || 에세키엘 팔라시오스 || Exequiel Palacios || 1998년 10월 5일 || 4 || 0 || 파일:바이어 04 레버쿠젠 로고.svg 바이어 04 레버쿠젠 || ||
||<|8> FW || 10 || 리오넬 메시 || Lionel Messi || 1987년 6월 24일 || 150 || 76 || 파일:파리 생제르맹 FC 로고.svg 파리 생제르맹 FC || 주장 ||
|| - || 파울로 디발라 || Paulo Dybala || 1993년 11월 15일 || 29 || 2 || 파일:유벤투스 FC 로고.svg 유벤투스 FC || ||
|| 22 ||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 Lautaro Martínez || 1997년 8월 22일 || 21 || 11 || 파일:InterMilan.png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 ||
|| 13 || 루카스 알라리오 || Lucas Alario || 1992년 10월 8일 || 9 || 3 || 파일:바이어 04 레버쿠젠 로고.svg 바이어 04 레버쿠젠 || ||
|| - || 히오바니 시메오네 || Giovanni Simeone || 1995년 7월 5일 || 5 || 1 || 파일:칼리아리 칼초 로고.svg 칼리아리 칼초 || ||
|| 9 || 호아킨 코레아 || Joaquín Correa || 1994년 8월 13일 || 5 || 2 || 파일:SSLazio.png SS 라치오 || ||
|| 7 || 알레한드로 고메스 || Alejandro Gómez || 1988년 2월 15일 || 5 || 1 || 파일:AtalantaBC.png 아탈란타 BC || ||
|| 18 || 루카스 오캄포스 || Lucas Ocampos || 1994년 7월 11일 || 7 || 2 || 파일:Sevilla.png 세비야 FC || ||
||<-9><bgcolor=#ABDDED>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 마지막 수정 일자: 2020년 10월 8일 ||







[1]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 시절부터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 시절까지는 7번이었다.[2] 2023년 11월 17일 기준. 대표팀 역대 출장 4위이자 역대 득점 7위.[3] 16번으로 뛰었다.[4] 기성용, 이청용, 박주호가 뛰었다.[5] 0:22초에 16번 앙헬 디 마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다.[6] 대한축구협회 아카이브 아르헨티나 항목에 U20 대표팀에서 2006년 8월 31일 라인업에 디 마리아 명단이 있다. 당시 라인업 참조[7] 그나마 디 마리아는 다행이도 주전이기라도 했으나 아구에로는 아예 서브였다.[8] 하지만 사실 이 월드컵 전반적으로 수비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의 역할이 가장 컸다. 스위스전에서도 결정적인 수비가 많았고, 준결승까지 계속 미친 지구력으로 엄청난 수비를 보여주었다.[9] 골을 못 넣었으면 역적이 되었을 게 분명한데, 박스 근처에서 공을 잡았다 하면 앞뒤 생각 않고 무조건 슛을 날려대는 미친 탐욕을 보였기 때문이다.[10] 패배 뒤 디 마리아가 눈물을 흘리는데 8강전의 부상 때문에 결승전에서 힘이 못 되어줘서 마음이 많이 아팠던 것 같다.[11] 특히 우루과이, 페루 전에서의 활약은 진짜 끔찍했다.[12] 당시 경기가 1:0으로 아르헨이 불안한 리드를 가져가고 있었고 에콰도르 측의 코너킥 세트피스가 후반 들어 자주 나오는 상황이였기에 정말 천금같은 쐐기골이였다.[13] 디 마리아는 결승전의 사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결승전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해주는 선수인데 정작 국대로 나선 결승전은 불운이 겹쳤던 편이였다. 특히 결승까지 갔던 2014 월드컵은 8강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제외, 2015 코파는 이른시간 부상으로 인한 교체로 결승전을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했고, 2016 코파는 센터백 마르코스 로호가 퇴장당하며 힘겹게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메시와 동시대에 같이 뛰는 선수답게 디 마리아도 국대 커리어가 불운한 편. 그러나 기어이 메시와 함께 커리어 말년에 이 불운을 깨부수는데 성공했다.[14] 디 마리아는 13/14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MOM에 이어 2021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MOM을 차지하면서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과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모두 MOM을 차지한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15] 오른발을 못 쓰는 편이다. 국내 선수로 생각하면 염기훈을 생각해도 쉬울 듯.[16]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에서 패배 후 본인이 부상으로 인해 경기를 뛰지 못해 메시의 부담을 덜어주지 못했다고 오열했었는데 그때 당시 상황을 떠올린 듯 하다.[17] 만약 경기가 아르헨티나의 일방적인 경기내용을 유지하며 정규 시간 내 승리로 끝냈다면 본인이 POTM을 가져갔을 수도 있었다.[18] 사실 그 동안 메시의 공격 파트너하면 곤살로 이과인,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주목을 받았지 디 마리아는 저들에 비해서 주목도가 낮았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황금세대 중 거듭된 준우승 속에서도 떠나지 않고 메시와 함께 마지막까지 대표팀에 남은 선수는 디 마리아였고, 결승전에서 맹활약하며 제 역할을 다하고 마침내 월드컵 우승의 영광을 함께한 선수도 디 마리아였다.[19] 참고로 이 별명이 파스토레의 별명이였다.[20] 당시 안첼로티의 시스템은 4-3-3과 4-4-2를 혼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이었다. 디 마리아의 위치는 4-3-3에서는 왼쪽 메짤라이고, 4-4-2에서는 왼쪽 윙어이다. 반대쪽의 베일은 4-3-3에서는 오른쪽 윙 포워드, 4-4-2에서도 오른쪽 윙어이다.[21] 실망스럽다고는 했지만 전반기의 디 마리아는 역시 월드클래스였다. 다만 후반기 이후 판할이 투톱의 한 자리에 기용한다거나, 집에 강도가 들어 멘탈이 흔들린다던가 하는 일들이 있었기에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영입이 되었다.[22] 실제로, 하메스는 안첼로티 휘하에서는 라리가 최우수 미드필더로 선정될 만큼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23] 공교롭게도 슈바인슈타이거가 활동할 당시에는 둘 다 각자의 국가대표에서 동일한 등번호인 7번을 달고 있었다. 디마리아가 아르헨티나 국대에서 11번이 된 건 슈바인슈타이거가 독일 국대를 은퇴한 이후이다.[24] 스페인은 초범에 징역 2년 이하일 시 집행유예에 그친다.[25] 그중에서도 두 선수의 팬들이 가장 땅을 치며 아쉬워하는 것이 2014 월드컵 결승전 당시 부상으로 인한 디마리아의 결장이었다. 출전하지 못한 채 고전하는 동료들을 지켜봐야 했던 디마리아는 말할 것도 없고, 디마리아가 없어지면서 그 부담이 고스란히 리오넬 메시에게로 돌아가며 결과적으로 아르헨티나가 우승까지 놓쳤기 때문이다. 이 시즌 메시는 바르셀로나가 흔들렸음에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고, 디 마리아는 레알 중원의 핵심으로 자리잡고 라 데시마 달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만큼 폼이 절정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다. 8년뒤 결승전에서는 비록 메시가 POTM으로 선정되었지만 디마리아도 POTM급의 활약을 보여주며 우승에 공헌한 걸 보면 맞는 판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26] 디마리아 스스로도 굉장히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했는데, 2021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 전날 밤에 메시가 코파 결승을 2014년에 뛰지 못한 월드컵 결승의 대신이라 생각해달라고 하며 "이번 결승전은 너의 무대가 될 거야."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대로 실현되었다.[27] 올림픽,대륙컵,월드컵[28] 페널티킥을 디 마리아가 따다가 메시에게 바쳤고, 페널티골을 넣은 건 메시였다.[29]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이미 인터뷰 이전에 13-14시즌에 빅이어를 들어올렸고 월드컵은 인터뷰 이후 다음 대회인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30] 물론 사람마다 크는 시기나 편차가 있기에 디마리아도 프로 데뷔후에 키가 몇 cm 더 클 수도 있지만 저렇게 극단적으로 크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31] 번외로 세르히오 라모스와 나초 페르난데스도 있는데, 이 둘은 국적과 소속팀, 그리고 포지션도 같아서 더욱 오해를 산다.[32] 이것만 유일하게 디 마리아와 메시가 같이 뛰지 않았다. 메시는 같은 나이대의 다른 선수들에 비해 급이 한 단계 높은 판정이었기 때문에 1대회 일찍 출전했다.[33]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2021년 부정맥으로 은퇴하게 되면서 이제 2010년 이전의 국가대표 선수들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건 메시, 디 마리아, 오타멘디 이렇게 셋 뿐이다.[34] 두툼하고 부드러운 쿠키 사이에 캬라멜이나 초코시럽을 뿌려 만든 아르헨티나 전통과자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8 06:08:46에 나무위키 앙헬 디 마리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