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르미도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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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사산 왕조의 제38대 샤한샤. 사산 왕조의 두번째 여제이다.
2. 생애[편집]
아자르미도흐트(Āzarmīgdukht)는 '고귀한 남자의 딸'을 의미한다. 피르다우시의 샤나메는 그녀를 아즈람(Azram)이라고 언급했다. 그녀는 호스로 2세와 마우리키우스 황제의 딸 마리아 황후 사이의 딸로, 형제자매로 카바드 2세, 푸란도흐트, 파루카자드 호스로 5세가 있었다. 628년 6월 23일 귀족들의 정변 덕분에 감옥에서 빠져나와 샤한샤가 된 카바드 2세는 자신을 박대한 아버지를 처형했고, 아버지의 편애를 받으며 후계자로 지명되었던 마르단샤를 비롯한 이복형제들을 모조리 죽였다. 아랍 역사가 알 타바리에 따르면, 그녀는 푸란도흐트와 함께 카바드 2세를 비난했고, 그는 결국 자신의 행위를 반성했다고 한다.
628년 9월 6일, 카바드 2세가 재위 2개월만에 역병에 걸려 사망했다. 그후 7살의 어린 아들 아르다시르 3세가 즉위했지만, 630년 4월 29일 미흐란 가문의 수장이며 유력한 장군이었던 샤흐르바라즈의 반란으로 시해되었다. 샤흐르바라즈는 수많은 귀족을 처형하고 샤한샤에 올랐지만, 재위 40일만에 이스파부단 가문의 수장 파루크 호르미즈드의 반란으로 살해되었다. 파루크 호르미즈드는 샤흐르바라즈의 무리를 축출한 뒤, 630년 6월 말 푸란도흐트를 샤한샤로 추대했다. 그러나 얼마 후 샤흐르바라즈의 아들 샤푸르 샤흐르바라즈가 수도로 쳐들어와서 푸란도흐트를 축출하고 샤한샤가 되었다. 그러자 파르시그 가문의 피루즈 호스로가 그를 재차 폐위시키고 아자르미도흐트를 샤한샤로 추대했다.
그녀는 짧은 통치 기간 동안 앞면에 'Khoreh Abzud' 문구를 새기고, 승리의 신 바흐람을 상징하는 날개 달린 왕관을 묘사한 동전을 주조하였다. 초상화는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 호스로 2세를 그렸는데, 이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즉위한 푸란도흐트 역시 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하는 문구를 새겼지만, 아버지의 초상화를 동전에 새기지는 않았다.
파루크 호르미즈드는 파르스의 이스타크르와 메디아의 나하반드에서 샤한샤를 자칭하며 그녀에 대항하면서도,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고 파르시그 가문과 화해하기 위해 아자르미도르에게 청혼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받아들이길 꺼렸고, 바흐람 추빈의 손자이자 미흐란 가문의 시야바흐쉬와 손을 잡고 파루크 호르미즈드를 살해했다. 이후 샤푸르 샤흐르바라즈에게 청혼했고, 샤푸르도 호의를 표했다. 그러나 631년 호라산 북동부 지역에 주둔하고 있었던 파루크 호르미즈드의 아들 로스탐 파로흐자드가 크테시폰으로 쳐들어가 아자르미도흐트의 모든 군대를 물리친 뒤 도시에 진입했다. 그녀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체포된 뒤 실명형에 처해진 후 곧 살해되었다. 그 후 로스탐은 푸란도흐트를 샤한샤에 복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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