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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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 제국 21대 샤한샤
𐭥𐭥𐭣𐭠𐭧𐭱𐭩 |발라시
파일:발라시.jpg
제호
한국어
발라시
중기 페르시아어
𐭥𐭥𐭣𐭠𐭧𐭱𐭩
영어
Balash
존호
샤한샤
생몰 년도
?~?
재위 기간
484년~488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사산 왕조의 제21대 샤한샤.


2. 생애[편집]


발라시(Balāsh)는 중세 페르시아어인 왈루크쉬(Wardākhsh)의 신 페르시아어 용어이다. '힘(varāda)'과 gaš(잘생긴)의 합성어라는 설이 있으나, 아직까지는 불분명하다. 그리스어로는 블라시스(Βλάσης) 또는 발라스(Βάλας)로 번역된다. 그는 페로즈 1세의 동생으로, 483년 형이 에프탈 원정을 떠날 때 크테시폰에 남겨져 내정을 다스렸다. 484년 초 형이 에프탈과의 전투 도중 전사한 뒤, 에프탈은 사산 왕조의 영역 깊숙이 침투하여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다. 이때 수크라가 새 군대를 일으켜 메소포타미아까지 침투한 에프탈을 축출한 뒤, 샤푸르 미흐란 등과 함께 발라시를 샤한샤로 선출했다.

그 후 에프탈 왕 아흐순와르에게 사절을 보내 평화 협약을 맺자고 제안했고, 아흐순와르는 동의했다. 에프탈은 사산 왕조로부터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내는 조건으로 전면 철수하기로 하였고, 일찍이 인질로 있던 페로즈 1세의 아들 카바드 1세를 크테시폰으로 돌려보냈다. 발라시는 카바드를 정적으로 여겨 처형하려 했지만, 수크라의 중재에 따라 감옥에 가뒀다. 하지만 카바드 1세는 기적적으로 탈출한 뒤 에프탈로 망명했다.

한편, 페루즈 1세의 명령으로 아르메니아에 투입되어 반란군을 진압하던 사산 왕조군은 샤한샤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철수하였다. 그 후 발라시는 반란군 지도자 바한과 화해하여, 그를 하자라펫(장관)으로, 나중에는 아르메니아의 마르즈반(총독)으로 임명하였다. 또한 샤한샤는 아르메니아인들을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하도록 강요할 권한이 박탈되었고, 아르메니아의 봉화 사원을 파괴하고 새로운 사원을 짓지 않기로 하였다. 사산 왕조의 사한사는 대리인을 보내지 않고 아르메니아인 중에서 통치자를 세우게 하였으며, 아르메니아 귀족들은 세습 영지 관할권을 회복하고 샤한샤의 가신으로서 가장 높은 지위를 얻었다. 얼마 후 페로즈 1세의 아들 자레가 반란을 일으켰지만, 발라시는 이를 진압하고 자레를 처형했다.

아랍 역사가 알 타바리에 따르면, 발라시는 황폐해진 마을을 복구하지 않은 우두머리의 책임을 물어 처벌했고, 에프탈의 침략으로 파괴된 일대를 복구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권세를 휘두르는 조로아스터교 사제들 및 귀족들과 마찰을 벌였다. 게다가 동로마 제국제노 황제는 사산 왕조가 눈에 띄게 쇠락한 걸 눈치채고 황금을 바치던 관행을 중단했다. 이로 인해 군대에게 지급할 급료를 마련할 길이 없어져서, 병사들의 지지도 잃어버렸다. 결국 488년 카바드 1세가 에프탈의 지원을 받으며 크테시폰으로 진격했을 때, 그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그는 체포된 뒤 실명형에 처해졌으며,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이후 카바드 1세가 새 샤한샤로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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