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치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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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레치스 2세.jpg
Arechis II
생몰년도
미상 ~ 787년 8월 26일
출생지
미상
사망지
살레르노
재위 기간
758년 - 787년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베네벤토 공국 15대 공작, 초대 대공.


2. 행적[편집]


기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리울리 귀족 가문의 일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찍이 랑고바르드 왕국 마지막 국왕인 데시데리우스의 딸 아델페르가와 결혼했다. 758년 랑고바르드 왕국을 상대로 독립한 베네벤토 공작 리우프란트를 축출한 데시데리우스에 의해 베네벤토 새 공작에 선임되었다. 762년 베네벤토에 산타 소피아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의 유물을 이곳으로 옮기게 했다. 이 건물은 8세기 랑고바르드 양식의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어서 이탈리아 예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중요한 건축물로 간주되고 있다.

774년 프랑크 왕국카롤루스 대제가 랑고바르드 왕국을 멸망시키자, 그는 프랑크 왕국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베네벤토 대공의 칭호를 채택했다. 또한 프랑크 왕국의 예상되는 공세를 대비해 살레르노로 궁정을 옮긴 뒤 살레르노 시와 해안을 수비하기 위해 카스텔로 디 아레칠리(Castello di Arechi)를 건설했다. 이 성채는 중세 이탈리아의 가장 견고한 성채로 손꼽혔다. 그리고 랑고바르드 국왕 로타리가 제정한 법률을 개정해 독자적으로 법률을 집행했으며, 예술과 교육을 후원했다.

한편, 아레치스 2세는 저명한 수도자이자 역사가인 파울 부제에게 <히스토리아 로마나(Historia Romana: 로마인의 역사)>를 집필하도록 의뢰했다. 일부 학자들은 그가 파울 부제의 가장 유명한 저서인 <랑고바르드 왕국의 역사(Historia Gentis Langobardorum)>를 집필하도록 의뢰했을 거라고 추정하지만, 사실 여부는 불명확하다.

787년 카롤루스 대제가 로마에 이르자, 프랑크 왕국의 침략을 모면하기 위해 상당량의 선물과 함께 아들 로무알트를 보냈다. 그러나 카롤루스 대제는 로무알트를 생포한 뒤 베네벤토 공국으로 쳐들어가 베네벤토를 손쉽게 공략했다. 하지만 아레치스 2세가 웅거하고 있는 살레르노 공략에 실패했고, 아레치스 2세의 협상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아레치스 2세는 아들 그리말트 3세를 인질로 보내고 프랑스 왕국의 봉신을 자처하며 연간 공물로 7000 솔리두스를 바치는 대가로 평화 협약을 맺을 수 있었다. 또한 아르케, 아퀴노, 아르피노, 소라, 테아노, 카푸아를 교황령에 양도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도시를 교황에게 넘기지 않았고, 동로마 제국과 연합한 뒤 데시데리우스의 아들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망명한 아델치스와 서신을 주고받았다. 그러던 787년 8월 26일에 사망했고, 프랑크 왕국에 인질로 보내졌던 그리말트 3세가 베네벤토로 돌아와서 대공에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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