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이자베우 황태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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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브라질 황태녀로 페드루 2세의 딸.
남자형제들이 요절해서 황태녀가 되었지만, 쿠데타로 브라질 황실이 폐지되어 여제로 즉위하지는 못했다.
당시 브라질 황실에 남자들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는데 마침 브라질 황실의 경우 여자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포르투갈 왕실로부터 갈라져 나왔었으므로 페드루 2세 사후 황위 요구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친손자인 페드루 엔히키 황자[4] 가 황위 요구자가 되면서부터 왕가의 이름은 오를레앙브라간사 가로 바뀌게 된다.
2. 자녀[편집]
3. 기타[편집]
아버지 페드루 2세와 적극적으로 브라질의 노예제 폐지를 추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사실 할아버지 페드루 1세도 노예제 폐지를 주장했기에 특이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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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이필리프의 손자로, 차남 루이 왕자의 맏아들이다.[2] 체코인 귀족과 결혼하면서 귀천상혼 논란이 생기자 계승권 포기, 이후 장남 페드루 가스탕이 사촌 페드루 엔히크에 맞서 계승권을 주장하게 된다. 포르투갈 브라간사 왕가의 현 수장인 두아르트 피우의 외조부이기도 하다.[3] 후임 브라질 황위요구자 페드루 엔히키 지 오를레앙스이브라간사(1909년 ~ 1981년)의 아버지, 부인은 양시칠리아 국왕 페르디난도 2세의 4남 알폰소 왕자의 셋째딸인 마리아 디 그라치아였다.[4] 차남 루이스(1878년 ~ 1920년)의 맏아들, 장남 페드루 지 아우칸타라는 귀천상혼 논란으로 계승권을 포기했고, 루이스는 1920년에 이자베우보다 1년 일찍 사망했다. 이후 1940년에 페드루 지 아우칸타라가 사망한 뒤, 그 장남 페드루 가스탕이 귀천상혼에 따른 아버지의 계승권 포기가 구 브라질 제국 헌법에 따른 근거가 없음을 이유로 계승권을 주장하여 브라질 황가는 두 계통으로 분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