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리투아니아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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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리투아니아 대공국
2.2. 루블린 조약 이후
2.3. 20세기
2.4. 21세기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벨라루스리투아니아의 관계. 2020년 벨라루스 시위에서 리투아니아인들이 적극 지지의사를 밝히고 그 이전에는 벨라루스 정부에서 리투아니아 국경 지대에 원전을 건설하자 외교적 갈등이 발생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양국은 정치적으로 갈등이 상당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 역사를 공유한다는 동질감이 있는 편이다.

사실 정부 관계가 아닌 국민들간의 감정으로 따진다면 벨라루스와 리투아니아보다는 벨라루스와 에스토니아 혹은 라트비아가 더 나쁘기는 하다. 이유인 즉슨, 리투아니아는 소련 해체 이후 타민족에게도 공평하게 시민권을 부여했지만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가 독립했을 때 자민족이 아닌 타민족의 경우에는 라트비아어와 에스토니아어 시험에 통과해야만 시민권을 주었는데 이는 러시아인들을 견제하려고 시행한 조치이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벨라루스인(및 우크라이나인과 고려인)도 졸지에 무국적자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차별에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때문에 많은 벨라루스인들이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서 빠져나와 벨라루스로 귀환하든지 러시아로 재이민했다 한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리투아니아 대공국[편집]


리투아니아 대공국 당시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는 한 나라였다. 리투아니아인과 중세 루테니아인들은 언어와 종교가 달랐지만 둘 다 공통의 적인 타타르인과 튜튼 기사단에 대항해 협력하는 사이였다. 13세기 이후 독일 십자군들의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 침공이 심화되었고 튜튼 기사단과의 전쟁을 걸치며 리투아니아의 여러 부족들 사이의 단합이 이루어지자 리투아니아인들은 흑루테니아와 백루테니아 일대로 팽창하였다. 벨라루스 일대로 팽창하던 리투아니아인들은 현지 기득권들을 "우리는 새 것을 가져오지도 않고 옛 것을 바꾸지도 않는다."라는 말로 안심시키는 편이었고 오히려 루테니아인들은 리투아니아인들을 독일 기사단이나 타타르의 침공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줄 해방자로 환영하기까지 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민스크를 무혈 점령하였으며 대공국 역사 상당기간동안 나바흐루다크, 비텝스크 등이 실질적인 중심지 역할을 맡았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유럽에서 가장 늦게 기독교화된 민족으로 14세기 초까지 토속신앙을 믿었는데, 이들은 글을 읽고 쓰거나 문서를 남길 줄 몰랐고 실질적인 행정 작업이나 혹은 연대기 편찬 등은 상당수가 이렇게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투항한 루테니아 귀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루테니아에 정착한 상당수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정교회로 개종하였다. 리투아니아 토속신앙을 믿던 요가일라폴란드 왕국야드비가와 결혼한 이후 리투아니아인들은 토속 신앙을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한다. 과거 토속신앙-정교회 신도 입장이었던 리투아니아인과 루테니아인 사이의 관계는 가톨릭-정교회 신도 입장으로 변화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양측 사이는 서로 무척 협조적인 관계였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공식어는 1696년까지 루테니아어 즉 중세 벨라루스어였다.

이를 반영하던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성문법에는 "리투아니아인사모기티아인과 루테니아인은 상호간의 평등한 권리를 누리고 보장한다."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으며, 벨라루스 민족주의자들의 성웅 프란시스크 스카리나는 빌뉴스에서 인쇄소를 차렸다. 이렇게 중세부터 근세까지 리투아니아 역사와 벨라루스 역사는 거의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역사마냥 상당부분 겹친다.

연대기가 지식층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던 키예프 루스 그리고 가톨릭 수도자들의 영향으로 벨라루스에서도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키예프 루스의 역사를 담은 연대기들이 서술되었다. "1446년까지 쓰인 백러시아(벨라루스)와 리투아니아 연대기"는 9세기부터 1446년까지의 역사와 설화를 담은 책으로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키예프 루스의 계승자로서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책이었다. "비초비에츠 연대기"는 최초로 벨라루스어로 서술된 연대기로 13세기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독일 기사단의 전쟁부터 16세기까지의 정치사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1]


2.2. 루블린 조약 이후[편집]


하지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당시에 귀족들의 권한이 급격히 커지고 연방 대 가톨릭이 교조화되면서 벨라루스의 정교회 신도들에게 교황수위권을 요구하는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 개종을 강요하면서 벨라루스인들과 리투아니아인들 사이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상당수의 루테니아 귀족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폴란드인들과 통혼하며 폴란드화한 상황으로 당시에는 영향이 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18세기 약소국으로 쇠퇴하고 폴란드 분할의 결과 벨라루스와 리투아니아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면서 상황이 변한다. 폴란드 분할 이후에도 리투아니아인들은 러시아 제국의 탄압 가운데에서 가톨릭을 고수한 반면 벨라루스에서는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 신도들이 거의 아무런 저항 없이 정교회 신도로 환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벨라루스인들은 러시아인들과 급속히 동화되고 이는 리투아니아인들과 벨라루스인들 사이의 동질감 약화로 이어졌다.


2.3. 20세기[편집]


1918년에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몰락한 이후, 독일과 혁명 정부간에 맺어진 브레스트-리토프스트 조약에 따라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는 각각 리투아니아 제 1공화국벨라루스 인민공화국으로 독립한다. 그러나 독일 제국의 패배가 확실시되자 애초에 서명 당시부터 조약을 준수할 생각이 없었던 혁명 정부는 곧바로 발트 3국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폴란드를 침공했고, 이때 괴뢰국인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1918)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1919)이 수립되었으며, 두 국가를 하나로 합친 리투아니아-벨로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독일의 도움을 받은 리투아니아의 저항, 그리고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 폴란드에게 패배에 가까운 결과를 맞으면서 리투아니아 지역은 해방되었고, 벨라루스는 폴란드와 러시아간에 영토를 분할하면서 연합은 해체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도중, 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리투아니아 지역과 벨라루스 지역이 나치 독일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발트 3국과 벨라루스 일부 지역을 포함한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로 다시 묶이기도 하였다. 두 지역 모두 소련에 대해 극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많은 숫자의 자원병이 독일군에 합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종전되면서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부는 해체되고 다시 소련의 일부로 돌아왔다.

80년대에 리투아니아 지역에서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벨라루스 지역은 소련 해체에 반대했다. 91년에 소련이 해체된 뒤에 벨라루스와 리투아니아는 각각 독립국이 되었다.




2.4. 21세기[편집]


근대 이후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는 남남이 되었다. 오늘날 기준으로 벨라루스는 리투아니아와 러시아 다음으로 사이가 나쁘다. 리투아니아가 반러정책을 추진하면서 유럽연합,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한 반면, 벨라루스는 지금도 루카셴카 대통령이 친러정책을 펼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다.. 물론 리투아니아가 반러, 벨라루스가 친러인 것도 있지만 원자력 발전소 건설 문제를 가지고 리투아니아가 항의한 적도 있다. 그리고 벨라루스가 러시아 지원으로 원자력 발전소를 세우자 반발했고 훈련도 시작했다.# 다만 최근 벨라루스가 러시아와 갈등이 생긴것으로 보아 관계는 어느정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소비에트 해체 이후 벨라루스는 두 개의 대립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하나는 소비에트 시기에 형성된 “포스트소비에트 정체성(사회주의적)”이고, 다른 하나는 소련의 약화, 해체와 더불어 활동하기 시작한 “유럽적 정체성(부르주아적)”이다. (...) 벨라루스-리투아니아 기원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벨라루스"라는 이름 자체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한다. 벨라루스(Беларусь)는 루스(Русь)에 "흰색의" 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으로 루스의 하위 개념이며, 18세기 말 러시아에 의해 리투아니아(Литва)를 대체하기 위해 고안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도 여전히 이 이름을 고수한다는 것은 벨라루스가 러시아에 역사적으로 소속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세대의 임무는 벨라루스라는 이름을 버리고 리투아니아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올렉 크라브초프는 기성세대의 친 러시아적인 태도와 자기규정에 대한 대안으로 벨라루스의 리투아니아 기원설에 강하게 의존한다. 그는 벨라루스인들이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시대에 현재 벨라루스 영토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의거하여 벨라루스인을 리투아니아인으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특히 이 호칭은 벨라루스의 젊은 그룹에서는 유럽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말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 자신들은 러시아에 의해 유럽 문명으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었고, 몇 백 년에 걸쳐 집단적 탄압을 받아온 결과 러시아화 된 벨라루스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18세기 말 러시아에 정복된 이후 벨라루스는 유럽 문명화 과정에서 밀려나 “총체적인 러시아화, 민족 기억의 말살, 정교에의 집착 등의 성향을 띠게 된 것이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리투아니아 프로젝트는 벨라루스를 다시 유럽 문명의 장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KCI 등재논문 : 벨라루스 민족 정체성의 이상과 현실


벨라루스 대선 야권 후보 스뱌틀라나 치하노우스카야가 대선 결과에서 루카셴카가 승리한 것으로 나온 이후 야당의 부정선거 논란 및 살인 협박을 피해 리투아니아로 망명했다. # 벨라루스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리투아니아 정부는 벨라루스 야권과 시위대를 지지했다.

코로나19 와중에도 정치 망명 받아들이기 위해 벨라루스쪽 국경은 개방하였다.# 그리고 루카셴카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리투아니아 국민들이 벨라루스 시위 연대를 위해 인간 사슬 퍼레이드를 실시했다.# 벨라루스 알략산드르 루카셴카는 나토 가입국인 폴란드, 리투아니아와의 국경을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

벨라루스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건설한 첫 번째 원전이 전력 공급을 시작하자 리투아니아측은 반발했다.#

그리스 아테네 국제공항에서 리투아니아 빌뉴스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라이언 에어 소속 여객기가 벨라루스 측의 강요로 민스크 공항에 강제 착륙하고, 해당 여객기 내 벨라루스 반정부 운동가가 체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라이언에어 4978편 벨라루스 강제착륙 사건 문서 참조. 벨라루스 측에서는 하마스의 항공기 테러 위협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비행기를 강제 착륙시켰다는 #[2] 해명을 내놓았다.

2021년 벨라루스-유럽 연합 국경 위기 관련해서 리투아니아-벨라루스 국경에 울타리가 설치되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벨라루스 국경에서 불법으로 리투아니아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반난민법을 통과시켰다.#


3. 관련 문서[편집]



[1] 이 책은 한동안 잊혀졌다가 비초비에츠 가문에서 필사본 하나가 발견되면서 이후 1846년 중세 벨라루스어판 그대로 재출간되었다.[2] 여담으로 인용된 기사에서는 리투아니아 국명과 수도 이름을(라투아니라 뉴스라고 썼다) 틀렸는데도 네이버 뉴스/댓글에서 아무도 지적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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