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교권주의

덤프버전 :


파일:반교권주의.webp
종교적 권위와 가치를 비방하는 낙서.
1. 개요
2. 각국의 사례
2.1. 프랑스에서
2.2. 독일에서
3. 같이 보기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Anti-clericalism

반교권주의(反敎權主義)또는 교권 반대주의는 사회정치적 문제에 있어서 종교가 갖는 권위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근대적인 반교권주의는 프랑스 혁명때 최초로 나타났으며 19세기에는 유럽 전역에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과 성직자들의 권위를 박탈하고 세속 국가를 만들려는 자유주의~급진주의자들의 운동이 있었다.

2. 각국의 사례[편집]



2.1. 프랑스에서[편집]


현 프랑스의 라이시테 또한 반교권주의의 산물이다. 첫 근대적 반교권주의의 사례는 프랑스 혁명기에 나타났는데 부패한 교회성직자들의 부유함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프랑스 혁명기의 로베스피에르파도 반교권주의적 성향을 보였으나 이성신을 모욕하지 않는다면 예배의 자유 자체는 보장하자는 식이였던 반면에, 에베르파귀족과 성직자들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옹호했다. 또한 반교권주의가 프랑스 혁명의 주요한 목표가 되자 반동주의 세력들은 방데 전쟁에서 정권에 탄압받던 농민들을 꼬드겨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통치기에는 교황 비오 6세가 반혁명, 반나폴레옹 세력인 제1차 대프랑스 동맹을 편들자 1796년 이탈리아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제3공화국 시기에는 공화국 정부가톨릭교회가 갈등을 일으키면서 다시 반가톨릭, 반교권 운동이 심화되었다. 1880년대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반교권주의 국제모임이 결성되었고 여기에는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등 다양한 좌파들이 참가했다. 이에 영향받은 정부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퇴출시키기도 했으며 1900년대 초에는 종교 집회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것은 라이시테로 발전했으며, 이후 가톨릭 보수주의자들도 공화정세속주의를 받이들이기 시작하면서 반교권주의 운동은 점차 사그라든다.

2.2. 독일에서[편집]


좌파가 반교권주의를 주도했던 프랑스와 달리 독일에서는 우파 정권인 프로이센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가 1871년부터 1878년까지 "문화 투쟁"(Kulturkampf)을 일으켜 가톨릭교회의 법적, 제도적, 사회적 권위를 박탈하고 세력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폈다. 또한 가톨릭 중앙당을 탄압하기도 했다.


3. 같이 보기[편집]



4. 둘러보기[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30 00:02:47에 나무위키 반교권주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