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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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핵심 주장
2.1. 종교무용론: 종교에게서 도덕윤리를 탈환하라
2.2. 종교 논리의 불완전성: 신과 종교는 아무 관계가 없다
2.3. 종교 유해론: 종교는 인류에게 해악이 된다
3. 유사 개념들과의 구분
4. 반론
5. 사례
5.1. 공산권의 국가 무신론
5.2. 신무신론 운동
6. 관련 어록
7. 인물
7.1. 가상 매체에서의 사례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반종교(, anti-religion) 또는 반종교주의는 제도 종교, 종교단체, 종교적 교리와 도그마에 반대 혹은 적대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현대에 들어 新무신론 운동가들에 의해 이 개념은 더욱 확장되어 사실상 반신론이나 신합리주의, 세속적 인본주의, 자유사고(free thought) 등의 개념들과 융합되다시피 했다.

종교의 자유는커녕 종교 자체가 부정당하는 일부 국가 무신론(state atheism)적 환경에서는 반종교를 빙자한 종교 박해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서구 문화권을 기준으로 해서 반종교는 보통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를 비롯하여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구성된 여러 사회적 현상과 결사체들에 대한 반대와 거부 및 공격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과거에는 국가 주도적인 반종교였다면, 오늘날에는 시민사회 주도적 내지는 무신론자 개개인에 의해 주도되는 반종교가 호응을 얻고 있는 상태다. 당연한 것이 민주주의가 정착된 서구 시민사회에서 국가 무신론 같은 것을 외쳤다가는 되려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국가 차원에서는 국교를 정하지 않는 수준에서 그친다.

제도와 교리와 모임과 기타 종교적 사회 현상에 대한 반발이므로, 각각의 종교에 대한 한정적인 반대 운동들과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가장 유명한 건 역시 반기독교겠지만 그 활동 양상이나 배경 논리, 동기의 측면에서는 사뭇 다르다. 그 외에도 반유대주의에 기반한 반유대교, 반가톨릭주의 같은 것도 거론할 수 있겠다. 경우에 따라 샘 해리스처럼 영성(spirituality)이나 명상 같은 주제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경우도 있다.

반신론까지 더해져 다소 과격하게 보자면 반종교주의인 사람에게는 일반 종교들도 사이비 종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 할 수 있다.[1] 정상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의 사고와 행동들은 여전히 동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이 종교를 갖게 되는 과정이 세뇌와도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2. 핵심 주장[편집]



2.1. 종교무용론: 종교에게서 도덕윤리를 탈환하라[편집]


반종교는 종교의 필요성을 분쇄하기 위해, 지금껏 전통적으로 종교의 사회적 순기능이라 여겨졌던 역할들을 부정하거나, 종교가 아니더라도 그러한 순기능들이 달성될 수 있다는 두 가지 방향으로 주장한다. 전자의 측면에서, 반종교는 미국을 포함한 가장 종교적인 국가들의 통계 데이터를 보면 가장 세속적인 국가들의 그것보다 더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로 나타난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들은 지금껏 인류가 너무 오랫동안 종교에게 도덕윤리의 결정권과 판단 권한을 위임해 왔다고 생각하며, 이제는 과거 청동기 이전 시대의 유물에게서 도덕윤리를 되찾아 와서 현대사회에 걸맞는 새로운 윤리를 정초해야 함을 역설한다.

샘 해리스의 《도덕의 풍경》(The Moral Landscape)은 도덕과 종교의 관계에 관하여 반종교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반종교에 과학주의가 더해져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입장과는 약간 다르게, 도덕적 판단의 권한이 인본주의적 지성과 합리라기보다는 과학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2] 애석하게도 국내에 이 책은 2014년 기준으로 번역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후자의 측면에서, 반종교는 " 없는 선(善)"(Good without god)을 슬로건으로 하여, 종교의 도움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선해질 수 있고 사회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반종교주의자들은 "때로는 종교가 어쩌면 유익이 되는 점도 있기는 하다" 면서 유연한 입장을 취할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인류가 벗어던져야만 하는 이유는, 이하에 설명될 심각한 부작용과 역기능 때문이다. 즉, 비용이 편익보다 너무 크다는 것이다.


2.2. 종교 논리의 불완전성: 신과 종교는 아무 관계가 없다[편집]


반종교의 큰 동기 중 하나는 종교의 논리가 모순된다는 점이다. 굳이 종교의 논리를 하나하나 따져보기보다는 여러 종교 간의 비교를 통해 쉽게 모순점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외에도 무수히 많은 종교들이 있다. 많은 종교에서 신, 절대자의 개념은 유일신에서 다신교, 토테미즘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형태로 존재한다. 신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종교를 믿는것이 의미 있는 행위가 되려면 종교에서 제시한 믿음이 신에 대한 믿음과 일치해야 한다. 대부분의 유일신교에서 타 종교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지만 많은 종교 중에 어떤 종교가 참된 것인지 객관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당연히 종교의 경전 내에서 답을 찾는것은 객관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신을 믿는 데 있어서 종교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다. 무수히 많은 종교들이 현실에 존재하며 오늘날에도 새로운 종교가 탄생하고 있는것이 그 증거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굳이 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종교를 믿어야 하는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2.3. 종교 유해론: 종교는 인류에게 해악이 된다[편집]


반종교는 종교의 필요성을 분쇄하기 위해, 종교가 갖고 있는 사회적 역기능을 강조하며, 본질적으로 종교라는 현상이 그 제도와 교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와 같은 사회적 역기능을 필연적으로 유발하거나 내지는 방치할 수밖에 없음을 주장한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역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일 것이며, 실제로 미국에서 테러가 일어났을 때 반종교가 빠르게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인류 역사에 종교가 없었다면 과연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졌겠냐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국내에서도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과 같은 스캔들이 터지면서 무신론과 반종교에 대한 관심이 크게 폭증하기도 하였다.

반종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류 역사의 수많은 갈등과 분쟁, 살인, 반목, 충돌들은 그 기저에 결국 종교적 열망과 편협한 도그마가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한다. 종교라는 것이 인류에게 있어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인류의 가장 추악한 모습들을 만들어내는 주체로 기능해 왔다는 것. 이중 일부는 종교가 개인에 있어서도 도덕 향상에 도움이 안 된다고 주장하며, 실제로도 이런 연구가 있기 때문에[3] 이들의 목소리는 그칠 날이 없다. 여기서도 논자에 따라서는 "종교가 가장 직접적으로 이를 부채질했다" 고 생각하거나, "종교적 문제가 하나의 트리거가 되었을 것" 이라고 생각하거나, 가장 온건하게는 "종교가 그들의 자기합리화부추겼다" 고 생각하는 등 천차만별이다. "선한 사람이 악행을 하게 하려면 종교가 필요하다" 는 유명한 말도 이와 관련성이 있다.

한국에서도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코로나 19 집단 감염이 하루가 멀다하고 나왔으며, 2021년 조사에서 1년만에 한국 교회의 신뢰도가 32%에서 21%에서 급락한 것 역시 기독교에 관해 종교 유해론이 큰 힘을 얻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유사 개념들과의 구분[편집]


간혹 반종교에 대해 잘 모르거나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사타니즘과도 혼동하지만, 오히려 반종교주의자들의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뭔가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성향을 갖고 있어서 누군가를 숭배하거나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으므로, 사타니즘 또한 반종교주의자가 배격하는 대상 중 하나다. 쉽게 말해 사타니즘도 종교로 본다는 뜻이다.

반신론과의 구별은 훨씬 어렵다. 현대의 신무신론과 반신론, 반종교 사이의 교집합은 대단히 크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개념적으로만 구분한다면, 반신론이 신학적, 신론적, 신에 대한 형이상학적 아이디어를 공격한다면 반종교주의는 의례와 제도, 교리로서의 종교를 공격한다는 차이가 있다. 직관적으로 "신에 대한 반대" 가 반신론이고, "종교에 대한 반대" 가 반종교라고 생각하면 그나마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이라는 개념과 종교 사이에는 큰 교집합이 있지만, 신 자체는 제쳐두고 종교만을 반대하는 경우도 분명히 없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21세기의 현실에서 반종교주의자와 무신론자, 반신론자들이 많이 겹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개념적으로 동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적기는 하지만, 반종교이면서 유신론자인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하고[4], 혹은 반종교이면서 무신론자[5]이기는 하지만 반신론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은 일종의 종교라고 보아서 강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6]

반기독교의 경우, 크리스트교 종교현상이라는 주제에 대한 반대라는 점에서는 반종교의 한 종류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반기독교인들이 반종교주의자라고 곧바로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불교나 민족 종교 계통 등을 배경으로 하는 반기독교인의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독교 내에서도 개신교도가 같은 신을 모시는 가톨릭과 유대교를 반대하고, 가톨릭 신자가 개신교를 반대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역시 개념적으로는) 반종교주의자들은 반기독교인이기도 하다고 볼 수는 있겠다. 반종교는 대부분의 경우 크리스트교에 대한 반대를 포함하기 때문. 즉, 반기독교가 반종교의 하위 분류라고 볼 수 있겠다.

국가 무신론주의는 국가의 이름으로 반종교를 권위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를 포함하며, 모든 종류의 종교적 활동과 모임, 결사, 신앙의 자유를 엄격히 제한한다. 한때 반종교는 국가 무신론주의와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으나, 오늘날의 반종교는 대부분 국가 무신론주의와는 큰 관련성이 없다.

과학적 회의주의(scientific skepticism)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얻어진 지식에 자신의 지성을 최대한 의존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대해서는 건전하고 건설적인 의심을 유지하는 입장이다. 적지 않은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이 실제로 반종교에 찬동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한편으로 가장 유명한 과학적 회의주의자들 중 일부는 반종교의 몇몇 주장들에 우려를 표하고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만일 반종교의 모든 논지와 근거들이 엄밀하게 검증된 과학적 사실들에 근거한다면 과학적 회의주의는 반종교의 추진력이 될 수 있겠지만, 반종교가 검증되지 않은 확신이나 잘못된 주장에 근거한다면 양자는 마땅히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과학주의, 내지는 과학만능주의도 반종교와 관계가 상당하다. 과학주의는 인류에게 당면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디까지 과학의 교도권(magisteria)을 인정해야 하는가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종교라는 사회 현상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의 문제와도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다. 폐기되어야 할 종교의 대안으로서 새롭게 과학을 제안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더 극단적으로 가면 도덕률 부인주의가 된다. 이는 도덕률이라는 선험적, 신비적, 관념적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모두 생물학적 현상으로만 파악하는 태도이다.[7]


4. 반론[편집]


무신론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상당히 급진적인 철학이기 때문에, 온건한 무신론자나 종교 문제에 무관심한 학자들에게까지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8] 종교를 일종의 시지각 패턴 인식 능력의 부산물로서 여기는 온건한 무신론자들에게, '종교는 일종의 컴퓨터 바이러스와 같은 위험한 '이라는 주장은 반종교주의자들이 의도하지 않았던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종교의 존재 의의나 존폐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므로 인류학이나 종교학에서 비판적으로 개입할 여지도 열리게 되었다.

상당히 논쟁적인 주제가 될 수 있으므로, 이하의 각각의 논점에 대해서는 실제로 이를 학술적으로 또는 저술 활동을 통해서 뒷받침하고 있는 학자들 및 관련 저서들을 조금 거론해 보기로 하겠다.

관련 도서 : 《현대 과학 종교 논쟁》, 《바른 마음》, 《아메리칸 그레이스》, 《신 없는 사람들》 등
반종교적 과학자들이 국가 통계 데이터를 인용하면서 종교의 무용성을 주장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종교가 실제 데이터 상으로 보아도 도덕윤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대해 교차검증에 실패했다고 보고하는 과학자들이 나타났다. 특히 브룩스의 실험에서는 실험 집단에 ceteris paribus를 적용한 후 종교의 유무 정도만 처치를 하여 비교해 보았고, 그 결과는 이하의 인용에 잘 드러나 있다.
"(수입을 대조하더라도) ...종교가 있는 보수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보다 30% 더 많은 돈을 기부하고, 수혈자원봉사에 있어서 더욱 많이 참여한다. 일반적으로 신자들은 온갖 기부에 있어서 비신자들보다 4배 더 관대하며, 비종교적 기부에도 10% 더 후하게 내놓고, 노숙자를 57% 더 돕는다. 아무 흠 없고 종교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관대하다. (중략) ...종교가 없는 세상을 꿈꾸기 전에... 종교가 행하는 모든 선행을 대신할 사회제도를 고려해야 한다..."

아서 브룩스, 시러큐스 대학교, 2006, 〈Who Really Cares?〉, 마이클 셔머 재인용
이를 가지고 "종교인이 하는 선행은 다 그들이 믿는 신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다." 라고 말하는 주장이 있다. 종교인의 특성상 선행의 수행 전후에 카르마, 업과 같은 차후보상을 염두에 둘 가능성이 비종교인보다 훨씬 크기에, 순수한 의도의 도출값은 종교인이 저조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통계학적으로 접근해보기 위해 극단적인 가상의 예를 들자면 쓰레기를 주우면 칭찬 스티커를 얻을 수 있다고 들은 A집단의 어린이와 듣지 않은 B집단의 어린이들이 동시에 쓰레기를 줍는 시간을 가진다고 하자. 독립변인을 '칭찬스티커의 존재인식 유무' , 종속변인을 '쓰레기의 양', 이외의 개인의 성격 등의 혼입요인은 통제되었다고 가정할 때, 수집한 쓰레기 양은 A집단이 많을 확률이 높을지언정, 스티커의 존재를 모르는 B집단의 아이들이 순수한 선의로 쓰레기를 주울 확률이 A집단의 아이들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예시는 말 그대로 가정에 의한 예시이며 쓰레기 양의 차이를 순수한 선의로 계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실제로 가외변인들을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자기만족, 평판 등이 선행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남는다. 즉, 선행이라는 애매하고 측정하기 힘든 요인을 통계적으로 다루기에는 논의가 필요하다. 이외에도 종교가 도덕과 상관이 없다거나 부정적이라는 연구만큼, 많은 연구가 종교와 도덕이 서로 긍정적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반종교주의자들은 신앙, 종교를 박살낸 뒤 그 자리에 이성을 채우자고 하지만, 세상에는 어린이지적장애인들처럼 이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며 또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살면서 이성이 끊어지는 순간이 적어도 몇 번은 있는데 이때 잃을 게 없다는 심보로 악을 행하려는 것을 막는 최후의 안전장치가 바로 무언가에 대한 신앙이다.
이슬람 근본주의 지하드나 미국의 원주민 학살 등 종교가 행한 악행들도 까보면 팽창주의나 정치적 요구 관철같이 종교 경전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금기시하는 국가적, 정치적, 속세적 물욕과 죄악이 거의 다 있는것을 볼 수가 있다. 즉, 강한 신앙을 토대로 종교에서 추구하는 공익적인 가치를 우선적으로 따른다면 이론상으로는 악행이 최소화 된다는 것이다.

마이클 셔머는 유명한 무신론자리처드 도킨스크리스토퍼 히친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굉장히 온건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며, 가장 잘 알려진 반종교 비판론자이기도 하다. 그는 옛날 그의 은사가 매카시즘 광풍에 대해서 "무엇에 대해 반대하는 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고 지적한 것을 상기하면서, 무신론자들이 상대해야 하는 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무신론자들의 싸움은 그들이 성취해야 하는 목표를 향해야 하지, 그들이 거부해야 하는 자체를 향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 "반종교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내놓는 다양한 주장들과 예측들에 대해 자신이 그것을 안다고 규정함으로써 알 뿐이다." (마크 헐서더, 이언 리더, 앨리스터 맥그래스 등)
흔히 말하는 "인류에게 지금껏 종교가 없었던 적이 없는데, 종교가 없으면 세상이 좋아질 거라는 걸 어떻게 장담하는가?" 의 논리와도 유사하다. 헐서더를 비롯한 논자들은 "종교 없이도 윤리적 가치를 제공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에는 데이터가 결여되어 있다" 고 비판한다. 심지어 이들은 반종교의 여러 제안들과 희망적 약속들에 대해서 "오히려 신앙고백 내지는 종교적 간증과도 유사하다" 고까지 공격하기도 한다. 즉 이들은 반종교 활동을 하는 이들도 사실상 종교적 열정과 별 차이가 없는 언행을 하고 있으니, 이건 반종교의 탈을 쓴 사실상의 새로운 종교나 마찬가지이므로 반종교를 주장하는 이들이 자기 모순에 빠져 있다는 비난을 하는 것이다.

  • "종교는 사회적 자산(social asset)이라고도 하는 "공동체의 결속" 외에도 소속감, 상호부조에 기여한다." (에밀 뒤르켐, 앨릭스 벤틀리, 조너선 화이트, 가와나미 히로코, 로버트 벨라, 로버트 레이턴, 데이비드 슬론 윌슨, 리처드 소시스 등)
관련 도서 : 《현대 과학 종교 논쟁》, 《바른 마음》, 《뒤르켐 & 베버》, 기타 뒤르켐주의 계통 종교사회학 저작 포함
종교사회학 및 인류학의 영역에서 "인상적인 합의" 가 있다면, 종교는 명백히 공동체의 측면에서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현재적 기능은 신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지만, 잠재적 기능으로 종교는 먼 원시 시절부터 공동체에게 강력한 단결과 결속을 보장했고, 공동체 내의 질서를 잡고 당위성을 부여했으며, 사회적 상호부조 및 갈등 중재의 효율적 시스템으로 뒷받침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퍼트넘(R.Putnam; 2000) 등의 사회학자들은 미국 사회를 두고 "나홀로 볼링" 문제에 주목하고 있는데,[9] 유독 종교의 영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이런 추세가 덜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장 극단적인 율법주의와 금욕주의적 종교 중 하나로 알려진 자이나교의 경우에도 인류학자들의 관찰 결과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신호(signal), 일원의 확인과 유대의 형성, 상호부조와 결속 등이 매우 강력하게 확인되었다.

다만 뒤르켐주의 계통 사회학자들은 반종교의 한 일파인 '종교무용론'과 대립하지 않는다. 이들이 부르는 종교는 유교는 물론 미국의 자본주의나 사민주의도 포함하기 때문이다.[10] 뒤르켐이 말한 종교는 공동체를 지배하여 결속시키는 집단표상으로, 반드시 종교적 형태를 가질 필요는 없다.[11] 실제로 뒤르케임의 학문적 후계자이자 구조기능주의 사회학자인 벨라는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말했으며, 역시 구조기능주의의 거두인 파슨스는 일부 기독교 교리와 사랑 정신의 융합이 미국 사회를 지배하는 종교의 정체라고 말한 바 있다.[12]

  • "종교는 개인에게 실제로 위안이 됨으로써 개인의 안녕에 기여할 수 있다."[13] (데이비드 슬론 윌슨,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등)
관련 도서 : 《몰입》, 기타 긍정심리학 계통 저작 포함
생물학계에서 집단선택 이론의 돈키호테로 알려진 데이비드 슬론 윌슨 외에도, 종교가 실제로 개인의 자기보고(self-report) 상에서 위안을 주고 있다는 연구가 긍정심리학 분야에서 누적되기 시작하고 있다. 일정 변동비율(variable-ratio)을 간격으로 하여 하루 수 회 주기적으로 응답하게 하는 많은 연구들에서, 개인이 실제로 종교 생활과 종교적 모임의 참석, 종교의례의 거행을 통해서 심적인 안정과 위안을 얻는다는 것이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높은 안녕감을 보인다는 연구도 있다.[14]

  • "무엇이 무조건 나쁘다고 믿는 것은 정보가 과하거나 부족할 때 손쉽게 판단하려는 진화적 심리에 지나지 않는다." (앨릭스 벤틀리)
무신론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든 종교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든 간에, 그러한 방식으로 특정 신념체계나 입장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편견 및 고정관념에 해당하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진화적이고 본유적인 심리의 한 종류일 뿐이라는 것이다.

  • "신에 대한 믿음이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적 원인은 아니다." (아라 노렌자얀, 앤드루 뉴버그, 로버트 페이프, 브루스 링컨, 테리 이글턴 등)
이것은 종교가 각종 폭력적 사건들의 직접적인 동기가 되지 않으며, 종교적 도그마 역시 세속주의와 마찬가지로 정서적 처리 과정에서 똑같은 방식과 역할로서 관여한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한 노렌자얀 및 페이프 등의 연구자들의 연구가 주로 알려져 있다.

  • "호모 사피엔스는 '무언가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앤드루 뉴버그, 마이클 퍼싱어, 미하엘 슈마허, 뤼시앵 레비브륄, 메리 더글러스, 로버트 라이트, 제시 베링, 에르네스트 르낭 등)
관련 도서 : 《신의 진화》, 《신의 유전자》, 《신은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가》, 《종교 본능》 등
유전적 요인, 진화적 요인, 심리적 요인 등[15]에 의하여 인류에게서 종교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반종교는 종교 없는 사회를 꿈꾸라고 제안하지만, 그것이 실상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는 인지심리학이나 뇌과학 등이 발전하면서 상당한 탄력을 받았으며, "종교를 제거하기보다는 인류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활용하는 편이 더 쉽다"는, 보다 대중적(혹은 친종교적)인 반론과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이익과 생존도 종교와 마찬가지로 선한 자가 악한 일을 하게 만들 수도 있다. 맹목적인 반종교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종교와 미신, 그리고 막연해 보이는 부탁의 완전한 반대편에는 또다른 굳건한 믿음과 입맛대로 뽑힌 근거를 바탕에 둔 과격한 주장이 살아 숨쉬고 있다. 반종교가 정말로 기존의 잘못된 종교를 쓸어내기만 하려는 의도를 띄고 있지 않다면, 오히려 이단사냥으로 종교를 박멸한 뒤 자화자찬하며 축배를 들 때에 여러 문제는 사그라들지 않고 위험하게 숨어서는 다시 나타날 것이다. 지난 날에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했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혐오가 반복된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처럼 말이다.

이 외에도 상술된 주제들은 하나하나가 대중적 수준에서, 그리고 학술적 수준에서 극심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치열한 쟁점들이기 때문에, 미처 거론하지 못한 논자나 언급하지 못한 의견들이 많이 있다.


5. 사례[편집]



5.1. 공산권의 국가 무신론[편집]


대표적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 공산권은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에 따라 무신론 국가를 표방했다. 이른바 종교를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국가 무신론 정책이다. 공산주의 본산인 소련의 경우 레닌-스탈린[16]-흐루쇼프 시대를 가리지 않고 종교탄압 정책을 시행했고, 전투적 무신론자 협회를 결성하거나 과학자 협회를 공산당 차원에서 조직하여 무지몽매 봉건잔재로 선언하고 종교인들을 박해했다. 동구권 국가들 역시 소련식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답습했다. 한 예로 냉전 시기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엔베르 호자의 철권통치를 받았는데, 이 동안에 호자는 완전한 국가 무신론을 선포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최초로 반종교적이고 무신론적인 정책을 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모든 종류의 종교적 저작이나 종교 활동은 일체 불법으로 규정되었으며, 국내의 종교인들은 고문사형을 당하고 외국인 종교인들은 일괄 추방을 당했다.

한편 동유럽, 중부유럽 위성국가들이나 동독은 상대적으로 덜 폭력적이었으며, 형식적인 종교의 자유는 인정했지만 교육 과정에서 종교와 관련된 내용을 삭제해버리고 성직자들을 일반인보다 더 집요하게 감시하거나, 재정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등 여러 꼼수를 동원하여 실질적인 종교탄압을 가했다. 특히 에스토니아체코는 이 시절의 영향으로 종교 인구가 공산화 이전 수준으로 증가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둘은 공산화 이전에도 어느정도 세속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비단 공산주의의 영향 뿐만 아니라 체코나 에스토니아 같은 동유럽의 역사상 제국들의 변경지대는 현지 주민들의 종교적 열망과는 영 상관없는 지정학적 열강들의 영향력에 따라 종교 지형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고, 발트 3국, 핀란드 같으면 특유의 지리적, 역사적 영향으로 인해 애초에 기독교 문화의 전파도 더디고 늦었다는 점도 있다. 체코의 경우 중세 말과 근세 자국의 역사를 주도한 종교는 후스파였다가 30년 전쟁 이후 지배권을 재확립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정부가 카톨릭을 강제하면서 재개종도 더디고 어설프게 이루어지다 결국 문화와 사회에서 종교 전체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키웠고, 라트비아, 핀란드, 에스토니아 같은 경우는 원래 기독교 전파 자체도 중세 후기나 돼서야 제대로 될만큼 늦었던게 바로 이후 근세 종교지형 자체가 각각 카톨릭, 개신교, 정교회를 믿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스웨덴, 러시아 이웃 열강간 경쟁의 도구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원래 자체적인 역사적 문맥에서도 종교적 정체성이 애매모호했던 일부 동유럽 국가들은 자국 역사상 최초로 아예 어떤 형태던간에 기독교를 안믿는거 자체를 옵션으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걸 반강제했던 공산화의 경험이 아예 사회적으로 종교성의 관짝에 못을 박아버린 셈이다.

동양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 시대에 종교탄압을 이어갔고, 현재에는 형식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나 공산당원의 종교단체 가입은 금지이며 당 이념에도 무신론을 표방함을 밝히고 있다. 베트남 공산당도 주류 종교인 불교는 물론이고, 가톨릭은 과거 남베트남의 고위층과 연관되었단 이유로 전간기 동안 가혹한 탄압을 가했다. 북한도 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극악의 종교탄압 국가이다. [17]

결국 이러한 공산권의 정책은 프랑스와 같이 현대 이전부터 세속주의가 유행했던 국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구권 국가들이 무신론과 탈종교주의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만들었다.


5.2. 신무신론 운동[편집]


신무신론 운동가들은 반종교에 깊이 경도되어 있으나, 알바니아와 같은 국가 주도적 반종교보다는 인간이 교육과 계몽을 통하여 이성과 합리를 깨우쳐서 자연스럽게 종교를 거부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주류이다. 설사 그 종교가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그 종교를 조용히 믿고 있는 사람들과 믿으려는 개인의 자유는 국가가 통제할수 없다. 이걸 통제한다면 종교의 자유에 어긋나게 된다. 그리고 종교 자체가 개인의 신념이기 때문에, 그 종교의 시설을 제거한다 해도 그 사람이 믿는다고 하면 그 사람 자체적으로 믿을 수 있고, 혼자서도 믿을 수 있기 때문에 애시당초 통제도 불가능하다.


6. 관련 어록[편집]


인류는 이제 황금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먼저 이 문을 막고 있는 괴물부터 처치해야 하는데,

그 괴물이 바로 종교인 것이다.

--

버트런드 러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

카를 마르크스


종교란 객관적인 현실을 왜곡시켜 환상을 보게 하는 사회적 의식의 한 형태이다.

--

호르스트 디레 외, 《세계사 수첩》[18]


구약성서의 신은 모든 소설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

리처드 도킨스


When one person suffers from a delusion it is called insanity.

When many people suffer from a delusion it is called a religion.

한 사람이 망상을 하면 정신병이라 부른다.

여러 사람들이 망상을 하면 종교라고 한다.

--

로버트 퍼시그(Robert Pirsig)



7. 인물[편집]




7.1. 가상 매체에서의 사례[편집]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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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사회에 큰 해를 끼치는가, 제대로 된 뿌리를 가졌는가 등의 차이점은 인식하고 있다.[2] 예를 들어 해리스는 체벌이 동기심리학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 성과를 거론하며 윤리적 작업에 과학이 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학이 도덕윤리의 영역을 흡수할 수 있는가의 논제는 이 항목의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여기까지만 소개하기로 한다.[3] Cowell, J. M., & Decety, J. (2015). The neuroscience of implicit moral evaluation and its relation to generosity in early childhood. Current Biology, 25(1), 93-97;Hofmann, W., Wisneski, D. C., Brandt, M. J., & Skitka, L. J. (2014). Morality in everyday life. Science, 345(6202), 1340-1343.[4] 신을 믿지만 제도로서의 현실 종교에 대해 극히 비판적인 경우[5] 이들은 무신론자일지라도 사상과 종교의 자유, 문화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존중하기 때문에 종교인들을 '계도'나 차별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존중할 대상으로 생각한다.[6] 보통 좌파나 아나키즘 쪽에서 무신론이나 과학만능주의의 이데올로기성을 비판하고 경계하는 경우가 많다.[7] 이 수준까지 가면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도덕률이나 사회계약론 등도 생물이 원초적으로 가지는 보호본능 같은 생물학적 근거를 모든 사람에다 보편적으로 적용하면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8] 상술하였다시피 무신론과 반종교는 별개의 철학이다.[9] 볼링장은 여전히 성황이지만 볼링 동호회는 갈수록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는 점에서 나온 주제이다.[10] 종교 유해론과는 대립한다. 그들이 말하는 종교의 범위가 넓은 건 맞지만, 그렇다고 좁은 의미의 종교를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므로.[11] 반드시 종교적 형태를 가질 필요가 없을 뿐, 종교적 형태를 가진다고 공동체의 결속, 질서, 상호부조를 못하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원시 시절부터 오랜 세월 그 역할을 종교적 형태를 가진 종교가 담당했음을 인정하고 있다.[12] 민문홍, '에밀 뒤르케임의 사회학', 아카넷. 2001.[13] 이러한 신앙적 배경을 두고 흔히 "credo quia consolans" 라고 부른다. 신앙주의 항목도 함께 참고.[14] 물론 "종교적" 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선결될 필요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Diener, Suh, Lucas, & Smith, 1999 참고.[15] 단, 종교사학자 르낭은 자신만의 관점에서 종교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르낭은 가톨릭 냉담자로, 사복음서 사이의 모순이 그가 신앙을 버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16] 다만 스탈린 시대에는 의외로 제2차 세계대전과 소수민족 통합 등 정치적인 이유로 러시아 민족주의를 자극하기 위해 러시아 정교회가 상당수 허용되었다.[17] 단지 구분하기 위한 명칭이다. 북한은 대한민국 헌법으로는 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이다. 다른 나라는 국가로 본다.[18] 구 동독 역사교과서의 참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