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흐메트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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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오스만 제국의 13대 술탄이자 7대 파디샤.
2. 생애[편집]
2.1. 어린시절[편집]
1566년 마니사 궁전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무라트 3세가 사망한 1595년에 오스만 제국의 13대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즉위할 때 오스만의 황위 계승 법칙에 따라 19명의 형제들을 처형했다. 부친과 조부처럼 정사에 무관심하였고 발리데 술탄(모후)인 사피예 술탄에게 국정을 일임하였다. 사피예 술탄은 사위인 다마트 이브라힘 파샤와 공모하여 대재상 세르다르 페르하트 파샤를 폐하고 코자 시난 파샤를 대재상으로 세웠다. 한편 부황 대부터 이어진 오스트리아와의 13년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은 에스테르곰, 비셰그라드 등 헝가리의 요충지들과 몰다비아 및 왈라키아 공국을 상실하는 등 연패를 이어갔다. 이에 메흐메트는 신료들의 강력한 귄유로 1566년 증조부 쉴레이만 1세 이후 처음으로 술탄의 친정에 나섰다.
술탄을 대동하여 사기가 오른 오스만 제국군은 1596년 헝가리의 에게르를 수복하고 케레츠테스(하조바) 전투에서 합스부르크군을 극적으로 격파하며 전황을 역전시켰다. 전투 도중 도주하려 했던 메흐메트는 직접 마주한 승리에 고무되어 코스탄티니예로 개선한 후 재차 친정에 나서려 했으나, 과식과 과음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그러지 못하였다.
그 후 합스부르크군이 죄르를 점령하자 오스만군이 너지카니저를 점령하는 등 공방전이 이어졌고, 그틈에 루마니아 전역이 왈라키아 공 미하이 2세의 수중에 들어가는 등 혼란이 이어졌다. 1600년에는 아나톨리아 동부에서 카라야즈 압뒬할림이 우르파를 장악, 술탄을 칭하며 젤랄리 반란을 일으켰다. 비록 압뒬할림 자체는 이듬해 제거되었지만, 아나톨리아 서부와 시리아 북부에서 후속 반란들이 이어져 1610년에야 평정되었다.
2.2. 사망[편집]
1603년 12월, 부더-페슈트 공방전이 오스만 제국의 승리로 귀결되던 무렵 메흐메트는 아끼던 아들 셰자데 마흐무트의 죽음에 의한 고뇌에 시달리다 사망하였다. 사후 모후 사피예 술탄의 주도 하에 아들 아흐메트 1세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3. 매체에서[편집]
위대한 세기 : 쾨셈은 그가 파디샤에 오르며 시작되나 등장한지 몇분만에 장남에 사형을 내린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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