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산성 전투(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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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朝]: 조선군의 승리 / [日]: 일본군의 승리 / [明]: 명나라군의 승리



독성산성 전투
禿城山城戰鬪

시기
1593년 1월 13일
음력 : 1592년 12월 11일
장소


경기도 오산시 독산성
교전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20px-Goshichi_no_kiri_inverted.svg.png 도요토미 정권
(공격)


파일:조선군 좌독기.svg 조선
(방어)


지휘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920px-Goshichi_no_kiri_inverted.svg.png 우키타 히데이에
파일:조선군 좌독기.svg 권율
파일:조선군 좌독기.svg 선거이
파일:조선군 좌독기.svg 변이중(소모사)
파일:조선군 좌독기.svg 조경(조방장)
파일:조선군 좌독기.svg 임희진(의병장)
파일:조선군 좌독기.svg 처영(승병장)
병력
20,000명~30,000명
10,000명
피해
피해 규모 불명
피해 규모 불명
결과
조선의 승리, 경기도 지역의 일본군 궤멸
1. 개요
2. 배경
3. 전개
4. 의의



1. 개요[편집]


임진왜란 때인 1593년 1월 경기도 오산의 독산성에서 권율이 참여한 전투로서, 승리하여 경기도 지역의 일본군을 궤멸시켰다.


2. 배경[편집]


임진왜란 초기에 벌어진 용인 전투에서 50,000명의 남도근왕근이 궤멸당한 후 용인 전투 참전 장수 중 유일하게 피해를 입지 않았던 권율은 이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임진년 말경에 휘하 장수 선거이, 소모사 변이중, 조방장 조경, 의병장 임희진과 변사정, 승병장 처영과 1만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북상한다.

권율은 용인 전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수원의 독성산성으로 들어갔다.

당시 한양에는 6만 명의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한양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이자 제8진 우키타 히데이에는 권율이 독성산성에 있으면 한양의 후방 연락망과 보급 추진로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해 2만 명의 군사를 뽑아 수원에서 오산, 관천, 용인 등지로 들어가는 길을 차단하고 공격을 개시했다.

3. 전개[편집]


독성산성이 공격을 받자 조선군은 소수 병력을 타격조로 편성해 운용하고 수시로 야습을 감행함으로써 일본군을 교란했다.

이에 일본군은 성 안으로 가는 물줄기를 막아 독성산성을 고립시키려 했다. 그러나 조선군이 제방을 막고 있던 일본군을 야간에 기습하여 단수를 차단했다.

그리고 전라도 도사 최철견이 의병을 모집해 권율을 구원하기 위해 오자 일본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산성에서 철수했다.

이로써 경기도 일부가 수복되었고 명나라 원군이 오고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는 가운데 1593년이 가까워 갔다.


4. 의의[편집]


이 전투의 승리 이후 권율은 행주산성에 입성, 남하하는 조·명 연합군에 호응해 일본군이 주둔 중이던 한양을 공격할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벽제관 전투에서 명나라 군대가 패하면서 전황은 급격히 역전, 도리어 일본군의 공격을 받는 신세가 된다.

이후의 자세한 내용은 행주 대첩 참조. 결국 독성산성 전투는 임진왜란 3대첩인 행주 대첩의 예고편이 되는 전투였던 셈으로, 이 전투의 승리가 없었다면 행주대첩의 승리도 없었을 것이다.

독산성 전투 설명 영상(8분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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