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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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사적 제140호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
烏山 禿山城과 洗馬臺址 | Doksanseong Fortress and Semadae Site, O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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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산 120-1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면적
37\,269㎡
지정연도
1964년 8월 29일
제작시기
삼국시대
위치




파일:external/blogfiles8.naver.net/2.jpg

독산성
1. 개요
2. 역사
2.1. 전투
2.2. 사적 추가 지정
3. 내부 유적
3.1. 세마대지
3.2. 보적사
4. 기타
5. 외부 링크
6. 사적 제162호



1. 개요[편집]


독산성은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독성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사적 제140호로 지정됐다. 독성산성이라고도 불린다.


2. 역사[편집]


독산성은 백제 시기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에는 토성이었으며, 이후 신라가 돌로 성을 보충하였다. 돌로 축조된 성벽의 길이는 약 3.6㎞[1]였다. 현재는 약 400m 정도의 성벽과 4개의 문이 남아있다.

정확한 축성시기는 알 수 없으나, 독산성이 위치한 자리는 한강 권역에 가까운 전략적 요충지로 성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이후로도 쭉 잘 쓰여왔다. 조선시대에 발발한 임진왜란 때도 권율 장군이 독산성 전투에서 왜군을 격퇴하기도 했다. 임진왜란 뒤에도 조선에서는 독산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성을 지속적으로 관리했었다.


2.1. 전투[편집]


삼국시대의 전투와 임진왜란의 전투는 독성산성 전투 참조.


2.2. 사적 추가 지정[편집]


독산성 내부에는 세마대지와 보적사와 같은 유적지가 있고 이외에도 여러 유적들이 남아 있지만, 기존에는 성곽과 세마대지만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어서 체계적인 관리가 힘들었다. 그러나, 2018년 7월 12일 독산성과 세마대지 종합정비계획에 따라 문화재청에서 성곽 내부까지 모든 면적을 사적으로 추가 지정하였다.


3. 내부 유적[편집]



3.1. 세마대지[편집]


독산성의 가장 높은 곳에는 세마대지가 있다. 세마대는 말을 씻긴 곳이라는 뜻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서 권율 장군이 말에게 쌀을 끼얹어 말을 씻기는 흉내를 내어 성에 물이 충분한 것처럼 속여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전략을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여기에 건물을 세워서 병사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2]

하지만, 위 일화는 임란 당시에는 기록이 전무하고, 임란이후 150년 정도 흐른 후 야사에서 처음 등장한 것으로 보아, 지어낸 이야기로 보인다.

현재 여기에는 정자가 하나 서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의 건물은 아니고 1957년에 복원한 것이다. 정자의 현판과 내부의 글씨판은 이승만의 친필이다.


3.2. 보적사[편집]


용주사의 말사이다. 확실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401년(백제 아신왕 10년)에 지어졌다하여 산성을 만들때 같이 지어진것으로 추정되며 독산성 동문에 위치한다. 경내 가람으로는 대웅전과 선실·요사채가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 좌상을 비롯하여 약사불상·지장보살상·십육나한상 등이 있다.

보적사에도 창건에 관련한 전설이 있다. 춘궁기에 먹을 것이 쌀 한 되 밖에 되지 않던 노부부가, 이 쌀을 부처님께 공양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를 부처의 은혜로 여긴 부부는 그 후로 더욱 열심히 부처님을 공양하였고 여기에서 '보적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용주사 본말사지에 의하면 보적사는 창건 당시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을 정전으로 쓰였다가 석가모니를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보적사는 전통사찰 제34호,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되어있으며 규모가 크지 않다. 독산성 가서 등산하고, 세마대지에서 시원한 물 마시다가 하산할때 잠깐 둘러보기 좋다.


4. 기타[편집]


오산시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3]

2020년 성곽 도시 유적 등이 발굴되었다.

물향기수목원과 더불어 오산시에 위치한 학교들의 체험학습 장소 1순위로 꼽힌다. 1년에 한 번은 꼭 가는 곳으로, 안 가면 섭섭한 수준이다. 일반시민들도 등산을 하기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다만 필봉산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진다.


5. 외부 링크[편집]




6. 사적 제162호[편집]


독산성은 다른 이름으로 독성산성이라고도 한다.

선조 25년(1592)12월 임진왜란 중에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 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곳이다.

독산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일 것으로 추측되며,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선조 27년(1594) 백성들이 산성을 쌓고,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5년(1602)에 당시 부사 변응성이 다시 보수하고, 그후 정조 16년(1792)과 20년(1796)에도 다시 공사했다.

성 둘레는 1,100m이고 문도 4개이지만 성 안에 물이 부족한 것이 큰 결점이었다. 이런 결점때문에 이 곳에는 세마대(洗馬臺)의 전설이 있는데, 권율 장군이 산위로 흰 말을 끌어다가 흰 쌀로 말을 씻기는 시늉을 해 보이므로 왜군이 성안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속아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독산성및세마대지→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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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2㎞정도로 추정하기도 한다.[2] 출처: 두산백과 - 오산 독산성과 세마대지[3] 그러나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는 의문이다. 시장 및 지역구 의원의 재임 기간 중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전시행정이 아닌지 의문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