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가수들의 북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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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02 MBC 평양특별공연.jpg

2002년 MBC가 주최한 평양특별공연


파일:조용필_2005 평양공연.png

2005년 평양에서 열린 조용필 단독콘서트


1. 개요
2. 역사
3. 공연 목록
3.1. 1985년
3.2. 1990년
3.3. 1998년
3.4. 1999년
3.5. 2001년
3.6. 2002년
3.7. 2003년
3.8. 2005년
3.9. 2006년
3.10. 2007년
3.11. 2008년
3.12. 2009년 ~ 2017년
3.13. 2018년
4. 북한에서 공연한 가수



1. 개요[편집]


1985년 처음 개최되어 1990년대부터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남북교류 문화행사. 남북관계가 괜찮았던 1990년대~2000년대에 많이 진행됐으며 이명박 정부 이후 한동안 열리지 못하다가,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시 한번 개최되었다. 판문점 선언북미정상회담 개최로 남북관계의 개선 조짐이 보이면서 다시 정례적으로 열릴 수 있다는 기대를 모았지만, 아쉽게도 2020년대부터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향후 공연 일정은 불투명한 상태다.


2. 역사[편집]


한창 냉전이 절정이었던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거의 불가능한 발상에 가까웠다. 당장 평양공연은 고사하고, 군사정권이 집권하며 온갖 검열 정책으로 멀쩡한 남한 가수들의 곡도 금지곡으로 지정했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1974년부터 일본에서는 북한의 후원으로 조총련이 운영하는 재일조선인 예술단체인 금강산가극단이 활동을 시작해 여러 해외 공연을 돌고 있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한동안 공연하지 않았다.[1]

첫 방북 예술단의 공연은 1985년에 개최됐다. 당시 광복 40주년을 기념해 남북적십자사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과 예술단의 방북공연이 추진된 것. 이에 한국과 북한의 예술단이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공연을 했으며 당시 방북 예술단으로 나훈아, 김희갑, 남보원 등이 참여해 공연을 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이었던 1990년 최초의 민간 차원 공연이 한 차례 진행되었으며 작곡가 윤이상과 한국 유명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가 방북하여 음악회를 개최했다.

이러한 시범공연을 거쳐 본격적인 문화교류는 국민의 정부 시기에 들어서 시작되었다. 리틀엔젤스가 1998년 5월과 11월 각각 평양에서 공연을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이듬 해인 1999년에는 사상 최초로 대중가수들의 평양공연이 진행되었다. 당시 패티김, 태진아, 설운도, 핑클, 젝스키스가 방북해 콘서트를 진행했다.

2000년대에 접어들어 이러한 문화교류는 더욱 활력을 띄었고 2001년 김연자가 한국 가수 최초로 평양에서 단독공연을 열기도 하였다. 2002년에는 가수 이미자가 한국 가수 중 2번째로 단독 콘서트를 진행했다. 또한 2003년 평양에서 처음으로 전국노래자랑 평양 특집을 녹화했고 2005년에는 조용필이 한국 가수로는 3번째로 평양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같은 해 금강산에서 KBS 열린음악회 특집도 진행했다. 2006년 MBC 창작동요제 역시 금강산에서 개최됐으며 당시 윤은혜컬러링 베이비 7공주가 방북해 공연을 했다.

그러나 2008년 금강산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8주년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이러한 문화교류는 10여년간 중단되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 터지면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관광이 모두 중단되고, 2010년대 들어 천안함 피격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이러한 공연들도 열리지 못했다. 특히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는 대북강경책을 펴며 이러한 문화차원의 교류마저 사실상 틀어막았고, 김정은 역시 대한민국에 초강경적인 자세를 취하며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뒤 이듬해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이를 기념하는 한국 가수들의 방북 공연이 10년만에 열렸다. 조용필, 이선희, 강산에, YB, 백지영, 최진희, Red Velvet 등이 참여해 공연했다. 남북정상회담과 연이어 북미정상회담의 개최로 남북관계가 물꼬가 트이면서 다시 예전처럼 정기적인 문화교류가 가능할 줄 알았지만, 아쉽게도 2020년대부터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언제 재개될 지 불투명한 상태가 되었다.


3. 공연 목록[편집]




3.1. 1985년[편집]


한국 예술단이 처음으로 북한에서 공연을 하였다. 남북적십자사 차원 합의에서 광복 40주년을 기념해, 한국과 북한의 예술단이 각각 서울과 평양에서 공연을 개최하기로 한 것. 방북단은 9월 21일 평양대극장에서 공연을 가졌으며 나훈아, 김희갑, 남보원 등이 참여했다. 이 때 이산가족 교환도 함께 진행했고, 공연 다음 날에는 북한 예술단이 서울에서 공연했다. 참고로 나훈아는 2018년 평양공연 때도 출연제의를 받았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거절했다.


3.2. 1990년[편집]


냉전이 끝나가던 1990년에는 최초 민간 차원의 북한 공연이 진행되었다. '범민족통일음악회' 공연으로 개최되었고, 한국에서는 서울전통음악단이 방북했다. 10월 18일부터 23일까지 평양 2.8문화회관과 봉화예술극장 등 6개의 공연장을 도는 순회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유명 가야금 연주자인 황병기 씨가 단장을 맡았고 윤이상이 전체적인 공연의 진행을 맡았다. 공연 2개월 뒤에는 북한의 평양민족음악단이 서울에서 초청을 받아 공연하였다.


3.3. 1998년[편집]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고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문화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98년 5월 2일부터 12일까지 리틀엔젤스가 평양에서 첫 공연을 가졌고, 이후에도 북한의 초청을 받아 3차례 북한 공연을 더 진행했다.[2] 첫 공연 때는 만경대학생소년예술단과 조인트 공연으로 진행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을 피날레 곡으로 불렀다.

10월 31일부터 11월 7일까지는 윤이상통일음악회의 평양 공연이 열렸다.


3.4. 1999년[편집]


1999년 SBS에서 주최한 평화친선음악회에서 사상 최초로 대중가수의 북한 공연이 이루어졌다. 당시 패티김, 설운도, 핑클, 젝스키스, 최진희가 참여했다. 아이돌 문화라는 개념이 없었던 북한에서 젝키와 핑클의 공연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충격적인 광경이었다는 후문이 있다. 특히 젝스키스를 처음 본 북한 아나운서가 아리따운 외모를 하고 있는 강성훈을 여자로 오인해 혼성그룹(....)이라고[3] 소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12월 22일에는 MBC가 주최한 민족통일음악회가 한 차례 더 진행됐다. 남북가수들의 합동공연으로 진행되었으며, 발레단이 참여해 돈키호테의 발레극을 공연했다. 한국 가수로는 안치환, 현철, 김종환, 오정혜가 출연했고 북한 쪽에서는 전혜영, 리경숙 등이 나왔다. 한국에서는 이 공연을 MBC가 녹화중계했지만 북한에는 생중계되지 않았다고 한다.


3.5. 2001년[편집]



파일:김정일-김연자.jpg

김정일과 기념촬영하는 김연자

2001년 4월 5일부터 12일까지 김연자가 북한에서 한국 가수 최초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다. 당시 조선중앙TV와 라디오에서 김연자의 공연을 생중계했고, 북한 전역에 방송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방북 마지막 일정으로 김정일이 김연자를 초청해 만찬을 대접했는데, 김정일은 생전 김연자의 엄청난 팬이었다. 김연자가 밝히기를, 김정일의 개인별장에 초대받아 만찬을 대접받고 김정일이 금일봉까지 줬다고 한다. 또 만찬 자리에서 어떤 노래가 좋다는 식으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고. 이 자리에서 김연자가 김정일의 혈액형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옆에 있던 북한 관리들은 이건 기밀사항이라며 난감해했지만 김정일은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본다." 라고 웃으며 흔쾌히 A형이라고 알려줬다. 김정일의 혈액형도 이 때 처음 공개되었다.


3.6. 2002년[편집]



2002년 4월, 김연자가 두 번째로 방북해 공연을 했다. 평양 시내 3개의 극장을 도는 순회공연으로 진행되었으며, 역시 김정일의 지시로 북한에서는 김연자가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다. 김정일과의 만찬 자리에서 김정일은 다음 방북 때는 북한 전역을 도는 순회공연을 진행해 줄 것을 부탁했고, 실제 김연자 측에서 이듬 해인 2003년 북한의 몇 개 도시를 도는 투어를 계획했었으나 당시 북일정상회담 이후 납북 일본인 문제가 불거지며 북한 내부 상황이 안 좋아져서 결국 공연계획을 취소했다고 한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맞아 다시 한번 북한공연이 이루어졌다. 9월 15일부터 16일까지 한국의 태권도 시범단이 평양을 방문해 공연을 가졌고, 20일에는 KBS교향악단이 평양을 방문해 연주회를 했다.


파일:이미자 평양공연.jpg

평양에서 개최된 이미자의 단독콘서트 <이미자의 평양동백아가씨>
MBC에서 주최한 평양공연은 9월 27일~29일 치러졌다. 9월 27일에는 이미자가 <이미자의 평양동백아가씨> 라는 제목으로 한국 가수 중 2번째로 단독콘서트를 개최했다. 동백아가씨부터 섬마을 선생님, 흑산도의 눈물 등 자신의 히트곡들을 총망라해서 공연을 했고 북한에서도 생중계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MBC에서 나중에 DVD과 비디오로 출시하기도 했다.[4]


파일:YB 평양 1차 공연.jpg

북한에서 큰 화제가 된 YB의 공연

9월 29일에는 남북한 가수들의 합동공연이 열렸다. '오! 통일 코리아' 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으며 한국 쪽에서는 최진희, YB, 테너 임용균이 참여했고 북한에서는 평양예술단이 출연했다. 최진희사랑의 미로와 홍도야 울지 마라를 불렀는데, <사랑의 미로> 는 김정일의 애창곡이었다. 테너 임용균은 한복을 입고 <박연폭포> 와 <밀양아리랑> 을 불렀다.

이 공연에서 제일 화제가 된 출연자는 바로 YB였는데, 북한에서 락밴드가 공연하는 건 사상 최초였다.[5] YB는 이 공연에서 아침이슬, 탈춤, 너를 보내고, 오 필승 코리아, 아리랑 등 총 5곡을 불렀다. 특히 이 공연에서 부른 너를 보내고가 북한 전역에서 큰 화제가 되어 현재까지도 북한에서 인기 있는 한국 가요 중 하나라고 한다. 또 록버전으로 편곡한 탈춤을 부르기 전 자신들을 '놀세때' 라고 소개한 것도 나름 화제가 되었고, 당시 북한에서 전혀 유래가 없었던 헤비메탈 공연으로 북한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마지막 곡으로 아리랑을 부를 때 윤도현이 잠시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6] 당시 인기가 대단해서 YB가 묶었던 호텔 앞에 평양의 소녀팬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웃긴 비화가 하나 더 있는데, YB가 리허설을 할 때 계속 정전이 돼서 고생했다고 한다. 록밴드 일렉 악기들이 먹는 전기량이 어마어마해서 북한의 전력수준으로는 감당이 안 됐던 것이다. 결국 본공연 때는 아예 일대 전체를 정전시킨 뒤(...) 공연을 했다고. 북한의 전력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7]

3.7. 2003년[편집]


2003년 6월 6일~7일, 일본 도쿄에서 조총련이 운영하는 문화예술단체인 금강산가극단YB의 합동콘서트가 펼쳐졌다. 비록 평양공연은 아니지만, 조총련계 재일-조선인 단체가 한국 대중가수와 공연하는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6.15 공동선언 3주년을 맞춰 진행되었으며, 공연 제목은 직전 해 평양공연 때와 마찬가지로 '오! 통일 코리아' 였다. YB는 이 공연에서 <이 땅에 살기 위하여>, <아리랑> 등을 불렀고 금강산가극단과 합창으로 철망 앞에서도 불렀다. 이 때의 공연이 반응이 괜찮아서 이듬 해인 2004년에는 잠실실내체육관에서 다시 한번 조인트 공연을 가졌다.




파일:송해-2003 평양노래자랑.jpg

2003년 개최된 KBS 평양노래자랑

2003년 8월에는 KBS 전국노래자랑 평양 특집편이 방송되었다. 특집으로 제목은 <평양노래자랑> 이었으며, MC 송해조선중앙TV 아나운서 전성희가 진행을 했다. 1951년 1.4 후퇴 때 월남한 송해로써는 52년만에 북한 땅을 밟는 것이었던 만큼, 그의 북한 방문은 의미가 깊었다.[8] 총 10팀의 북한 주민들이 출연했고, 한국 측에서는 초대 가수로 송대관주현미가 출연했다. 송해는 중간중간 참가자들에게 말을 걸며 진행을 하는 등 한국에서 진행을 할 때와 똑같은 포멧으로 이어나갔는데, 이건 사전 협의된 것이 아니라 송해의 즉흥적인 행동이었다고 한다.[9] 월남할 때 북한에 놔두고 온 어머니와 여동생을 만날 수 있는 거라 기대했지만,[10] 결국 그의 고향인 황해도 재령에는 가지 못하고 돌아왔다.


파일:평양통일음악회 2003년.jpg

SBS가 주최한 <2003 평양통일음악회>

2개월 뒤인 2003년 10월,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을 맞아 SBS의 주최로 평양에서 통일음악회가 열렸다. 설운도, 조영남, 이선희, 김동규신화, 베이비복스가 출연했으며 북한 만수대예술단과 1, 2부로 나눠 조인트 공연으로 진행됐다. 특히 방북공연 사상 처음으로 육로로 군사분계선을 넘었으며[11] 이 때 현대아산에서 제공한 소 100마리까지 트럭으로 운반했다. 중간에 북한 휴게소의 모습이 처음으로 공개됐는데,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거기서 북한 안내원과 이야기를 나누며 물건을 구입하기도 했다.


특히 이 공연은 1세대 아이돌 팬들에게는 매우 유명한데, 신화와 베이비복스가 공연을 할 때 북한 관객들이 보인 쇼킹한 반응(...) 때문이다. 훗날 윤은혜가 한 방송에서 밝히길 북한 여성들이 질색팔색 할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공연 준비 과정부터 난관이었는데, 신화는 원래 활동곡 너의 결혼식을 부르려고 했으나 가사가 북한에서 부르기 좀 그래서 Perfect Man으로 바꿨고, 베이비복스의 경우 북한 측이 배꼽티 의상을 문제삼는 바람에 결국 망사를 찢어서 배꼽을 가렸다고 한다. 다만 한국 아이돌 가수의 공연이 북한 전역에 생중계되면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나름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3.8. 2005년[편집]


2005년 6월 15일, 평양봉화예술극장에서 창작가극 '금강' 이 공연됐다. 원래 2004년 9월 문익환 목사 10주기를 맞아 방북해 공연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방북이 미뤄진 것이다. 당시 양희은의 친동생 양희경 씨가 출연했는데, 그래서 양희은이 진행했던 여성시대에서 평양과 전화통화를 하기도 했다.




파일:조용필-김영남 2005년.jpg

김영남 북한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난 조용필

같은 해 8월 23일에는 조용필이 방북해 한국 가수 중 3번째로 평양에서 단독콘서트를 열었다. 북한 측의 요청으로 공연이 진행됐는데, 이미 알려진 비화지만 김정일은 조용필의 광팬이었다.[12] 다만 조용필 측에서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는데, 공연 내용에 간섭하지 말 것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공연을 가지게 해달라는 것[13] 외에 남북한에 동시 생중계해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김정일이 공연계획서를 전격적으로 승인해주면서 공연이 진행될 수 있었다. 공연은 SBS조선중앙TV에서 생중계됐다.

세트리스트는 전체적으로 조용필의 1~18집의 히트곡들 대부분이 선곡되었으며, 김정일의 애창곡이라는 <허공>과 <꿈>도 불렀다. 실미도의 OST로 유명한 <태양의 눈>도 불렀는데, 북한에서는 태양이라는 표현이 김일성을 지칭하는 것이라 원칙적으로는 공연이 안 되지만 조용필이 사전에 요청한 '공연 내용에 간섭하지 말 것' 이라는 조항에 따라 북한 측도 결국 용인해줬다. 앵콜곡으로 부른 홀로 아리랑도 유명하다. 원래 세트리스트에 없는 곡이었지만,[14] 북한 측에서 다급하게 요청하는 바람에 결국 얼마 안 남은 시간동안 급하게 노래를 연습했다고 한다.

공연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이례적으로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었던 김영남이 직접 접견을 나오는 등 북한 측에서는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다.


3.9. 2006년[편집]



파일:2006 MBC 창작동요제 금강산.jpg

금강산에서 열린 2006 MBC 창작동요제에서 공연하는 7공주
2006년 4월 28일, MBC 창작동요제 녹화가 금강산에서 진행되었다. 창작동요제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에서 진행하는 대회였고, 따라서 동요도 대부분 통일과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대상 곡은 <그날을 위해>. 3년 전 베이비복스 멤버로 방북했던 그리고 북한에 쇼킹을 안겨줬던 윤은혜가 MC를 맡았고, 테이컬러링 베이비 7공주가 공연을 했다. 7공주는 Love Song과 남북한의 동요 몇 곡을 북한 어린이합창단과 함께 불렀다. 여담이지만 이들은 방북한 대중가수 중 최연소이기도 하다.[15]

다음 날인 4월 29일에는 남북 음악인들이 공동 개최한 <윤이상 통일 음악회> 가 열렸다. 1, 2부를 각각 남북한 악단들이 나눠서 조인트 공연을 했다.


파일:금강산 통해야 콘서트 - 인순이.jpg

CBS가 주최한 <통해야> 콘서트
2006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CBS가 주최한 <통해야> 콘서트가 금강산에서 진행됐다. 인순이, 럼블피쉬, 임용균, 강산에, CBS합창단이 출연했으며 당시 비가 엄청 오는 궂은 날씨였는데도 온정각 야외무대가 꽉찰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특히 강산에는 실향민인 부모님을 주제로 만든 히트곡 <라구요>를 부르며 잠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16]


3.10. 2007년[편집]


2007년 3월, 안치환이 금강산예술회관에서 공연을 했다. 한국 가수로는 4번째 단독공연이며, 현대아산의 주최로 진행됐다.

2007년 5월 10일에는 금강산예술회관에서 장윤정의 단독 콘서트가 열렸다. 한국 가수로는 5번째 단독공연으로, 정확히는 금강산 관광 패키지 상품으로 진행되었지만 한국 관광객과 북한 측 관객들도 참석해 공연을 관람했다. 금강산 콘서트의 반응이 괜찮아서 평양 공연도 추진한다고 했지만, 남북관계 악화 등 여러 사정으로 결국 무산됐다.

6월 9일에는 가수 남진노브레인이 금강산에서 공연을 했다. 노브레인은 YB에 이어 북한에서 공연한 2번째 록밴드로, 현장 분위기는 괜찮았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현대아산이 한국 가수들의 금강산 공연을 주최한 이유는 당시 현대아산이 오랜 합의 끝에 이뤄낸 내금강 개방을 축하하기 위한 목적이었다.[17]


3.11. 2008년[편집]




한국 가수의 공연은 아니지만, 2008년 2월 26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미국 오케스트라 악단 중 처음으로 평양에서 공연을 했다. 당시 첫 곡으로 북한의 애국가미국 국가(!)가 연주되었으며,[18] 특히 피날레 곡으로 부른 오케스트라 버전의 아리랑은 극찬을 받았다. 한편 김정일이 참석할 것인가에 대해 언론에서 여러 추측이 나돌았지만, 결론적으로 참석하지 않았고 대신 북한 측에서 이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해줬다.


파일:2008 금강산 공연 인순이.jpg

인순이의 금강산 콘서트

2008년 5월 18일, 금강산 온정각 야외무대에서 인순이의 단독 콘서트가 개최되었다. 인순이의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겸해 진행되었으며, 한국 가수 중 6번째 단독공연으로 현재까지 북한에서 단독 콘서트를 진행한 마지막 가수다. 당시 마지막 곡으로 거위의 꿈을 불렀으며, 각종 댄스 무대도 진행되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공연을 보러 온 북한 측 관객들이 공연이 끝난 뒤 싸인을 요구할 정도였다고.

2008년 6월 12일, 6.15 공동선언 8주년을 맞아 민족통일대회 행사가 진행되었다. 남북한 예술인들이 1,2부를 나눠 조인트 공연을 했는데, 이것이 2018년 이전까지 금강산에서 열린 마지막 방북공연이었다. 한달 뒤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이 터지면서 금강산 관광개성관광이 연달아 중단되었고, 남북관계는 경색 궁면으로 들어간다.


3.12. 2009년 ~ 2017년[편집]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모든 대북교류가 멈췄고, 이 때문에 이 기간동안에는 어떠한 한국 가수들의 북한 공연도 진행되지 않았다. 특히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5.24 조치로 강력한 대북규제안이 발의되면서, 개성공단도 가동중단과 재개를 계속하는 불안한 상황에 방북 공연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2011년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평양공연을 추진했었으나 접촉 과정에서 결국 무산되었다.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 역시 대북강경책을 폈고, 북한 역시 핵실험을 계속하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되어갔다. 급기야 2016년에는 개성공단마저 무단 폐쇄되면서 이전 같은 문화교류는 더 이상 꿈도 못 꿀 일처럼 되고 말았다.


3.13. 2018년[편집]



파일:s2.reutersmedia.net.jpg

2018년 '봄이 온다' 출연자들의 단체사진
2018년 4월 1일~3일까지,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기념하여 10년만에 방북 공연이 성사됐다! 출연자는 역대 최대 규모로, 윤상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조용필, 최진희, 이선희, YB, Red Velvet, 강산에, 정인, 알리, 서현이 출연했고 서현은 MC까지 맡았다. 자세한 내용은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 항목 참조.


4. 북한에서 공연한 가수[편집]


단독공연을 진행한 가수



  • 조용필(2005, 2018)[19]




예술단 일원으로 방북









  • YB(2002, 2018)

  • 임용균(2002, 2006)




















  • Red Velvet(20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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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국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가 되어서야 서울에서 첫 공연을 했고, 현재까지도 정기적으로 한국 공연을 하고 있다.[2] 리틀엔젤스를 운영하는 통일교의 교주 문선명이 1980년대 말부터 방북해 김일성을 만나는 등 대북사업을 해왔기 때문에 통일교와 북한 정권의 관계는 가깝다. 국민의 정부-참여정부 시절 대북사업을 할 때 통일교의 도움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대북 핫라인도 통일교가 깔아줬다고.[3] 북한식 표현으로는 남녀중창단.[4] 훗날 힐링캠프에 출연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언급하기도 했다.[5] 당시 북한에서는 이들을 '윤도현 악단' 이란 이름으로 소개했고, MBC 측에서도 북한에 전자음악단이라고 소개해 공연허가를 받았다고 한다.[6] 원래 <철망 앞에서> 도 부르려고 했는데 공연 직전 북한 관계자들이 난색을 표해 무산됐다.[7] 북한은 전력난이 심각해서 조금만 시골이나 소도시로 나가면 아예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도 있을 정도로 전력공급이 안 된다. 그나마 전기가 들어온다는 평양에서도 정전이 수시로 나는 건 기본이라고.[8] 사실 송해는 1998년 금강산 관광 개업 당시 특집 노래자랑을 진행한 적이 있었으나, 금강산 현지에서 한 게 아니라 선박 안에서 진행했다.[9] 북한 측에서는 오프닝 & 클로징 멘트만 하라고 부탁했지만, 송해는 그럴 거면 내가 여기 온 이유가 없다며 중간중간 관리원의 눈을 피해 무대로 나갔다. 처음에는 나가지 말라고 했던 관리원도 녹화가 진행되면서 재미있으니 가끔 나가라고 태도를 바꿨다고 한다.[10] <피플! 세상 속으로> 다큐에서 송해는 평양으로 떠나는 자신의 짐가방에 여동생을 만나면 선물할 한복을 챙겨갔다.[11] 4년 뒤인 2007 남북정상회담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용했던 루트와 같다.[12] <허공>, <꿈>이 김정일의 애창곡이라고 여러차례 언론에 보도됐을 정도로 유명하다.[13] 원래 북한 측은 공연 장소로 이미자가 공연했던 동평양대극장을 제안했다. 그러나 조용필이 너무 규모가 작고 록밴드 공연을 하기 음향설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류경체육관에서의 공연을 강하게 밀어붙혔다.[14] 조용필 본인도 이 곡을 잘 몰랐다.[15] 당시 해금강호텔에 묶을 때 어린 멤버들이 공연 전 날 계속 잠을 안 자고 떠들자, 리더였던 오인영이 안 자면 군인아저씨들이 잡으러 온다며 멤버들을 겁줘서 잠을 재웠다고 한다.[16] 12년 뒤 평양에서 공연했을 때도 라구요를 불렀다.[17] 금강산의 진짜 명소는 내금강이라는 소리가 있을만큼 예로부터 금강산이 명코스 중 하나였다. 다만 군사분계선하고 너무 가까운 탓에 군사시설 관리등의 문제로 개방이 미뤄져오다, 2007년부터 제한적으로 열렸다.[18] 미국 국가가 평양에서 연주된 건 북한 정권 수립 이후 처음이었다.[19] 2005년은 단독콘서트, 2018년은 예술단 일원으로 진행.[20] 조이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