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칸드르 치비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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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칸드르 예블람피예비치 치비소프
Ни́кандр Евла́мпиевич Чи́бисов
Nikandr Yevlampievich Chibis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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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2년 10월 24일[1]
러시아 제국 로마놉스카야
사망
1959년 9월 20일 (향년 66세)
소련 벨로루시 SSR 민스크
복무
러시아 제국 육군
1914년 ~ 1918년
소비에트 지상군
1918년 ~ 1954년
최종 계급
대위 (러시아 제국 육군)
상장 (소비에트 지상군)
주요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 내전
겨울전쟁
독소전쟁
주요 서훈
레닌훈장 (3회)
소비에트 연방 영웅
적기훈장 (3회)




1. 개요[편집]


소련의 군인이다.


2. 생애[편집]


마을 노동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1912년 4년제 신학교 졸업 후 농장 창고 관리자로 근무했다.


2.1. 제1차 세계 대전[편집]


1914년 10월 러시아 제국 육군에 징집돼 서부전선, 남서부전선에서 전투를 치렀다. 1918년 2월 독일 제국군에게 포로로 잡혔는데 동료들과 무사히 탈출해 페트로그라드로 도주했다.


2.2. 러시아 내전[편집]


1918년 2월 노농적군에 입대했다. 1918년 12월부터 제16군 제10보병사단 부사단장을 역임하며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1935년 프룬제 군사대학을 졸업했다.


2.3. 독소전쟁[편집]


제38군 사령관을 역임하며 쿠르스크 전투를 지휘해 나치 독일 육군 기갑부대를 격퇴했다. 하지만 치비소프와 니콜라이 바투틴은 당시 이오시프 스탈린의 명령에 반감을 표했기 때문에 강제 해임됐다. 1943년 10월 드네프르 강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열정과 재능을 증명한 덕에 소련 최고회의 법령에 따라 레닌훈장, 소비에트 연방 영웅 훈장을 수여받았다.


2.4. 전후[편집]


1949년 10월부터 벨로루시 군관구 부사령관을 역임 후 민스크에서 사망, 민스크 추모묘지에 안장됐다.


3. 평가[편집]


치비소프는 항상 열정을 가지고 임무를 완수하는 데에 힘썼다. 함께 대화를 나눈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그의 태도는 주위의 사람들도 기분 좋게 만들었다.

니콜라이 크릴로프 원수


제38군 부사령관이었던 치비소프는 언제나 여유롭게 부대를 지휘했다. 처음엔 그를 게으른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전투를 승리로 이끈 덕분에 내 편견이 깨졌다.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원수


치비소프 동무, 당신은 사령관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지만 융통성 없고 솔직한 태도는 언제나 마음에 들지 않았소. 스탈린 동지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이었지만 당신을 해임할 생각은 없었소. 하지만 나는 최대한 많은 당신의 결점을 찾아내 스탈린 동지에게 보고해서 당신의 해임을 앞당겼소.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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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레고리력 기준 11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