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범/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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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나성범

1. 개요
2. 야구 관련
3. 야구 외
3.1. 탁월한 신체조건
3.2. 성실성
3.3. 팬서비스 및 선행
3.4. 기타



1. 개요[편집]


KIA 타이거즈 소속 야구선수 나성범의 기타 사항들을 설명하기 위한 문서.


2. 야구 관련[편집]


  • 경찰 야구단KIA 타이거즈, 現 광주진흥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나성용의 동생으로도 유명하다.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형제 배터리로 고등학교 2년, 나성범이 대학에 진학한 뒤에도 3년간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둘 다 LG에 지명되었으나 부모님의 뜻으로 연세대에 진학하였다. 둘 사이는 매우 각별한 편으로,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저 그런 투수였던 나성범을 강속구 투수로 만들어주겠다고 한 것이 바로 나성용이다. 연고전에서 패하고 난 뒤의 술자리에서 형은 나를 위해 홈런을 쳐주었는데 난 뭘 한 거냐며 쪼그려 앉아서 울었다는 인터뷰도 있고, NC에 지명되자마자 형을 우리팀으로 데려와 달라고 요청했다는 카더라도 있었다. 2015시즌에는 둘 다 1군 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양 팀 팬들에게 훈훈함을 선사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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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배터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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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시즌 잠실야구장 잡지 촬영

  • 등번호 47번을 달게 된 계기는 원하는 번호가 없어서. 광주진흥고 3학년 때 14번을 달고 뛰었기 때문에 연세대 입학 후에도 14번을 희망했지만 선배가 달고 있어서 남은 번호 중에서 택한 것이다. 허나 나성범은 47번을 달고 대학 1학년 때 엄청난 활약을 펼쳤고, 3~4학년이 되고서 마음에 드는 배번을 고를 수 있게 된 후에도 계속 47번을 고수했다. 주변에서 47번이 어울린다고도 얘기해 줘서 이제는 본인도 만족하는 번호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들 정재가 NC에 입단한다고 해도 안 주고 싶은 번호가 되었다. 47번의 주인공은 한 명이기 때문에. 2020년 5월 달성한 개인 통산 150홈런 기록은 KBO 리그 역대 47번째 기록이었고, 본인도 의식하고 있었다.##

  • 징크스로는 1군 시합하면서 경기 전에 피곤해서 코피가 난다든지, 상처가 난다든지, 연습할 때 누가 배트에 실수로 맞거나, 본인이 누군가의 배트에 실수로 맞는다든지 하게 되면 이상하게도 그날 성적이 나쁜 적이 없었다고 한다.

  • 진흥고등학교 출신 중 제대로 성공한 최초의 프로 외야수이다. 사실 진흥고 출신은 김정수, 송유석, 이대진, 임창용, 김상진, 양의지 등이 있다. 투수, 포수는 걸출한 인물이 많았지만 외야수 중 걸출한 인물은 나성범이 최초. 사실 나성범도 투수 출신이긴 했지만..[3]

  • 롤 모델은 추신수이다.[4] 2014 애리조나 스프링 캠프 당시 추신수를 찾아가 전화번호를 교환한 후 같이 인터뷰도 했다. 2021년 한국으로 돌아온 추신수에 대해 기자들이 질문하자 "같은 팀이었으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이야기도 나누겠지만, 최대한 만날 때마다 자주 물어볼 생각이다. 궁금한 것 생각해뒀다가 물을 생각이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시범경기 기간에 본인의 집으로 추신수를 초청해 식사를 대접했다.## 추신수는 나성범에 대해 “야구에 대한 열정 같은 것을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 나성범을 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면서 “매일 잘하고 싶고 오늘 잘해도 내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정말 내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파일:/image/380/2014/02/22/150820812_DT8V2442.jpg파일:/image/380/2014/02/22/151111361_DT8V2702.jpg

  • 수비이닝이 끝나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면서 권희동, 김성욱과 2루 베이스에 모여서 슬램 제스처를 했었다. 보통 이닝이 끝나면 내야수들은 각자 위치에서 그대로 덕아웃으로 들어가는데, 어느날 외야 수비를 보고 들어오던 권희동이 MLB선수들의 제스처를 보고 따라해보자고 제안해서 점프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경기에서 앞서는 상황일 때만 하는 것으로 보이며, 제스처를 하면서 서로 한마디씩 격려멘트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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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제가 둘 다 효심이 깊어서, 계약금 3억 원으로 부모님 집을 사드렸다고 한다.[2] 둘의 페이스북 대화내용을 보면 형제답지 않게 굉장히 다정한 것을 알 수 있다.[3] 물론 내야수도 사정은 마찬가지. 그나마 손주인 정도. 외야수는 그 외에 김성욱 정도가 사실상 끝이고, 백업 정도로 넓혀보면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대주자가 있다.[4] 1군 데뷔 후 첫 인터뷰에서부터 꾸준히 롤모델이 추신수라고 밝혀왔다.
외야수 세리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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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구 외[편집]



3.1. 탁월한 신체조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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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성범_트레이닝.jpg}}} ||<width=50%>

[5] 이 선수가 경기 중 파울 타구를 야구장 좌석 뒤 복도에 있는 TV를 정확히 맞춘 적이 있다(...)[6] 몸매 관련 기사들 나성범 벌크업 변천사[7] 친한 친구로 알려진 박해민은 한 기사에서 파나마 야구 월드컵 대표팀 시절 "매일 아침 밥 먹자고 나를 깨웠다"며 "엄청 먹더라. 아침부터 그렇게 먹는 애는 처음이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NC에서는 권희동이 희생양인듯. 요즘은 안 먹는다는데 결혼한 현재는 알 수 없다.
2019 스프링캠프 트레이닝 사진
대흉근과 이두근 때문에 하트가 안 된다..






3.2. 성실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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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성범뒤태2.jpg
[8] 2013년 7월 jtbc 뉴스 인터뷰에서 직접 측정한 결과 72cm였는데, 이를 인치로 환산하면 28.3인치이다. 당시 가슴둘레는 113cm.[9] 참고로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허벅지를 가지고 있던 그 차범근이 31인치였다.[10] 나성범은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큰 체구는 아니었는데, 연대시절 아킬레스건 염증이 와서 한 달 정도 쉴 동안 감독이 트레이너를 붙여주면서 헬스만 하면서 힘을 비축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당시 웨이트를 엄청 열심히 했고 프로 입단 후에는 주로 캠프 때 웨이트를 많이 하며 시즌 중엔 무게보다는 가벼운 걸 많이 드는 식으로 유지한다고 한다.#[11] 2012년-2019년 비교사진 2012년~2020년 변천사[12] 2012년 인터뷰에 따르면 타자 전향 초기 방망이가 익숙하지 않은 손바닥이 찢어지는 일이 잦았고, (투수 시절과는 다른 근육을 쓰다 보니) 온 몸에 알이 배기고 허리 통증도 심했다고 한다.[13] 팀 스트렝스 디렉터인 박일봉 교수는 한 영상에서 트레이닝 모범생으로 나성범과 노진혁, 드류 루친스키를 꼽았다. 특히 나성범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코멘트했다.#[14] 2013년 부상을 입고 재활할 때도 감독의 눈을 피해 하체운동이라도 하려고 체육관에 갔다가 혼났다는 썰이 있을 정도. 2019년 큰 부상을 입고 나서도 다리 깁스를 풀자 마자 재활군에 합류해 상체 웨이트를 시작하더니, 7월 홈경기 전 있었던 1000안타 기념식에서는 더 상체가 거대해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라디오볼 인터뷰에 따르면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몸이 너무 근질거려서, 트레이너에게 양해를 구하고 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웨이트를 하다 보니 상체쪽은 120%정도로 몸이 만들어졌다며 팬들에게 자랑을 했다.[15] 특히 박민우는 2020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나성범의 페어플레이 상을 대리수상하러 나와서 MC들이 '옆에서 지켜본 인간 나성범은 어떤 사람인지' 묻는 질문에 "성범이형은 재미없는 사람" 이라며 또다시 디스를 시전했다.#[16] 팀 창단 때부터 함께한 노진혁은 2020년 한 인터뷰에서 나성범에 대해 "인성도 좋고, 야구에 대한 열정도 있고, 항상 건강관리 잘하고, 착실하게 모범적으로 행동하는 친구"라며 호평하기도 했다.#[17] 거나하게 취한 아재들이 계속 외야에 서 있는 나성범에게 안부를 묻거나, 심지어는 사랑고백을 하곤 했다.[18] 구 야구장 시절에는 응원단과 외야응원석이 정확히 범사이팅존 지역에 있었다!
2015년도 그의 뒷모습. 지금은 거의 두 배는 더 커졌다.
그의 다짐[19]




3.3. 팬서비스 및 선행[편집]






이 영상을 찍을 당시 NC는 2군 데뷔도 하지 않았던 상태였지만 나성범은 NC가 미는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참가해서 영상을 찍었다. 이후 엔튜브 인터뷰에서는 스스로 생각해낸 춤이 아니라 자신 앞에 있던 댄서를 따라 춘 춤이었다고 무려 7년이나 지나서야 밝혔다.[24][25] 2019시즌 NC로 이적한 양의지의 컴프야포인트 댄스와 함께 NC 댄스계의 양대산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엔튜브에서 동료 선수들의 벌칙으로 두 선수의 춤을 신나게 활용하고 있다.






3.4.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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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3일 나성범 플레이어데이 시구 및 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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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013 시즌 홈 마지막 경기인 2013년 10월 5일 경기 시 감독, 코치진, 선수단의 싸인과 각오가 쓰여진 현수막이 마산 야구장에 걸렸는데 그 중 나성범의 내용만 유독 튀어 팬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원본 다른 선수들[20] '1일1깡' 강진성, 1위 NC 승리공식 이끄는 '반짝 아닌 횃불' 나성범이 보는 '효자' 알테어 "이만한 외국인 타자 없다"[21] # #[22] 사실 이쪽은 원래부터 나성범과 대비되는 가벼운 이미지로 매년 크고 작은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게 2021년 들어서 도저히 답이 안 나올정도로 폭발했을 뿐.[23] 후기가 정말 끝이 없어서 각주로 대체한다. #######[24] 본인은 춤을 잘 안춘다면서 굉장히 억울해 했다.[25] 2020년 플레이어데이 팬미팅에서 다시한번 이 춤을 언급했는데, 유튜브로 영상들을 볼 때마다 알고리즘 추천으로 해당 영상이 자꾸 떠서 민망하다고 했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26] 2016년 2017년 2018년 2020년[27] [이영미 人터뷰] ‘기부천사’ NC 나성범, 수술과 재활, OPS 1을 찍기까지[28] 자칫 잘못하면 생색내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29] Na(소듐 또는 나트륨의 원소기호) sung bum[30] 컴프레션 이너웨어, 스파이크, 배팅 글러브, 리스트밴드 및 국내 미출시 용품들도 공수해와서 제공.[31] 나나랜드가 타격을 너무 못해서 포지션 변경을 하는 와중이라 2020 시즌 기준 1군에서 활약중인 나 씨 야구선수는 세 명밖에 없다.'16만' 나씨들의 나나나, KIA 나지완-NC 나성범 대기록[32] '최다득표' 나성범 "멍했던 작년, 당당한 올해"[33] 나성범은 FA계약으로 KIA로 이적하였으며 나주환은 은퇴후 KIA 2군 코치가 되었지만 현재는 방출 되었다. 나지완은 KIA에서 은퇴한 원클럽맨이 되었다.[34] 지명 후 연세대 교내 잡지사와 가졌던 인터뷰에 따르면 술은 정말 특별한 자리가 아닌 이상 거의 안 마신다고 한다. 그 이유는 고등학교 때 술, 담배 때문에 실패한 선배들을 많이 봤기 때문.[35] 내게 능력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36] 훈련사진 기사 훈련소 썰[37] 인스타그램 등지에서 나성범의 아들(나정재) 사진이 공개되는 등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고 한다.[38] 불의의 부상 이후로는 야구장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39] 이에 대해 나성범은 "평소 통역들이 영어를 막힘없이 하는 모습에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BSTI에서 여러 선수들을 만나 궁금증을 묻고 싶어도 대화가 안되니 답답하더라. 선수들이 모여 웃고 있는데 혼자 조용히 있기 그래서 눈치를 보고 함께 웃기도 했다"며 "간단한 용어라도 알아야겠다 싶어 에이전트, 통역을 통해 배우기 시작했다. 되든 안되든 일단 (말을) 해봐야 한다고 하길래 단어가 생각나는 대로 막 부딪쳤다"고 이야기했다.#[40] Dinos의 역문자인 'Sonid'.[41] 김밥으로 그릇에 남은 양념까지 쓸어먹었다..[42] 144경기 기준 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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