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블로트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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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그라블로트 전투는 보불전쟁의 일부로 프로이센군의 전술적인 승리로 끝난 전투이다. 결국 프랑스군의 라인강군이 항복하게 만든 메스로의 행진의 이전에 발생한 전투이다.
2. 배경[편집]
그라블로트 전투가 일어나기 전, 나폴레옹 3세는 프로이센군을 피해 후퇴한 상태였다. 이미 프로이센의 포위망에 걸려 전투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때 프로이센군은 도히려 1군과 2군을 집결시켜 무려 188,332명의 대군을 만들었다.
3. 전투[편집]
전투는 1870년 8월 18일 오전 8시 정각: 빌헬름 1세가 두개의 군에게 프랑스군의 방어선을 향해 진격하라는 명령과 함께 시작되었다.
정오 12시: 알브레히트 구스타프 폰 만슈타인의 부대와 25보병사단의 포병이 아만빌레르으로 진격하였다. 제25보병사단은 프랑스군을 제대로 공격하기도 전에, 프랑스군의 기총세례를 받았다. 이후에도 계속하여 공격을 시도하였지만, 계속 실패하였다.
14:30: 1군의 8군단이[5] 공격하였고, 그 이후 크루프의 총을 지급받은 후 7군단도 같이 공격하였지만 빈번히 실패하였다.
16:50: 제2군이 성 프리바트에 있는 프랑스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여러 근위대들도 같이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프랑스군의 반격은 막강하였다.
18:00 이후: 빌헬름 1세는새로운 공격작전을 펼쳤다. 이후 제1군은 살짝 후퇴하였지만, 프리드리히 카를 니콜라우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프랑스군에게 진격하여 롱쿠르 근처에 있는 마을들을 점령하였다.
이후 성 프리바트를 다시 공격하였으며, 계속 진격해나갔다. 그사이 작센 왕태자 알베르트가 지휘하는 12 군단은 롱쿠르 마을의 프랑스군 잔존병력을 처리하였다.
프랑스군에 일부는 프로이센군이 지친 줄 알고 반격을 원했으나, 샤를 드니스 부르바키의 판단은 달랐고, 결국 패배를 인지하게 되었다.
4. 이후[편집]
그라블로트 전투는 프랑스군을 베르됭까지 몰아넣었으며, 결국 메스로의 행진을 통하여 프로이센의 승리에 더 가까워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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