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고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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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어소
京都御所(きょうとごしょ | Kyoto Imperial Palace


파일:external/lmaga.jp/gosyo_main.jpg

교토고쇼의 정전인 자신전(紫宸殿(ししんでん) 전경




형태
궁전
주소
교토부 교토시 가미교구 교토교엔 3
京都府京都市上京区京都御苑3
소유주
궁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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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명칭
3. 역사
4. 행사
5. 건축물
5.1. 궁문
5.2. 외조 권역
5.3. 정전 권역
5.4. 편전 권역
5.5. 침전 권역
6. 관람



1. 개요[편집]


일본 교토부 교토시 가미교구에 위치한 궁궐로, 천황황후의 옛 거처이다.

헤이안 시대 때부터 내려온 오래된 건물이기 때문에 헤이안 시대 양식을 간직한 정전 자신전(紫宸殿)과 일상생활을 하였던 어상어전(御常御殿) 등이 보존되어 있다.


2. 명칭[편집]


역사적으로 금리(禁裏(きんり), 내리(内裏(だいり)라고 불렸으나 천도 이후 교토 어소라고 부르게 되었다. 공식명은 초기 명칭 그대로 평안궁(平安宮(へいあんきゅう)이다. 그래서 이 궁궐이 황거였을 시절에도 일반적으로는 그냥 어소 혹은 내리라고만 불렀으나 공식 문서 등에서는 평안궁으로 표기하였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아무도 이 이름으로 부르지 않고 교토 어소(京都御所), 교토 황궁(京都皇宮) 아니면 그냥 어소(御所)[1]라고 부른다. 또한 과거에는 황거라는 표현도 썼었고 사전적인 의미로 어소와 황거는 동일한 단어이지만, 황거는 현재 도쿄에 있는 황궁을 일컫는 명칭이 되면서 거의 쓰이지 않는다.


3. 역사[편집]


794년에 간무 덴노가 지금의 교토인 헤이안쿄(平安京)로 천도했을 때는 어소가 헤이안쿄 북쪽 가운데의 광활한 부지를 차지했다. 이 시기의 어소를 대내리(大内裏)라 한다. 하지만 도성을 가로지른 주작대로를 기점으로 도성 서쪽이 습지대라 거주하기 부적절해 도심이 점차 동쪽으로 옮겨갔고, 어소 또한 원래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2km나 이동하면서 면적도 초기 궁전보다 협소해졌다.

파일:Heiankyo_landsat.jpg
헤이안쿄와 현대 교토의 비교. 붉은 선 안쪽 영역이 옛 헤이안쿄 자리이고, 영역의 북동쪽 끝의 녹지 부분이 현재 교토고쇼가 위치한 교토교엔이다. 가운데 초목으로 우거진 곳은 쇼군의 옛 거처인 니조 성.

지금의 교토 어소는 헤이안쿄 조성 초기 대내리와 완전히 다른 위치에 있고 생김새도 판이하다. 대내리는 일부 전각을 제외한 모든 전각이 정남향이었고 양식도 동양 전통 궁전 건축양식을 따른, 생김새로 따지면 현재 어소보다는 임진왜란 이전 경복궁과 더 유사한 형태였다. 오늘날의 교토 어소는 헤이안 시대에 천황의 임시 거처 이내리(里内裏)의 하나인 토어문 동동원전(土御門東洞院殿(つちみかどひがしのとういんどの)이었다. 가마쿠라 시대 중기 북조의 고곤 덴노가 이곳에 거주하면서 남북조시대 동안에 북조 천황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남북조 통일 이후 정식 황궁이 되었다. 위치와 형태가 모두 다르지만, 공식적으로 헤이안쿄 대내리와 현재 교토 어소는 동일한 궁전으로 여겨진다. 경복궁 역시 조선 초기와 흥선대원군 중건 당시의 형태가 완전히 다르지만, 공식적으로 동일한 궁전으로 취급하는 것과 비슷하다.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아시카가 요시미츠가 어소 부지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오닌의 난 때에는 교토가 불바다가 되고 센고쿠 시대의 격변기에 접어들면서 덴노가 어소를 관리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몇몇 덴노들은 귀족들의 저택에서 지내기까지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교토를 정비했으며, 에도 시대에도 8차례 중건했다. 1855년(안세이 2년)에 마지막으로 중건하여 지금 같은 모습이 되었으므로 안정내리(安政内裏(あんせいだいり)라고도 불린다.

파일:Kuge-machi_map.jpg
막말의 교토고쇼 및 교토 선동어소·교토 대궁어소와 그 주위의 구게마치

메이지 덴노는 1868년 에도로 행차하면서 에도 성에 머물렀고, 이듬해인 1869년에 천황이 앞으로 도쿄에서 체류할 것을 발표하면서 에도 성은 새로운 황성이 되었다. 이 시점까지 교토 어소는 일본 황궁으로서 약 550년의 역사를 기록하게 되었다. 교토 사람들 중 일부는 교토에서 도쿄로 공식적으로 천도령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도쿄의 황거는 천황이 임시로 머무는 행궁이며 교토 어소가 정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에는 연합군의 폭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주요 전각을 해체해 부재를 보관한 적도 있었다.


4. 행사[편집]


수도가 도쿄(東京)로 옮겨간 이후에도 황실전범 제11조에 의해 쇼와 덴노까지는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으나, 황실전범 개정(1947년) 이후 즉위한 아키히토 덴노는 도쿄의 황거에서 즉위식을 거행하면서 자신전에 보관된 어좌대를 해체한 후 황거에서 조립해 사용했다가 다시 교토 어소로 갖다놓았다. 오늘날에도 천황, 황후, 황태자, 황태자비가 교토를 방문할 때 또는 국빈이 방문했을 때 영빈관처럼 사용하고 있다.

교토의 3대 마츠리 중 하나인 지다이마츠리의 행렬이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당시 천황의 행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내 외국인 모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행사이다.


5. 건축물[편집]


파일:external/einstein.moe-nifty.com/dsd_4952.jpg

파일:13gr-13.gif
어소의 지도

파일:교토고쇼 안정내리 도면.jpg
과거 어소의 도면

관람객휴게실 안에는 과거 어소의 도면을 전시해 놓고 있는데, 해당 도면들을 보면 알겠지만 과거에는 현재보다 전각의 수가 훨씬 많았으나 상당수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어소 내부 연조와 치조 사이 공터에는 수라간과 궁녀처소 그리고 능악대(能楽台)가 위치해 있었으며, 어상어전과 황후어상어전 사이 공터에는 후궁의 거주공간이었던 대옥(対屋)이, 제대부의 간 남쪽 신미쿠루마요세(新御車寄) 부근에는 종묘였던 신가전(神嘉殿)이 존재했었다.


5.1. 궁문[편집]


사진
설명

파일:external/www.harimaya.com/IMG_8283.jpg

건례문(建礼門)
어소의 정남문이자 가장 격식이 높은 문으로,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덴노 부부 또는 외국 국가원수가 방문할 때만 열린다. 지붕은 노송나무 껍질을 얇게 벗겨서 이은 히와다부키(檜皮葺)로 되어 있다. 이 문을 지나면 승명문이 나온다. 내리 최초 조성 당시에는 5칸짜리 문이었으나, 현재는 1칸이다.

파일:교토고쇼건춘문.jpg

건춘문(建春門)
어소의 동문이다.

파일:교토고쇼의추문.jpg

의추문(宜秋門)
어소의 정서문이다.

파일:교토고쇼청소문.jpg

청소문(清所門)
어소의 서문으로, 의추문 북쪽에 있다. 일반적으로는 이 문으로 참관을 시작한다.

파일:교토고쇼황후문.jpg

황후문(皇后門)
어소의 서문으로, 청소문 북쪽에 있다.

파일:교토고쇼삭평문.jpg

삭평문(朔平門)
어소의 북문이다.


5.2. 외조 권역[편집]


사진
설명

파일:external/takaoka.zening.info/Dsc_9701_m.jpg

춘흥전(春興殿)
자신전 동쪽에 있는 전각이다. 1915년 다이쇼 덴노의 즉위식 때 사용할 미쿠사노카무다카라를 보관하기 위해 지어졌다. 현재 춘흥전은 근대건축이지만 사실 내리 최초 조성 당시부터 일화문 남쪽회랑과 붙어있는 형식으로 존재했던 전각이다. 그러나 사라졌다가 근대에 독립전각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미쿠사노카무다카라 보관전각이 아닌 일반적인 의식전이었으며, 미쿠사노카무다카라는 온명전(温明殿)이 야타노카가미에 한해 보관하였다.

파일:external/9596d8d6ae50954bc62aba91be555eca3222de905000e8fac77a9a9a7a6fec09.jpg

제대부의 간(諸大夫の間)
입궐한 신하들이 덴노를 알현하기 전 대기하던 공간이다. 내부는 토라노마(虎の間), 츠루노마(鶴の間), 사쿠라노마(桜の間)로 나뉘어 있는데, 신분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 순서에 따라 장지문에 그려진 호랑이··벚꽃 그림으로 구분했다. 참고로, 참관자 휴게소에 걸려있는 어소 도면을 보면, 원 명칭은 제대부의 간(諸大夫の間)이 아닌 제대부간(諸大夫間)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일본어의 언어특징 때문으로 추정된다.


5.3. 정전 권역[편집]


사진
설명

파일:external/takaoka.zening.info/Dsc_9684_m.jpg

승명문(承明門)
건례문을 지나면 나오는 문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가와라부키로 되어 있다. 승명문 동쪽에는 장락문(長楽門), 서쪽에 영안문(永安門)이 있으며, 승명문을 지나면 자신전이 나온다. 최초 조성당시부터 있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서 안세이 중건 전까지는 없었으며, 이 위치에는 능악대(能楽台)가 들어섰다. 그러나 안세이 2년에 중건하면서 어소를 중국 양식대로 복원하는 작업을 거침과 동시에 부활한다.

파일:교토고쇼일화문.jpg

일화문(日華門)
정전 동쪽에 위치한 문이다.

파일:교토고쇼월화문.jpg

월화문(月華門)
정전 서쪽에 위치한 문이다.

파일:external/lmaga.jp/gosyo_main.jpg

자신전(紫宸殿)
어소의 정전으로 조하, 덴노의 즉위식, 황태자 책봉, 외국 사신 접견 등 조정의 공식적인 행사가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내부에는 즉위식 때 사용하는 덴노의 어좌인 고어좌(高御座)가 있다. 자신전 정면에 펼쳐진 정원에는 하얀 자갈이 깔려 있고 시신덴 정면 좌우에는 왼쪽에 벚나무를, 오른쪽에 나무를 식수했는데 이는 조정의 문무백관을 상징한다. 지붕은 히와다부키로 되어 있다. 여름에 더운 교토의 기후 때문에 다른 전각들이 바람을 들이기 위해 동향한 반면, 군주는 남면(南面)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2] 자신전은 동향이 아니라 남향으로 지어졌다. 또한 칸 수 역시 천자의 격식인 9칸으로 되어있다.

파일:교토고쇼의양전.jpg

의양전(宜陽殿)
정전 동쪽회랑 일화문 북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황실 어물을 보관하는 전각이다. 최초 조성 당시부터 있었으나 어느 순간 사라졌으며, 안세이 중건시기에 부활한다. 참고로 공식 안내도에 나와있지 않아서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회랑인 줄 알고 지나친다.


5.4. 편전 권역[편집]


사진
설명

파일:external/tabiseto.com/seiryoden.jpg

청량전(清涼殿)
자신전 북서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헤이안 시대 초기에는 덴노의 침전이었으나 중기부터 편전+정전의 역할 일부를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내부에는 황후의 어좌인 어장대(御帳台)가 있다. 최초 조성 당시부터 위치해 있었으며, 그 시절에도 동향이었다. 당시에는 이 전각 뒤에 후량전(後涼殿)이 있었으며, 원래 청량전의 역할은 인수전(仁寿殿)이 하였으나 우다 덴노 시기에 역할이 청량전으로 이동된다.

파일:external/ricca.cocolog-nifty.com/r0010059.jpg

소어소(小御所)
자신전 건물의 북동쪽, 오이케니와 정원을 바라보면서 세워져있는 노송나무 껍질로 엮어만든 팔작지붕의 전각으로, 헤에안쿄 시절의 내리에서는 볼 수 없는 전각이며 당시 내리는 춘흥전이 이 소어소의 역할을 하였다. 성년식등의 행사에 사용되며 또한, 천황이 쇼군이나 제후와 만나는 장소로써도 사용되었다. 왕정복고의 포고가 내려진 후의 '소어소회의'는 1867년 12월 9일밤에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신덴즈쿠리(寢展造)양식을 기본으로 하며 안채는 3칸으로 나누어 다다미를 깔고 천장이 있는 쇼인즈쿠리(書院造) 양식이다. 덧문은 아래위 두쪽으로 갈라져 있는데 윗쪽은 바깥쪽으로 밀어 열도록 되어 있으명 아래쪽은 격자로 만들어져 있다. 1954년에 소실되어 1958년에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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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문소(御学問所)
소어소 북쪽에 있는 전각으로, 천황일가의 강연이나 유흥 용도로 사용되었던 전각이다.

파일:교토고쇼팔경의간.jpg

팔경의 간(八景の間)
어학문소 옆에 붙어있는 전각. 제대부의 간과 같이 원래는 팔경간(八景間)이다.


5.5. 침전 권역[편집]


사진
설명

파일:교토고쇼참내전.jpg

참내전(参内殿)
제후가 천황을 알현할 시에 입장하여 대기하였던 전각으로, 비공개이기는 하나 입장 시에 살짝 보인다.
(사진)
주자소(奏者所)
제후가 천황을 알현하였던 장소로, 참내전에서 대기 후에 이 전각에서 알현하였다. 참내전 북쪽에 위치한 상태이다.
(사진)
장교국(長橋局)
황실의 내장원으로, 공식 명칭은 장교전(長橋殿)이다. 주자소와 붙어있다.
(사진)
장압문(長押門)
침전 정문으로, 참관 시에는 이 문으로 어상어전 권역에 들어간다. 원래는 이 문 서쪽에 어학문소와 어상어전을 연결하는 회랑이 있었으나 사라졌다.

파일:external/www.kikuyou.or.jp/Seiryoden_1.jpg

어상어전(御常御殿)
천황의 침전이다. 초기에는 청량전이 침전의 역할을 대신하였으나 후에 청량전이 편전으로 개조되면서 만들어진다.

파일:external/takaoka.zening.info/Dsc_9810_m.jpg

어삼간(御三間)
어상어전 서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궁중행사용 전각이다. 조성 초기에는 우다 덴노이후의 인수전(仁寿殿)이 이 역할을 하였으나 인수전이 사라지고 이 전각이 만들어진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이 어삼간을 끝으로 참관이 종료되며, 이보다 북쪽에 위치한 전각은 통상 비공개이다.

파일:external/gotokyoto.cocolog-nifty.com/dsc_0086.jpg

영춘(迎春)
어상어전 북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어량소와 함께 천황의 휴식처였다. 공식적 명칭은 영춘전(迎春殿)이나, 일반적으로 전은 떼고 말한다.

파일:external/takaoka.zening.info/Dsc_9789_m.jpg

어량소(御涼所)
영춘과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전각으로, 영춘과 함께 천황의 휴식처였다. 주로 여름에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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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설(聴雪)
천황의 휴식용 정자이다.
(사진)
어탕전(御湯殿)
천황의 욕실이다. 현재는 어량소 옆 어상어전과 어화어전 사이에 있으며 지도상으로 보면 어상어전과 어화어전 사이에 H모양의 회랑이 하나 있는데 해당 회랑 중간에 있는 전각이 바로 어탕전이다. 그래서 독자전각으로 보이지도 않지만 엄연히 독립된 전각이다.

파일:교토고쇼이화어전.webp

어화어전(御花御殿)
동궁이 거주하였던 전각, 즉 동궁어소이다. 조성 초기에는 소양사(昭陽舎)라는 전각이 동궁전의 역할을 하였으나 사라지며, 이 전각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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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어상어전(皇后御常御殿)
어소의 중궁전이다. 조성 초기에는 상녕전(常寧殿)이라는 전각이 중궁전의 역할을 하였으나 사라지고 이 전각이 만들어진다.

파일:external/karaku.cocolog-nifty.com/dscf1057s.jpg

비향사(飛香舎)
궁녀의 입궁의식이 열렸던 전각이다. 내리 5사[3]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전각이다.

파일:교토고쇼약궁어전.jpg

약궁어전(若宮御殿)
황자가 거주하였던 전각이다. 희궁어전과 붙어있다.

파일:교토고쇼희궁어전.jpg

희궁어전(姫宮御殿)
황녀가 거주하였던 전각이다. 약궁어전과 붙어있다.

6. 관람[편집]


교토 시영 지하철이마데가와역, 마루타마치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조금 떨어져 있지만 케이한 전철 종점 데마치야나기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다. 또한 도시샤대학 이마데가와 캠퍼스가 왕복 2차선 도로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과거에는 그냥 몸만 가서 관람할 수는 없었고 1년에 봄과 가을 2번만 닷새 동안 일반 공개가 있으며, 해당 기간 이외에 관람을 원하는 경우 궁내청 참관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참고로 영어 안내 코스는 예약하기가 엄청나게 힘들다. 2달 전에 들어가도 만원인 경우가 다반사일 정도. 영어안내 코스가 만원이면, 일본어 한마디 못해도 일본어 표준코스로 가야만 한다. 외국인이 일본어 표준코스를 예약하려면 홈페이지를 일본어버전에서 영어버전으로 바꿔야 한다. 어느 시점엔가부터 중국어 코스도 하루 2번 추가 되었음을 2023년 5월 26일 확인하였다.

그러다 2016년 7월 26일부로 연중공개로 변경되었다. 입장료는 무료지만 입장 전 입구에서 황궁경찰이 소지품 검사를 한다. 또한 계절별 개관 시간이 다르며 휴관일도 그때그때 다르므로 위 링크에서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기본적으로는 월요일 휴무 (월요일이 기념일이면 화요일 휴무) 다.

주변 지역은 주택가이며, 흔한 일본의 주택가답게 해가 지면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어서 스산한 느낌도 든다. 새벽에는 어소 안을 걷거나 외곽을 달리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1] 다만 일본에 어소는 교토 선동어소교토 대궁어소를 비롯해 교토에만 3개가 존재하며, 현재 역할이 바뀐 것들까지 포함하면 교토에는 6개의 어소가 존재한다.[2] 중국에서 유래한 유교적인 원칙이다. 북극성이 하늘의 북극점에 있으므로 다른 별들은 북극성에 비하면 전부 남쪽에 있다. 북극성을 군주에 비겼으므로, 군주도 북쪽에 앉아 남쪽을 바라보도록 궁궐을 설계하였다. 똑같은 이유로 우리나라의 경복궁이나 중국의 자금성도 남향으로 건물을 배치하였다.[3] 비향사(飛香舎), 응화사(凝花舎), 소양사(昭陽舎), 숙경사(淑景舎), 습방사(襲芳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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