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교엔

덤프버전 :

일본어
京都御苑(きょうとぎょえん

파일:Kyoto_Gyoen_National_Garden_aerial_photograph_2020.jpg
2020년 교토교엔의 항공 사진

1. 개요
2. 역사
2.2. 교토교엔
3. 시설





1. 개요[편집]


교토부 교토시 가미교구에 위치하여 교토고쇼를 둘러싸고 있는 녹지이다.


2. 역사[편집]




2.1. 구게마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구게마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Heiankyo_landsat.jpg
헤이안쿄와 현대 교토의 비교. 붉은 선 안쪽 영역이 옛 헤이안쿄 자리이고, 영역의 북동쪽 끝의 녹지 부분이 교토교엔이다.

헤이안 시대부터 이곳에는 츠치미카도 동동원전(土御門東洞院殿)이 있었고, 이는 남북조 통일 후 교토고쇼가 되었다. 그런데 무로마치 시대부터 센고쿠 시대에 걸쳐 이곳은 황폐해졌는데, 교토에 상경한 오다 노부나가가 고쇼의 대규모 재건을 시작하였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고쇼 주변까지 정비하였고, 이 일환으로 당상가들을 여기에 이주시켰다. 이렇게 하여 교토 시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공가 저택들이 고쇼 주위로 모이면서 구게마치를 형성하였다.

이후 1708년에 호에이의 대화재가 발생하여 공가 저택 78채 및 다이묘 저택 24채와 고쇼 관리 저택 몇 군데가 소실되었다. 그 뒤 화재의 복원에 맞추어 주변에 주택가를 퇴거시키고 그 자리를 공가들에게 분배하여 오늘날의 교토교엔의 넓이 정도로 구게마치를 확장시켰다.



2.2. 교토교엔[편집]


메이지 유신 이후 많은 공가가 도쿄로 이주하였고, 화족 제도의 발족과 함께 화족들의 도쿄 이주가 의무화됨에 따라 공가 저택들이 빈집이 되면서 고쇼 주위의 구게마치는 폐허가 되었다. 교토부는 고쇼 주위에 화재 예방을 목적으로 공터를 만들기 위해 공가 저택들의 철거 및 유적 정비를 개시하였고, 이로써 교토교엔이 시작되었다. 이후 1883년에는 교토교엔의 정비 관할이 교토부에서 궁내성으로 이관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9년에 교토교엔은 후생성의 관리하에 국민공원이 되었고, 1971년에 환경성이 창설되면서 후생성의 국립공원부도 환경성에 이관됨과 함께 교토교엔도 환경성의 관할이 되어 지금에 이른다.


3. 시설[편집]


파일:000040758.svg
파일:access02.gif
환경성 안내 지도
궁내청 안내 지도

대문은 9곳이 있고, 동서 약 700m, 남북 약 1,300m, 총면적은 92헥타르이다. 궁내청 교토사무소 및 황궁경찰본부 교토호위서가 경내에 있고, 이들은 교토고쇼교토 선동어소·교토 대궁어소를 관리한다. 교토 영빈관은 내각부가 운영하고 있다. 그 외 공가 저택 유적이나 공원 등 65헥타르는 환경성의 관할이다. 나머지 운동장 및 테니스코트, 휴게소, 자료관, 음식점, 카페, 기념품점, 주차장 등은 일반사단법인 국민공원협회가 관리하고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4 02:56:23에 나무위키 교토교엔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