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바데카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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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란 곤바데.jpg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사이자 랜드마크인 곤바드 카부스 (카부스의 탑)과 시가지

1. 개요
2. 역사
2.1. '옛 고르간'
2.2. 근현대
3. 갤러리


1. 개요[편집]


페르시아어 گنبد کاووس
영어 Gonbad-e Kavus

이란 북동부 골레스탄 주의 도시. 곤바드 카부스로도 표기된다. 고르간에서 동북쪽으로 70km, 샤루드에서 북동쪽으로 80km, 보즈노르드에서 서쪽으로 160km 떨어진 평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15만명으로, 페르시아인튀르크멘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거 고르간이라 불리던 곳으로, 근래 들어 서남쪽의 아스트라바드가 일대의 중심지로 성장하며 기존 지명을 그에 내어주었다. 현 지명은 시내 한복판에 남아있는 높이 50m의 탑형 영묘인 곤바드-에-카부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1007년 지여르 왕조의 3대 군주 카부스가 세운 유적이다. 천년의 세월 동안 거의 완벽히 보존된 탑은 201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그외에 사산 제국 시절 에프탈을 막기 위해 세워진 155km 길이의 고르간 장성 유적이 일대에 남아있다.

중세 시기 고르간은 레이 (테헤란), 아몰, 셈난, 담간과 함께 북부 이란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자 실크로드 교역 도시였다. 하지만 13세기 몽골 제국의 침공과 16세기 연이은 지진으로 기존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남은 주민들이 외곽에 있던 탑을 중심으로 모여 살며 현재의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20세기 팔레비 왕조 시절 시가지는 확장, 정돈되었다. 다만 '고르간'이란 지명 자체는 서남쪽의 아스트라바드로 이전되었다[1] 고르간 강 남안에 형성된 시가지의 서남쪽에는 옛 고르간 도시 유적이 있다. 도시 규모에 비해 대학이 많은 편인데, 시가지 동북쪽에 곤바데카부스 대학교가 있고 동남쪽에는 파얌누르 대학 및 아자드 이슬람 대학교의 곤바데카부스 캠퍼스가 있다. 이란의 축구 스타 사르다르 아즈문의 고향이다.

2. 역사[편집]


파일:이란 구르가.jpg
도시 서남쪽에 남아있는 옛 고르간 (جرجان) 유적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하였고, 제이툰 문화에 속하였다. 고대 아케메네스 제국, 셀레우코스 왕조, 파르티아에 이르기까지 히카르니아 주에 속하였다. 다만 당시의 중심지는 현재의 고르간 혹은 사리로 비정되는 자드라카르타였다.

2.1. '옛 고르간'[편집]


중소 도시에 불과하던 고르간은 사산 제국 시기 히카르니아의 주도가 되며 번영하기 시작했다. 5세기 들어 고르간에는 사산 제국의 화폐 주조소가 설치되었고, 470년경 에프탈에게 점령되었으나 페로즈 1세의 반격으로 수복되었다. 나하반드 전투 후 수와이드 빈 무크란 휘하 이슬람 제국군이 다가오자 고르간의 태수는 20만 디르함을 내는 조건으로 복속하였다. 이슬람 정복 후에도 고르간은 메르브, 니샤푸르 등과 함께 호라산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남았고, 8세기까지 조로아스터교가 주류 종교로 유지되었다. 다만 우마이야 왕조 시절인 716년 주민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호라산 총독 야지드 빈 무할라브는 자흠 빈 자하르 휘하 진압군을 파견, 주민 4만여명을 학살하여 난을 진압하였다. 주민들에게 지즈야와 공물 납부를 강제한 야지드 총독은 고르간에 성벽을 두르고 (자신의 이름을 딴 것을 포함한) 40개의 모스크 건립을 지시하였다. 이로써 고르간은 이슬람화되었다.

압바스 왕조의 건국 배경인 압바시야 혁명 시에는 748년 8월 압바스 군이 고르간에 배치된 1만 우마이야 군을 격파하며 이란 내륙으로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이후로도 도시는 번영하였고, 칼리파 알 하디는 왕자 시절 고르간 총독으로 재임하기도 하였다. 793년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 818년 알 마문이맘 레자가 고르간을 지나갔다. 10세기에는 타바리스탄의 쉬아 세력이 세운 알라비 왕조의 지배 하에 놓였다가, 지여르 왕조의 창건자 마르다비즈에게 점령되었다. 943년, 사만 왕조에게 기존 수도 레이를 상실한 마르다비즈의 후계자 부슘기르는 고르간으로 천도하였다. 부슘기르 사후 두 아들 비스툼과 카부스가 각각 부와이 왕조와 사만 왕조의 지지를 받아 내전을 벌였는데, 전자가 승리하였다. 977년 비스툼이 사망하자 비스툼의 어린 아들 두바즈 및 섭정 두바즈와 카부스가 대립하였고, 이번에는 카부스가 고르간을 장악하고 승리하였다.

하지만 카부스는 레이 총독 파크르 앗 다울라의 편에서 부와이 조의 내전에 개입했다가 아두드 앗 다울라의 분노를 샀다. 후자는 981년 동생 무아야드 앗 다울라를 보내어 고르간을 점령하였다. 984년 카부스의 동맹 파크르 앗 다울라가 레이와 고르간을 장악했지만, 카부스에게 반환하지 않았다.사만 왕조에 20년간 망명해있던 카부스는 997년 파크르 앗 다울라가 어린 아들을 두고 사망한 후에야, 이듬해 고르간을 수복하고 지여르 왕조를 재건하였다. 이후 부와이 왕조의 침공을 격퇴한 카부스는 1007년 고르간 성밖에 자신의 영묘로 쓰일 탑을 세웠다. 다만 얼마후 그는 반대파 장군들에 의해 폐위되었고, 외딴 성으로 유배된 후 살해되었다. 지여르 왕조는 그의 후계자인 마누치르의 치세부터 술탄 마흐무드에게 복속하며 약화되었고, 결국 1035년 가즈나 왕조가 재차 고르간을 함락하자 아몰로 천도하였다. 1042년에는 셀주크 제국토그릴 1세가 고르간을 점령하였다.[2]

파일:곤바데카부스 이란.jpg
1007년에 세워진 곤바데카부스 영묘

전쟁과 질병으로 쇠퇴하던 고르간은 셀주크 제국기에 안정을 되찾았다. 12세기 초엽에는 후일 술탄에 오르는 마수드 1세가 고르간 총독을 지냈다. 하지만 12세기 중반 셀주크 제국이 분열되어 쇠퇴하며 일대는 재차 전장이 되었다. 마잔다란에 기반한 바반드 왕조의 알리 1세가 고르간을 장악하였다. 1142년 호라즘 왕조의 아트시즈가 고르간을 점령했으나 알리 1세의 후계자 샤 가지 로스탐이 협상을 통해 회복하였다. 로스탐의 손자인 아르다시르 1세는 술탄샤와 오우즈 튀르크 부족에 대항하기 위해 호라즘샤 테키쉬와 동맹하였고, 후자가 오우즈 부족을 축출하자 요구대로 고르간을 할양하였다. 하지만 이후 테키쉬의 위세가 커지자 1192년 아르다시르 1세는 토그릴 3세 및 술탄샤와 동맹을 맺고 고르간을 수복하였다. 다만 1193-94년 술탄샤와 토그릴 3세가 연이어 살해되자 아르다시르 1세는 고르간을 테키쉬에게 반환하였고, 바반드 조는 호라즘의 속국이 되었다.[3]

고르간에 대한 호라즘 지배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1210년 북부 이란을 습격한 조지아 왕국 군은 최동단 진격지인 고르간 역시 공격하였고, 이어진 몽골-호라즘 전쟁으로 고르간은 파괴되었다. (1219년) 이로써 일대의 중심지는 서남쪽의 아스트라바드로 옮겨졌다. 14세기 고르간은 튀르크계 이주민이 유입되며 전보다 작은 규모로 복구되었다. 일 칸국에 이어 티무르의 영토가 된 고르간은 1405년 그의 사후 사르바다르 왕조의 지배를 받았으나 샤루흐가 회복하여 1473년까지 티무르 제국령으로 남았다. 그후 흑양 왕조를 거쳐 사파비 제국 시절 고르간은 1525년과 1565년 두 차례의 대지진을 겪었고, 각각의 경우마다 수천명의 주민과 주둔군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시가지 역시 파괴되었기에 생존자들은 기존 도시를 버리고 북쪽 3km 지점의 곤데 카부스 유적 쪽으로 이주하였고, 현재의 도시로 이어진다. 이로써 천년간 번영하던 고르간은 유적으로 남게 되었다.

2.2. 근현대[편집]


파일:이란 곤바데 1.jpg
19세기 곤바데카부스 풍경

근대 시기 아스트라바드에 밀려 소도시로 남았다가, 20세기 들어 팔라비 왕조 대에 곤바데카부스 지명 확립과 함께 현재의 질서 정연한 시가지가 조성되었다. 1960년대에서 2010년대 사이에 곤바데카부스의 인구는 3배 가량 대폭 늘었다.

3. 갤러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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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란 곤바데 4.jpg

파일:이란 카부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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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바드-에-카부스
파일:곤바데 이란 야흐야.jpg

파일:이란 야흐야 1.jpg

파일:야흐야 이란.jpg

파일:이란 야흐야 2.jpg
카자르 시기에 세워진 이맘자데 야흐야 영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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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는 꼭 바스라와 옛 바스라인 주바이르간 관계와 유사하다[2] 이후 타바리스탄으로 축소되어 셀주크 제국의 속국으로 남아있던 지여르 왕조는 반세기 후 아사신 세력에게 멸망당한다.[3] 마잔다란으로 축소된 바반드 조는 1210년 호라즘 조에 완전 병합되었다가 1238년 복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