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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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 중기의 문신.
2. 생애[편집]
1516년 1월 3일[8] 에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중종 때 영의정을 지냈던 정광필이고 아버지는 강화부사를 역임했던 정복겸이다.
16세이던 1531년(중종 26년)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7년 뒤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했다. 사간원 정언을 시작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공조와 이조의 좌랑 직을 거쳐 군사, 왕명 출납의 사무를 관장하던 중추부의 도사 직 및 세자를 가르치는 세자시강원의 문학 직 등을 맡아 당시 세자였던 인종을 가르쳤다.
인종 승하 직후에는 윤임, 유관, 유인숙 등과 함께 문정왕후의 남동생 윤원로를 탄핵시켜 귀양을 보내는 데에 일조했다.
명종 즉위 후에는 의정부의 검상과 사인 직을 맡았고, 그 후 이조 정랑, 사헌부 집의, 사복시 부정을 역임했다. 홍문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부교리를 거쳐 부응교, 응교가 되었고, 나중에는 승정원 도승지까지 올랐다. 도승지는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장과 같은 위치로, 명종이 그를 얼마나 신임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때 윤원형을 여러 번 탄핵했지만 누나 문정왕후를 뒷배로 두고 권력을 누리던 때라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못가 부친상을 당해 사임했다.
상이 끝난 후 홍문관 부제학으로 임명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승정원 도승지가 되었으나 곧 체직되었다. 이후 사헌부 대사헌과 이조 및 예조 참판, 성균관 동지사를 거쳐 예조판서까지 올랐다. 그 뒤 홍문관 대제학, 이조판서, 지중추부사를 거쳤다.
선조 시기에도 관직 생활을 계속 이었다. 선조의 왕위 계승을 축하하기 위해 명나라에서 사신을 파견했을 때, 이를 맞이하기도 했고 답방 사절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리고 경기도와 경상도의 관찰사로 임명받아 지방의 민심을 다스리는데에 주력했다. 이후에도 다시 여러 번 예조와 이조의 판서를 지냈고 의정부 우찬성과 판의금부사, 판돈녕부사, 병조판서 직을 역임했다. 이후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우의정이었던 1584년(선조 17년)에 나이가 70이 되어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선조에게서 궤장을 하사받았다.
1588년(선조 21년) 11월 16일[9] 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10]
3. 가족과 후손[편집]
부인 원주 원씨 사이에서 1남 5녀를 두었다. 아들은 훗날 좌의정 직을 역임한 정창연이다. 정창연의 아들 정광성은 형조판서를 지냈으며 정광성의 동생 정광경은 이조 참판 직을 맡았다. 정광성의 아들 정태화는 현종 때 영의정이었으며, 정태화의 5남 정재륜은[11] 효종의 딸 숙정공주와 혼인해 동평위 작위를 받은 부마가 되었다. 이 정도면 조선 중 · 후기의 대표적인 명문가라 봐도 무방하다.
차녀는 판윤 류자신과, 3녀는 도정 김극효와 혼인했다. 류자신의 딸이 광해군의 아내 문성군부인 류씨이고, 김극효의 아들들이 김상헌, 김상용 형제이다. 즉, 정유길의 외손주가 된다.
4. 묘역[편집]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에 정유필 및 그의 후손들의 묘역이 있다.
정유길의 묘 동남쪽에 그의 일생과 업적을 적은 신도비가 있다. 1646년(인조 24년)에 세웠으며, 어깨 부분에 연꽃 문양과 가운데에 서수를 조각한 받침돌 위에 비신을 올리고 그 위에 쌍룡을 화려하게 조각해둔 머릿돌을 올린 형태이다. 외손자인 청음 김상헌이 비문을 짓고, 오원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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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율리우스력 1월 3일.[2] 영의정 정광필의 4남.[3] 원계채(元繼蔡)의 장녀이자 정석군의 증손녀.[4] #[5] 광해군의 왕비 문성군부인의 모친이며 봉호는 봉원부부인(蓬原府夫人)이다.[6] 김상용, 김상관, 김상건, 김상헌, 김상복의 어머니.[7] 의혜공주의 며느리.[8] 음력 을해년(종종 10년) 11월 30일.[9] 음력 9월 28일.[10] 당시 나이 셈법인 세는나이와, 당시 역법인 음력을 적용한 기준이다. 만으로는 72세이다.[11] 정태화의 동생 정치화에게 입적했다.[12] 62호 수죽정공신도비와 63호 제곡정공신도비는 2008년 12월 30일에 해제되었고 동래 정씨 임당공파 묘역과 통합되었다.[13]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