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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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81년 미국 산호세에서 개최하는 월드 게임과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개최된 대륙간컵에 참가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1982년 잠실 야구장에서 개최가 확정된 제 27회 IBAF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점검을 위한 대표팀의 성격이 강했다. 또한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야구가 편성될 확률이 높아진 만큼 올림픽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다.
2. 코치진 구성[편집]
3. 선수단 구성[편집]
3.1. 예비 엔트리[편집]
1981년 1월 13일, 대표팀 예비 엔트리인 강화훈련 대상자가 발표되었다. 이들은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신동국민학교(현 서울신동초등학교)에서 팀 훈련을 진행한다. 해당 명단에 들어가있는 선수들 위주로 1981년 대륙간컵에 나갈 대표팀과, 1981년 하계 아시아드에 참가할 대학야구 대표팀을 선발하게 된다.
3.2. 최종 엔트리[편집]
1981년 6월 10일, 대한야구협회가 최종 엔트리를 발표했다.
4. 평가전[편집]
4.1. 미국전 (7월 19일, 잠실 야구장): 4:7 패배[편집]
루마니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하는 미국 대학 야구 대표팀과 잠실 야구장에서 평가전을 가졌다. 최동원이 홈런 3방을 맞은데다 주축 선수들의 타선이 침묵하며 7:4로 역전패 당했다.
5. 1981 산타클라라 월드 게임[편집]
미국, 호주, 파나마와 대결을 펼치게 된다. 이중 미국 대표팀은 1981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학야구 선발팀에게 패배한 미국 대학야구 선발팀이며, 파나마와 호주는 한국보다 열세로 평가받기에 금메달을 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5.1. 호주전 (7월 19일, 산호세 시민 야구장)[3] : 5:0 승리[편집]
선발 최동원이 9이닝 15K 완투승을 기록하며 무난히 1승을 거두었다.
5.2. 파나마전 (7월 20일, 산호세 시민 야구장): 6:5 승리[편집]
선취점을 먼저 냈음에도 7회에 무려 5실점을 하며 패색이 짙어졌지만 9회말 2사에서 터진 장효조의 동점타와 김용희의 끝내기 안타가 나오며 극적인 승리를 기록했다.
5.3. 미국전 (7월 19일, 산호세 시민 야구장): 2:4 패배[편집]
2승을 거둔 팀간의 경기이자 금메달 결정전인 이 경기에서 팀 타선의 침체와 최동원의 부진으로 패배하며 은메달 획득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미국 대학팀에게 패배했기에 언론에서도 난리가 났었는데 최동원, 김시진은 2% 부족한 투수이며 지난 로마 야구 월드컵에서 맹활약했던 이선희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투수가 부족했던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또한 타선의 침묵과 함께 수비의 핵으로 평가받던 김재박이 제 컨디션을 찾지 못했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6. 1981 제26회 대륙간컵 국제야구대회[편집]
우승을 노렸지만 4위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1981년/대륙간컵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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