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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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대웅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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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우승반지

198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번
팀 창단

배대웅
(1982~1986)


정윤수
(198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3번
결번

배대웅
(1987~1992)


장형석
(199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6번
결번

배대웅
(1993~1994)


박정환
(1995~2000)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2번
조창수
(1988~1989)

배대웅
(1997~1998)


김무관
(2001~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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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대웅
裵大雄 | Dae-woong Bae

출생
1953년 3월 20일 (71세)
대구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경북고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멤버
소속팀
기업은행 야구단 (1972~1977)[1]
포항제철 야구단 (1978~1981)
삼성 라이온즈 (1982~1986)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수비·주루코치 (1987~1994)
삼성 라이온즈 1군 수석코치 (1995)
롯데 자이언츠 1군 수석코치 (1997)
롯데 자이언츠 1군 작전·주루코치 (1998)[2]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1998)[3]
한화 이글스 1군 작전코치 (2001)
해설위원
TBC 야구 해설위원 (2006)
경력
리틀야구연맹 영남지부장 (2008~2012)
KBO 육성위원 (2009~2011)
1. 개요
2. 선수 경력
3. 은퇴 후
4. 기타
5. 연도별 성적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배대웅.png}}}

전 야구선수, 야구코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2루수 계보를 잇는 선수 중 하나이며, 삼성 라이온즈 원년멤버이다.


2. 선수 경력[편집]


1971년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남우식, 천보성, 정현발 등의 동기, 1년 후배 황규봉, 이선희 등과 함께 대통령배, 청룡기, 봉황기, 황금사자기에서 모두 우승했다.

어려웠던 가정형편 때문에 고교 졸업 후 바로 실업팀인 기업은행에 입단했다. 1975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부터 국가대표 2루수로 자리 잡으며 당시 유격수 김재박과 1981년까지 7년간 키스톤 콤비를 이뤘다. 김재박이 화려한 수비를 자랑했다면 배대웅은 안정적인 수비로 내야진을 이끌었다. 배대웅을 기업은행으로 스카우트했던 김성근 감독은 '포지션은 달랐지만 박진만 같은 선수였다'고 평가했다.[4]

1978년 포항제철 야구단으로 팀을 옮기고,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며 당시 실업야구선수라면 은퇴를 고려했을 만 28세의 나이로 연고팀인 삼성에 입단했다. 팀 내에서 황규봉 다음 가는 연봉을 받았으며 다년의 국가대표 경험 덕분에 초대 주장을 맡았다.

프로야구 첫 몰수게임의 원인 제공자였다. 1982년 8월 26일 대구시민 야구장에서 열린 MBC 청룡전에서 4회말 1사 1,2루 상황에서 정현발이 유격수 땅볼을 치자 배대웅은 병살타를 막기 위해 MBC 2루수 김인식 쪽으로 거칠게 슬라이딩했다. 김인식은 넘어졌다가 일어나선 배대웅의 얼굴을 쳤다. [5] 이 때문에 벤치 클리어링도 일어났고, 심판은 김인식을 퇴장시켰다. 김인식이 퇴장되자 백인천 MBC 감독이 왜 김인식만 퇴장시키냐며 항의하다가 선수들을 모두 철수시켜 몰수게임이 선언됐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끼리는 잘 해결했다. 김인식은 배대웅의 얼굴을 친 후에 바로 사과했고, 동기인데다 오랜 기간 국가대표를 같이 했던 사이라 배대웅도 다혈질적인 김인식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 사과를 받아줬다. 그리고 이 몰수게임이 있었던 다음날에는 같이 술을 마시며 이 일을 두고 얘기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타자였다. 팀이 8:3으로.지고 있던 198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 2사 후에 타석에 들어서0 땅볼을 쳤고 유격수 유지훤이 1루 송구로 연결하여 시리즈를 끝냈다.

1983 시즌에는 0.285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1983 시즌 후 무릎수술을 하는 등 점점 잔부상으로 결장하는 일이 잦아지며 백업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은퇴하기 전까지도 경기 후반에 대수비로 들어서 안정적인 수비를 자랑했다. 프로 5년간 통산 실책이 20개로, 1년당 4개를 범한 셈.


3. 은퇴 후[편집]


1986 시즌 후 은퇴하며 천보성, 황규봉에 이어 삼성 선수 중 세 번째로 코치가 되었다. 삼성, 롯데, 한화 3팀을 거치며 2001년까지 코치로서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 후 2006년 TBC 라디오 해설위원[6], KBO 육성위원, 리틀야구연맹 영남지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자영업자(식당 운영)로 지내는 중이다.

4. 기타[편집]


  • 이만수의 간증에 따르면 전도하기 어려운데다가 상당히 이만수를 많이 갈군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개신교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크리스천이 되었다.
  • 김성근은 배대웅을 김재박과 함께 스냅스로가 좋았던 내야수로 평가했다.출처
  • 김성근의 대표적 흑역사 중 하나인 91년 7월 해태전 이중 오더 사건 때 이를 실행에 옮겼던 사람이 당시 삼성의 수석코치였던 배대웅이다.

5.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삼성
71
235
.230
54
9
0
5
27
30
7
25
.332
.304
1983
78
228
.285
65
10
2
2
22
27
6
25
.373
.353
1984
43
104
.240
25
2
0
0
5
5
4
11
.260
.313
1985
91
161
.273
44
8
1
3
18
18
5
9
.391
.312
1986
72
94
.266
25
3
0
1
11
5
2
6
.330
.310
KBO 통산
(5시즌)
355
822
.259
213
32
3
11
83
85
24
76
.346
.321


6. 관련 문서[편집]


[1] 1976~1977년까지 군 복무.[2] ~6월 14일[3] 6월 15일~[4] 이 때의 인연 때문인지 배대웅은 삼성 라이온즈 창단 당시 코칭스태프 선임 문제가 잘 풀리지 않자 서영무 감독에게 김성근을 대안으로 추천했고, 김성근도 이 마음을 고마워했는지 삼성 감독 시절 배대웅에게 3루 코치와 선발 라인업 교환이라는 중책을 맡겼다.[5] 근데 이게 머리를 툭 쳤다는 이야기도 있다.[6] 해설위원을 그만둔 이후, 현장 복귀로 해설을 그만둔 강동우를 대신하여 오랜만에 2023년 7월 12일~13일 광주에서 열리는 삼성과 기아와의 2경기에 특별 해설위원으로 나왔다. 이후에 패넌트 레이스의 후반기부터 김용국이 정식 해설위원으로써 바통을 이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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