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 FIFA 월드컵 브라질/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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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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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예선 · 참가팀 정보
조별 예선
1조
2조
3조
4조
결선 리그
결선 리그





1. 개요
2. 1경기 브라질 4 vs 0 멕시코
4. 3경기 브라질 2 vs 2 스위스
7. 6경기 멕시코 1 vs 2 스위스
8. 결선 리그 진출팀



1. 개요[편집]


순위
팀명
경기수



득점
실점
득실차
승점
1
파일:브라질 국기(1889-1960).svg
브라질
3
2
1
0
8
2
+6
5
2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3
2
0
1
7
3
+4
4
3
파일:스위스 국기.svg
스위스
3
1
1
1
4
6
-2
2
4
파일:멕시코 국기(1934-1968).svg
멕시코
3
0
0
3
2
10
-8
0
토너먼트 진출 | 탈락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13개국 본선 13강 조별 라운드의 진행 상황 중, 1조와 2조에 대해 정리하는 페이지.


2. 1경기 브라질 4 vs 0 멕시코[편집]


경기장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
히우지자네이루 - 브라질
경기일[1]
1950년 6월 24일 15:00
(1950년 6월 25일 03:00[2])
국 가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1889-1960).svg
멕시코
파일:멕시코 국기(1934-1968).svg
득 점
4
0
득점자
아데미르 (30', 79')
자이르 (65')
바우타자르 (71')


라인업 [3]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
바르보자
GK
선발
안토니오 카르바할
GK
아우구스투
파일:주장 아이콘.svg
로드리고 루이스

엘리 두암파루

알폰소 몬테마이어
파일:주장 아이콘.svg
주베나우

펠리페 세터

다닐루 아우빙

마리오 오초아

비고지

호세 로카

마네카

과달루페 벨라스케스

바우타자르
파일:득점 아이콘.svg
마리오 페레스

아데미르
파일:득점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엑토르 오티스

자이르
파일:득점 아이콘.svg
오라시오 카사린

프리아사

카를로스 세프티엔

교체
카스틸류
GK
교체
라울 코르도바
GK
네나

그레고리오 고메스

니우통 산투스

마누엘 구티에레스

노로냐

사무엘 쿠부루

바우에르

안토니오 플로레스

후이

카를로스 게바라

시쿠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아당지뉴

막스 프리에토

아우프레두 Ⅱ

호세 나랑호

지지뉴

호세 나바로

호드리게스

호세 보르보야


어찌보면 세상에서 가장 모골이 송연한 스포츠 경기이다. 이 경기 휘슬이 울리는 그 순간, 정확하게 지구 정반대편에서는 6.25 전쟁이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기 시작했다.

브라질 월드컵의 개막전은 브라질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에서 치러졌다.[4] 경기장이 완전히 지어진 게 아닌지라 화장실도 모자라고, 관중의 입장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81,649명의 관중이 몰려 브라질 월드컵의 개막전을 지켜보았다. 온 브라질 국민들은 물론 브라질 정부까지 월드컵에 쏟는 관심은 정말 대단했다.

전반 30분, 몇 차례의 기회를 놓치던 브라질이 선취골을 기록했다. 브라질의 스트라이커 아데미르가 수비형 미드필더 다닐루 아우빙의 패스를 받아 골을 기록한 것이었다. 열광하는 브라질 관중들의 환호 소리와 함께 라디오 중계진들과 사진 기자들이 경기장에 난입하는 바람에 잉글랜드 출신의 주심 조지 리더는 경기를 재개하기 위한 고생을 따로 해야만 했다. 당시 리더는 54살의 최고참 심판이자 심판 중 최고 연봉 수령자였지만 이런 식의 소동이 아주 흔한 일은 아니었다. 브라질은 골 넣으면 이래?

어찌됐든 경기는 속행되었고 전반은 브라질이 한 점 차로 리드한 가운데 끝났다. 브라질은 겨울인지라 전반이 끝날 무렵에는 해가 질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후반 20분, 브라질의 공격형 미드필더 자이르멕시코의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에서 왼발로 강력한 땅볼 슈팅을 날렸고 멕시코의 골키퍼 안토니오 카르바할[5]은 급히 왼쪽 다리를 뻗어보았지만 이를 막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아데미르는 뒤이어 다시 찬스를 잡았지만 공은 아쉽게도 골대를 때리고 말았다.

후반 26분, 바우타자르는 마네카의 코너킥을 머리로 받아넣어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켰고, 34분에는 아데미르가 골대를 맞춘 것을 만회하듯 자이르의 크로스를 받아 결국은 쐐기골과 더불어 자신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최종 점수는 4:0. 브라질은 첫 경기에서 기분 좋게 승리를 챙겼다.


3. 2경기 스위스 0 vs 3 유고슬라비아[편집]


경기장
이스타지우 인디펜덴시아
벨루오리존치 - 브라질
경기일
1950년 6월 25일 18:00
(1950년 6월 26일 06:00)
국 가
스위스
파일:스위스 국기.svg
유고슬라비아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득 점
0
3
득점자

라이코 미티치 (59')
코스타 토마세비치 (70')
티호미르 오그냐노프 (84')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
조르제스 스투버
GK
선발
스르잔 므르쿠시치
GK
게르하르트 루센티

브란코 스탄코비치

로제 부케

이반 호르바트

앙드레 누리

즐라트코 차이코프스키[6]

로제 캉쉬

미오드라그 요바노비치

올리버 에기만

프레드라그 자이치

르네 바데어

라이코 미티치
파일:주장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재키 파통

베르나르 부카스

장 타미니

스체판 보베크

키키 앙투넨

코스타 토마세비치
파일:득점 아이콘.svg
프레디 비켈
파일:주장 아이콘.svg
티호미르 오그냐노프
파일:득점 아이콘.svg
교체
아돌프 후그
GK
교체
블라디미르 베아라
GK
에우제니오 코로디
GK
라트코 콜리치

뢰디 기거

보조 브로케타

커트 레이

블라디미르 피름

펠리체 솔디니

시니사 즐라트코비치

발터 벨리벨

벨라 팔피

한스 지겐탈러

알렉산드르 아타나코비치

한스페터 프리트렌더

에르빈 카트니치



이보 라도브니코비치



제이코 차이코프스키



프르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유고슬라비아스위스의 경기는 벨루오리존치의 인디펜덴시아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경기 전의 예측을 잠시 짚어보면 유고슬라비아는 2년 전 올림픽 무대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스위스를 상대로 우세한 경기를 펼칠 것이라는 예측이 다수였다. 이 경기가 시작되기 전 작은 해프닝 때문에 시작이 늦어졌는데 그 이유는 코너 플래그의 분실이었다. 코너 플래그를 찾고 나니 하늘구름이 잔뜩 껴서 그대로는 시합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조명을 밝혔는데 이 경기가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조명을 사용한 시합이라고 알려져 있다.

전반에는 득점이 없이 끝났고 후반 14분 라이코 미티치가 선제골을 뽑았다. 그리고 25분에는 코스타 토마셰비치가 헤딩으로 추가골을, 후반 39분에는 티호미르 오그냐노프가 페널티 스팟 근처에서 왼발 슈팅으로 쐐기골을 넣어 3:0으로 유고슬라비아가 낙승을 거뒀다.


4. 3경기 브라질 2 vs 2 스위스[편집]


경기장
이스타지우 두 파카엠부
상파울루 - 브라질
경기일
1950년 6월 28일 15:00
(1950년 6월 29일 03:00)
국 가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1889-1960).svg
스위스
파일:스위스 국기.svg
득 점
2
2
득점자
아우프레두 Ⅱ (3')
바우타자르 (32')
재키 파통 (17', 88')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
바르보자
GK
선발
조르제스 스투버
GK
아우구스투
파일:주장 아이콘.svg
게르하르트 루센티

주베나우

로제 부케

노로냐

앙드레 누리

바우에르

로제 캉쉬

후이

올리버 에기만

마네카

르네 바데어

바우타자르
파일:득점 아이콘.svg
재키 파통
파일:득점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아데미르

장 타미니

아우프레두 Ⅱ
파일:득점 아이콘.svg
프레디 비켈
파일:주장 아이콘.svg
프리아사

한스-페터 프리트렌더

교체
카스틸류
GK
교체
아돌프 후그
GK
네나

에우제니오 코로디
GK
니우통 산투스

뢰디 기거

다닐루 아우빙

커트 레이

비고지

펠리체 솔디니

엘리 두암파루

발터 벨리

시쿠

키키 앙투넨

아당지뉴

한스 지겐탈러

자이르



지지뉴



호드리게스




이 경기는 브라질이 이 월드컵에서 유일하게 마라카낭 경기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치른 경기로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이 경기에서 브라질의 감독 플라비우 코스타지지뉴, 다닐루 아우빙 등 일부 주전 선수들을 쉬게 하고 그 자리에 원래 구장의 주인인 상파울루 FC 팀 소속 선수들을 기용하는 나름의 팬서비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이 경기에 참가한 칠레 출신의 부심 세르히오 부스타만테는 26세로 월드컵 역사상 가장 어린 심판이었다.

브라질은 경기가 시작된 지 3분 만에 득점에 성공했다. 아데미르가 돌파를 시도했고 스위스골키퍼 조르제스 스투버가 그를 막기 위해 나왔지만 아데미르는 스투버를 제끼고 엔드라인 밖에서 다시 패스를 찔러줬다. 그 패스를 아무도 잡지 못해 뒤로 빠졌지만 늦깎이 공격수 아우프레두 Ⅱ가 달려들어오면서 스위스의 골문에 강력한 슈팅을 날렸고 골이 되었다. 브라질 선수들은 안방에서 자신들의 플레이를 유감없이 펼쳐보였다. 특히 아데미르의 개인기가 눈부셨다.

하지만 전반 17분, 스위스의 반격으로 동점골이 만들어졌다. 브라질 진영 오른쪽 깊숙한 곳에서 프레디 비켈이 땅볼 크로스를 날렸지만 스위스의 공격수가 그를 처리하지 못했고 뒤늦게 달려온 브라질의 수비수 주베나우가 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뒤에 있던 다른 공격수 재키 파통이 그걸 빼앗아 골을 넣었다.

스위스의 득점 이후 리드를 되찾으려는 브라질의 공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전반 32분 바우타자르코너킥을 헤딩골로 연결했다. 지난 경기에 이은 연속 헤딩골이었다. 스투버가 몸을 최대한 뻗어보았지만 골문의 왼쪽 상단 구석을 향하는 공을 막을 수 없었다. 이후에도 브라질은 스위스의 골문에 슈팅을 계속 날려댔지만 스투버의 연이은 선방으로 더 이상 달아날 수 없었다.

후반에도 일방적인 브라질의 공격이 계속되었지만 스투버는 더욱 힘을 냈고 오히려 브라질은 종료 2분 전에 재키 파통의 동점골로 다 잡은 승리를 놓치게 되었다. 결국 양 팀은 2:2 무승부를 기록했고, 경기 이후엔 플라비우 코스타의 선수 기용 방침에 불만을 품은 기사들이 속출했다.


5. 4경기 멕시코 1 vs 4 유고슬라비아[편집]


경기장
이스타지우 도스 유칼립투스
포르투알레그리 - 브라질
경기일
1950년 6월 28일 15:15
(1950년 6월 29일 03:15)
국 가
멕시코
파일:멕시코 국기(1934-1968).svg
유고슬라비아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득 점
1
4
득점자
엑토르 오르티스 (89')(PK)
스체판 보베크 (20')
제이코 차이코프스키 (23', 51')
코스타 토마세비치 (81')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
안토니오 카르바할
GK
선발
스르잔 므르쿠시치
GK
그레고리오 고메스

브란코 스탄코비치

마누엘 구티에레스

이반 호르바트
파일:주장 아이콘.svg
사무엘 쿠부루

즐라트코 차이코프스키

호세 나랑호

미오드라그 요바노비치

호세 로카

프레드라그 자이치

과달루페 벨라스케스

라이코 미티치

마리오 페레스

스체판 보베크
파일:득점 아이콘.svg
엑토르 오르티스
파일:페널티골 아이콘.svg
제이코 차이코프스키
파일:득점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오라시오 카사린
파일:주장 아이콘.svg
코스타 토마세비치
파일:득점 아이콘.svg
카를로스 세프티엔

프르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교체
라울 코르도바
GK
교체
블라디미르 베아라
GK
로드리고 루이스

라트코 콜리치

알폰소 몬테마이어

보조 브로케타

펠리페 세터

블라디미르 피름

안토니오 플로레스

시니사 즐라트코비치

카를로스 게바라

벨라 팔피

프란시스코 에르난더스

알렉산드르 아타나코비치

호세 나바로

베르나르 부카스

막스 프리에토

에르빈 카트니치
마리오 오초아

이보 라도브니코비치

호세 보르보야

티호미르 오그냐노프


브라질스위스상파울루에서 경기하느라 여기는 한산하기는 개뿔.. 11,000여명의 관중이 몰려와 이 경기를 관람했다.

멕시코는 첫 상대였던 브라질에게 4골을 먹힌 충격이 컸기 때문인지 수비수 3명을 전원 교체하여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오히려 첫 골은 전반 19분, 유고슬라비아보베크가 기록했다. 밀루티노비치의 크로스가 옆으로 빠지자 달려오면서 그대로 논스톱 슛. 골로 연결되었다. 3분 후에는 제이코 차이코프스키가 형 즐라트코 차이코프스키의 패스를 받아 득점에 성공했다. 계속된 유고슬라비아의 공격 속에 멕시코의 골키퍼 안토니오 카르바할은 지쳐갔다.

후반 6분에는 제이코 차이코프스키에게, 36분에는 토마세비치에게 한 골 씩을 더 얻어맞고 멕시코는 그렇게 침몰했다. 그나마 경기 종료 직전 엑토르 오르티스의 페널티 킥으로 영패를 면한 것이 멕시코의 위안거리였다.


6. 5경기 브라질 2 vs 0 유고슬라비아[편집]


경기장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
히우지자네이루 - 브라질
경기일
1950년 7월 1일 15:00
(1950년 7월 2일 03:00)
국 가
브라질
파일:브라질 국기(1889-1960).svg
유고슬라비아
파일: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국기.svg
득 점
2
0
득점자
아데미르 (4')
지지뉴 (69')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
바르보자
GK
선발
스르잔 므르쿠시치
GK
아우구스투
파일:주장 아이콘.svg
브란코 스탄코비치

주베나우

이반 호르바트

다닐루 아우빙

즐라트코 차이코프스키
파일:주장 아이콘.svg
바우에르

미오드라그 요바노비치

비고지

프레드라그 자이치

마네카

라이코 미티치

시쿠

베르나르 부카스

아데미르
파일:득점 아이콘.svg
스체판 보베크

자이르

제이코 차이코프스키

지지뉴
파일:득점 아이콘.svg
코스타 토마세비치

교체
카스틸류
GK
교체
블라디미르 베아라
GK
네나

라트코 콜리치

니우통 산투스

보조 브로케타

노로냐

블라디미르 피름

후이

시니사 즐라트코비치

엘리 두암파루

벨라 팔피

바우타자르

알렉산드르 아타나코비치

아당지뉴

에르빈 카트니치

아우프레두 Ⅱ

이보 라도브니코비치

프리아사

티호미르 오그냐노프

호드리게스

프르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2승, 브라질은 1승 1무였던 관계로 브라질은 이 경기를 반드시 잡아야 조 1위에게만 주어지는 결승 리그 진출이 가능했다. 브라질에겐 무승부도 소용없었다. 그들의 염원을 담아 14만 2천여 명의 팬들이 마라카낭 경기장에 모여들었고 이는 당시 최다 관중 동원 기록이었다. 더 이상 물러날 데가 없는 브라질은 최정예 멤버를 꾸려 유고슬라비아와의 일전을 준비했다.

이 때 사고가 생겨 유고슬라비아 선수들의 입장이 지연되었는데 유고슬라비아의 스트라이커 라이코 미티치가 입장을 위해 경기장 안의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철제 대들보에 머리를 부딪혔고 이로 인해 이마에 큰 상처가 생긴 것이었다. 웨일스 출신 주심 그리피스가 경기 입장에 지연이 생기면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에 미티치는 밖에서 치료를 받았고 유고슬라비아는 일단 열 명으로 시합을 시작했다.

브라질은 전반 3분, 아데미르의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문전 혼전 상황에서 지지뉴가 아데미르에게 흘려준 볼을 아데미르가 놓치지 않고 오른발로 차 넣은 것이다. 마라카낭에는 난리가 났다. 그리고 미티치가 경기장에 입장한 것은 시작한 지 무려 20분이 지난 후였다.[7]

하프 타임 때에는 유고슬라비아의 골키퍼 므르쿠시치가 유니폼을 갈아입고 왔다. 므르쿠시치가 전반전에 입었던 유니폼이 흰색 긴팔이었고 브라질의 당시 유니폼도 같은 흰색이라 심판이 헷갈린다는 이유로 므르쿠시치에게 유니폼을 갈아입으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후반 4분에는 지지뉴가 골을 기록했지만 시쿠의 위치가 오프사이드로 판정되었기 때문에 무효 처리되었다. 지지뉴의 슈팅은 깔끔하게 므르쿠시치가 지키는 골문의 왼쪽을 뚫었지만 지지뉴가 슈팅을 하는 순간 시쿠가 수비수보다 앞에 있었기 때문에 오프사이드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8] 이후의 시합은 양팀이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고 결국 후반 24분, 지지뉴가 아까의 오프사이드에 분풀이라도 하듯 골을 성공시켰다.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브라질 대표팀을 응원하는 브라질 축구팬들의 응원은 정말 장관이었다.

결국 브라질은 2:0으로 유고슬라비아를 꺾고 결승 리그에 진출하게 되었고 이로써 20년 전의 패배도 고스란히 설욕했다. 그리고 다른 조에서 이탈리아수페르가의 비극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스웨덴에게 밀려 탈락하고 잉글랜드가 우쭐대다가 미국에게 덜미를 잡힌게 원인이 되어 스페인에게 밀려 탈락하자 브라질은 내심 우승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칫국의 최후는 처참했다.


7. 6경기 멕시코 1 vs 2 스위스[편집]


경기장
이스타지우 도스 유칼립투스
포르투알레그리 - 브라질
경기일
1950년 7월 2일 15:40
(1950년 7월 3일 03:40)
국 가
멕시코
파일:멕시코 국기(1934-1968).svg
스위스
파일:스위스 국기.svg
득 점
1
2
득점자
오라시오 카사린 (89')
르네 바데어 (10')
키키 앙투넨 (44')

라인업
이름
비고
라인업
이름
비고
선발
안토니오 카르바할
GK
선발
아돌프 후그
GK
그레고리오 고메스

게르하르트 루센티

마누엘 구티에레스

로제 부케
파일:주장 아이콘.svg
안토니오 플로레스

앙드레 누리

호세 나랑호

로제 캉쉬

호세 로카

올리버 에기만

과달루페 벨라스케스

르네 바데어
파일:득점 아이콘.svg
마리오 오초아

재키 파통

엑토르 오티스

장 타미니

오라시오 카사린
파일:주장 아이콘.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키키 앙투넨
파일:득점 아이콘.svg
호세 보르보야

한스페터 프리트렌더

교체
라울 코르도바
GK
교체
에우제니오 코로디
GK
로드리고 루이스

조르제스 스투버
GK
알폰소 몬테마이어

뢰디 기거

펠리페 세터

커트 레이

사무엘 쿠부루

펠리체 솔디니

카를로스 게바라

발터 벨리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

프레디 비켈

호세 나바로

한스 지겐탈러

막스 프리에토



마리오 페레스



카를로스 세프티엔




이미 탈락이 확정된 팀들의 경기였기 때문에 경기장은 전날의 마라카낭에 비하면 한산했다. 볼거리라면 두 팀의 유니폼이 당시 붉은색자주색으로 비슷했기 때문에 멕시코의 유니폼이 평소와 다른 흰색파란색의 줄무늬 유니폼이었다는 것 정도였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선제골은 전반 10분 스위스의 르네 바데어의 골이었다. 헤딩 경합으로 공중에 뜬 볼을 논스톱으로 슈팅을 때려 카르바할의 방어를 뚫었다. 전반 44분에는 앙투넨의 슈팅이 다시 한 번 카르바할의 방어를 뚫으면서 스위스는 승리를 거의 굳혔다. 멕시코는 경기 종료 직전에서야 주장 카사린의 만회골이 나왔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늦었다.

멕시코는 초대 대회인 1930년에 이어 이번에도 3전 전패로 마감하게 되었다.


8. 결선 리그 진출팀[편집]


이후 정보는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결선 리그에서 기재.

[1] 괄호 안은 한국시간[2] 공교롭게도 한국전쟁이 발발한 시간이다.[3] 원래 이 대회부터 등번호가 있었지만 이 때의 등번호는 선수에 매겨진 것이 아니라 포지션에 따라 매겨졌고, 현실적으로 모든 경기에 포메이션이 남아있지 않아 등번호의 기재는 생략했다.[4] 이스타지우 두 마라카낭의 개막 경기는 월드컵 개막 8일 전인 6월 16일에 히우지자네이루 주 올스타팀과 상파울루 주 올스타팀의 시합으로 치러졌다. 경기는 히우지자네이루 올스타팀이 3대1로 승리했으며 개막 첫 골의 주인공은 지지였다.[5] 아마 역대 모든 골키퍼들 중 A매치 데뷔전을 가장 바쁘게 보낸 골키퍼를 뽑을 때 둘째가라면 서러울 골키퍼일 것이다. 카르바할은 당시 21살의 젊은 골키퍼였고 브라질과의 이 경기가 그의 A매치 데뷔전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후 1966년 월드컵까지 4번의 월드컵에 더 출전하여 로타어 마테우스, 잔루이지 부폰 등과 더불어 월드컵 5회 출전 기록을 가진 선수로 역사에 남게 된다. 하지만 카르바할이 호르헤 캄포스와 더불어 멕시코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손꼽히는 실력자였음에도 멕시코는 그가 출전했던 5번의 월드컵에서 단 한번도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6] 공격수 제이코의 [7] 이 시대에는 선수 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운동장을 오래 비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8] 공과 상관없는 선수가 오프사이드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된 시기는 2006년 독일 월드컵으로 상당히 뒷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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