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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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세르비아의 축구 국가대표팀.
동구권 전통의 축구 강국이자 유고슬라비아 연방 시절 재능있는 선수들을 많이 배출해냈으며, 하얀 독수리(Beli Orlovi)이라는 별명이 있다. 유명한 선수로는 2010년대 첼시 FC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 중 하나인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활약한 네마냐 비디치와 네마냐 마티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수비수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SS 라치오의 에이스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 AFC 아약스의 돌풍을 주도한 두샨 타디치, 루카 요비치, 풀럼 FC에서 활약한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의 에이스였던 필립 코스티치, 크리스탈 팰리스 FC의 주장이었던 루카 밀리보예비치, 마지막으로 현 최고의 유망주로 유벤투스 FC에서 뛰는 두샨 블라호비치 등이 있다. 유니폼 스폰서는 푸마이다.
2. 역사[편집]
2.1. 유고슬라비아 시절[편집]
발칸 반도와 동구권의 강호로 명성을 떨쳤으며, 현재 공식적으로 유고슬라비아 시절 역사를 계승한다. 국내 리그로 유고슬라비아 1부 리그를 운영했고, 국내 리그도 클럽 축구계에서 실력있는 리그로 평가받았다. 유고슬라비아 왕국 시절이던 1930년 초대 월드컵 준결승 진출을 시작으로 유고슬라비아는 국제 축구계에서 줄곧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요시프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다시금 축구계에 등장해 1950년 월드컵부터 1962년 월드컵까지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루어냈으며, 1954년 스위스 월드컵, 19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잇따라 8강에 올랐고, 1962년 칠레 월드컵에서 32년만에 월드컵 4강에 다시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또한 1960년 유럽 선수권 대회, 1968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하며 동구권의 강호로 성장했다. 당시 유럽 선수권 대회는 본선 진출국이 불과 4개국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치열한 예선을 뚫고 올라온 유고슬라비아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이 시기 대한민국을 1962 칠레 월드컵 지역예선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3-1, 5-1로 가볍게 이기며 대한민국에 세계 무대와의 수준 차이를 제대로 느끼게 했다.[3]
그러나 그동안 동유럽의 강호를 자처했던 유고슬라비아는 1970년대에 접어들자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며 연이은 예선 탈락을 경험한다. 1966년 월드컵 지역예선 탈락을 시작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1970년 월드컵, 1972년 유럽 선수권에 연이어 탈락하고, 1974년 월드컵 8강 진출, 1976년 유럽 선수권 4위의 성적으로 정신을 차리는 듯 하더니 다시 1978년 월드컵과 1980 유럽 선수권을 또 날려버렸다. 소련과 함께 꾸준함의 상징이었던 유고슬라비아는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팀이 되어갔고 다시금 본선에 올라간 1982년 월드컵에서의 실망스런 조별리그 탈락과 유로 1984의 처참한 조별리그 3연패로 확실히 좋은 시절 다 갔다는 것을 축구팬들에게 각인시켰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8강 진출에 성공하며 부활하는 듯했으나,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해 유고슬라비아는 분열되었고, 유고슬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1990년 FIFA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국제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유로 1992 지역예선에서 압도적인 모습으로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으나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터지는 바람에 침략국으로 낙인찍혀 국제 무대에서 축출당했고, 그로 인해 조 2위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이 대신 유로 1992에 나가는 일이 일어났다.[4]
게다가 1990년대 이후 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출생의 탑급 유망주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졌고, 1987년 FIFA 청소년 월드컵에서 우승도 했기 때문에 만약 이 지역이 독립하지 않고 그대로 유고슬라비아로 지속되었다면, 그리고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떡밥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오랜 논쟁이 되었다. 이 시기 그야말로 유럽 축구계에 족적을 남긴 유고 출신 명선수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인데 선수 목록을 살펴보자면,
사페트 수시치(Safet Sušić) - 보스니아[5]
흐리스토 비다코비치 사비치(Hristo Vidaković Savić) - 보스니아
다르코 판체프 (Дарко Панчев) - 북마케도니아
네나드 마슬로바르(Nenad Maslovar) - 몬테네그로
데얀 사비체비치(Dejan Savićević) - 몬테네그로
프레드라그 미야토비치(Predrag Mijatović) - 몬테네그로
드라간 스토이코비치(Драган Стојковић) - 세르비아
고란 부녜브체비치(Горан Буњевчевић) - 세르비아
고란 조로비치(Горан Ђоровић) - 세르비아
슬라비샤 요카노비치(Славиша Јокановић) - 세르비아
시니샤 미하일로비치(Синиша Михајловић) - 세르비아
블라디미르 유고비치(Владимир Југовић) - 세르비아
드라간 판텔리치(Драган Пантелић) - 세르비아[6]
보라 밀루티노비치(Бора Милутиновић) - 세르비아[7]
밀린코 판티치(Милинко Пантић) - 세르비아
즐라트코 자호비치(Zlatko Zahovič) - 슬로베니아
알렌 부치시치(Alen Vučkić) - 크로아티아
다보르 슈케르(Davor Šuker) - 크로아티아
즈보니미르 보반(Zvonimir Boban) - 크로아티아
로베르트 야르니(Robert Jarni) - 크로아티아
로베르트 프로시네치키(Robert Prosinečki) - 크로아티아
이고르 슈티마츠(Igor Štimac) - 크로아티아
드라잔 예르코비치(Dražan Jerković) - 크로아티아
등등 이외에도 많다. 이들이 유고슬라비아라는 한 국가 아래에서 뛸 수 있었다면 적어도 유로나 월드컵 등 메이저 대회 우승은 한 번 차지할 수 있었겠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다. 실제로 당시 이들이 활약한 1980년대~1990년대 초반 유고 대표팀 및 유고 청소년 대표팀은 공포의 대명사였다.[8]
그러나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UEFA 유로 1992와 1994 미국 월드컵을 비롯한 1990년대의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고,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이 차례로 독립하더니 몬테네그로도 떨어져 나가면서 유고 축구팀은 완벽히 해체되었다. 결정적 계기는 보스니아 내전. 내전이 시작하자마자 미국, 영국 등 서방 세계의 NATO 가입국들의 주도로 보스니아 내 세르비아계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는 신 유고 연방에 대한 경제 제재와 무역 금수 조치가 단행되었고, UN은 신 유고 연방을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후신으로 인정하지 않아 사실상 UN에서도 쫓겨났다.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부분은 스포츠 부분이었다. 올림픽이나 FIFA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대회 등 각종 국제 스포츠 경기에서도 경기 출전 금지령까지 내려진 것.
그렇게 벌어진 유로 1992에서 당시 유고슬라비아는 1991년 조별예선에서 7승1패 승점 14점으로 1위를 차지했으나 이듬해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인해 모든 국제 활동이 금지되면서 유로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당시 같은 조 2위는 6승1무1패 승점 13점[9] 이던 덴마크였는데, 대회 개막 1주일을 앞두고 잉글랜드와 친선전을 가지려던 덴마크는 갑작스런 통보를 받고 본선에 출전하여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을 차례로 따돌리고 동화같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나마 전쟁이 수습된 후인 1998년 월드컵 때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로 구성된 신 유고연방과 크로아티아가 각각 월드컵에 진출했고, 이 대회에서 유고슬라비아는 16강에 오르는 준수한 성적을 냈지만 크로아티아가 4강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다.[10]
만약 구 유고 연방이 붕괴되지 않고 이 대회에 출전하여 크로아티아의 멤버 외에 다른 유고 연방 계열 국가의 멤버들이 함께 뛰었더라면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건 2020년대 들어서도 마찬가지라서, 얀 오블락과 한다노비치의 슬로베니아를 필두로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 마티치, 두샨 타디치 , 두샨 블라호비치,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 등을 배출한 세르비아나, 그바르디올, 모드리치, 라키티치, 코바치치를 보유한 크로아티아, 아미르 라흐마니를 보유한 코소보와 엘리프 엘마스를 보유한 북마케도니아, 스테판 사비치를 보유한 몬테네그로 선수들을 조합해보면 유럽 내 어느 강호팀을 상대로도 꿀리지 않는 막강한 스쿼드를 구축할 수 있다. 베스트 일레븐을 대략 짜보자면...
이 정도가 되겠다. 여기에 좀 더 엄밀한 계산을 위해 외국으로 피난하여 정착한 난민과 그 2세 선수들까지 포함한다면...[11]
여담으로, 유고슬라비아 내전 이후 월드컵마다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구성국 2개국이 출전하는 징크스가 있다.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 신유고연방, 크로아티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2006 FIFA 월드컵 독일 - 세르비아-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참고로 이들 중 토너먼트 진출한 팀은 크로아티아(1998년 3위, 2018년 준우승)와 신 유고 연방(1998년 16강)이 있고, 나머지는 죄다 월드컵에서 최소 1승은 챙겼다. 참고로 구 유고 연방 구성국 중에 출전하지 못한 나라는 북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3국이다. 특히 연방 해체 이후 유고를 실질적으로 계승한 세르비아보다 유고에서 독립해나간 크로아티아가 분리 독립 이후 훨씬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것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크로아티아가 1992년 독립한 이후 참가한 대회에서 월드컵, 유로 모두 단 한번씩을 제외하고 전부 본선에 진출한 반면,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와 분리한 2006년 이후 유로는 한 차례도 나가보지 못했고, 월드컵도 2번밖에 못 나가 크로아티아와 비교가 된다.
게다가 세계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8골이나 득점한 유일한 나라라는 나름 자랑할만한 기록(1934년 스코어 8:4)이 있다.[12] #
한국과의 상대 전적은 4승 3무로 절대 우세이나 이는 어디까지나 유고슬라비아 시절 전적이고 이후의 전적은 아래의 문단 참조.
2.2.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시절[편집]
1992년에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붕괴되면서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이 구성되었을 때 생겼으며, 2003년 국호 변경을 거쳐 연방이 해체한 2006년까지 존재했다.
UEFA 유로 2004 예선 진행중에 국호의 변경이 있었다. 이탈리아, 웨일스, 핀란드, 아제르바이잔과 한 조가 되었는데 이탈리아에는 2무, 웨일스에는 2승을 거두고도 아제르바이잔에 1-2로 패하며 조 3위로 탈락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이름으로 지역예선에서 스페인을 플레이오프로 밀어내고 조 1위로 본선에 직행하는 기염을 토한다. 네마냐 비디치 - 믈라덴 크르스타이치 중앙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에 데얀 스탄코비치, 공격진에 마테야 케즈만, 니콜라 지기치, 사보 밀로세비치 등 중량감 있는 라인업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본선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의 극치를 보여주고 만다. 아르헨티나에 무려 0-6 대패를 당하면서[13] 이 대회 최다 실점을 당하는 굴욕을 겪었고 네덜란드에 0-1, 코트디부아르에 2-3로 지면서 3전 전패, 2득 10실점을 당하며 최하위로 탈락했다. 특히 마지막 경기 코트디부아르전에서는 2-0으로 앞서다가 대역전패를 당하며 최악의 마무리를 하고 만다. 당시 몬테네그로가 분리 독립을 결정한 상태에서 대회를 나가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황에다가 일리야 페트코비치 감독이 자신의 아들 두샨 페트코비치를 부상으로 대회에 불참한 미르코 부치니치의 대체 선수로 발탁했다가 여론의 반발에 시달려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해서 다른 참가국들과 달리 한 명 더 적은 선수로 대회에 나간데다가, 훗날 유럽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가 된 네마냐 비디치가 네덜란드와의 경기를 징계로 인해 나오지 못하고, 아르헨티나와의 경기 직전 입은 부상으로 한 경기도 뛰지 못해서 사실상 21명의 선수로 대회에 참가하게 된 것이 결정적이었다.[14]
한국과는 2005년 서울에서 평가전을 가졌으며, 최진철과 이동국의 골로 한국이 2-0으로 승리했다. 이후의 상대 전적은 아래의 문단 참조.
2.3. 세르비아 분리 이후[편집]
몬테네그로와 공식적으로 분리되면서 세르비아 단독으로 대표팀을 꾸리게 되었다. 세르비아 대표팀도 결코 무시하지 못할 동유럽의 강호이지만 이름값에 비해 성적이 나오지 않는 대표팀으로 유명하다. 월드컵 본선에 2010년, 2018년, 2022년 세 차례 진출했으나 모두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고, 같은 시기 유럽 선수권 본선에는 단 한차례도 오르지 못하는 굴욕을 겪었다. 유럽 안에서는 고춧가루 팀이지만 유럽을 벗어나면 별 볼 일 없다. 옆동네 크로아티아와 비교되는 것이, 전체적으로 팀 선수들 레벨에 비해 자주 메이저 대회에서 광탈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선수 면면만 봐도 알렉산다르 콜라로프,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 네벤 수보티치, 두샨 바스타 등 개개인의 이름값이 화려하고, 그 전 세대로 거슬러 올라가봐도 네마냐 비디치, 데얀 스탄코비치 등 유럽 빅클럽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의아하다고 여겨질만 하다. 비록 스트라이커 포지션이 약점으로 평가되긴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성과가 나지 않는다.
대략적인 스타일은 힘에 의존하는 축구를 구사하며, 전반적으로 잠갔다가 롱볼을 때리는 투박한 축구를 한다. 이런 축구 스타일 때문에 세르비아로 분리된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기동력을 앞세운 축구에 매우 취약하다. 중동이나 남미팀처럼 침대 축구로도 악명이 높은데, 무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같은 극강의 팀들을 상대로 침대 축구를 한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스페인에게 수비축구와 침대 축구를 적절히 섞은 퍼포먼스를 시전하며 스페인을 플레이오프로 내던졌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독일을 본선 조별리그에서 때려잡았다.
UEFA 유로 2008 예선에선 유럽 최약체급인 카자흐스탄에 2-1로 패해 결국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으며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지역예선에서 프랑스를 플레이오프로 밀어내고 본선으로 진출해 독일을 1-0으로 이기긴 했지만 가나와 호주에 패하면서 2회 연속 월드컵 조예선 꼴찌로 탈락했다. 특히 최종전인 호주전에서 이기면 무조건 진출, 비겨도 2골 이상 넣고 비기면 진출이라는 유리한 경우의 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라 더더욱 아쉬울 결과다.
UEFA 유로 2012도 지역예선에서도 탈락했는데, 유럽에서 약체로 평가받는 에스토니아에게 홈에서 1-3으로 완패를 당하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서는 벨기에,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웨일스, 스코틀랜드와 같은 조를 이뤄서 그래도 해볼만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정작 안방에서 벨기에에 0-3으로 대패했고 마케도니아에도 원정에서 1-0으로 패하면서 마케도니아와 3위 쟁탈전을 벌일 지경에 처했다. 7차전까지 3위를 유지했지만(마케도니아는 꼴찌 추락) 2위 크로아티아와 9점이나 승점차가 있기에 사실상 진출은 물 건너갔다.
UEFA 유로 2016 예선에서는 1차전 원정 경기에서 아르메니아와 고전 끝에 겨우 1-1로 비겼고 2차전 안방경기로 알려진 알바니아전은 그만 취소되었다. 코소보 전쟁으로 사이가 나쁜 두 나라인데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파르티잔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3차전은 전반이 끝나기 직전 경기장 위로 알바니아의 과거 영토와 국가 위상을 찬양하는 깃발을 단 무인기가 등장하면서 폭발하게 된다. 세르비아의 스테판 미트로비치는 이를 잡아채 깃발을 뽑아버렸고 이를 본 알바니아 선수들이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였다. 여기에 관중까지 난입하며 경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결국 경기는 중단됐고 선수들은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흥분한 팬들은 터널을 통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알바니아 선수들을 향해 오물을 투척하고 발길질을 하는 등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세르비아 공영방송 TRS는 귀빈석에서 무인기 조종을 지시한 혐의로 알바니아 총리의 형제인 올시 라마를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이 사태로 결국 양팀 모두 징계를 받게되었으나 최종 결과, 알바니아가 몰수승을 거두며 2위로 올라선 반면, 몰수패당한 세르비아는 가장 먼저 탈락했다. 자세한 것은 여기를 참고할 것.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지역예선에서는 아일랜드, 웨일스, 오스트리아, 조지아, 몰도바와 묶이며 최상의 조 편성을 받았고, 물고 물리는 접전 끝에 조 1위를 차지하며 8년만에 월드컵 본선에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빈공이 발목을 잡은 과거와 달리 이번 예선에선 전 경기 득점에 성공하면서 단 1패만 기록한 채 탄탄한 모습을 보인 것이 본선에서의 기대치를 올렸다. 특히 2015 FIFA U-20 월드컵 우승 멤버들과 기존의 멤버들이 잘 융화된 스쿼드로 신구 조화도 잘 되었다는 평이다. 본선에서도 1차전 코스타리카를 알렉산다르 콜라로프의 전매특허 프리킥으로 1-0으로 제압하면서 좋은 출발을 알렸다. 그런데 2차전에서 조 2위 싸움의 가장 큰 경쟁자 스위스에게 이기면 16강 확정이었으나 1-2로 역전패를 당한 것이 뼈아팠다. 특히 세르비아 입장에선 오심으로 손해를 본 경기였기 때문에 더더욱 안타까울 판이고, 마지막 브라질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전력차를 실감하며 0-2로 지면서 또다시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했다.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 루카 요비치, 마르코 그루이치 등 특급 유망주들이 출전했지만 그루이치는 출전하지 못했고, 나머지 선수들도 아직은 설익은 모습을 보여줘 아쉬움을 남긴 대회다.
이어 치러진 UEFA 유로 2020 예선에서 더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다. 포르투갈,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와 한 조에 걸리며 직행 티켓이 쉽지 않겠다는 예상이었으나 우크라이나에게 0-5 대패를 당하고 리투아니아, 룩셈부르크에게도 한점차의 아슬아슬한 승부를 하면서 승리를 챙기는 등 불안한 모습을 연달아 보이면서 조 3위로 밀려버렸다. 다행히 새로운 예선 룰의 수혜를 받아 플레이오프에는 진출했다. 2020년 10월에 치러진 플레이오프 준결승 노르웨이전에서는 연장 접전 끝에 2-1로 이기면서 결승에 진출했지만, 11월 결승에서 만난 의외의 복병 스코틀랜드와의 경기에서 승부차기 가는 접전 끝에 알렉산다르 미트로비치의 실축으로 패배했다. 세르비아 국명으로 첫 유로에 진출할 기회를 이로써 또다시 날려버렸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는 지난 월드컵 때의 유망주들이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고 노련한 주장 두산 타디치와 특급 공격수로 성장한 두산 블라호비치 등 신구 조합이 잘 이루어져 포르투갈을 플레이오프로 밀어내고 본선으로 직행했다. 그러나 지난 러시아 월드컵 때 같은 조였던 브라질, 스위스에게 복수도 실패하고, 무조건 잡아야 하는 카메룬에게도 3-3으로 비기며 승점 1점에 그치고 최종성적 1무 2패로 또다시 탈락의 맛을 봐야했다.
세르비아 단독 대표팀 구성 이후 성적은 유고 시절과 너무 차이가 날 만큼 부진하다. 2006 월드컵 이후 세르비아 대표팀이 조직되어 현재까지 월드컵 2회 진출에 본선 2승 4패, 토너먼트 진출 0회를 기록중이고, 유로 대회 출전 0회라는 참담한 성적이다. 이 기간 U-20 대표팀이 2015 FIFA U-20 월드컵 우승을 거뒀고, U-23 대회인 올림픽 축구에서도 2008년에 본선 진출에 성공하는 등 연령별 대회에서의 성과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성적이다. 2021년 현재 U-20 월드컵 우승의 주역들이 대표팀 주축으로 거듭나는 세대교체 중이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UEFA 유로 2024 예선에서는 헝가리, 몬테네그로, 리투아니아, 불가리아와 같은 조가 되었고 마침내 4승 2무 2패의 성적으로 조 2위를 기록해 24년만의 유로 본선 진출이자 세르비아 출범 이후 첫 유로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과의 상대 전적은 1승 1무 1패로 백중세. 2009년 영국 런던에서 경기를 가졌으며, 당시에는 니콜라 지기치의 골로 세르비아가 1-0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2011년 서울에서 다시 한 번 평가전을 가졌으며, 이때는 박주영과 김영권의 골로 한국이 2-1로 승리했다. 6년 뒤인 2017년 울산에서 세 번째 경기를 가졌는데 세르비아의 날카로운 역습으로 선제골을 넣었지만, 애매한 판정에 의한 구자철의 PK로 동점이 되었다. 이후 구자철이 이근호와 교체되면서 이근호-손흥민 조합이 빛을 보게 되어 후반 막판에는 대한민국에게 일방적으로 가패당하면서 손흥민의 날카로운 슈팅 세례가 줄을 이었고, 데뷔전을 치른 골키퍼의 미친 선방으로 결국 추가 득실점 없이 경기가 끝났다. 세르비아 대표팀으로서의 성적은 이렇지만, 유고슬라비아 시절의 기록까지 합한다면 5승 4무 2패로 한국에게 우세하다.
청소년 대표팀은 2015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우승 후보로 언급된 브라질을 2-1로 이기고 세르비아 분리 이후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했다.(1987년 칠레 대회에서 유고슬라비아 시절 서독을 제치고 우승한 것까지 합치면 2번째)
3. 유리멘탈[편집]
2000년대부터 상당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큰 대회에서 어이없는 점수차로 무너지거나 역전승을 허용하는 등 유리멘탈의 모습들을 곧 잘 보여준 팀이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인 유로 2000 8강전에서는 네덜란드에게 6-1로 무너졌고[15] , 2006년 월드컵 조별본선[16] 에서는 아르헨티나에게 6-0으로 무너진 후 조별본선 마지막 게임인 코트디부아르전에서는 2-0으로 앞서던 게임을 2-3으로 역전패 당했다.
2010년 월드컵에서는 조별본선[17] 2차전에서 독일을 이겨놓고도 3차전에서 사실상 탈락이 확정된 호주에게 패배하고[18] , 2018년 월드컵에서는 이기기만 하면 16강에 오를 수 있는 스위스 전에서 선제골을 넣어놓고도 동점골을 먹히고 경기 종료 직전에 역전골을 내줘 역전패 하는 등 큰 게임에 약한 모습을 계속 보여줬다.[19]
2022년 월드컵에서는 예선에서 포르투갈을 밀어내고 월드컵 본선에 직행하며 이번에도 기대감을 잔뜩 불러모았지만, 본선에서는 조 최약체로 꼽혔던 카메룬을 상대로 3-1로 이기고 있다가 순식간에 2골을 내주며 비기고 말았고, 반드시 승리해야 했던 경기이자 저번 대회의 복수를 할 기회였던 스위스 전에서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다가 끝내 패하며 조 4위로 월드컵을 마감, 그것도 빨리 팀을 다독여서 멘탈을 잡아야할 때 상대 스위스 선수와 감정싸움이나 하는 등 유리멘탈의 끝을 보여줬다.
정작 비슷하게 유고 연방에서 분리된 크로아티아는 더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토너먼트에 나가면 좋은 성적을 내주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월드컵은 그래도 본선에 나가기라도 하지만, 유로는 2000년 대회를 마지막으로 못 나가보다가 24년 만인 2024년 대회에 진출했다. 16개국 본선 진출로 치러진 대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20] 2016년 대회부터는 본선 진출국이 24개국으로 늘었는데도 2대회 연속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21] 정작 더 적은 본선 티켓이 주어지는 월드컵 예선은 줄곧 통과하면서[22] 유로 예선에서는 죽을 쑤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
4. 역대 감독[편집]
5. 선수 명단[편집]
6.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편집]
7. 역대 전적[편집]
7.1. FIFA 월드컵[편집]
FIFA 월드컵 통산 랭킹: 1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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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부터 1938년 대회는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기록이다.
- 1950년부터 1990년 대회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기록이다.
- 1998년부터 2002년 대회는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의 기록이며[36] 2006년 대회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국호를 바꾼 뒤 참가하였다.
- 2010년 대회부터 세르비아로 참가하였다.
- 자세한 것은 세르비아 축구 국가대표팀/FIFA 월드컵 참조.
총 성적 18승 9무 22패 승점 63점으로 월드컵 랭킹 14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8년 대회가 끝난 시기를 기점으로 13위를 기록했으나, 카타르 월드컵에서 멕시코가 1승 1무 1패로 승점 4점을 추가한 반면 세르비아는 시종일관 처참한 경기력 끝에 1무 2패로 승점 1점만 추가하는 데 그치며 순위가 역전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의 오래된 얘기긴 하지만 4강에만 두 번이나 진출했으며, 가장 경쟁이 치열한 유럽임에도 월드컵에 13번이나 올라갔을 정도로 유럽의 강호다. 현재 세르비아를 포함해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북마케도니아까지 한가닥 하는 나라들이라 유고가 분열되지 않았으면 얼마나 강했을까하는 떡밥은 심심하면 나오는 축구계의 흔한 떡밥이다. 게다가 여기에 더해 코소보 쪽에도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오는지라 이 조합이 하나가 된다면 상상 이상의 강팀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 전적은 다음과 같다. 볼드체로 표기한 팀은 월드컵 우승국이다.
독일과 세르비아는 본선에서만 7번을 만났는데 이는 브라질 : 스웨덴, 독일 : 아르헨티나와 더불어 월드컵에서 가장 많이 만난 상대다.
대륙별 역대 전적은 다음과 같다.
세르비아에 패배를 안긴 적이 있는 팀은 독일(4패), 브라질(3패), 네덜란드(2패), 스위스(2패), 우루과이(1패), 러시아(1패), 체코(1패), 칠레(1패), 폴란드(1패), 스웨덴(1패), 스페인(1패), 아르헨티나(1패), 코트디부아르(1패), 가나(1패), 호주(1패)로 총 15개팀이며, 이들 중 브라질, 독일, 아르헨티나, 스페인, 우루과이, 스위스를 제외한 나머지 9개팀을 상대로는 전패를 기록중이다.
세르비아가 가장 많은 승점을 얻은 팀은 독일로 7경기 7점이다. 가장 많은 패배를 당한 나라이자 가장 많은 승점을 얻은 나라이기도 한 것이다. 공동 2위는 프랑스와 콜롬비아로 2경기에서 6점을 얻어내며 전승중이다.
세르비아가 열세를 보이는 나라들은 독일,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스웨덴, 러시아, 폴란드, 체코, 칠레, 가나, 코트디부아르, 호주, 브라질, 스위스로 총 13개국이다. 호각세인 나라들은 스페인, 우루과이, 파라과이,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카메룬으로 6개팀. 그 외 나머지에겐 전부 우세다. 대략 유럽에서 늪 축구를 구사하는 팀답게 유럽의 강팀들을 고전시키기도 하지만 비유럽 팀을 상대로는 그다지 강하지 않다.
한경기 최다 득점 기록은 1974년 자이르전[38] 9:0 승리로 윌드컵 최다 득실차 타이 기록이고, 한경기 최다 실점 기록은 1930년 우루과이전[39] 1:6 패와 2006년 아르헨티나전[40] 0:6 패이다. 최다 득점, 최다 실점 모두 숫자가 비교적 큰 편이다.
7.2.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편집]
UEFA 유로 : 19위
- 1992년 대회까지 기록은 유고슬라비아 기록이다.
- 1996년 ~ 2004년 대회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진출하였다.
- 2008년 대회부터 세르비아로 진출하였다.
7.3. 올림픽[편집]
유고슬라비아 시절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1960년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그 외 1948년, 1952년, 1956년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였고, 1984년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7.4. 대한민국과의 역대 전적[편집]
- 유고슬라비아 시절
첫 맞대결 이후 대한민국 대표팀이 축구 변방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만날 일이 없었으나, 1995년에 34년만의 맞대결을 가지게 되었다. 홍콩 구정컵 결승전에서 만나 이번에도 유고슬라비아가 1-0으로 승리를 거두고 구정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결 이후 두 팀은 자주 평가전을 치렀고, 1997년과 1998년 그리고 2000년의 2연전까지 모두 유고슬라비아는 대한민국에 지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리하여 총 전적은 7전 4승 3무로 유고가 압도적 우세를 가져갔다.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시절
- 세르비아 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