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 무장 탈영병 총격 난동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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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경과
3. 범인에 관해서
4. 여담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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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관련 영상
  • 당시 KBS 9시뉴스 보도 보기
  • 당시 MBC 뉴스데스크 보도 보기[1] 그 당시 긴박했던 현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2] 로드뷰

1993년 4월 19일강원도 철원군 소재 대한민국 육군 제15보병사단 전차중대에서 현역병으로 복무 중이었던 당시 육군 일병 임채성이 부대를 무장탈영하여 민간인을 인질로 잡아서 서울특별시로 차를 몰게 한 후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에서 군의 추격부대와 시가전을 벌인 사건. 영화 터미네이터 같은 모습이 연출되었다고 해서 터미네이터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2. 경과[편집]


당시 22세였던 임채성 일병은 자신이 복무 중이던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에 위치한 육군 부대에서 K1 기관단총과 실탄 130여 발, 수류탄 22발을 탈취하여 무장탈영을 강행하고 부대 인근 민가로 들어가 민간인을 인질로 잡은 뒤 인질 소유의 자동차인 기아 베스타 승합차를 인질에게 운전하도록 시켜 철원을 지나 경기도에 진입하여 포천시, 연천군, 동두천시, 의정부시를 경유하며 서울특별시에 다다랐다.

도중 수차례 검문소를 거쳤지만 그는 군복을 벗고 민간인으로 위장한 상태라 검문소 측에서 바로 통과시켜 버렸다. 그러다 서울특별시로 들어가는 길목 격인 광릉내 검문소에 가서야 제지를 받게 되었는데 결국 검문에 불응하고 서울 방향으로 도주하였다.

이후 서울특별시 각지를 수색하던 수도방위사령부 헌병[3]들 중 일부가 이스턴호텔(로드뷰)에서 그를 목격했으나 상부에 무전으로 보고하는 사이에 그를 놓쳐 버렸고 혜화동-명륜동 근방에서 자신이 발각되었음을 눈치챈 그는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근처에 있던 민간인들에게 총기와 수류탄을 난사했다. 당시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서울과학고등학교 주변은 비상사태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경찰에 포위되었으나 고작 리볼버 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은 K-1 기관단총 앞에 상대가 되지 않았고 대치가 이어지던 중 출동한 수도방위사령부 특별경호대의 집중사격을 받고 복부와 후두부에 총상을 입었으나 숨이 붙어 있어서 생포되었다. 이후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되었다가 군사재판을 받아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이 난동으로 7명이 중경상을 입고 그 중 1명이 사망하는 대형참사가 벌어졌다. 사망자는 당시 혜화동에서 채소 가게를 운영하던 고성주 씨였는데 1남 4녀를 힘겹게 키우느라 그 날도 식사도 거른 채 일하고 있다가 변을 당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탈영병을 만나자 놀라서 차 뒤에 숨었지만 흥분한 임채성이 달려들어 왼쪽 머리에 총을 쏴 버렸다. 주민들이 어떻게든 살려보기 위해서 응급처치를 해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끝내 숨지고 말았다. 어린이 1명과 10대 소녀 1명이 인질로 잡혔으나 어깨에 총상을 입은 여성 인질을 빼고 모두 무사했다. 당시 사건 현장 바로 근처에 있었던 서울대학교병원에선 외과 계열 의사들을 전부 호출하여 응급 수술에 투입하였다.

무장 탈영병 사건 중에는 이보다 희생자 수가 많은 사건이 있어 왔으나 이 사건은 현장의 긴박함이 방송으로 생생하게 보도되었기 때문에 그 어떤 무장 탈영 사건보다 큰 충격을 주었다.


3. 범인에 관해서[편집]


이 사건의 범인인 임채성은 1992년 2월에 단기하사관 장학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며 동네에서 자주 말썽을 일으켰으며 입대 직전인 같은 해 7월 친구들과 어울려 서울로 갔다가 용돈 마련을 위해 학생들을 상대로 금품갈취를 하다 경찰에 구속된 전적이 있다. 같은 해 8월에 육군부사관학교부사관후보생[4]으로 입대했으나 양성교육훈련이 진행 중이던 11월에 친구를 만난다는 이유로 탈영했으며 이후 아버지의 설득 끝에 자수하여 육군 병(兵)으로 다시 입대하는 조건으로 기소유예된 상태였다. 이로 인해 관심병사로 지정되었고 병으로 다시 입대한 후에도 말썽을 자주 일으키다 보니 평판이 좋지 못했다. 당시 나이는 22세였다.[5]

정확한 탈영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군 복무에 대한 염증이 원인으로 추정되며 이 사건으로 해당 부대 사단장과 제5군단 헌병대장[6]이 해임되고 중대장과 소대장, 당직사관 등은 구속되었다고 한다.[7] 또 최초로 임 일병을 발견했으나 놓친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들은 불필요한 보고로 일을 키웠다며 상부로부터 무자비하게 비난을 당했다. 여담으로 하나회 때문에 김영삼에게 찍힌 이필섭 합참의장에게도 불똥이 튀어 결국 강제예편을 당하게 되었다. 아무튼 대한민국 국군흑역사 중 하나이다.


4. 여담[편집]


  • 해당 사건이 발생한 날 공교롭게도 충청남도 논산시에 위치한 모 신경정신과병원(현.정신건강의학과 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무려 34명이 사망한 참사가 있었으나 무장 탈영병 총격 사건에 의해 그대로 묻혀 버렸다. 기사

  • 넷플릭스 드라마 D.P. 시즌1 6화에서 탈영 사건과 관련되어 언급되었다.


5. 관련 문서[편집]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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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보도를 한 기자가 바로 김장겸이다.[2] 영상 후반에 죽을 뻔한 운 좋은 아저씨가 나온다. 그분 왈 "나한테, 4번을 쐈어." 정말 4발 다 안 맞은 게 천만다행인 정도다.[3] 현. 군사경찰[4] 당시 육군하사관학교 하사관후보생[5] 고등학교 시절 유기정학을 3회 당했고 고등학교 졸업 후 부사관학교에서 훈련받는 조건으로 군 장학금을 받았다. 부사관후보생으로 군입대를 해서도 부적응하며 제 멋대로 행동했다. 부사관후보생 당시 탈영 동기는 친구를 만난다는건 표면적이고 실상은 양성교육훈련과 병영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6] 현 군사경찰대장[7] 물론 탈영이 일어난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범인 임채성이 탈영 전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총기 관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 중무장을 하고 탈영할 수 있었던 것도 이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