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윤/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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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1. 프로 초기
2.2. 제대 후~2010 시즌까지
2.3. 2011 시즌
2.4. 2012 시즌
3.1. 2013 시즌
3.2. 2014 시즌



1. 개요[편집]


현재윤의 선수 경력을 서술한 문서.


2. 삼성 라이온즈[편집]



2.1. 프로 초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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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입단 초기 시절

200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뒤에는 2군에서 경기력을 쌓고 있다가, 시즌 막판 진갑용의 체력안배를 위해 1군으로 콜업되어 20경기를 소화했다. 당시 포수로 입단했던 최형우도 있었으나 수비력에서 좀 더 인정받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승선했으며, 팀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하기도 했다. 이 해 한국시리즈 하이라이트 영상에 6차전 9회말 이승엽의 동점 쓰리런 이후 깨알같이 함께 기뻐하는 현재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04년 5월 팀 최다연패인 10연패로 나락에 떨어지고 주전포수인 진갑용까지 부상당한 삼성에서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차고 삼성의 대 역전(최종 순위 2위)을 이끌어냈었다. 심지어 진갑용이 복귀한 후에도 현재윤에 밀려서 1루수나 지명타자로 나서기도 했다. 칭찬에 박하기로 유명한 김응용 당시 삼성 감독의 칭찬을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범경기 때까지만 해도 김응용 감독은 경기 중 현재윤을 덕아웃으로 불러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발로 찼다.

김응룡-현재윤의 과거
바로 이렇게(…).

그럼에도 진갑용을 이을 차세대 주전포수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으며, 한 때 이승엽의 룸메이트여서 자주 언급되기도 하던 그는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됐다. 결국 실형 + 공익 크리.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까지 갔다.


2.2. 제대 후~2010 시즌까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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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2일 소집 해제# 이후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으며, 조정기를 거쳐 2008년 시즌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3월 18일 두산 베어스와의 시범경기 도중 정원석의 3루타 때 유재웅이 홈으로 쇄도하는 것을 막다 크게 충돌하여 쇄골 부상을 당하면서 얼마간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삼성은 4월 4일 전년도 2군 남부리그 타격왕을 한 이여상을 내주고 심광호를 영입했다. 그리고 심광호의 미친 듯한 삽질로 현재윤의 빠른 복귀를 바라는 팬들이 제법 많았다.

약 세 달간의 재활 후 6월에 복귀해 진갑용의 백업 포수로 자리잡았으며, 올림픽 직후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진갑용을 대신해 본인의 역할을 다했다. 여름에 특히 좋은 활약을 펼치며 다소 처져있던 삼성에 좋은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또한 당시 포수 중에선 발이 가장 빠른 선수라 내야 안타가 많은 편이었다. 주루 시에는 웬만한 중상급 발빠른 야수 정도의 스피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테이블 세터(2번 타자)로 출장한 경우도 있었다. 다만,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현재윤을 대신할 백업 포수가 없었기 때문에 도루 시도 자체는 적었다. 삼성은 이정식이 복귀한 2010 시즌에 들어와서야 포수진에 숨통이 트였다. 진갑용 또는 현재윤의 부상으로 인해 2008년에는 심광호를, 2009년에는 채상병까지 영입해야 했었다.

2009년 시즌 중순, 진갑용이 손목골절로 시즌아웃이 되면서 현재윤은 주전포수가 된 동시에 사실상의 커리어하이 시즌을 맞이했다. 공격력은 다소 아쉬웠으나, 수비력만큼은 선동열 감독 및 강성우 배터리 코치에게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윤 역시 8월 19일 대전 한화전에서 2:4로 뒤진 4회 2사 만루에서 이도형의 중전 안타 때 홈으로 쇄도하던 김태완을 태그아웃시키는 과정에서 스파이크에 왼손을 밟혀 부상을 입고 말았다.# 이로 인해 3주가량 결장하게 되면서, 삼성은 이적한지 얼마 안 된 채상병과 신고선수에서 정식선수로 막 전환된 이지영으로 포수진을 꾸려 4강 싸움을 하게 되었다. 당시 채상병은 리드나 포구는 좋았으나 어깨가 약해 거의 자동문 수준이었고, 이지영은 경험 부족으로 수비에서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현재윤이 복귀했을 때 이미 삼성은 사실상 4강 싸움에서 멀어져 있었다. 중요한 시점에 부상으로 이탈했기에 선수 본인과 구단 모두 아쉬웠을 듯하다.

비록 팀은 13년만에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지만, 현재윤은 시즌 내내 팀을 위해 헌신한 모습을 높이 평가받아 개인 첫 억대연봉 진입이라는 경사를 누렸다.#당시 우스갯소리로 크루세타의 포크볼 블로킹과 조원수박차의 공같지도 않은 공 받느라 수고해서 250만원을 보너스로 얹어줬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

2010년 초반에는 타격에서 부진하더니 설상가상으로 상무에서 제대한 이정식에게 백업 포수 자리를 완전히 내줬다. 하지만 이정식김태완이 휘두른 배트에 척골을 맞고 시즌을 마감하여 다시 백업으로 돌아왔다. 김태완 때문에 이탈도 했지만 복귀도 했다. 이 무슨 병주고 약주고... 하지만 시즌 내내 공격력은 완전히 기대할 수 없는 상태였으며, 수비로나마 팀에 작은 보탬이 됐다. 그래도 8월 26일 두산과의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맞대결에서 홍상삼을 상대로 시즌 첫 홈런을 때려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0 플레이오프에서 6타수 2안타 1득점, 타율&장타율&출루율 .33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 4차전은 대수비, 3차전은 선발 포수 겸 8번타자로 출장하여 6타수 4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667를 기록했지만 4차전 마지막 타자로서 삼진을 당하며 팀은 4연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대주자, 대수비, 대타, 스타팅 멤버로 골고루 출장했는데, 스타팅 멤버로 기용된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12타수 6안타 1득점, 타율 .500, 장타율 .500, 출루율 .500을 기록했다.

결국 시즌 후 연봉협상에서 작년보다 연봉이 깎이면서 다시 1억원 밑으로 9천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2.3. 2011 시즌[편집]


2011년 시즌에 개막전 멤버에 포함되었으나, 4월 14일 골반 통증으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이후 2군 경기에서 경기감을 찾으며 좋은 타격감을 보였으나 5월 7일 발목 염좌로 다시 재활을 하게 되었고 결국 6월 18일이 돼서야 1군에 복귀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6월 19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9회초에 2타점 역전결승타를 터뜨리며 팀의 스코어 4:3 승리에 한몫했다. 그런데 이 안타를 치고 1루로 가서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한다는게 애꿎은 박기남을 때렸다.[1] KBS는 다음날 9시 뉴스 스포츠뉴스에서 개그 콘서트감수성에 나오는 BGM을 집어넣어 야빠들을 폭소케 했다.

7월 17일 KIA전에서 나지완의 파울플라이를 잡다가 떨어뜨려놓고 마치 잡은 것처럼 심판을 속이려 해서 까였다.

시즌 말미에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간 후 한국시리즈와 아시아 시리즈 때도 엔트리에서 빠졌다. 이래저래 욕먹었으면서도 백업 역할을 충실히 해준 채상병에게 밀린 것은 둘째치고 부상으로 2군 경기도 잘 나오지 못했던 이정식에게조차 밀렸다. 재활 때문에 경기에 출장할 수 없었음을 고려해도 실망스러운 모습.


2.4. 2012 시즌[편집]


부상으로 괌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못했고, 2군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해외 전지훈련에 참가했다가 도중에 오키나와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3월 22일 넥센과의 시범경기 때 9회에 3루수로 깜짝 출장했다.

이정식이 백업포수로 낙점받으며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으나, 4월 중순 고관절 부상으로 이탈해 6월 중순에야 복귀했다. 그러나 이미 팀 내 포수 순위에서는 한참이나 밀렸다. 게다가 상무에서 갓 군 복무를 마치고 팀에 합류한 이지영이라는 걸출한 신인 포수가 등장하면서 더더욱 밀렸다. 결국 2012년에는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삼성에서 방출이나 은퇴 수순을 밟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돌았지만, 구단 측에서 보류선수 명단에 올려놓을 것이라며 근거없는 소문을 일축했다. 예비군 훈련 받으러 갔을 뿐.


3. LG 트윈스[편집]


2012년 12월 14일 김효남, 손주인과 함께 LG 트윈스트레이드되었다. 트레이드 상대는 내야수 정병곤, 김태완, 사이드암 투수 노진용. 봉중근님과 김광삼님이 이 트레이드를 싫어합니다. . 그러나 등가교환으로 '캐엘쥐 XXX이 날 죽이려고 해'를 외치던 노진용이 갔으니 퉁친 겁니다. 그러고 보니 그중 한명은 이미 삼성 와 있네?

등번호는 27번을 원했으나 이미 주인이 정해지면서, 응답하라 1994의 의미로 94번으로 정했다고 한다.


3.1. 2013 시즌[편집]


LG 트윈스로 이적한 이후 의욕 상실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 본인도 본래 있고 싶던 팀에서 뛰게 되어서인지[2] 의욕이 넘쳐나는 모습을 보이며 트레이드 후 얼마 안 가 은퇴할 것이라는 팬들의 생각을 뒤집어 놓았다.

시범경기 중반에서부터 LG의 주전 포수로 낙점받았는데, 김기태 감독은 부상전력이 있음을 고려해 60경기 내외로 출전시킨다고 말했다.

3월 31일 개막 시리즈 2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0:1로 지고 있는 상황에 동점홈런을 쳤다. LG 이적 후 첫 홈런이자 948일만의 홈런이었다. 팀은 4:1로 승리. 수비 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했다.

4월 14일 한화 이글스 전에서 김일엽이 던진 초구에 헬멧을 맞았다. 기사 머리에 공을 맞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다만 사고 당시에는 병원에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경미하게 스친 정도였다고 판단하여 아이싱 정도로 끝났다고 한다. 오랜만에 야구인생의 꽃이 만개하기 시작했던 현재윤을 잃을 뻔한 상황에서 LG 트윈스 입장에서는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었다.

그런데 18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오른손등 부상을 당하게 되어 최소 한 달 간 경기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공교롭게 같은 날 2군에서도 포수인 윤요섭도 팔꿈치 부상을 당하게 되어 포수진이 붕괴할 위험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LG는 넥센과 내야수 서동욱과 포수 최경철을 트레이드하여 포수진의 공백을 메꾸었다.

그 이후에는 4월~5월 한달 내내 재활로 결장하다가 6월 10일 복귀했다. 그 후로 다시 LG의 안방마님 자리를 꿰차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팀도 현재윤이 돌아온 이후로 연승을 달리며 상승세를 탔다.


이렇게 뛰어난 수싸움 능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7월 9일 NC전에서, 이번에는 왼손등에 공을 맞고 뼈가 부러졌다.(…)

7월 17일 의료진이 4주간의 재활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소견을 밝혔다. 일단 재활을 하고 4주 후에 다시 검진하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팀으로나 선수 본인으로나 시즌 아웃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한 셈. 이러면서 생애 최초 올스타전 출전은 무산되었다.[3]

8월 21일 1군으로 복귀하였다. 하지만 2번의 연달은 부상때문인지 시즌 초반의 날카로운 수비와 타격이 떨어진 듯한 모습을 보였고, 투수 리드에서 도망가는 듯한 리드를 하여 여러 경기의 패배에 일조했다. 심지어 포수로서 악평을 듣던 윤요섭에게 주전 자리까지 빼앗긴데다가 주요 득점 기회에서 여러 번 찬물을 끼얹었다. 경기 감각을 찾는 것이 급선무.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1, 4차전은 대수비, 2, 3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2타수 1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250을 기록했다.

부상 후 왼손 엄지손가락의 인대가 거의 끊어지기 직전까지 가서 결국 인대 접합수술을 했다. 2군에서 주키치의 공을 잘못 포구하는 바람에 부상을 당했다고 하며 후반기 부진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이 통증은 선수 생활을 끝내버리는 원인이 되었다.


3.2. 2014 시즌[편집]


2013년의 부상으로 수술 후 5월 복귀를 목표로 재활에 매진했다. 하지만 복귀가 다가온 4월 27일, 고양 원더스와의 퓨처스리그 교류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했다. 이로 인해 또다시 복귀가 미뤄졌다가 확대 엔트리가 적용된 9월 2일자로 1군 엔트리에 등록됐다.

9월 5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14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5로 앞선 8회초 수비 때 대수비로 출장하여 시즌 첫 번째 1군 경기를 치렀다. 현재윤은 이날 타석에는 서지 못했고 팀은 그대로 스코어 3:5로 이겼다.

10월 5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16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2로 지던 5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1루주자 최승준의 대주자로 출장했다. 1사 만루 상황에서 2번타자 박경수의 희생플라이 때 동점 득점을 올렸고, 6회초부터 경기 끝날 때까지 포수 마스크를 쓰고 8번타자로 타석에 섰다.
현재윤은 이날 스코어 3:3인 6회말 1사 만루 상황에서 2루주자만 3루에서 아웃되는 깊숙한 유격수 땅볼을 쳐 타점을 올렸고, 이어서 9회초에 정찬헌봉중근이 합작하여 동점을 허용하는 바람에 스코어 4:4가 된 9회말에는 1사 상황에서 손승락을 상대로 2루타를 친 뒤 다음 타자 오지환의 끝내기 안타 때 결승 득점을 올리는 등, 2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으로 팀의 승리에 공헌했다. 이날 승리로 팀은 7승 9패로 넥센과의 2014년 상대 전적을 마감했다.

NC 다이노스와의 2014년 준플레이오프 1, 2, 3차전은 결장하고 4차전은 대수비로만 나와서 타석에 서지 못했다.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10월 27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는 팀이 스코어 3:5로 지던 7회말에 대수비로 출장했지만, 여전히 스코어 3:5인 무사 1루 상황에서 7번타자 이성열의 타석 때 8회말 포수 패스트볼 저질러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는 등 신통치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날 현재윤은 타석에 서지 못했고, 팀은 스코어 3:6으로 재역전패 당했다.

현재윤은 2014년 플레이오프 1, 2, 4차전은 대수비, 3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2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4]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2014 시즌 종료 후 보류선수에 포함되었으나 거듭된 부상의 여파로 은퇴를 결정했다. 구단은 만류했지만 결국 선수 자신의 뜻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4. 선수협 관련 논란[편집]


2011년 말 선수협의 신임 회장 박재홍박충식 사무총장 선임에 두산의 이혜천, LG의 박명환, KIA의 김상현 등과 이에 반발했다. 김상현은 애초에는 반발했으나 곧 빠졌다. 그러나 박재홍은 선수협의 비리를 뿌리뽑겠다고 공언하며 노력 중이었던 터라 현재윤은 이혜천, 박명환 등과 까였다. 특히 박재홍의 인터뷰를 통해 본인들이 이사회에 참여도 안 해 놓고는 절차상에 문제가 있다는 핑계로 반대성명을 냈다는 사실이 밝히면서 더더욱 까였다. 결국 이들의 반발로 박충식을 포함해 다른 후보를 추천받아 투표로 뽑기로 결정되었으나 박충식이 뽑혔다.

그리고 이때 현재윤은 양준혁을 후보로 추천했으나 양준혁은 단 한 표도 받지 못했다. 양준혁을 후보로 민 현재윤도 양준혁을 뽑지 않은 것. 애먼 선배의 이름을 끌어들인 데다가 그마저도 물먹였다. 또한 애초에 사무총장으로 선임된 박충식도 삼성 선배.

무노조 원칙을 강경하게 밀고 나가는 삼성그룹의 특성상 선수협 개입과 선배 둘을 물을 먹인 덕에 프런트에 찍혀서 활동하지 못했다는 설도 있다.
[1] 여담으로 현재윤은 79년생, 박기남은 81년생.[2] 현재윤은 신일고 출신이기도 하고 원래 LG 광팬이었던지라 LG 트윈스의 지명을 바랐다는 말이 있었다.[3] 이 해 올스타전이 그 유명한 LG 트윈스 VS 동군 올스타 경기. 이때 포수부문에 뽑혔으나 이 부상으로 김태군이 나갔다.[4] 여담으로 손승락을 상대로 2루수 뜬공으로 물러나며 14시즌 LG 트윈스의 마지막 타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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