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 1/1982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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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2년 그랑프리[편집]
1982년 포뮬러 원 시즌은 33번째 FIA 포뮬러 원 시즌이다. 이 시즌은 1월 23일 남아공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9월 25일 시저스 팰리스 그랑프리까지 총 16경기로 치러졌다. 이 시즌은 굿이어, 미쉐린, 피렐리, 에이본 러버가 타이어를 공급하였다. 페라리가 팀의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우승을 거두었고, 케케 로즈버그가 드라이버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였다. 디디에 피로니가 2위, 존 왓슨이 3위를 차지했다.
당시 F1 최고 스타 중 하나였던 질 빌르너브가 벨기에에서 요헨 마스와 충돌해 사망한다. 피로니가 독일 GP에서 양다리가 모두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고 시즌아웃을 당했는데 안 당했을 경우 챔피언이 될 가능성이 엄청나게 높았지만 결국 2위로 밀려났다. 피로니는 이후 다시는 F1에서 뛰지 못하게 된 뒤 1987년 파워보트 레이싱을 하다가 또 사고를 당해 사망한다.
1.1. 1982년 라인업[편집]
- 시즌 개막일 기준.
- 굵은 글씨는 소속을 옮긴 드라이버 또는 신인 드라이버
1.2. 1982년 캘린더[편집]
2. 경기 결과[편집]
2.1. 1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GP[편집]
그랑프리 시작 전, 수퍼라이선스에 대한 규정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드라이버들이 파업을 선언하는 사태가 있었다. 드라이버들이 새로운 규정에 불만을 가진 부분은 크게 세 가지였는데, 한 팀에 3년동안 있어야 하고, FISA를 비판해서는 안 되며, 개인적인 재정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 조항이었다. 드라이버들은 이로 인해서 새로운 계약이나, 돈을 더 받을 수 있는 계약을 하지 못하게 되어 파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드라이버들은 돌아와서 연습을 재개했으며, 그랑프리는 예정대로 진행되게 되었다. 니키 라우다와 존 왓슨은 연습 중 트랙에서 이탈하는 사고를 겪었지만 큰 문제 없이 결선에 참가하게 되었다.
고지대에 있는 캴라미 서킷 특성상, 터보엔진을 사용하는 차가 유리했고, 예선 1위부터 6위에는 모두 터보엔진을 사용한 드라이버들(아르누, 피케, 빌르너브, 파트레제, 프로스트, 피로니 순)이 위치했다.
경기 시작 후, 르노의 아르누와 프로스트가 좋은 스타트를 보이면서 1, 2위를 차지한다. 그 뒤를 페라리의 빌르너브와 피로니가 쫓는 양상이 계속되었다. 오셀라 팀의 장 피에르 재리어는 첫 랩을 다 돌기도 전에 사고로 리타이어한다.
이후 브라밤의 넬슨 피케가 브레이크 문제로 사고를 내며 리타이어한다. 로터스의 나이젤 만셀도 리타이어. 빌르너브의 차에서도 엔진 문제로 연기가 나면서 리타이어한다. 15랩째, 프로스트가 아르누를 추월한다. 파트레제도 리타이어.
41랩째, 프로스트가 문제가 있는지 느리게 달리면서 수많은 차들에게 추월을 허용한다. 설상가상으로 왼쪽 뒷타이어까지 터지면서 피트로 들어간다. 다시 1980년 우승자 아르누가 리드를 차지하고, 1981년 우승자 레우테만이 2위로 올라선다. 프로스트가 경기에 복귀하지만, 7위로 떨어진다.
68랩째, 추월을 거듭한 프로스트가 다시 경기의 리드를 잡는다. 프로스트 - 레우테만 - 아르누 - 라우다 - 로즈버그 - 왓슨 순으로 체커기를 받아 경기가 끝난다.
2.2. 2전 브라질 GP[편집]
2.3. 3전 미국 서부 GP[편집]
경기 전, 카를로스 레우테만이 충격적인 F1 은퇴를 선언하며 윌리엄스를 떠나게 되었다. 영국 - 아르헨티나 간의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한 정치적 긴장감으로 F1을 떠나겠다고 한 것이었다.[3] 그의 자리는 이번 경기 한정으로 챔피언 출신인 마리오 안드레티가 대신하였다.[4]
안드레아 드 체사리스가 깜짝 폴 포지션을 차지한 이 경기에서, 3년만에 F1에 복귀한 니키 라우다가 시즌 3경기째만에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경기로, 라우다는 챔피언십 선두 알랭 프로스트를 6점차로 추격하게 되었다.
2.4. 4전 산 마리노 GP[편집]
페라리 듀오가 원투피니쉬를 차지하며 이번 시즌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하였다.[5] 알보레토는 3위로 완주하여 본인의 F1 데뷔 첫 포디움을 장식하였다.
2.5. 5전 벨기에 GP[편집]
예선 세션 당시 빌르너브의 팀메이트였던 피로니가 그보다 0.1초 더 빠른 6위를 랭크하고 있었고 빌르너브는 이를 단축하기 위해 그의 마지막 플라잉랩에서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던 상황이었다.[6] 예선이 8분이 남은 시점에서, 6번 코너를 지나고 있던 빌르너브의 앞에는 속력을 크게 줄이며 달리던 요헨 마스가 있었고, 마스는 그를 비켜주기 위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임을 가져갔다. 빌르너브가 이를 보고 오른쪽으로 피하였으나 워낙 빠른 속도였던지라 마스의 오른쪽 리어를 들이받았고[7] , 빌르너브의 차량이 100m가량 날아올랐다. 빌르너브는 차에서 튕겨져 나와 차보다 50m가량을 더 날았고, 7번 코너의 펜스에 내리꽂히고 만다.
뒤에 따라오던 몇몇 선수들이 그를 향해 달려갔고, 존 왓슨과 데릭 워윅이 그를 구조하기 위해 그의 몸을 당겼으나, 그의 얼굴은 창백하였다. 이후 급히 병원에 후송되었으나 중요한 목 부위에 대량의 뼛조각들이 발견되었다. 그의 아내가 병원에 도착하여 급히 병문안을 왔으나, 사고 당일 오후 9시 12분에 사망하고 말았다. 향년 32세. 당시 캐나다 언론과 F1 팬들과 관계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 사고로 스쿠데리아 페라리와 디디에 피로니는 벨기에 GP 레이스를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1950년 프랑스 GP 이후 처음 있는 일이며, 이후의 모나코와 디트로이트 GP에서 페라리 팀에서는 피로니만 출전하였다. 레이스는 존 왓슨이 우승하였고, 케케 로즈버그가 2위, 니키 라우다가 3위로 완주하였으나 차체 중량 미달로 실격처리되어 에디 치버가 본인의 F1 통산 첫 포디움을 달성하였다. 이 경기로 존 왓슨이 리타이어한 챔피언십 선두 알랭 프로스트를 1점차로 추격하게 되었다.
2.6. 6전 모나코 GP[편집]
르네 아르누가 폴 포지션을 차지하고 레이스 초반을 리드하였으나 14랩 째에 13-14번 시케인에서 스핀으로 시동을 꺼먹으며 리타이어한다. 뒤따르던 알랭 프로스트가 새로운 레이스 리더가 되었고, 레이스 후반까지 선두를 유지하며 시즌 4승째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73랩 째에, 터널을 빠져나와 누벨 시케인을 통과하고 불규칙한 노면에서 컨트롤을 잃고 벽에 충돌하며 리타이어한다. 챔피언십 포인트에서 2위 존 왓슨과의 차이를 더욱 벌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가운데 다시 레이스 리더는 파트레제에게 돌아갔다. 이 경기를 본 많은 이들은 파트레제가 F1 데뷔 첫 우승을 이 경기에서 손쉽게 가져가리라 예상하였다. 2바퀴를 남긴 75랩 째에, 파트레제가 그랜드 호텔 헤어핀을 들어서는 순간 리어 그립을 잃었고, 그대로 스핀하며 많은 시간 손해를 입었고, 그 사이에 제법 멀리 뒤에 위치한 디디에 피로니가 레이스 리더가 되었다. 이대로 피니쉬 라인을 향해 달리며 새로운 챔피언십 리더가 될 것이라 많은 이들이 예상하였다. 하지만 반전은 아직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랩에 돌입한 피로니가 터널을 들어서자마자 연료가 모두 소진되는 일이 발생하였고(...) 멀찌감치 뒤에서 첫코너를 지난 안드레아 드 체사리스가 드디어 데뷔 첫 우승을 가져갈 것처럼 보였다. 운명의 장난인지, 체사리스도 피로니를 추월하기 전에 연료 소진으로 리타이어하였고
2.7. 7전 디트로이트 GP[편집]
2.8. 8전 캐나다 GP[편집]
2.9. 9전 네덜란드 GP[편집]
2.10. 10전 영국 GP[편집]
2.11. 11전 프랑스 GP[편집]
2.12. 12전 독일 GP[편집]
2.13. 13전 오스트리아 GP[편집]
2.14. 14전 스위스 GP[편집]
2.15. 15전 이탈리아 GP[편집]
2.16. 16전 시저스 팰리스 GP[편집]
3. 챔피언십 포인트 순위[편집]
3.1. 드라이버 포인트[편집]
3.2. 컨스트럭터 포인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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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후 시즌 중 포드 코스워스 엔진으로 변경[2] 3년만의 F1 복귀[3] 그러나 당시 치프 디자이너였던 패트릭 헤드는 레우테만이 이미 F1에 대한 동기부여를 잃었다고 인터뷰하였다.[4] 5라운드부터는 데릭 데일리가 대신하였다.[5] 안타깝게도 이 경기는 빌르너브의 마지막 포디움이 되고 말았다.[6] 혹자는 빌르너브가 피로니와의 불편한 일로 인해 사고가 일어났다고 말한다. 2주 전이었던 산 마리노 GP에서 피로니는 빌르너브를 추월하지 말라는 페라리의 팀 오더를 받았으나, 피로니는 이를 무시한 채 그를 추월하여 0.3초 차로 우승을 차지하였다.[7] 이 때의 속도가 약 200~225km/h였다.[8] 연료 소진으로 리타이어[9] 연료 소진으로 리타이어[10] 12R(독일 GP) 예선 도중, 데릭 데일리의 차를 들이박는 사고로 두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이 사고로 그는 F1에서 강제 은퇴를 하게 되었다.[11] 시즌 5경기를 남겨두고 챔피언을 달성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그에겐 아쉬운 순간이었다. 5경기 이후, 그는 케케 로즈버그에게 5점차로 챔피언 자리를 헌납하게 되었다.[12] 8R(캐나다 GP)에서 스타트 직후 엔진이 스톨된 페라리의 피로니의 차를 180km/h의 속도로 들이받았다. 심각한 가슴 부상과 함께 차 안에서 의식을 잃었던 상황에서, 설상가상 차에 불이 붙어 버렸다. 그를 차에서 꺼내는 데에만 25분이나 걸렸고, 이미 그의 상태를 확인하였을 때는 심장박동이 뛰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13] 당시 메인 그랜드 스탠드(관중석)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중이었다. 아들의 24번째 생일을 앞두고 관전하게 되었으나, 참혹한 광경을 맞이하고, 이는 모든 이들의 슬픔을 자아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