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베트남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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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2.2. 현대
2.2.1. 라이벌 의식
2.2.2. 스포츠
2.2.3. 교류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태국베트남의 관계. 현대에는 더 이상 국경이 붙어있지 않지만 거리상 가까운 양국간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다. 문화적으로도 서로 상반되는 면이 많다. 베트남은 유교, 도교, 대승 불교, 한자 문화권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태국은 전형적인 상좌부 불교 문화권으로 베트남보다 인도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현대 이전[편집]


역사적으로 태국은 동쪽북쪽으로 베트남은 남쪽으로 진출해 왔는데 결국 이들은 19세기라오스캄보디아 지역에서 충돌해 이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계속 싸웠다. 그 와중에 라오스와 캄보디아에게서 땅을 뜯어 넓힌 건 덤. 이 와중에 베트남뿐 아니라 태국도 프랑스의 압박으로 한두 걸음 물러섰다. 나라 자체가 살아남았느냐 병합당했느냐 여부는 별론으로.[1][2]


2.2. 현대[편집]


현대에 와서도 태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베트남 공화국과 수교하고 베트남 전쟁 때 남베트남 측으로 태국군을 파병했다. 태국은 남베트남을 베트남의 합법정부로 인식했기에 북베트남을 국가로 인정조차 하지 않았다. 남베트남의 공산화 이후 양국간의 관계는 끊어졌고, 캄보디아를 점령한 베트남과 태국간의 국경분쟁까지 일어났지만, 1987년 베트남의 개혁개방으로 대외 관계를 개선하면서 다시 수교했다.


2.2.1. 라이벌 의식[편집]


역사적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의 패권을 두고 경쟁해봤으며, 또한 거리가 가깝고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영토/인구 규모가 가장 거대한 나라들이며, 산업 구조까지 비슷해서 왠지 라이벌 같은 느낌이 강하지만, 사실 국력과 경제력에서는 태국이 베트남을 압도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산업 구조 특성상 자체적인 대기업을 성장시키기보다는 해외의 글로벌 기업의 생산기지를 유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역사도 수도 태국이 베트남을 압도적으로 상회한다. 다만 베트남이 인도차이나 반도 넘버원의 인구 대국에 경제 성장률도 동남아 최상급이라 태국으로서도 베트남의 체급에 위협을 느끼는건 사실이긴 하다. 보다 자세한 건 태국/경제, 베트남/경제 문서 참고.

베트남은 2000년대에 들어서야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계 기업과 일본/중국/대만/싱가포르계 기업 등이 일부 진출했고 영향력을 넓히고 있지만, 삼성전자의 경우를 제외하면 아직 태국만큼 절대적인 규모가 크지도 않고 그것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만큼 오래되지도 않았다. 반면 태국은 오래 전부터 글로벌 기업들의 동남아 기지 역할을 해 왔고 그 분야도 경공업부터 첨단 산업까지 폭넓다. 특히 일본이나 대만과의 연대가 깊고 견고한데, 단순히 공장 세우고 부품 조립 시키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생산 라인 자체를 이전해서 현지의 전체적인 노동의 질 향상에도 투자하고 있다.

최근에는 태국의 기술력이 올라오자, (엔트리급 제품에 한정되지만) 자국의 내수용 모델까지도 태국에서 역수입 해오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닛산 마치가 대표적인 예. 베트남이 더 많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총 GDP는 태국의 반 밖에 되지 않으며, 1인당 GDP는 3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인구의 이동(유학, 노동 등)도 태국→베트남보다는 베트남→태국이 훨씬 많다. 노동의 경우, 학력이나 경제력의 문제로 일본, 한국, 대만 등에 가지 못 하는 베트남인들이, 그나마 비자를 받기 쉬운 태국에서 3D 업종이나 단순 노동에 종사하기도 한다.

베트남인이 태국까지 가서 3D 업종에 종사한다는 게 이상해보일 수도 있다. 태국인들이 아시아 선진국인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에서는 낮은 인건비가 드는 외국인 노동자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인도차이나에서 태국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의 주변 개도국들에게는 기회의 땅 취급을 받고 있다. 물론 이것은 태국이 절대적으로 잘 살기 때문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의 나라들이 대체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편이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인 관광객 수나 국제교류 역시, 태국이 국제적인 인지도도 더 높고 방문객도 훨씬 많다. 베트남도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받으며 관광객이 연간 꾸준히 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애초에 태국은 방문객수, 관광수입으로 보았을 때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관광대국이며, 연 관광수입도 베트남을 비롯한 베트남을 포함해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폴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압도한다. 따라서 태국의 국제선 노선 수와 취항지부터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3]

국가 GDP가 높다보니 자연스레 공공 인프라, 교육, 의료, 사회복지, 문화컨텐츠 산업[4] 등에서도 베트남을 압도한다. 그래서 베트남인들은 태국을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의 태국인들은 베트남을 인구만 많은 후진국으로 생각한다. 정작 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라이벌로 느끼는 나라는, 1인당 GDP를 1만 달러를 넘겨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넘어갈 기미가 보이는 말레이시아이다.

다만, 치안과 정세 안정 면에서는 베트남이 더 나은 편이다. 소매치기, 사기 등 경범죄는 다소 있지만, 공산당과 공안의 강력한 통제 덕에 테러, 총기사건 등 중범죄는 전무하며, 쿠데타는 일어날수 조차 없어 되려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편이다. 베트남은 코로나 이전 싱가포르와 함께 동남아시아에서 전 국토에 여행경보가 발령되지 않은 유일한 국가 였다. 태국 역시 세계 최대 관광국가 답게 치안이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가끔 테러 사건이 발생하며, 총기 사고도 난다. 2015년에는 방콕 도심에서 테러가 일어나 많은 충격을 주기도 했다. 쿠데타 역시 수시로 일어나며, 정세가 불안정하다. 태국/정치 참고. 특히,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접한 태국 남부 분쟁지역은 출국권고가 발령되었을 정도로 치안이 좋지 않다.

태국과 베트남의 국력의 차이는 양국이 처했던 역사적 상황에서 어느 정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베트남의 경우 1945년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 전쟁으로 30년간 전쟁을 겪으며, 온 국토가 쑥대밭이 됐고 종전 이후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다가 80년대 후반에야 도이머이 정책을 써서 개혁/개방을 한 반면[5], 태국은 세계 1차 대전 시기에도 전쟁은 커녕, 식민지배도 받지 않았고 그로 인해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순차적인 발전이 가능했으며[6][7],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미국의 베트남전 병참기지가 되어 적지 않은 원조를 받았으며, 안그래도 2차대전 이전 일본과의 친밀한 관계가 대전 이후에도 유지되면서 활발히 경제협력을 하게 되었다.[8][9]

한편 미래의 성장 가능성 측면에서 볼 때는 태국보다 베트남이 더 큰 성장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고 있고 경제성장률도 베트남이 훨씬 높다. 베트남은 인도네시아와 함께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경제성장률이 높은 국가이지만, 최근 태국은 큰 경제성장 없이 중진국 함정에 빠져있고, 저출산 고령화 현상,[10] 도농간 심각한 빈부 격차가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정치적 불안정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1억 명의 내수시장[11]과 젊은 연령층이 많은 베트남 인구시장이 더욱 각광받는 것은 당연하다.[12]


2.2.2. 스포츠[편집]


틈만 나면 축구로 투닥투닥하고 디스전을 벌이지만 그동안 태국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월드컵 예선, 아시안컵, 스즈키컵, 올림픽 예선, SEA GAMES 등등 뭐 하나 태국 압살이 아닌 게 없다. 때문에 베트남의 태국 디스는 별 효과 없었다가 2018년부터 박항서 감독의 지도 아래 베트남이 고속으로 치고 올라가고 태국이 반대로 내려가며 역전 당했다. 이 점은 현재 태국 축구계와 팬들도 어쩔 수 없이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이 완전히 태국을 상대로 역전시켰다고 보기엔 시기상조인데, 2018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이후 출전한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연전연패해 탈락이 거의 확실시되었고 2021년에 치러진 스즈키컵에서 인도네시아에게 조1위를 빼앗기는 바람에 조2위로 4강 토너먼트에 진출해 태국을 만났고, 결국 태국에게 한 골도 넣지 못하고 1,2차전 도합 스코어 2-0으로 완벽하게 제압당했다. 이어진 결승전에서 태국은 인도네시아를 도합 스코어 6-2로 완파하면서 다시 동남아시아의 절대자로의 귀환을 알렸다.

또한 박항서의 베트남 감독으로서 마지막 경기였던 2022 AFF 미쓰비시전기컵 결승전에서도 태국을 만나 1, 2차전 합계 2-3으로 패하며 우승컵을 내주었다. 이후 베트남 축구의 비상을 이끌어낸 박항서 감독 역시 떠난지라 앞으로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 하다.

2.2.3. 교류[편집]


사이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두 국가로써, 서로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으며 인적/문화적/경제 교류도 매우 많은 국가이다. 베트남의 경우 대부분의 공항에서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는 몰라도, 태국행 노선은 꼭 찾아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태국의 많은 공항에서도 베트남행 노선을 찾아볼 수 있다. 당장 2019년 기준 베트남 방문객 국적 순위를 보면, 7위가 태국인인데,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1위다.

3. 관련 문서[편집]



[1] 베트남은 전체가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태국은 영국-프랑스의 완충지대로 삼기 위해 독립이 유지되었다. 여기까지는 당연 식민지보다 독립국이 나을 수 있겠지만 독립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에게는 라오스와 캄보디아에게서 삥 뜯은 땅을 모두 프랑스에 내어줘야만 했으며 남아있는 독립국 태국은 비록 명목상 독립국이지만 영국의 강한 입김 하에 있었다. 당연 베트남은 식민지에서 독립한 이후 과거의 영토를 다 되찾을 수 있었지만 태국은 프랑스에게 내어준 땅이 라오스와 캄보디아 영토로 되는 바람에 돌려받지 못했다.[2] 세계사적으로 이런 경우는 많다. 아예 1개 국가의 식민지였으면 그 영역 그대로 보존하면서 독립한다. 심지어 식민 모국이 관리의 편의를 위해 원래대로라면 2~3개의 국가인데 이를 하나로 합쳐 식민지화 해서 독립할 때 거대한 하나의 국가로 독립하는 경우도 있다.(물론 이 경우에는 한개 국가에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으로 시끄러운 경우가 많긴 하다.) 반면에 여러 나라의 식민지로 분할되는 바람에 독립할 때도 원래 영토의 일부만 독립하던가, 민족적으로 1개의 국가였는데 서로 다른 식민 모국의 영역대로 복수의 국가로 분할, 독립하는 경우도 있다.(이 경우에는 그냥 평화롭게 갈라지던가, 그런 국가들끼리 분쟁으로 폭력적인 방법으로의 통일을 이루던가 하는 문제가 있다.)[3] 각국 최대 규모 공항인 태국 방콕의 수완나품 국제공항과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의 규모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다만 두 국가 모두 동남아시아라는 지리 특성상, 항속거리로 인해 미주 노선은 전무하다. 애초에 방콕 수완나품 공항은 싱가포르 창이 공항,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과 함께 동남아시아의 주축 허브 공항으로, 아메리카를 제외한 모든 대륙에 취항한다.[4] 태국 영화베트남 영화 항목 참고.[5]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은 패배했지만 종전 직후부터 공산 베트남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작해 경제를 압박했다. 당연 제1세계 국가들은 베트남에 투자를 할 수도 없었다. 이러다 결국 두발 세발 다 든것이 도이머이 정책, 아직 소련이 건재하고 동유럽의 민주화나 독일의 통일 등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베트남은 서방에 두손을 든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서방권에는 눈치를 보느라 베트남에 투자를 미뤘고 공산권의 붕괴가 도미노처럼 일어난 199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조금씩 투자를 했었다.[6]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국가였다. 다만, 식민지배만 받지 않았을 뿐, 영국과 프랑스에게 일부 영토 할양, 근대화 등 간섭은 받았다.[7] 이는 태국사상 최고 위인인 쭐라롱꼰 대왕의 공이 크다. 태국/역사 문서 참고.[8] 그래서 태국을 연합국 진영이 아닌 추축국 진영에 넣는다. 2차대전 직후 인도차이나 전쟁, 그로 인한 베트남의 공산주의 분위기에서 제1세계가 자기 진영에 태국을 넣기 위해 일본에 협력한 시절을 눈감아 주다 보니 그런 사실을 많이들 모르는 것이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태국은 1960년대 이래로 일본과 친하고 일본의 동남아 투자가 본격화된 1970년대 이후 수많은 투자를 받았다.[9] 한국이 베트남에 많이 투자하는 이유 또한 이런 배경이 있는데, 이미 일본이 수십년전 부터 태국을 위시한 동남아 국가에 크게 투자해서 나름 인맥 등을 크게 갖추다 보니 뚫고 들어갈 빈 틈이 없는 것이다. 반면에 베트남은 미국의 견제로 인해 도이머이 초기까지도 자본주의 국가들의 투자가 없는, 다시 말하면 무주공산이라 모두가 다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하다 보니 모든 제1세계 국가들이 동등한 출발점에서 투자할 수 었었던 것이다.[10] 베트남도 슬슬 저출산 고령화 현상을 경계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서긴 했으나 발전이 늦은 만큼 아직까진 태국보다 양호하다.[11] 태국은 7천만 명.[12] 기본적으로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한자 문화권, 유교 문화권이라 동아시아 국가들과 정서적으로 비슷하여 연관성이 크다. 이런 분위기 하에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이면서 ASEAN 국가지만 은근히 동아시아 국가와 같이 놀려고 하고 있다. 반면에 태국은 특유의 불교 사상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국민들이 소위 '죽어라 노력해서 신분상승을 하자' 같은 경쟁적인, 동아시아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자신의 위치에서 안분지족하고 내세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2차대전에 패전하여 망했지만 머지 않아 선진국으로 올라온 일본이나,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지만 한강의 기적으로 올라온 한국이나, 그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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