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유토피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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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평가
3. 호평
3.1. 블랙 코미디와 인간군상 묘사
3.2. 연출
3.3. 음향
3.4. 절제된 묘사
3.5. 입체적이고 설득적인 캐릭터와 연기
4. 혹평
5. 평론가 평



1. 개요[편집]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평가를 정리한 문서.


2. 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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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완성도와 작품성은 모가디슈, 헤어질 결심 등과 더불어 펜데믹 이후 개봉한 한국 영화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하다는 호평을 받고 있고 남산의 부장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헤어질 결심, 모가디슈 등과 더불어 평론가들의 평가가 매우 좋은 편이다. 다만 디스토피아 사회 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성과 전반적으로 표방되는 어두운 분위기로 인해 대중성이 비교적 낮아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는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실제로 평론가층이나 영화 매니아 위주로 구성된 커뮤니티에서는 빅 4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멀티플렉스 실관람객 평점은 밀수, 비공식작전보다 낮고 더 문보다는 높은 3위에 위치해 있다. CGV 골든 에그 지수와 메가박스 평점을 비교했을 때 밀수는 93%/8.8점, 비공식작전은 95%/8.8점, 더 문은 85%/8.4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88%/8.6점. 다만 플랫폼 차이가 큰 편인지 씨네21, 네이버 영화, 다음 영화 등에서의 관람객 평점은 빅4 중 가장 높다.

평점의 추이도 개봉 첫날 오전에는 CGV 골든 에그 96%, 메가박스 9.1점으로 스타트를 끊었으나 개봉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골든 에그는 80% 후반, 메가박스는 8점대 중반에 머물러 있다. 개봉 첫날 오전 평점은 시사회나 개봉 전 무대 인사, GV 등으로 미리 본 관객과[1] 개봉일 1회차를 선점한 관객으로 구성되어 있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대중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관객들의 평일 가능성이 높고, 이후 일반 대중들의 평점이 섞이며 평점이 점차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 웬만한 작품성 위주의 영화도 이 정도로 관객 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다.[2]


3. 호평[편집]


긍정적인 의미로 전형적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물 영화이며 극을 이끌어 가는 주조연들의 연기력이 훌륭했고 흑백 처리된 롯데엔터테인먼트 로고로 시작해 과거 아파트의 탄생과 유행, 그리고 빼곡히 들어선 현재의 아파트 단지의 모습으로 이어져오는 오프닝 시퀀스도 압권이었다는 평이다.[3]


3.1. 블랙 코미디와 인간군상 묘사[편집]


대규모 재난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이 만들어 내는 어두운 분위기를 현재의 한국 사회에 빗대어 충격적이고도 훌륭하게 표현해 냈다. 초반에 언급되는 아파트의 계급화 문제와,[4] 이러한 계급화가 지진으로 인해 정반대로 뒤집혀지자 결국 주민들과 외부인 사이에 계급을 나눠 그들을 배척하고 선민의식을 갖는 모습은 배척과 갈라치기가 발생하는 현대 사회를 돌이켜 보게 만드는 요소이다.

황궁아파트 입주민들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감안해도 이기적인 선택들과 점점 인간성을 잃어간 행보 끝에 결과적으로 주인공이 공동체를 이탈하는 결과를 낳게 되는데 여러 부분에 있어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황궁아파트 속 입주민 공동체는 영화 '미스트'의 슈퍼마켓 내 생존자 공동체를 연상하게 하는 면이 있다. 이 과정에서 외부인 신분의 영탁이 정체를 숨기고 주민 대표를 맡게 되면서 주민들이 영탁에게 의존적이 되는 동시에, 갈수록 외부인을 배척하고 점점 더 폭압적으로 되어 가는데도 자신들의 방식이나 방법론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뿐더러 못하게 막는 점. 애당초 자가 생산이 불가능한 환경인 탓에 황궁아파트 103동 외의 것들을 탐색하며 발견하고 가져오다가, 약탈로 변질되는 부분들을 합리화하는 인지왜곡적 사고와 집단적 폭력이 점차 강화된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은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감독의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고 이를 다루는 능력 역시 신인 감독답지 않게 뛰어나다는 평을 내린다. 기생충, 괴물 등과 마찬가지로 초반에는 다소 웃긴 장면들로 분위기를 풀다가 중반부터 조여 오기 시작하며 '뒤틀린' 분위기를 주는 블랙 코미디적 전개가 높게 평가되었다. 결말도 봉준호의 이 영화이 영화의 결말을 순차적으로 연상시킨다.


3.2. 연출[편집]


전술했듯 봉준호, 박찬욱과 비슷한 부분들이 보인다. 엄태화 감독은 박찬욱의 연출부 출신으로 박찬욱 감독의 제자인데, 이 때문에 영화의 연출과 미장센 등의 처리는 매우 큰 강점으로 다가온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필요한 장면에서 과감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대사는 봉준호를, 영화 안에 숨겨놓은 상징과 복선, 화면 전환과 수직적 구도 사용 등의 영상 미학은 박찬욱을 연상시킨다.

배경도 호평이 많다. 무너져버린 아파트들 사이에 혼자 남아버린 한 채의 아파트 외에도,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 무너진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물이 말라 버린 한강 등 도심 한가운데서 재해가 일어났을 때 어떤 모습일지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이 중 최고봉은 엔딩 시퀀스에 나오는 옆으로 뉘어진 아파트.[5] 이를 표현하는 컴퓨터 그래픽 역시 어색한 장면이 없이 뛰어나고, 분량의 아쉬움은 있을지언정 재난 장면 역시 CGI 그래픽 묘사는 뛰어나 호평받았다.


3.3. 음향[편집]


사용된 음악 역시 영평상에서 매우 드문 사례인 독립영화로 음악상을 수상한 김해원 음악감독의 실력이 제대로 발휘되었다. 이번이 첫 상업영화 음악감독인 만큼 음악 스타일도 전반적으로 일반적인 상업영화와 다른 스타일을 보이는데, 가장 압권은 아파트 정비 사업을 보여 주는 장면에서 삽입된 클래식 음악이다. 주민들이 웃는 장면은 모두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모습이지만 화면으로는 왠지 모를 불쾌감을 전달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 음악은 아름다운 성악가의 고음을 내지만 음정과 형식에서 왠지 모를 불쾌함을 느끼게 하며 음악과 화면의 일치를 상업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다. 오프닝에서 사용된 성가처럼 들리는 '즐거운 나의 집'과 그 이전 아파트의 역사를 보여 줄 때 사용된 빠른 비트의 음악도 호평.

음향도 품질이 좋다. 한국 영화에서 자주 지적받는 문제점이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인데,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경우 모든 인물들의 대사가 명확하게 들리는 편이다. 대사가 뭉개지기 쉬운 낮게 읊조리거나 속삭이는 장면, 분노하는 장면, 엑스트라들이 한 마디씩 거드는 장면까지 배우들의 발성과 적극적인 후시 녹음 사용을 통해 전달력을 높인다. 군상극 특성상 주연뿐만 아니라 조연과 엑스트라들의 대사도 잘 들려야 하고 필요할 땐 사람이 많아도 주연의 대사만 들리게 처리해야 하는데 이 점을 잘 고려한 편집. 비단 대사뿐만 아니라 Dolby Atmos가 적용된 상영관의 경우 지진 장면이나 단체 격투 장면에서 입체감과 초저음이 훌륭하게 전달된다.


3.4. 절제된 묘사[편집]


한국의 영화, 드라마는 등장인물들이 사소한 일에도 고함을 지르거나 물건을 망가뜨리는 등의 감정 과잉이 지적을 받았다. 자세한 건 막장 드라마/특징 문서 참고.

그러나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생존자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그렸기 때문에 살인, 폭력 등의 수위 높은 사건이 많지 않으며 있더라도 직접적인 묘사를 배제하고 관객들의 상상에 맡겼다. 가짜 김영탁이 진짜 김영탁을 죽이는 장면은 그림자로만 연출되었고, 도균이 자살했을 때에도, 혜원이 쓰레기장에 떨어졌을 때에도 시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3.5. 입체적이고 설득적인 캐릭터와 연기[편집]


군상극을 휼륭하게 연출했다. 작품 속 주조연 캐릭터들 모두 행동의 동기가 충분히 설득됨은 물론 해당 상황에서 이 캐릭터라면 이런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잘 되는 편이다. 극한의 재난 상황 때문에 기존 질서가 유지하고 있던 선악과 도덕 개념이 무너진 상황에서 단 하나의 캐릭터들도 무조건 응원하기도 비난하기도 애매한 상황들이 전개된다. 보통 호평받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의 경우 군상물로서의 자격을 훌륭하게 갖춘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하다. 주연부터 조연까지 모든 인간군상들이 정말로 있을법한 인물들이며 만화 같이 과장되거나 허구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됐다는 평가가 많다.

디스토피아 장르에서 자주 지적받는 이해가 안 될 수준으로 극단적인 악인의 행동 양상과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성자와 같은 선인이라는 클리셰적 문제를 깨버렸다. 영화 속에서 악인에 가깝게 나오는 김영탁(이병헌 분)과 김금애(김선영 분)는 소시오패스적 행보를 보임에도 디스토피아 특유의 부패한 지도자가 아닌 소시민적으로 시작한 행보에서 점차 감화되는 양상을 보이며 그들의 판단들 하나하나도 악한 것은 맞으나 극단적인 수준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행동들을 보인다. 비록, 외부인 색출 등 굳이 할 필요가 없는 독재자적 행보로 긁어 부스럼을 내기도 했지만 이 상황에서는 저런 캐릭터라면 이렇게 하겠다 라는 개연성적 측면에서 문제가 없는 스토리텔링을 배경으로 두고 있다. 선역에 가깝게 나오는 주명화(박보영 분)와 도균(김도윤 분) 은 인간성을 유지하며 이타주의를 보여주며 다른 영화에서 지적받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선인이 아니라 오히려 영화의 현실적인 선인으로 입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영탁, 금애 역시 인간적 행보를 보여주는 부분들과 명화 역시 다른 인물들처럼 선을 넘은 부분들이 나오는 등 작품에서 주려는 메세징을 명화, 도균, 혜원의 '인간이 인간에게 그러면 안된다'에 맞추면서도 '절대적인 선인'/'절대적인 악인'으로 비춰지지 않는 우리네 인간 군상임을 최대한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에서 명화가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라는 말이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이병헌의 연기에 대한 호평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병헌의 경우 상당히 많은 관객들이 연기력을 호평할 정도로 높은 연기 완력을 보여줬다. 더불어 이런 이병헌의 연기에 묻히지 않게 조연임에도 시종일관 영탁에 가까운 입장을 내며 조곤조곤 말하다 마지막에 입장을 바꿔 악을 지름에도 그 감정과 처절함이 전달될 수 있게 연기한 김선영, 공동체의 피해자가 되어버렸지만 끝까지 목소리를 내는 캐릭터성을 내며 특유의 깊은 발성으로 호소력 있는 연기를 한 김도윤, 갈팡질팡하는 연기를 잘 보여준 박서준, 명화의 캐릭터성을 잘 보여주며 엔딩을 장식한 박보영 등 배우들의 연기력들이 호평 받고 있다.


4. 혹평[편집]


재난물이라기보다는 한국에서는 많이 도전되지 않았던 포스트 아포칼립스 /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작품이라 재난물인 줄 알고 봤던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나서야 다른 장르라고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작중에서 재난은 정말 난데없이 재난이 일어났다 하고 넘어가는 수준이며, 김영탁의 회상 장면에서 유성우 관련 언급이 나오는 것으로 '유성이 충돌해서 일어난 재난이구나' 정도로만 암시된다. 땅이 쓰나미마냥 흔들리면서 사람들을 덮치고, 그 큰 한강이 통째로 없어져버릴 정도의 재앙으로 묘사된다. 영화상 몇 달이 지날 동안 구조대는 커녕 상황을 보도하는 외국 방송사의 헬기 같은 것도 전혀 없었으므로 대한민국 정부뿐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그럴 여력이 없는 세계멸망 상황을 묘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내에서 지진의 구체적인 발생 원인이나, 황궁아파트가 멀쩡한 이유[6]마저 다루지 않아 재난자체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폐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이는 원작인 유쾌한 왕따에서도 동일하며, 재난이 일어난 정확한 원인에 대한 접근 자체를 회피하고 의도적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의 인간 군상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재난 장면 자체도 지진이나 그 피해를 멀리서 고정된 샷으로 잡는 연출을 사용하여[7] 영화는 재난으로 일어난 피해 묘사에 더 집중한다.

아무래도 장르가 어두운 포스트 아포칼립스 디스토피아 장르다 보니 어느 정도 흥행할지 모른다는 의견이 있고, 비슷한 시기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특별관 메리트는 가장 떨어지는 편이다. 재난물적 요소를 배제한 사회 드라마라는 특성 때문에 IMAX 등의 큰 화면에서 봐야 하는 장면이나, 4DX 효과를 받는 장면이 매우 한정적이다. 특히 4DX의 경우 상술한 대로 모든 재난 장면이 회상으로만 등장하며 그마저도 한복판을 보여 주는 장면은 김민성이 겪는 짧은 시퀀스가 끝이라, 이 장면과 외부인 퇴출 장면의 집단 격투 외에는 유의미한 모션 효과가 적용된 장면이 없다시피 하고 거의 대부분은 먼지가 흩날릴 때 가스가 나오는 정도의 효과에서 그치기 때문에 상당히 밋밋하게 느껴진다. 사회 드라마 장르를 즐겨 보는 관객들은 4DX가 오히려 장면에 몰입을 깨는 역효과가 난다는 평을 내린다.


5. 평론가 평[편집]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 어디에나 있는 디스토피아

- 이우빈 (씨네21) (★★★★)


올여름 한국영화를 다시 사랑하게 만들 이름 ‘엄태화’

- 배동미 (씨네21) (★★★★)


거울을 보며 울어야 한다

- 이용철 (씨네21) (★★★☆)


아포칼립스의 신계급도와 인간성 말살, 관객의 수용도가 관건

- 임수연 (씨네21) (★★★☆)


재난 군상극의 피로를 씻어내는 유려한 완성도

- 김소미 (씨네21) (★★★☆)


잘 쌓은 아파트 한채, 천만 영화 안 부럽다

- 김철홍 (씨네21) (★★★☆)


이병헌의 최고 연기 중 하나가 아닐까.

- 이동진 (★★★)


자갈을 삼키다

- 박평식 (씨네21) (★★★)

[1] 개봉일 이전에 먼저 본 관객들 역시 상영 시간 종료 후 정상적으로 평점 등록이 가능하지만, 이들의 평점은 개봉 이전에는 표시되지 않고 정식 개봉 이후에 표시된다.[2] 그 예로 같은 해 8월 15일 개봉한 오펜하이머의 경우 대중성을 거의 배제하고 건조하게 연출된 전기 영화인데, 개봉 오전이 지날 때까지는 95%를 유지하다가 오후가 되면서 92%로 하락했고 메가박스 평점은 큰 차이 없이 유지되고 있다.[3]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며 잔잔한 분위기로 시작하다가 점차 현대로 배경이 넘어올수록 음악과 영상이 급박하게 변화하는 것이 소일렌트 그린의 오프닝과 상당히 유사하다.[4] 영화 초반에 황궁아파트의 옆 단지인 드림팰리스 주민들이 황궁아파트 주민들을 단지에 발도 못 붙히게 하고 학군 섞이지 못하게 배척했다는 언급이 나온다.[5] 아파트가 완전히 수평으로 뉘어졌는데 사람들은 여기에 사다리를 놓고 그대로 정착하고, 2층 이상(원래는 옆집)으로 넘어갈 때는 베란다 난간을 사다리 삼아 사용한다.[6] 개봉 전에 이루어진 씨네21 인터뷰에 따르면 황궁아파트 주변에 산이 있어서 다른 건물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와중에도 황궁아파트는 멀쩡했다고 언급했다. #[7] 지진 한복판을 보여 주는 장면은 초반 박서준이 맡은 김민성 캐릭터가 겪는 짧은 시퀀스가 끝이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폐허가 된 서울을 보여주고 시작하며 모든 지진 장면은 회상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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