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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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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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출생 및 성장
3. 판사 시절
4. 제24대 감사원장
4.1. 제20대 대권주자 거론
5. 정계 입문 이후
5.2. 대선 출마 선언 및 이후 행보
5.2.1. 8월
5.2.2. 9월
5.2.3. 10월, 컷오프
5.2.4. 경선 이후
5.3.1. 국민의힘 혁신위원회 위원장
5.3.2. 혁신위원장 이후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제24대 감사원장이자 국민의힘20대 대선 경선에 출마했던 최재형의 생애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출생 및 성장[편집]


1956년 9월 2일 경상남도 진해시에서 대한민국 해군 대령으로 예편한 아버지 최영섭과 어머니 하동 정씨 정옥경(鄭玉卿)[1] 사이의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경기고등학교(71회)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3년 사법연수원(13기)을 수료했다. 1983년 12월 10일 육군 군법무관으로 임관하여 제2군사령부에서 복무하였으며, 1986년 8월 31일 중위로 전역하여 병역을 마쳤다.

3. 판사 시절[편집]


1986년 서울지방법원 동부지원 판사로 임용된 후 1989년 서울민사지방법원 판사, 1991년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판사, 1993년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판사, 1994년 서울고등법원 판사, 1998년 서울지방법원 판사, 1999년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장, 2000년 사법연수원 교수, 2003년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2006년 대구고등법원 부장판사, 2006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2012년 대전지방법원장, 2014년 서울가정법원장을 지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에는 윤필용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 시절 군 쿠데타 모의 의혹에 연루돼 징역형을 선고 받은 전직 장성에게 강압수사로 인한 허위자백이었음을 인정, 무죄를 선고했다. 2011년부터 1년 6개월여 동안 서울고법 성폭력전담재판부 재판장 겸 형사재판연구회장을 맡아 성범죄 양형기준 등을 실무에 정착시켰다고 전해진다.

2011년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 재심사건을 판결했다.[2][3] 이때 재심청구인 유영수씨의 고초를 위로하였다고 한다.[4]

4. 제24대 감사원장[편집]



최재형 감사원장 후보자 국회 청문회

2017년 12월 7일 문재인 대통령에 의하여 감사원장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청와대는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하면서 감사 운영의 독립성·투명성·공정성을 강화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최 후보는 자신이 임명된 것에 "오래 법관 생활을 한 저를 후보자로 지명하신 데는 감사업무의 직무상 독립성·공정성을 강화하고 확립해야겠다는, 임명권자이신 대통령의 뜻이 담겨있는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청문 절차를 거쳐 감사원장으로 임명된다면 그동안 법관으로서 살아왔던 생활을 통해 쌓은 경험을 잘 살려 우리나라 공직사회가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12월 21일 인사청문회 당일 청문보고서가 문제없이 채택되었고, 29일에 열린 본회의에서 총 투표수 246표 중 가 231표, 부 12표, 기타 3표로 임명동의안이 가결되었다.#

2018년 1월 2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수여받고 본격적인 임기가 시작되었다.

감사원장 취임 후 원리원칙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관련 일화로 감사원에서 차량2부제 대처법으로 2대의 원장용 차량을 운용하는 것을 알고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타 부처에서도 애용하는(?) 관행이지만 최 원장은 정부나 지자체의 방침을 어기면서까지 별도 차량을 운행하는 건 일종의 꼼수라고 본 것이다. 최 원장의 이러한 행보와 '규정에 없는 것을 하지 말라.'는 지시로 감사원 1급 직원들이 관용차를 출퇴근용으로 사용하던 관례가 최근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직원들의 푸념이 늘었다고.*

감사원에서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 비상임직으로 임명된 문재인 대통령 측근들에게 법령과 다르게 자문료를 월급처럼 편법적으로 지급한 사실을 적발해내기도 했다.#

후임 감사위원 제청을 두고 청와대와 각을 세우는 바람에 9개월이나 감사위원 자리가 공백 상태로 놓여있었다. 당시 청와대는 김오수 검찰총장을 추천했고, 최재형 원장은 자신과 같이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가까운 사이인 판사 출신 특수관계인을 고집했다. 청와대는 이 인사가 최 원장의 특수관계인일 뿐만 아니라 주택 5채를 소유한 다주택자여서 인사검증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결국 2021년 1월 15일, 최 원장이 세월호 사고 당시 검사를 맡았던 조은석 변호사를 제청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재가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일부 언론들에서는 이를 보고 청와대와 감사원이 각각 뜻을 꺾고 타협한 결과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2021년 3월 5일, <에너지 전환 로드맵과 각종 계획 수립실태 감사 결과> 보고서 발표를 통해, 문재인 정부탈원전의 토대가 된 '에너지전환 로드맵' 수립에 대해 "위법하거나 절차적으로 하자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사항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해당 감사는 정갑윤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울산시민 547명의 동의를 받아 공익감사 청구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정 전 의원 측은 에너지기본계획에 맞춰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짜야 하는데, 순서를 바꿔서 한 것이 절차적으로 하자가 있으니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21년 4월에는 불공정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감사를 하였다. 이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다. 2018년 1월 문재인은 최재형 원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불공정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감사할 것을 당부했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지방자치 현장에서 얼마나 왜곡되고 있는지 감사하여 여러 건의 특혜채용을 밝혀내 이시종 충북지사에게 징계를 요구하기도 했고,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전교조 해직교사 특별채용을 적발해내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김어준-TBS 간 계약, 4대강 보 해체, 김해신공항 백지화 등과 관련해서도 감사 여부를 검토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4.1. 제20대 대권주자 거론[편집]



사의를 표명한 최재형 당시 감사원장

2020년 7월 29일 대정부질문에서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와 관련하여 백운규 장관과 대립하면서 야당 국회의원들로부터 대권주자감이라는 이야기가 처음 나왔다.[5]

2021년 5월 19일, 주호영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당 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당 밖의 유력 주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겠다"며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함께 최 원장을 야권 대선 주자로 이름을 거론했다. 하지만 최 원장 측 관계자는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선을 그었다.# 다른 평론가들도 본인이 정치일선에 나설 의지가 없으며 대선에 나선다 해도 감사원장 임기가 2022년 1월 2일까지인데 선거에 나가기 위해서는 공직을 사퇴해야 하므로 리스크가 클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과 부동산 정책 등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 겹치면서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가 다시 부각되며 윤석열검찰총장과 함께 지지를 받고 있다. 주변인들도 설득에 나서 본인 또한 7월쯤에 감사원장을 사퇴하고 대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국민의힘 역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 경우 이회창 이후 오랜만에 등장하는 감사원장 출신 대권주자가 된다.

여기에 윤 전 총장의 정계 입성 행보가 지지부진하고, 윤 전 총장 본인도 애매모호한 스탠스를 보이고 있는 부분이 부각되기 시작하며 반사효과로 최재형 원장의 주가가 상승,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선이 늘기 시작했다. 또한 윤석열과 달리 박근혜를 수사한 적 없어 보수진영의 거부감도 덜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장점.[6] 2021년 6월 하순 리얼미터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도 6위를 기록하며 깜짝 상승했다. #

그리고 결국 6월 28일 감사원장에서 사임할 의사를 밝혔다. 이를 두고 여당 측에서는 얼마전까지 현직이었고 중립적으로 공무를 수행해야 하는 감사원장이 임기를 마치지 않고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이 옳지 않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반면 조중동과 매일경제 등 보수언론들을 중심으로 한 일각에서는 윤석열, 최재형 등 문재인 정부의 인사들이 야당의 대선주자로 언급되는 것을 두고 사실상 문재인 정부가 이들을 야권 대선주자로 만들어준 것이니 자업자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논란은 최재형/논란 문서 참조.

2021년 6월 28일, 감사원장직 사의를 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일 사표를 재가했다.


5. 정계 입문 이후[편집]



2021년 7월 7일, 감사원장직에서 사퇴한지 9일만에 정치 참여 의사를 공식화했다. 최 전 원장은 이날 언론과의 통화에서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것이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 결과 정치에 참여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걸림돌로 알려졌던 부친 최영섭 예비역 해군대령 등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계 입문 뜻을 밝히고 설득 끝에 결국 동의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감사원장을 중도 사퇴한 상황에서 왜 본인이 정치에 참여하려는 것인지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시간이 일정 정도 필요할 것"이라며, "다만 그 기간이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라고 하면서 지금 당장 대선 출마 선언은 하지 않지만 곧 대선 출마를 선언하겠다는 의사를 시사했다.

7월 8일, 1928년생인 부친이 별세했는데 장례식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고인의 유언이 대한민국을 밝혀라, 소신껏 하라, 신중하게 행동해라였다고 밝혔다. # 이것도 정계 입문에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되고 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선거 캠프 상황실장으로 임명된 김영우 전 의원

7월 11일, 김영우 전 의원을 대변인으로 임명하며 대선 출마를 위한 캠프 구축에 들어갔다. 최 전 원장의 대선 캠프 구축 작업을 국민의힘 측에서 물밑 지원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어 가까운 시일 내에 국민의힘 입당을 예측하는 시선이 늘어난 상태. 최 원장은 김 전 의원에게 "내가 정치 경험이 없다는 걸 알고, 그게 흠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나는 '정치 초보'가 맞다"면서도 "새로운 시대가 안고 있는 다양한 과제를 푸는 것은 경험이 아니라 정치 철학에 달린 문제다. 그걸 해낼 자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원장은 미래를 위협하는 국가 재정 문제, 기회 박탈은 물론 기성세대에서 비롯된 짐까지 짊어져야 하는 청년 세대 문제, 소외된 국민 문제 등을 국가 과제로 꼽기도 했다. #

7월 12일, 선친의 선우제를 마치고, 백선엽 장군 묘역과 제2연평해전·천안함 피격 사건·연평도 포격전 희생자 묘역을 참배했다. 그리고 "정치에 뜻을 두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갈 것"이라면서 "저희 아버지께서 마지막 말씀으로 남기신 것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 소외되고 어렵고 힘든 분들에게도 따뜻한 빛이 비춰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대한민국을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많은 분들이 저를 윤 전 총장의 대안이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저는 저 자체로 평가받고 싶다"라면서 윤석열의 대체제로 평가받는 것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

7월 13일, 여의도 공유오피스에 대선 캠프 사무실을 계약하기로 한 것에 더해 이준석 대표와 회동 약속을 잡았음이 알려졌다. 같은 날, 김영우 대변인은 "대의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의 요체는 정당정치"라며 "정당정치가 아니고서는 대의민주주의를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최 전 원장이 국민의힘 입당에 무게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

정치권 일각에서 윤석열 전 총장과 마찬가지로 법조인 이력이 전부이고 정치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는데, 이에 대해 김영우 대변인은 "감사원장은 모든 공공기관의 세입, 세출 등을 들여다보며 국정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자리"라고 강변했다. #


5.1. 국민의힘 합류[편집]




최재형 전 감사원장 입당 환영식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입당을 도와주는 이준석 대표

국민의힘에 입당한 최재형 전 감사원장
△ 좌측부터 김기현 원내대표, 최재형 전 감사원장, 이준석 대표

사퇴한 지 2주일여가 지난 7월 14일 권영세 의원을 만났고, 바로 다음날인 7월 15일 국민의힘에 입당하였다.[7] 종이 원서 대신 모바일로 입당 신청을 한 것도 주목받았다.

늦게 출발하는 후발주자라는 점도 있지만 2주일 동안 캠프 구성과 참모진 인선, 정치인들을 두루 접촉하며 국민의힘 입당까지 하면서 광속행보를 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이는 윤석열이 입당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 것과는 반대되는 행보로 국민의힘 지지층에게 환영받았다.

15일 오전 입당 소식이 알려지자, 유승민 전 의원은 "최 전 원장께서는 존경받는 법관이셨고 훌륭한 인품을 지니신 분"이라며 "좋은 분과 함께 대선후보 경선을 치르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입당을 뜨겁게 환영한다"라며 "정권의 집요한 방해를 뚫고 헌법이 부여한 감사원의 역할을 하시던 뚝심과 소신으로 야권의 활력과 저변확대, 정권교체에 큰 힘이 돼 주실 것을 기대하겠다"라고 밝혔다.

입당식 때 최재형과 경기고 동문이자 당내 경선 경쟁자이기도 한 박진 의원이 참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한편 여권에서는 "대권 욕심에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을 망쳤다"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정세균 전 총리는 대놓고 "배신자"라는 워딩을 써가며 맹폭을 퍼부었고, 조국 전 장관은 "보수 인사를 발탁 중용한 문재인 대통령의 뜻은 여지없이 배신당했다"라며 비판했다. 민주당 김진욱 대변인은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반헌법적 사례를 남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만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들어올 때까지 꽃가마고 들어오고 나서는 경쟁자들 중 하나"라며 "정당이라는게 항상 밖에 근사한 사람이 있으면 욕심이 나는데 일단 데려오고 나면 그 다음에는 책임지는 곳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윤석열 전 총장은 "정치하는 분들의 각자 상황에 대한 판단과 선택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입당 후 당 안팎에서 최 전 원장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3선의 조해진 의원이 "오늘(16일) 오전 최 전 원장과 통화했다. 도움을 요청하셨다. 도와드려야 할 것 같다"라며 최 전 원장을 지원하기로 했고, 이수원 전 비서실장도 최재형 캠프에 합류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정의화 전 의장도 그를 도울 것으로 예상되는데, 정 전 의장은 최재형 전 원장의 입당 전에도 그를 대권주자로 꼽으며 정치 입문에 대해 조언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고 "조기 입당은 외부 잠룡 한사람으로서 기존 정당의 경선 조건에 대해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대범함이 돋보인다"라며 입당에 대해서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밖에도 과거부터 최재형 지지 의사를 밝혀왔던 김용판 의원이 입당 환영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고, 김미애 의원도 최 원장을 도울 것으로 보인다.

7월 16일, "국가의 정책수립이나 집행 과정에서 통치자의 의중에 따라 적법한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다"라며 문재인 정부에 날을 세웠다. 또 "그 결과 공직자들이 국민보다는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헌법정신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법치주의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라며 대권 행보를 이어나갔다. # 정치권에서 나오는 개헌 논란에 대해서는 "현행 헌법대로 국정을 운영해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변화를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개헌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했다. #

최재형 전 원장의 측근인 김영우 실장도 "정권교체도 중요하지만, 교체 뒤 국민을 아우르는 데는 최 전 원장이 윤 전 총장보다 더 적합하다"라며 "최 전 원장은 분노와 갈등보다는 통합의 정치를 할 분이고, 탄핵과도 관계없다"고 윤석열 전 총장을 에둘러 비판했다.

7월 19일, 서울시청을 방문해 오세훈 서울시장을 예방했다. 이 자리에서 최재형은 "지난 재보궐선거 과정에서 보여준 역전 드라마에 놀라고 감동했다"고 덕담을 건냈고, 오 시장은 "입당을 너무 잘하셨다. 이제 당의 도움을 받으실 수 있다"고 화답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김현아 전 의원[8]을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으로 내정하신 건 잘하신 것 같다"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졌다.#

7월 20일, 국민의힘 대변인단(양준우, 임승호, 김연주, 신인규)과 Q&A를 진행했다.



국민의힘 대변인단과 대화하는 최재형


7월 26일,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이날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8.1%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윤석열 전 총장 - 이재명 지사 - 이낙연 의원에 이어 4위까지 상승했다. 국민의힘 입당 10일 만에 약 4% 정도의 지지율 반등을 이끌어낸 것.

또한 같은 날 신촌의 토즈 스터디룸에서 국민의힘 청년당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는데, 간담회 참가자들의 후기가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국민의힘 지지층 내에서 최 전 원장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7월 28일,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위치한 선거 '명당' 이라 불리는 대하빌딩에 대선캠프 사무실로 쓸 공간을 계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후일담에 의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이곳에 사무실을 얻고 싶어했으나 건물주가 이를 거부하고 이후 최재형과 계약을 했다고 한다.

같은 날 나온 한길리서치의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양대 대권주자와의 가상대결 조사에서 지지율 차이를 10% 이내로 좁히는 등 입당 이후 계속해서 약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5.2. 대선 출마 선언 및 이후 행보[편집]




대선 출마 선언식
8월 4일, 온라인으로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선언식을 진행했다. 연설문은 대체로 호평을 받았으나 감사원장 사퇴 후 정계 직행의 당위성 설파가 부족했던 점은 흠결로 남았다. 또 질의응답 과정에서 외교안보관을 묻는 질문엔 확실한 스탠스를 취했으나 정책적인 측면에선 다소 디테일이 부족한 모습이였으며, 젠더 이슈에 대해서 원론적 입장을 취한 점도 아쉬운 부분이라 지적받는다.[9]. 전반적으로는 캠프의 후속 보완 조치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상황. 한편 출마선언식을 시작할 때 국민의례를 진행하고 본인이 직접 애국가를 독창한 것도 주목받았다.


5.2.1. 8월[편집]


8월 5일, 국립현충원 참배 이후 민심투어에 나서는 것으로 공식적인 대외행보에 돌입했다. 첫 행선지는 본인의 고향인 경남 진해였다.

같은 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부회장의 경우 원칙적으로 가석방의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동안 기업가로서 국가에 기여한 부분, 또 앞으로 기여할 부분도 함께 고려해서 판단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국민 대통합 차원에서 사면을 행사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이튿날인 6일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더위 속에 고령임에도 수감 생활을 하는 데 가슴 아픈 일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민 대통합이란 책무를 다하기 위해 오늘이라도 사면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물론 이후에 법률적으로는 탄핵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며 선을 긋긴 했지만, 사면 거론 자체가 실책으로 다가오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8월 6일, 당 공식 일정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유불문하고 무조건 사죄드린다' 라 밝히며 앞으로는 성심성의껏 일정에 참여할 거라고 말했다. 같은 날 윤 전 총장의 캠프가 이준석 당대표와 척을 지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과 대조되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한편 문재인 정부에게 박근혜 대통령을 즉각 석방하라고 재차 요구하기도 했다.#

8월 7일, 최 전 원장이 정계 직행을 하게 된 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 월성 원전 1호기의 방문 계획을 밝혔다.

8월 12일, 문재인 정부의 신설규제 3500건에 대한 전수조사 및 규제 사항들에 대한 전면 재정비 시행을 골자로 한 1호 공약을 발표할 것을 예고했다.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독립공원의 독립관을 방문했다.

8월 16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예비후보인 윤희숙 국회의원과 만나 2시간 동안 정치와 경제에 대해 비공개 토론을 진행했다.

8월 17일 대한의사협회를 방문해 문재인 정권이 의료인들의 노고를 의미없는 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또 2020년 1분기에 정부가 중국인 입국을 금지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를 보며 대한민국이 베트남처럼 공산화되는 상상을 했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 안보의식이 비뚤어져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또 윤석열 예비후보에 대해 검사 시절 적폐청산 명목으로 수사를 너무 열심히 하셨기에 야권을 통합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냈다.

8월 18일 정책공약 여론 수렴 플랫폼 그린페이퍼 프로젝트 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첫번째 공약은 귀족노조 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8월 19일 KBS에 출연해서 인터뷰했는데, 문재인 정부의 감사원장이라고 해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월성 1호기 가동중단 사건 감사 관련해서 책임자들을 감싸거나 처벌을 미루거나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국민의힘 지도부에는 당내 갈등이 볼썽사납다며 당 차원의 대선후보 연석회의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5.2.2. 9월[편집]


9월 3일, 새터민단체 대표들이 참석하는 북한인권간담회에 등장했다.

9월 5일, 국민의힘 선관위가 주최한 공정경선 서약 행사에 참여했다. 여기서 경선 컷오프에 역선택 방지 조항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기존의 입장을 철회하며 당에 혼란을 야기한 것을 사과한다고 밝혔다.

9월 9일, 국힘 대선후보 경선 후보 면접 1일차에 출연하였다. 자신의 전문 분야와 관련된 질문에선 훌륭한 답변을 보여줬으나 준비되지 않은 질문에 대해서는 아쉬운 대처를 보여줬다. 때문에 정치 경력의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가가 따르고 있다.

9월 14일, 대선 캠프 해체를 전격 선언했다. # 주요 실무진들과 수행 인력들만 남겨 후보 중심으로 레이스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천하람 등 캠프 내 인사들이 밝힌 바에 의하면, 기성 정치 체제의 개혁을 목표로 하던 최재형에게 '기성 정치의 문법' 을 주문하는 이들이 있었고, 이대로 가면 안되겠다고 결심한 최재형이 신속하게 행동에 나선 것이라고 한다.

친박계 현역들의 입성 이후 방향을 잃고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던[10][11] 캠프에 실망하던 지지층에선 반기는 기색이 주를 이루지만,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는 강단있는 과감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호평과 동시에 향후 행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스스로 국민의힘 내 존재 가치에 대한 고찰과 노력이 더욱 더 필요한 상황이다.

9월 15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1차 컷오프를 통과했다.

9월 16일, 상속세의 폐지를 골자로 하는 과세 개혁 공약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필요한 공약이라며 소신 있는 행보라는 평가도 있지만, 캠프 해체와 함께 총괄실장 직을 내려놓은 김영우 전 의원이 "캠프에서 논의된 바가 없는 이야기"라며 부정적 코멘트를 하는가 하면, 하태경 의원 역시 캐나다 등의 자본이득세[12]를 들어 이를 비판하는 등 당내 비판도 제기됐다.

같은 날 저녁, 국민의힘 대선후보 TV 토론에 참여했는데 일각에서 "설마 그동안 캠프가 족쇄 역할을 한거냐"와 같은 반응도 나올 정도로 정치 신인치고는 의외로 선방했다는 호의적 평가가 나왔다.

9월 18일, 이준석 당대표와의 냉면 오찬이 있었다. 이 대표의 취임 100일을 축하하면서 그에게서 지난 서울시장 선거 및 당대표 선거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캠프 운영 노하우를 전수받는 시간을 가졌다고 전해졌다.

9월 23일, 오전에 낙태죄 폐지 반대 입장 및 가덕도 신공항 사업의 재검토 추진 공약을 발표했다. 상속세 폐지 공약 발표 때와 비슷하게 평가가 엇갈리는 분위기였다. [13]

결국 공약발표 직후 최재형 후보의 우군이던 김미애 의원이 가덕도 신공항 사업 재검토 공약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였고, 최재형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경우 상속세 폐지와 가덕도 신공항 사업 재검토 공약에 대한 강한 불만을 이유로 지지를 철회한다는 발표를 했다.[14] 정의화와 김미애는 대외적으로 최재형 전도사로 불렸던 만큼 그들의 지지철회는 최재형 후보 입장에선 엄청난 우군을 잃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캠프 해체 이후 안 그래도 인재 한 명 한 명이 중요한 입장에서 매우 뼈아픈 상황이 됐다.

같은 날 저녁에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2차 TV 토론이 열렸다. 신사적인 태도와 수준급의 토론 스킬을 보여줬다는 평가와 동시에 자신을 어필하는 모습이 부족했다고 평가를 받았다. 하필 토론이 있기 전에 본인의 SNS에서 선거와 관련해 관리부실이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황교안 후보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실책을 범한 것도 마이너스.

9월 26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3차 TV 토론이 열렸다. 유승민 후보에게 과거 행적 관련 질문을 던지는 과정에서 당의 역사에 대해 잘 파악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 점을 제외하면, 비교적 준수한 토론 스킬로 상위권 후보들을 적절히 견제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9월 27일 MBC 여론조사 중 국민의힘 내 각 경선 후보지지도 다자조사에서 8명 중 4위 안에 들기는커녕 공동 4위의 원희룡과 황교안(1.7%)의 절반인 0.8%를 기록하면서 최종 경선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심지어 하태경과 공동 6위였다. 마땅한 수가 없는 이상 최종경선은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여론지지도라 볼 수 있다.

그나마 28일 발표된 데일리안 여론조사에선 윤석열, 홍준표, 유승민의 뒤를 이어 4위를 차지했으나, 같은 날 발표된 원지코리아 여론조사에선 안철수 - 황교안에게 밀려났다. 물론 이 두 개의 여론조사 모두 3차 토론 전에 조사가 이뤄진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반등을 이끌어낼 특단의 수가 필요한 상태. 추가로 발표된 알앤써치 야권 적합도에서 후보 8인 중 7위를 기록했다. 6위의 하태경(1.8%)보다 밀리는 1.6% 수치다.

9월 28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4차 TV 토론이 열렸다. 정치 초보답지 않은 수준급의 토론 스킬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황교안의 부정선거 주장에 말릴 뻔한 모습을 보여준 점은 아쉬운 점이었다.

9월 29일, 박근혜의 생가 터를 방문해 탄핵사태를 거치면서 박근혜의 과(過)만 지나치게 부각된 측면이 있다며 박근혜의 공(功)도 많다고 주장했다. 또한 박근혜의 재판에 문제가 많았다고도 주장했다. #

9월 30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신과 리더십의 계승자를 자처했다. #


5.2.3. 10월, 컷오프[편집]


10월 1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5차 TV 토론이 열렸다. 좋은 토론 능력을 보여주며 괜찮은 평가를 받은 가운데 윤석열 후보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45년 구형했는데 화천대유 관계자들에겐 몇 년 구형하실거냐' 란 질문을 하는 등의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10월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장기표 전 후보와 박찬종 전 의원의 지지선언을 이끌어냈음을 발표했다.

10월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6차 TV 토론이 열렸다. 이번 토론 이후 2차 컷오프가 이뤄진다는 점이 압박으로 다가왔는지 이전 토론들과 달리 디테일이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10월 6일, 사전에 예정된 대구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이준석 당대표의 화천대유 논란 관련 특검 추진 도보시위에 참여했다. 경선 후보들 중 유일하게 참여한 데다, 이준석 대표가 돋보이도록 배려하는 모습으로 "경선 결과와는 상관없이 국힘이 꼭 품어야할 인물" 과 같은 호의적인 평가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10월 8일, 본 경선에 진출하지 못하고 2차 컷오프에서 탈락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내 후보 적합도 1% 대를 못 벗어났으며, 초반 돌풍에도 불구하고 명확하지 않은 방향성으로 혼란을 겪으며 스스로 상승세를 깎아먹다가, 경선 막바지에 이르러 캠프 해체 후에야 비로소 약간 반등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역부족이었다는 평가.

10월 15일, 윤석열 후보의 국민캠프와 홍준표 후보의 jp희망캠프에서 최 전 원장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16일 저녁, 홍준표 후보와 만찬회동 소식이 알려지면서 홍준표 후보의 캠프에 합류할 것이 기정사실화되어가는 상태.

10월 17일, jp희망캠프를 방문하여 홍준표 후보 지지선언을 하였다.


5.2.4. 경선 이후[편집]


2022년 1월 19일, 홍준표윤석열에게 종로구 재보궐에 최재형 공천을 제안했다.

1월 20일, 윤석열과 만났다. 윤석열을 무조건 돕겠다고 밝혔으며, 공천에 관해서 홍준표와 논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

1월 26일,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에 상임고문으로 합류했다. 그리고 2월초에 정강·정책 TV 연설자로 출연해 윤석열 후보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

2월 4일, 김혜경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논란과 관련해 "(감사원장 재직 시절) 2021년도 하반기에 경기도 감사를 계획했는데 제가 감사원장을 사임한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감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는 주장을 폈다. 또한 "업무상 횡령의 죄책까지 물을 수 있는 사안"이라며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감사에서 지적됐어야 할 사안들"이라고 지적하면서, 윤석열 후보가 사법연수원 동기 모임 시절 카드깡에 극구 반대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두 후보가) 참 비교가 된다"고 평했다. #


정강정책 방송연설
같은 날, 제20대 대통령 선거 정강정책 방송연설을 하였다.

지속적으로 종로 재보궐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렸고, 결국 2월 10일 종로에 전략공천되었다. 민주당이 해당지역에 무공천 하기로 결정했으나 김영종종로구청장이 탈당하여 출마했으므로 최재형 vs 김영종의 싸움이라 봐야 할 것이다.

3월 10일 새벽 1시 경, 개표 47.5% 상황에서 47.9% 득표로 당선 유력 발표가 나면서 사실상 당선이 확정되었다.


5.3. 제21대 국회의원[편집]


판사 출신의 엘리트 법조인 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하게 상임위는 법사위행안위가 아니니라 산자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배정받았다. 감사원장때 월성 원전 감사 경력때문으로 보인다.

2022년 3월 24일,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위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의 공천관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5월 13일,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선대위에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합류했다. 그와 함께 선거기간 동안 종로구 출마자들에 대한 지원유세를 열심히 수행하여 오 시장을 비롯한 당내 출마자들의 당선에 기여했다.


5.3.1. 국민의힘 혁신위원회 위원장[편집]


당이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다음날인 2022년 6월 2일, 이준석 대표의 요청으로 국민의힘 혁신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게 되어 2022년말까지 정당혁신·공천혁신을 이끌게 되었다. # #

공천개혁 얘기가 나오면서 혁신위원회를 둘러싸고 당내에서 찬반 갈등이 있었으나, 6월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혁신위 부위원장 및 위원 등 14명에 대한 임명안을 만장일치로 승인하면서 혁신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

7월 3일, 국회에서 워크숍을 열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이날 회의에서 인재영입·공천, 당원 교육·관리, 여의도연구원·당 사무처 개혁을 맡을 3개의 소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 #

혁신위 출범을 주도했던 이준석 대표가 7월 8일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받으면서 혁신위 역시 동력이 상실될 것이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권성동 대표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표면적으로 혁신위에 힘을 싣는 모양새를 보였다. #

8월 17일, 안철수 의원이 주호영 비대위와 병립할 수 없다는 이유로 혁신위 해체를 주장하자, 페이스북에 "안철수 의원님, 혁신위를 흔들지 마십시오."라고 묵직하게 경고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

8월 18일, 안철수 의원이 찾아와서 안 의원과 이야기를 나눴고, 혁신위 해체와 관련된 논란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주호영 비대위원장이 혁신위 안건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도 전했다. 이에 따라 혁신위 해체론은 일단 수그러들게 되었다. # #

8월 22일, 이틀 전에 이준석 전 대표를 찾아 당 혁신 관련 의견을 청취했다고 밝혔다. 당대표로서 1년 동안 당의 운영에 관해 제일 많이 알고 고민했던 사람이라는 이유에서이다. # 윤석열-이준석 갈등에 대해서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라며 "대통령께서 이준석 전 대표를 좀 품으시는 것도 당에 대한 전체적 국민의 지지와 외연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당 윤리위원회에서 이 전 대표 추가 징계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준석 전 대표의 언행이 절제되지 않고 거친 부분이 많다"면서도 "정치 행위가 말을 주로 하는 것인데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한 발언에 제재를 가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같은 날, 공관위 권한 분산과 윤리위 독립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1호 혁신안을 발표했다. ▲ 공관위로 일원화된 공천 기능 중 후보자 부적격심사 권한을 윤리위로 이관하고 ▲ 윤리위원장의 임기를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 윤리위원장·위원 임명은 최고위원회 의결뿐만 아니라 상임전국위원회로부터 추인받도록 하고 ▲ 중앙윤리위원 등 윤리위원의 자격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 구체적 내용이다. 이에 주호영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와 의원총회에서 논의해 확정짓겠다고 밝혔다. # # #

8월 29일, 돌연 지난 20대 대선 후보 경선 과정 당시 허용기간이 아님에도 마이크 연설을 하며 불거진 공직선거법 위반 문제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가 되었음이 알려졌다. 하지만 이 문제는 선관위가 이미 경고로 끝낸 사안인데다, 6개월의 공소시효 역시 열흘 남짓[15] 밖에 나오지 않은지라 때마침 이준석 대표 축출을 위한 새 비대위 구성을 준비하던 친윤 진영에 반기를 든 최재형 의원을 흔들려는 의혹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8월 30일, 정진석 비대위 출범을 두고 유상범과 국민의힘 담당 변호사와 통화까지 하며 법리 공방을 벌였다. 최재형이 보기에 정진석 비대위 역시 주호영 비대위처럼 법원에서 제동을 걸 우려가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16] 유상범이 본인은 모르겠으니 담당 변호사와 통화를 해보라 해서 통화까지 하게 된 것. #

9월 26일, PPAT의 대상을 지방의원에서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 후보자로까지 확대하는 안을 2호 혁신안으로 채택했다. 이를 위해 평가 시행을 전담하는 별도의 기구도 설치하기로 했다. 그리고 'PPAT' 대신 '공직후보자 기초자격평가'로 불러달라고도 당부했다. 그러나 당내 지도부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고,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PPAT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적 있어 혁신안이 관철될 지는 미지수이다. 한편, PPAT 확대 이외에도 ▲ 집행유예자는 죄명에 관계없이 공천 배제하고 ▲ 스토킹과 음란물 유포 등의 성범죄자·음주운전자 등 파렴치범은 벌금형을 받아도 공천 배제하는 안도 2호 혁신안으로 같이 채택되었다. # #

12월 26일, 마지막 혁신위 회의를 주재했다. # 그리고 혁신위는 연말에 ▲공천관리위원회 기능 일부 윤리위 이관 ▲PPAT 확대 및 공천 부적격 기준 강화 ▲온라인 당원투표제 및 300정책발안제 도입 ▲당내 상설위원회 개편 및 특위 활성화 ▲국회의원 중간평가제 도입 ▲비례대표 공천 이원화 및 여의도연구원 개혁 등 6대 혁신안을 비대위에 넘겼다. 이에 2023년 1월 당 비상대책위윈회는 수용 여부에 대한 판단을 차기 지도부로 넘길 것으로 파악되었다. # #


5.3.2. 혁신위원장 이후[편집]


2023년 6월 15일, 중국 동방명주 게이트를 계기로 하여,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정보기관의 위법하고 무분별한 활동을 제한하기 위한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최재형 의원은 "미국, 호주, 싱가포르는 외국대리인등록법이 존재한다. 외국 정보기관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라며 "제정안은 불법적으로 자행되는 도청, 요인 포섭 활동을 억제하고, 악성 영향력 공작 행위를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

11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의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 요청에 대해 "최적의 대법원장 후보자"라고 평가하며 적극적으로 힘을 실었다. 최 의원은 "조 후보자는 법대, 사법연수원(13기) 동기로서 법원에서 30여년 함께 가까이 지내온, 제가 아는 최적의 대법원장 후보자"라며 "치밀하고 논리적인 법리뿐만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소신과 겸손함은 법조 후배들의 존경 대상이었다"라고 소개했다. #

하태경 의원이 종로 출마선언을 하고 최 의원님이 양해해 주셨다 라고 말했던 것에 대해 쿨하게 받아들인 것은 맞으나 솔직히 조금은 불편하다라고 밝혔으며, 페이스북에 종로를 지켜내겠다고 업로드하며 경선에 임할 것임을 밝혔다.

<중국북한이탈주민 강제북송 중단 촉구 결의안>을 대표발의했고, 2023년 11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해당 결의안이 재석 260명 중 찬성 253명, 기권 7명[17]으로 가결되었다. 최 의원은 결의안 통과에 대해 "국회가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이탈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책무를 이행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중국 정부가 대한민국 국회의 요구를 받아들여서 북한이탈주민의 강제북송을 중단하고 북한이탈주민의 의사에 따라 대한민국 또는 제3국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5.4. 제22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지역에서 공천을 받았고, 연임을 노렸으나 더불어민주당 곽상언[18] 후보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1] 정영규(鄭泳奎)의 딸이다.[2] #,재일한국양심수동우회[3] 다큐인사이트,간첩과섬소녀(220929)[4] https://youtu.be/sABvrlgjDNs?t=2170[5] 정부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계획을 두고 최 원장이 '대선에서 41%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는 보도를 두고서, 신동근 의원이 "대통령 국정 운영이 불편하고 맞지 않으면 사퇴하세요! 사퇴하시고 정치를 하시든지 비판을 하시든지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언성을 높였는데,# 후술하듯이 1년이 채 안 되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가 되었다.[6] 정확히 말하자면 장점이자 단점에 가깝다. 최재형 원장에 대해 친박계가 긍정적인 스텐스를 보이고 있는데 이로 인해 친박계의 얼굴마담 이미지가 박혀버릴 것을 경계하는 시선이 존재한다.[7] 같은 날 윤석열 전 총장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만난 것과 대비되면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8] 각종 논란 끝에 8월 1일 사장 후보직에서 자진 사퇴했다.[9] 다만 젠더 이슈 질문의 경우 다소 노골적이었음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10] 특히 홍준표의 약진 이후 최재형의 존재감이 사라져버렸다. 여야 상관없이 최재형에 대한 언급 자체가 사라지고 언론 기사에서도 보기가 힘들어졌다.[11] 친박계 의원들이 지지율 부진의 원인이라는 말들이 많지만 사실 상황실장이였던 김영우 전 의원의 책임이 크다는 말도 흘러나온다.[12] 물론 상속세와 자본이득세는 다른 맥락의 문제란 반론이 가능하다.[13] 낙태죄 폐지 반대 입장 발표 이후 정의당에서 항의했으나, 지지층에서는 헌재에선 일부분에 한해서만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을 뿐이며 낙태죄가 전면 위헌 판결을 받은 건 아니라며 최재형을 옹호하는 의견도 나왔다.[14] 반면 지지층에선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대해선 궁극적으로 가덕도 개조비용+공군 이전비용+김해평야 재개발비용보다 김해평야 재개발 이익이 더 커야 이야기가 맞아 떨어지는데 그렇지 않다는 반론 의견도 있었다.[15] 사건 자체는 작년에 있었으나 실질적인 공소시효는 사건이 영향을 받는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22년 3월부터 줄어들게 된다.그래서 원래 공소시효를 앞두고 촉박하게 기소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16] 최재형은 국민의힘 비대위 수립 논란에서 판검사 출신들이 즐비한 국민의힘 내에서 법적 하자를 우려한 몇 안되는 인물이다.[17] 윤미향(무소속), 강성희(진보당), 강은미(정의당), 김정호, 민형배, 백혜련, 신정훈(이상 더불어민주당)[18] 참고로 상대 후보 장인어른이 대통령 지내기 전에 해당지역에서 제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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