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해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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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표기
4. 목차
5. 의의



1. 개요[편집]


. 조선 중기 1676년에 강우성(康遇聖)이 저술한 일본어 교습서. 총 10권 10책.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인 강우성은 1581년생으로 임진왜란 당시 2차 진주성 전투에서 포로로 잡혀 일본에 끌려간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 소속으로 세키가하라 전투에 종군까지 하고 돌아온 인물로, 이후 조일관계 정상화와 포로 쇄환에 힘썼다.출처: 세키가하라의 조선인


2. 내용[편집]


けくて 御さるほとに ゆるさしられ (원본 가나 표기 일본어)

계군뎨 ᅁᅩᅀᅡ루혼도니 유루사시라례 (원본 한글 독음 일본어)

下口ㅣ오니 마ᄅᆞ쇼셔 (원본 한국어)

下口でござるほどに許さしられ (현대 일본어 표기)

술을 잘 못하는 사람[下口]이니 (술을 주지) 마십시오. (현대 한국어 번역)

つしまにても こなたわ しやうくと ききおよひまるしたほとに しんしやく めさるな (원본 가나 표기 일본어)

주시마니뎨모 고나다와 쇼웅구또 기기오욤비마루시따혼도니 신샤구 몌사루나 (원본 한글 독음 일본어)

對馬島셔도 자ᄂᆡᄂᆞᆫ 上口ㅣ신 줄 聞及ᄒᆞ엿ᄉᆞ오니 斟酌 마ᄋᆞᆸ소 (원본 한국어)

対馬でもこなたは上口と聞き及びまるしたほどに斟酌めさるな (현대 일본어 표기)

대마도에서도 그대는 술을 잘 먹는 사람[上口]이라 들었으니 사양하지 마시오. (현대 한국어 번역)

첩해신어 원간본(1676년) <1:18b> 2. 送使船問情 중

술 못 마신다고 거절하는데도 사양치 말라고 계속 권하는 건 동아시아 공통
원본 및 해석본을 볼 수 있는 사이트

중국어몽골어, 만주어 교습서는 고려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노걸대가 있었으나 왜어노걸대는 전하지 못했다. 때문에 외국어의 번역과 통역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인 사역원(司譯院)의 역관(譯官) 강우성이 일본어 학습을 위하여 책을 편찬하기 시작하는데, 1618년(광해군 10년)에 처음 원고가 탈고되었고 1676년(숙종 2년)에 교서관(校書館)에서 활자로 간행되었다.

권1에서 권4까지는 동래와 부산포의 조선 관리부산왜관(倭館)에 거주하는 일본인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일본인의 내왕과 접대, 무역할 때 사용되는 회화들을 문답체로 엮었다.

권5에서 권8까지는 저자인 강우성이 1617년, 1624년1625년, 1636년1637년 세 차례에 걸쳐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는데 그 경험을 토대로 대마도, 오사카를 거쳐 에도를 왕복하는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학습하기 쉽게 대화체로 엮어 놓았다.

권9에서는 당시 일본의 8주(州)의 이름과 그에 속한 66군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권10은 당시 대왜관계에 쓰이던 각종 공문서나 소로문체(候文體)의 서간문 서식을 담았다.


3. 표기[편집]


히라가나를 한 문장씩 쓰고 한글 음을 나란히 쓴 다음, 연이어 한글로 뜻을 풀이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시 일본에서의 관습대로 일본어 문장에는 탁음 부호를 표기하지 않았다.[1] 한편 한글 발음 표기는 탁음을 반영하고 있는데, [ɡ](が행의 자음 발음)는 '', [z](ざ행의 자음 발음)는 '', [d](だ행의 자음 발음)는 '', [b](ば행의 자음 발음)는 ''로 표기했다. ('ㅿ'를 제외하면) 표기코자 하는 탁음과 같은 조음 위치의 유성 비음자(, , )를 먼저 써 준 후, 같은 조음 위치의 무성 파열음자(, , )를 이어 써서 탁음, 즉 유성 파열음임을 표기한 것.[2]

그리고 탁음이 어중에 들어가는 경우엔 'ᅁ, ㅦ, ㅮ' 합용자 내의 앞 비음자를 앞 음절의 종성으로 당겨 씀으로써 합용자를 두 음절 표기에 걸쳐 나누어 표기한 것도 특징이다. 예를 들어 위 예문 첫머리의 'けくて'는 '계군뎨'로 옮겨져 있는바, 결국 '계구ᄕᅨ'가 되니 (단의 모음자를 ''로 표기했음을 감안하면) 'げくで'를 의도한 표기임을 알 수 있다.[3] 뜻은 현대어로는 げこ(下戸)+で이며 해석된 대로 '술 못 마시는 사람+이니'이다.[4]

참고로 이렇게 비음자를 먼저 써서 탁음을 표기한 것은 일본어의 역사와도 유관하다. '탁음의 선비음화설' 참고.


4. 목차[편집]


권차
장차
원문 제목
번역
권1
1
與代官初相接
대관과 처음 서로 만나다
2
送使船問情
송사선(送使船)에 대해 문정하다
권2
3
茶禮講定 茶禮問答
논의하여 다례를 정하고, 다례에 대하여 묻고 답하다
4
茶禮問答
찬품 그릇 논란
5
封進物看品
봉진물(封進物)을 간품하다
권3
6
下船宴問答
하선하여 잔치를 벌이면서 대화하다
7
始行中盃禮
처음 가는 도중에 술잔치 의식을 행하다
8
送使催答書
송사에게 답신을 재촉하다
권4
9
公木入給
공목을 주고 받다
권5
10
信使探候船
조선통신사가 일본 배가 무역 상대선인가 탐문하다
11
信使到馬島
신사가 대마도에 도착하다
12
請改小童衣服
어린 아이의 의복을 다시 청하다
권6
13
信使與島主語
통신사가 대마도주(對馬島主)와 대화를 나누다
14
對馬島主向江戸
대마도를 떠나 강호(江戸)로 향하다
권7
15
築前主禮候信使
축전주(築前主)가 신사에게 예를 갖추다
16
信使接江戶使
통신사가 강호의 사신을 만나다
17
入江戶見關白
강호에 들어가 관백(關白)을 알현하다
권8
18
信使不受金
신사가 금화를 받지 아니하다
19
信使還到大坂城
신사가 대판 성에 돌아오다
20
島主請信使餞宴
대마도주가 잔치를 베풀며 조선 음악을 청하다
권9
21
與代官相約振舞
대관과 더불어 잔치를 약속하다
22
振舞時請若衆躍
잔치할 때에 젊은 사람들과 놀기를 청하다
23
和語謙讚
일본말 사용할 때 겸손함을 칭찬하다
장차별 제목은 원간본까지는 없다가 개수본에서 추가되었다.


5. 의의[편집]


237건의 학술논문이 있을 정도로 조선 중기 일본어와 한국어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자질문자인 한글의 특성상 과거 일본어의 자음이 어떻게 발음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예를 들어 일본어 (하)행 자음의 경우, 처음에는 발음이 /p/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발음이 무너져 /p > ɸ > h/ 순으로 변화되었다. 일본 문헌상으로는 글자는 그대로이고 발음만 변한 것이기에 이러한 변화를 알기 어려우나 첩해신어 원간본에는 '화(は)' 등으로 적혀 있어 학자들이 당시 발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해 준다. 링크 관련 영상[5]

이후 만들어진 일본어 교습서인 인어대방과 함께 일본어 교육의 주교재로 자주 사용되었으며, 이 교재들은 현재도 일본어 고전문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첩해신어로 보는 한일 양국 언어 비교 1 2 3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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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탁음과 촉음 표기가 의무화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이다.#[2] 참고로 현대 그리스어에서 [b\], [d\], [ɡ\] 발음을 표기할 때도 비슷한 방식을 사용한다. [b\]와 [d\]는 같은 조음 위치의 유성 비음자 + 무성 파열음자로 표기하고\(μπ\(mp), ντ\(nt)), [ɡ\]는 같은 조음 위치의 유성 마찰음자 + 무성 파열음자로 표기한다\(γκ\(ɣk)).(사실 카파 앞의 감마는 본디 연구개 비음을 가리키는 글자였으므로 위의 표기 방식은 모두 그 성격이 같다.)[3] 어두의 한글 평음자는 일어의 청음일 수도, 탁음일 수도 있어 현대어 후대형 없이는 확정하기 어렵다.[4] 원간본에는 げく(下口)로 되어 있으나 개수본부터는 げこ(下戸)로 표현이 바뀐다. 개수본에서 여러 일본어 표현을 당대 쓰임에 맞게 고쳤다고 하는데 실제로 현대에는 げこ(下戸)가 주로 쓰인다.[5] 참고로 15세기1492년경에 조선에서 만들어진 일본어 교재 이로파(伊路波)에서는 は(/ɸa/)를 'ᄫᅡ'로 적었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