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6.4 항쟁/각종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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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천안문 6.4 항쟁

1. 개요
2. 다큐멘터리
3. 음악
4. 영화
5. 문학
6. 만화
7. 애니메이션
8. 게임
9. 인터넷
10. 예능



1. 개요[편집]


각종 매체에서 다루는 중국천안문 6.4 항쟁을 정리한 문서이다.


2. 다큐멘터리[편집]



천안문 6.4 항쟁 3시간 다큐멘터리(중국어)

미국인 리처드 고든과 카마 힌턴이 공동 감독한 1995년 다큐멘터리 '천안문(The Gate of Heavenly Peace)'은 천안문 사태를 다룬 걸작이다. 당시 시위에 참여한 학생운동가들과 시민들, 지식인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는 훗날 노벨평화상을 받는 류샤오보도 있다. 1997년 4월, 제2회 서울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되었으나 영화제를 후원하는 삼성그룹이 중국을 의식하여 압력을 넣어 일방적으로 상영이 취소되었다. '스트라이커'로 방송프로덕션상을 수상한 김진상은 이에 대해 항의하면서 수상을 거부하였고, 관중들은 이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 서울 다큐멘터리 영상제뿐 아니라 싱가포르 영화제, 시드니 국제영화제 등에서도 상영이 취소되는 해프닝이 잇따르기도 했다. 1998년 6월 한국에도 정식개봉했으나 천안문의 뜻을 그대로 영역한 'The Gate of Heavenly Peace'를 '태평천국의 문'이라는 기괴한 제목으로 직역하는 바람에 욕을 먹었다. 이에 대해 심의 통과를 위해서 일부러 오역한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 영어 나레이션 버전과 중국어 나레이션 버전 2가지가 존재한다. 단순히 중국공산당을 욕하는 작품이 아니라 당시 시위대 내부의 강경파와 온건파의 충돌, 홍콩과 화교들이 보내온 막대한 후원금을 놓고 벌어진 금전 문제 등도 여과없이 다뤄서 차이링을 비롯한 생존한 학생 지도자들도 이 작품을 반기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2010년 광주광역시 비엔날레 출품작인 류웨이 감독의 'Unforgettable Memory'를 보면 이 사건을 보는 중국인들의 시각이 잘 나와있다. 오늘이 며칠이냐고 묻자 중국인들은 한결같이 회피하거나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유는 비디오를 찍은 날이 바로 천안문 6.4 항쟁이 일어났던 6월 4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상에 나온 중국인들은 천안문 6.4 항쟁에 대해 알고는 있다는 것이다. 다만 세월이 흐른데다가 천안문 6.4 항쟁을 애써 은폐하고있는지라 지방민이거나 젊은층들은 잘 모르거나 안다해도 폭동 정도로 아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위의 탱크맨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 사진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는가? 이 사진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드는가?"라고 물으면, "이 탱크들은 198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군요. 그런데 이상하네요. 1980년대 이후에 중국이 전쟁을 했던가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해당 사진의 전차의 기본형은 1950년 말부터 생산된 것이지만 탱크맨 사진의 사양은 105mm 강선포를 장착한 59식-II 계열 전차로 1980년대에 만들어진 전차가 실제로 맞다.

그게 아니면 "저는 정치적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주제에 대해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너무 민감한 이야깁니다."라고 겸연쩍게 웃으면서, 아예 대화를 거부하고 서둘러 사진을 돌려주고 가버린다. 어떤 사람들은 탱크는 보이는데, 사람은 안 보인다고 아예 탱크맨의 존재 자체도 무시한다. 일례로 관광 중 가이드에게 천안문 광장에서 넌지시 물어보자. '서방의 프로파간다, 악의적인 거짓말'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3. 음악[편집]




1989년 5월 27일, 성룡, 매염방, 장학우, 증지위 등 홍콩의 유명 연예인들이 총동원되어 베이징의 학생시위와의 연대를 표명하며 중국의 민주주의를 호소한 민주가성헌중화(民主歌聲獻中華, Concert for Democracy in China)는 저항음악사, 홍콩민중사에 한 획을 그은 대형 사건이었다. 최소 50만명의 관중이 참가한 것으로 전해지며, 홍콩 시민들이 정치적 아젠다를 위해서 이렇게 대규모로 집결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소식을 듣고 대만에서 등려군도 와서 지원사격하였다.


시위 참가자 허우더젠이 부른 '아름다운 중국인(漂亮的中国人)'


천안문 6.4 항쟁을 묘사한 1989년 필립 모건의 노래인 '광장에 흐르는 피(The blood is on the square)'


또한 인더스트리얼 밴드인 스키니 퍼피의 'Tin Omen'도 천안문 6.4 항쟁을 주제로 했다.
곡명인 'Tin Omen'부터가 'Tiananmen'과 발음이 비슷하다. 뜻은 '양철 징조'다.


중국 당국의 선전에 대한 풍자적 의미를 담아 제작된 노래인 R.E.M.의 'Shiny Happy People'


천안문 6.4 항쟁 희생자 추모를 위해 제작된 노래인 '자유의 꽃(自由花)'



매염방이 부른 '혈염적풍채'라는 노래는 중월전쟁에 참가했다가 전사한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지만 매염방이 1990년 콘서트에서 천안문 6.4 항쟁 때 희생당한 젊은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부른 후부터는 천안문 6.4 항쟁 추모 노래로도 많이 불린다. 다만 원래는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곡인지라 중국 내에서 다른 천안문 관련 콘텐츠가 검열삭제되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이 노래는 멀쩡히 검색되기는 한다. 물론 천안문 6.4 항쟁 관련 언급이 있거나 할 경우에는 얄짤없이 삭제된다.#


홍콩에서 열린 천안문 6.4 항쟁 추모식 때 '혈염적풍채'를 부르는 시민들의 모습


1989년 5월 대만 4개 음반사가 협력하여 제작한 '歷史的傷口'라는 노래다.
왕걸, 장우생, 이종성 등 당대의 톱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4. 영화[편집]


2006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한 로예 감독의 '여름궁전'(원제 : 頤和園)이 있다. 당연히 중국 정부는 상영금지와 동시에 로예에게 5년 동안 중국에서 영화를 만들지 못하도록 금지 조치를 내렸다.[1] 이에 로예는 중국 정부의 조치를 무시하고 몰래 영화 스프링 피버를 만들었고, 그 영화는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여름궁전 말고도 중국 지하전영에서 천안문 관련된 영화가 소수나마 만들어졌지만 모두 철퇴를 맞았다.


5. 문학[편집]


샨사프랑스어로 발표한 최초의 소설인 '천안문의 여자(Porte de la paix céleste)'가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원제는 천안문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직역한 "천상의 평화의 문"이라는 의미다.


6. 만화[편집]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f2a9faba.jpg

토오루(철수) : 베를린 장벽이다!

신짱(짱구) : 그럼 나는 천안문 광장이다.

네네(유리) : 선생님, 우리들 수준이 낮은가요?

선생님(채성아) : 아니, 쟤네들이 이상한 거야.


크레용 신짱 1화 잡지 연재분에서 신노스케와 토오루가 찰흙 조소 대결을 하다가 각각 천안문 광장베를린 장벽을 만들게 되는데, 이 때 신노스케가 59식 전차를 빚어낸다.

사실 이는 짱구는 못말려가 원래 어른을 대상으로 한 만화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장면이었다.[2] 그러나 이후 아동층의 지지가 높아지자 아동 만화로 노선이 바뀌었고 당연하게도 이 장면은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한 나머지 결국 단행본에서는 잘렸다.

만화 홍랑은 아예 배경부터가 천안문 6.4 항쟁을 다루고 있다.


7. 애니메이션[편집]


파일:external/www.arctosia.com/2008060401.jpg

천안문 광장

1989년에 여기서 아무 일도 없었음.


심슨 가족에서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에서 천안문 6.4 항쟁을 대놓고 풍자했다. 그리고 이 장면 뒤에 중국 현지 가이드가 탱크를 타고 링 부비에를 데리고 있는 셀마 부비에 앞에 나타나는데, 탱크맨을 연상시킨다. 또한 미국에서 1980년대 유행한 장식 중에 'On This Site, in 1897[3], Nothing Happened'라고 써진 장식이 있었는데, 그것을 패러디한 듯하다.

그리고 시즌 22 12화 'Homer the Father' 에피소드에서는 중국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호머 심슨이 호텔 앞에서 공항까지 20달러 이하로 가줄 택시를 잡는데 천안문 광장의 탱크처럼 나란히 있던 여러 대의 택시 중 가장 앞에 있던 택시가 호머를 태우는 것을 거부하며 떠나려고 하자 호머는 택시 앞을 가로막는데 이때 3인칭으로 보여주는 구도가 위의 탱크맨과 완전히 같은 구도였으며, 호머는 양손에 가방을 든 채 자신을 피해 옆으로 지나가려는 택시를 따라 좌우로 움직이며 "하루 종일 이럴 수 있어!"라고 하며 길을 막은 호머는 결국 발이 아프다는 이유로 자리에 드러누우며 에피소드는 끝나게 된다.


8. 게임[편집]


대만산 게임인 Mayjasmine Episode01 - What is God?에서도 조연 캐릭터가 중국에서 나와 왜 인도네시아에 살게 되었는지 배경으로 언급된다.


9. 인터넷[편집]


천안문 6.4 항쟁은 중국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탄압이기 때문에 중국 당국에게 이 사건은 대표적인 흑역사이다. 물론 인터넷에서 검색하지 못하도록 중국 공안이 철저하게 검열한다.

한국에서 유명한 짤은 "아름다운 중국인의 미소"라는 GIF이다. 자전거를 탄 중국인에게 천안문으로 가는지와 이유를 묻자 "그것이 제 의무니까요." 라고 대답하는 내용이다.[4] 영상 내내 환하게 미소를 유지하는 모습 때문에 저 남성은 대인이라 불리며 많은 커뮤니티에 퍼졌다.

우스갯소리로 쓸 만한 소재는 아니지만 이것 때문에 중국발 DDoS 공격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이트에 "천안문"이라는 텍스트를 넣어 두는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여러 마법의 단어가 있으며, 이것이 모이고 모여서 2011년 9월 즈음에는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이라는 마법의 단어가 유행하기도 했다.[5]

시나 웨이보에서는 '천안문'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관련 법규와 정책에 따라 검색 결과를 보여줄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뜬다. 검색 사이트 바이두에서는 일반적인 천안문 관련 정보는 뜨지만 '천안문 마마(엄마)'는 검색이 차단되어 있다.[6] 그리고 '천안문 사건'이라고 치면 1976년 4월 5일에 일어난 1차 천안문 사태밖에 안 나온다.


10. 예능[편집]


비정상회담에서 대자보 문화에 대해 다룬 적이 있었는데, 천안문 6.4 항쟁에 나온 대자보를 언급하자 당시 중국인 패널이었던 왕심린이 아무것도 모른다면서 귀를 막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이렇게 안 하면 고국에 있는 가족이나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본인한테 무슨 불이익이 있을지 모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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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로예는 데뷔작 주말연인에서도 천안문 항쟁을 다루는 등 개김성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중국 영화계 검열 논란을 언급하면 항상 빠지지 않는 감독이며, 중국공산당이 망친 대표적인 감독으로 손꼽힌다. 2019년 난심대극원(새터데이 픽션)도 검열에 걸려 출품을 지연해야 했다.[2] 사실 우스이 선생의 짱구는 못말려 전작을 보면 온갖 화장실 개그에 백미는 부장과 사원이 서로 동성애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올 정도였다.(거기에 사원 쪽이 공이고 부장이 수)[3] 또는 Sept. 5, 1782로 나온다.[4] 원문에서는 'Go to march, Tiananmen square. Why? I think this is my duty!'라고 말한다.[5] 그러나 해당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사실 저렇게 적어 놔도 그다지 효과는 없었고 괜히 자기 마음에 안드는 사람을 중국인으로 모는 어그로에 남용되며 사용빈도가 줄었다.[6] 이는 천안문 6.4 항쟁 당시에 희생된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중심이 되어서 만든 천안문 어머니회라는 단체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