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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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필
車相弼 | Cha Sang-phil


출생
1934년 11월 17일
함경북도 회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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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1남 1녀
학력
서울대학교 (법학 / 학사)
경력
함경북도지사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상공부 차관보
상공부 광전과 사무관

1. 개요
2. 생애
2.1. 유년기
2.2. 파란만장한 삶
2.3. 부인을 잃고 미국으로
2.4. 근황
3.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관료이며, 별명은 '인민군 출신 차관보'.


2. 생애[편집]



2.1. 유년기[편집]


1934년 11월 17일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2.2. 파란만장한 삶[편집]


1950년 6.25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에 징집되어 하전사로 참전하였으나 탈영에 성공하였다. 국군서울 수복에 성공하자 국군에 재입대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복무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1]을 다니다가 졸업하였으며, 이 때 고등고시 행정과[2]에 합격하여 관직에 몸담게 된다.

첫 보직은 상공부[3] 광전과 사무관이다. 이후 오랜 관료 생활을 거쳐 상공부 차관보로 승진하였다. 상공부 근무 중 1989년 남북경제회담에서 남측 수석대표로 참석하여 북한 인사들을 당황하게 한 전적이 있다.

공직 퇴임 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함경북도지사를 역임하였다.


2.3. 부인을 잃고 미국으로[편집]


1998년 10월 23일 본인과 박필수 전 상공부 장관, 최승태 경동탄광 사장 부부를 태운 현대 에어로타운 초기형 미니버스가 마주오던 동부고속 소속 현대 에어로[4] 우등고속버스와 충돌하였다[5]. 이 사고로 본인은 중상을 입었고, 본인의 부인은 즉사했다. 함께 버스에 탑승한 박필수 전 장관, 최승태 경동탄광 사장 부부와 유각종 전 상공부 차관, 경동탄광 소속 버스기사 또한 이 사고로 즉사했다KBS뉴스 출처. 마주오던 동부고속 차량에서도 운전기사와 승객 1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로 상공부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도 잃고 부인도 잃으면서 낙담하여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갔다가 다시 귀국하였다.


2.4. 근황[편집]


박근혜 정부 말기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였다출처.


3. 여담[편집]


  • 별명이 '차 국장'이다.
  • 맏형은 고려대학교 법과대학[6]을 졸업하였으며, 대학 졸업 후 국군 장교로 임관하여 영관장교까지 올랐다. 둘째 형은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경제과를 졸업하여 조선인민군 중위6.25 전쟁에 참전했으나 포로로 잡혔다. 둘째 형은 포로교환을 통해 북한으로 돌아갔다.
  • 현재까지 삼형제가 남한과 북한에 흩어져 살고 있다. 둘째 형은 북한에 거주하고 있다고 하는데 폐쇄적인 북한 체제의 특성상 행방을 알 수 없다.
  • 차 차관보의 아들은 맏형이 다니던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여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딸은 출가하여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 고등고시 행정과 동기로 고건국무총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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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법과대학은 없어졌고, 로스쿨이 명맥을 잇고 있다.[2] 현재는 행정고시[3] 현 산업통상자원부[4] 각 에어로이다.[5] 사고 지점은 영동고속도로 평창군 구간이었는데, 사고 당시 영동고속도로의 신갈~원주 구간은 4차선으로 확장되었으나 원주~강릉 구간은 여전히 2차선이었다.[6] 현재 고려대도 서울대와 마찬가지로 법대가 없어지고 로스쿨이 명맥을 잇고 있다.